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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08.14)

131706 김중애 [ji5321] 스크랩 2019-08-14

 


2019년 8월 14일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 기념일

제1독서 신명 34,1-12

그 무렵

1 모세가 모압 평야에서

예리코 맞은쪽에 있는

느보 산 피스가

꼭대기에 올라가자,

 주님께서 그에게

온 땅을 보여 주셨다.

 단까지 이르는 길앗,

 2 온 납탈리, 에프라임과

므나쎄의 땅, 서쪽 바다까지

이르는 유다의 온 땅,

3 네겝, 그리고 초아르까지

이르는 평야 지역,

곧 야자나무 성읍 예리코

골짜기를 보여 주셨다.
4 그리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저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너의 후손에게 저 땅을 주겠다.’

하고 맹세한 땅이다.

이렇게 네 눈으로 저 땅을

바라보게는 해 주지만,

네가 그곳으로 건너가지는 못한다.”
5 주님의 종 모세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곳 모압 땅에서 죽었다.

 6 그분께서 그를 모압 땅

벳 프오르 맞은쪽 골짜기에

묻히게 하셨는데,

오늘날까지 아무도

그가 묻힌 곳을 알지 못한다.
7 모세는 죽을 때에 나이가

백스무 살이었으나,

눈이 어둡지 않았고

기력도 없지 않았다.
8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압 평야에서 삼십 일 동안

모세를 생각하며 애곡하였다.

그런 뒤에 모세를 애도하는

애곡 기간이 끝났다.
9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여호수아는

지혜의 영으로 가득 찼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의 말을 들으며,

주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실천하였다.
10 이스라엘에는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사람이다.

 11 주님께서 그를 보내시어,

 이집트 땅에서 파라오와

 그의 모든 신하와 온 나라에

일으키게 하신 그 모든 표징과

기적을 보아서도 그러하고,

12 모세가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이룬 그 모든 위업과

그 모든 놀라운 대업을

보아서도 그러하다.

복음 마태 18,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5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16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때문이다.

17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18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19 내가 또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소속감은 행복과 정서적

안녕에 필요하다고 합니다.

 미국 과학 진흥회에서 발간하는

과학 학술지 ‘사이언스’에 의하면,

사회 관계망은 면역력을 증가시켜

질병 저항력을 높이고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관계가 풍부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불안과 우울을 덜 느끼게 됩니다.

그러므로 소속감을 느낄 수 있는

관계가 어떤 의미로 다가오든지

꼭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관계 속에서 상처를

 받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관계를 맺지 않음으로써

파생되는 자기 자신의 피해는

어떨지 떠올려 보십시오.

예전의 아픈 상처로 더는 관계를

 맺지 않겠다고 하지만 사실 좋은

관계가 더 많다는 것을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떤 형제님께서 자식 때문에

집 안이 편안한 날이 없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는 포기했다면서

마음은 아프지만 어떻게 살든

이제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동안의 아픔이 얼마나 컸었기에

이러한 다짐까지 하시게 되었을까

 싶지만, 말처럼 포기가 쉽겠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또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죄를 지은 사람에게 충고했지만,

듣지 않는다고 그대로 놓아두는 것은

사랑에서 우러난 대응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을

포기하면 결국 힘들어지는 것은

나 자신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포기하는 것은 관계를

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관계를 끊음으로 인해서

 나의 행복이 보장될 것 같지만,

관계가 깨짐으로 인해 생기는

고통이 더 커지게 됩니다.

따라서 그냥 포기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나와 그의 미래를 바라보면서

지금 해야 할 것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주십니다.

곧 첫 번째는 혼자서,

두 번째는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그다음에는 교회에 알려서

 타이르라고 이르십니다.

이러한 행동을 왜 하는 것일까요?

그 사람의 변화를 위해 포기하지

않는 것으로 주님 안에서 모두가

노력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일치와

화합을 실로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혼자 하는 기도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마음을 모아서 바치는

 기도를 원하시기에,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무엇이든 청하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관계의 회복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을까요?

 함께 하기보다는 혼자 하는 것을

더 즐기면서, 내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혹시 함께 기도하더라도

나 자신만의 기도만을

드리고 있으며, 관계의

회복보다는 내게 어떤

이득이 되고 있는가를

먼저 살펴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진정한 관계의 회복은 주님의 사랑이

내 안에 기둥처럼

세워져 있을 때 가능합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한편 그것을

이겨내는 일로도 가득 차 있다.

(헬렌 켈러)

(오늘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사제

순교자를 기념합니다)


5:1의 원칙

미국 워싱턴 대학교 심리학과의

존 고트먼 교수는 부부의 대화를

지켜보면 이 부부가 5년 안에

불행하게 이혼하게 될지,

아니면 행복한 부부생활을

유지할 것인지 알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적중률이

자그마치 95%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그는 10년 동안 700쌍의

부부 대화를 조사하고 수집했습니다.

그리고 이 안에서 하나의

원칙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칭찬과 비난이 5:1 이상일 경우

 10년 뒤에도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 이하는 5년 이내에 불행한

이혼을 맞이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칭찬의 힘을 굳게 믿고,

 한 번의 비난이 있었다면

다섯 번 이상의 칭찬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바로

 이 ‘칭찬’에 있었습니다.

(서울 당고개 성지 성당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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