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GOOD NEWS 게시판

검색
메뉴

검색

검색 닫기

검색

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6일 (금)부활 제4주간 금요일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가톨릭마당

sub_menu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 산 자가 가야 할 그 길만을 보면서 / 연중 제13주간 월요일

130745 박윤식 [big-llight] 2019-07-01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주님 안에서 자유인은 세속적, 물질적인 온갖 것에 매이지 않고 썩어갈 것들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이기적 생각에 빠져 자신마저 질식하는 이는 참된 자유인이 아니다. ‘예수님 제자 가운데 어떤 이가, “주님, 집에 가서 아버지 장사를 지내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8,21-22 참조)’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겠다는 이에게 결단을 요구하신다. 쟁기를 잡고 자꾸 뒤를 돌아보면, 제대로 밭을 갈지도 못하고 엉뚱한 길로만 빠진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께 의탁하지 못해 세속에 빠져, 가끔은 거기에만 안주하려든다. 그런 것들은 결국 사라질 물거품이다. 주님을 따르려면 세상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말아야 할 게다. 서슴없이 몸 바쳐, 오직 한 길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어차피 장사를 지내야 하는 죽은 이들은 바로 하느님 나라의 길을 찾지 못한 이들일 게다. 어떤 미련도 없이 오직 그분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의 것이라며 부르신다. 우리 생각으로는 너무 모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올바로 따를 수 있으랴. 그것은 따를 수 없는 것이리라.

 

자연에 생기 넘치는 계절이지만 낮 시간을 정신없이 지내면서 위안을 찾는 밤이 돌아오면, ‘산다는 것이 무겁고 허전한 마음을 끌고 가는 것이구나!’라는 씁쓸함이 뇌리를 스친다. 정성을 기울였던 일에서 보람을 느끼지 못할뿐더러 의지할 만한 이들과의 관계가 어느새 짐이 되고 진부해지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마음은 서서히 지쳐진다. 차라리 세상사 다 잊고서, 정녕 자유로우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 때도 가끔 있다.

 

누군가가 허무하고 쓸쓸할 때는 인생이 우주의 위대함과 자연의 순리에 비하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치는 고전 몇 줄씩이라도 읽으란다. ‘본디 사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러려니.’하고 생각하면 지내기 쉬울 것 같기도 하단다. 아닌 게 아니라 버림은 부산하게 닥치는 일, 바쁜 마음에서 지친 마음을 쉬는 위로가 된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서나마 세상 사랑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소리가 심장이 뛰듯 들린다.

 

예수님께서는 대충 쉽게 가르치심으로써, 되도록 많은 이들을 제자로 만들려 하지 않으시고 모든 것을 버리고 철저히 하느님께 의탁하는 이들만 참 제자로 받아들이신다. 사실 우리는 너무 쉽게 그분을 따르려 덤벼든다. 부모님의 장사도 자식에게는 어쩌면 아주 중요하지만, 그나마 예수님 따르는 건 죽기 살기의 결단이 요구된다. 장애가 되는 건, 과감히 물리쳐야 하리라.

 

좌우간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전히 자유로운 몸이 되었다. 자유인은 자신의 모든 삶을 이끌어 갈 바른 기준을 스스로 가진다. 그런 신념이 없으면 늘 핑계나 구실로 자신 합리화에만 급급할 테니까. 그러니 믿음의 삶을 살려면 자신만의 마음을 정말 독하게 가져야한다. 믿고 안 믿고는 자유다. 이 세상에 공짜가 없듯이 저 세상 길도 물론 공짜는 없다. 믿는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길을 따라 그분만을 보면서, ‘산 자가 가야 할 그 길만을 보면서 가야 하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 1,349 1

추천  2 반대  0 신고  

TAG

장사,믿음,목숨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로그인후 등록 가능합니다.

0 / 500

이미지첨부 등록

더보기
리스트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