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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9.10.27)

133465 김중애 [ji5321] 스크랩 2019-10-27

 

2019년 10월 27일

연중 제30주일

제1독서 집회 35,15ㄴ-17.20-22ㄴ

15 주님께서는 심판자이시고

차별 대우를 하지 않으신다.

16 그분께서는 가난한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부당한 대우를

받은 사람의 기도를 들어 주시리라.

17 그분께서는 고아의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시고 과부가 쏟아

놓는 하소연을 들어 주신다.

20 뜻에 맞게 예배를 드리는 이는

받아들여지고 그의 기도는

구름에까지 올라가리라.

21 겸손한 이의 기도는 구름을 거쳐서

그분께 도달하기까지 위로를 마다한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살펴

주실 때까지 그만두지 않으니

22 그분께서 의로운 자들의

송사를 듣고 판결해 주신다.

주님께서는 머뭇거리지 않으신다.

제2독서 2티모 4,6-8.16-18

사랑하는 그대여,

6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7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16 나의 첫 변론 때에 아무도

나를 거들어 주지 않고,

모두 나를 저버렸습니다.

그들에게 이것이 불리하게

셈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17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 곁에

계시면서 나를 굳세게

해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복음 선포가

완수되고 모든 민족들이

그것을 듣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자의 입에서

구출되었습니다.
18 주님께서는 앞으로도 나를

모든 악행에서 구출하시고,

 하늘에 있는 당신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빕니다. 아멘.

복음 루카 18,9-14

그때에 9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롭다고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다.
11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 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12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러나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1908년, 심리학자 로버트 M.

여키스와 존 D.도스은 갑작스러운

자극이 개인의 생산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했습니다.

연구팀은 미로에 실험 쥐를 넣고

약한 전기충격을 주어 스트레스가

 미로를 탈출하려는 노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살폈습니다.

그 결과 낮은 수준의 자극이나

압박은 낮은 성과로 이어졌고,

 여기에 좀 더 높은 자극이 가해져

스트레스 수준이 높아지면 성과가

올라간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친 자극으로 불안감이나

긴장도가 너무 높아지면,

 성과는 다시 낮아졌습니다.
이 실험 결과를 통해 높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긴장감을 줄 수 있는

자극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극이 없으면 안일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고,

자극이 너무 크면 그냥 포기해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극이 우리의 삶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고통과 시련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고통과 시련이 있기를 바라고 있나요?

아무런 고통과 시련 없이 편안하고

쉬운 삶만 살기를 바라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러다 보니 조금의

자극이나 압박이 들어오면 남 탓을

 하는데 온 힘을 기울입니다.

누구 때문에 너무 힘들고, 누구 때문에

자신에게 불행의 삶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편안함은 자신이

잘살아서 그런 것이고, 자신의 불편함은

남 때문에 생겼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됩니다.

바로 고해소 안에서입니다.

분명히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남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일까요?

어떤 신부님께서는 고해소에서

제일 많이 고백하는 죄가 ‘남의 죄’와

 ‘이밖에 알아내지 못한 죄’라고

하더군요.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어떤 모습을 원하실까요?
자신의 자리에 안주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자신의 힘을 쏟아서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

또 스스로 죄 없다면서 하느님보다

더 의로운 사람인 척하는 것보다는

 진정으로 뉘우쳐서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우리의 모습을 원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당시에 올바르게 살고 있다고

인정받던 사람은 바리사이였습니다.

그들은 기도, 단식, 자선 등을 실천하면서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그에 반해 세리는 이방인 로마에

빌붙어 살면서 온갖 비리를 저지르면서

 때로는 율법에서 금지하는 것도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유다인은 이 세리를

경멸했습니다. 그러나 세리의 기도가

더 옳다고 하십니다. 바리사이는 자신의

자리에 만족하며 자기를 드러내는

기도만 하고 있지만, 세리는 진정으로

뉘우치며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기도를 바쳤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기도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당연히 세리의 모습입니다.

이 겸손한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원하시는 변화, 즉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 상황과 형편에 따라 달리 본다.

(아나이스 닌)

(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어떤 기도를 바치십니까?)


남을 이해한다는 것.

겨울에 눈이 오면 대부분 좋아합니다.

하지만 모든 이가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지요.

저 역시 눈이 싫습니다.

운전하다가 눈길에 미끄러져

사고가 난 적도 있었고, 어렸을 때

그리고 군대에 있을 때 눈 치우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체험한 후로 눈이

정말로 싫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들,

연인들은 너무나 좋아하지요.

이렇게 사람마다 분명히

좋아하는 것이 다릅니다.

이 점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만이 아닌 남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고,

 나만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남들 역시 힘들고 어려움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 사랑도 물론 필요합니다.

그러나 남을 바라보는 사랑을 통해

나 자신을 더욱더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프랑스 퐁맹의 성모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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