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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사연구소] 기해박해 180주년 댓글 이벤트 - 조신철 가롤로 편

10383 굿뉴스 [goodnews] 스크랩 2019-09-30

기해박해 180주년 댓글 이벤트 - 조신철 가롤로 편

 

 

  기해박해는 4대 박해 중 신유박해 이후에 전국적 규모로 일어난 두번째 박해다.

  1839년 4월 ‘사학토치령(邪學討治令)’이 공식 반포되면서 대대적인 천주교 신자 탄압이 시작됐다.

  전국적인 박해는 184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이 때문에 제2대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와 모방ㆍ샤스탕 신부 등 조선 교회 핵심 지도자들이 신앙을 지키다 순교했다.

 

 

※ 다섯번째 편: 조신철 가롤로(1796~1839년) 

 

기해박해 180주년을 맞아 굿뉴스는 한국교회사연구소와 함께 11월 3일까지 매주 한분의 성인을 소개하고 그분의 삶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 가톨릭성인 > 굿뉴스 연재 기해박해 순교자 약전, 조신철 가롤로 편

 

 

   동지사(冬至使) 마부로 일하다

   조신철 가롤로(趙信喆, 1796~1839)는 성녀 최영이 바르바라(1818~1840)의 남편이자 성인 최창흡 베드로(1787~1839)의 사위이다. 그는 1796년 강원도 회양(淮陽)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다섯 살 때 모친을 여의었다. 이후 부친이 얼마 안 되던 가산을 탕진해 가세가 기울자 어린 조신철은 먹고살기 위해 삭발하고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그는 몇 년 후 승려 생활에 염증을 느껴서 속세로 돌아와 이 집, 저 집 다니며 머슴살이로 겨우 연명하였다. 그러다가 서울 서소문 밖에 거주하며 23세 때부터 매년 동짓달에 중국으로 파견되는 사절단(동지사)에 마부(馬夫)로 일하며 가족을 봉양하기 시작하였다.

 

성직자 영입 운동에 힘쓰다
 조신철이 30세 경에 역관(譯官) 유진길 아우구스티노(1791~1839)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워 천주교 신앙을 가졌다. 유진길은 동지사 사행에 매년 함께 가던 마부 조신철이 천주교 신자가 아님에도 보기 드문 곧은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판단하여 천주교를 가르친 것이다. 조신철은 처음에는 천주교에 대해 거부감을 가졌으나 점차 유진길에게 설득되었고 착실한 예비 신자가 되었다. 이후 그는 1826년 유진길과 함께 북경 천주당을 방문하여 세례·견진·고해·성체 성사를 받았다.
 조신철은 동지사 마부로 일하면서 북경 천주교회와의 연락과 성직자 영입 운동 등에 깊이 관여하였다. 1833년에는 유방제 파치피코(余恒德, 1795~1854) 신부, 1836년에 모방(羅伯多祿, 1803~1839) 신부, 1837년 샤스탕(鄭牙各伯, 1803~1839) 신부와 앵베르(范世亨, 1797~1839) 주교 등 선교사를 입국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한 그는 도리를 배우고 실천하는데 열심이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여 궁핍한 사람들을 돕고 선교에도 힘을 썼다. 특히 고집을 부리고 천주교를 받아들이지 않던 아내를 인내와 노력으로 천주교에 입교시켜 선종하게 하였다. 조신철은 아내가 선종한 후 성녀 최영이 바르바라와 재혼하였다.

 

     천국으로 가다
    1839년 초 기해박해가 시작되기 전에 조신철은 북경에서 돌아오는 길에 꿈을 꿨는데 예수님이 좌우에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 사도를 거느리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꿈속에서 예수님이 “올해 너에게 나의 영광을 위해 피를 흘리는 특별한 은혜를 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엎드려서 감사를 드렸다. 잠에서 깼을 때 그는 꿈에서 보고 들은 것이 허황된 꿈일 뿐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똑같은 꿈을 다시 꾼 그는 그것이 꿈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일이라는 것을 믿으며 자신이 순교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기해박해(己亥迫害)가 일어나자 조신철은 처가로 피신하였다가, 음력 5월 어느 날 외출하고 돌아오는 길에 처가를 습격한 포졸들이 그의 가족을 결박하고 심지어 어린 젖먹이까지 잡아가는 것을 보고 자수하였다. 그는 포도청과 의금부에서 여러 차례 신문을 받았는데, 북경에서 가져온 교회 물건이 집에서 발견되고 또 서양인 신부들의 은신처를 알려는 관헌들에 의해 혹독한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조신철은 어떠한 형벌과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증거하였다. 결국 1839년 9월 26일 44세의 나이로 남이관 세바스티아노(1780~1839) 등과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되었다. 사형 집행장으로 가는 와중에 조신철은 옥리(獄吏)에게 “나는 지금 천국으로 가는 길인데, 내 가족에게 용기를 내어 나를 따라오라고 전해 주시오”라고 하였다.
    모진 고문을 받고 순교의 길을 가면서 그의 가족도 용기를 내어 자신이 걷는 순교의 길을 함께 하라는 부탁을 전하는 유진길의 신앙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다. 순교자 성월이 끝나가는 지금 유진길을 비롯한 기해박해 순교자들을 기리며, 그들의 신앙을 본받고 순교 정신을 이어받으려고 애쓰는 일주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료 제공 : 한국교회사연구소]

  

 

 

 ※ 참고자료: 가톨릭 성인 > 조신철 가롤로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 가운데 추첨하여 한주에 10명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교회와 역사>를 3개월분(10월~12월) 무료로 우송해 드립니다.

또한, 한 달에 다섯 분을 추첨하여 <기해병오 박해 순교자 증언록> 영인본 1세트(15만원 상당)를 보내드립니다. 

 

* 참여방법: 위 성인의 글을 읽고 묵상글을 적어주세요.

* 이벤트 기간: 9월2일(월)~11월 3일(일)

* 이벤트상품: 한주에 10명 - 월간지 <교회와 역사>,

                      한달에 5명 - <기해병오 박해 순교자 증언록> 영인본 1세트(15만원 상당)

* 당첨자 발표: 10월 15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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