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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18일 (목)부활 제3주간 목요일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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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이야기
★ 항상 깨어 있어라 (故김용배 신부님)

95777 장병찬 [jesus_maria] 스크랩 2019-08-20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지극히 거룩하시고 만군의 왕이시며 살아 계신 자비의 하느님, 오늘도 저에게 생명을 주셔서 감사하며 주님의 구속사업의 도구가 되게하시고 평온한 죽음을 맞게하소서.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여!

*~*~*~*~*~*~*~*~*~*~*~*~*~*~*~*~*~*~*~*~*~*

[ 온 세상과 모든 가정에 주님의 은총이 넘치기를 기도드립니다 ] 

[ 긴 고해를 하시는 분들은 명동성당의 상설고해소를 방문하세요 ]



항상 깨어 있어라 (루카 12,35-40)


주님은 복음에서 우리의 생활이 잠자는 생활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깨우쳐 주십니다. 항상 깨어서 집안 일을 돌보는 충성스러운 종처럼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종은 주인이 집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항상 주인의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는 옷차림을 하고 집안 구석구석을 전부 보살펴야 합니다.
날이 저물면 등을 밝혀 들고, 밤 늦게든지 새벽녘에든지 주인이 언제 돌아와 문을 두드리더라도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문을 열고 안으로 모셔들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고 주님은 가르치십니다(12,38). 이렇게 지혜롭고 충실한 종은 주인이 외출하였다 하더라도 허튼 수작이나 잔꾀를 부려 맡은 일을 미룬다거나 자기보다 수하 종을 구박한다거나 먹고 마시는 일로 시간을 낭비한다거나 하지 않습니다(12,54).

우리도 주님을 이러한 자세로 맞아들일 때 주님은 얼마나 만족히 여기시겠습니까? 그런데 오늘의 우리 실정은 어떤지요? 마음도 몸도 방심과 방종으로 흘러 마음은 마음, 몸은 몸, 제멋대로 각각 흩어져 있지 않은지요? 우리는 평소 빛의 옳은 행실을 싫어하고 어두움의 그른 행실을 나날이 가까이 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주변은 벌써 어두워져 가고 있지 않은지요? 또 우리 마음이 소란스러워 우리에게 이르시는 주님의 말씀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우리 관심사는 먹고 마시는 일과 재물뿐인 것이 오늘의 우리의 실정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형제 여러분! 어서 이런 잠에서 깨어납시다. 일어납시다. 그리고 불을 밝힙시다. 우리는 복음을 다음과 같은 것을 암시하는 말씀으로 풀어 보아도 좋을 줄 압니다.
 재물에 온통 정신이 팔리지 않도록 하라는 말씀이기도 하며, 또한 우리에게 아무리 새롭고 놀라운 일들이 생길지라도 그것을 하느님보다 더 중한 것인 양 생각하는 잘못을 깨우치시는 말씀이기도 하며, 좋은 생각과 말을 보기 좋게 늘어놓으면서도 실천이 없는 생활은 더 이상 계속되어선 안 되겠다는 말씀이기도 하며,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갑작스런 주의 부르심(죽음)을 맞는 일이 없도록 하라(12,40)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바꿔 말씀드려서 우리 가운데 어떤 이들은 교회를 쉬고 있는 상태의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는 뜻이며, 어떤 이들은 교회를 다니나 마나한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청산해야 한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

결론적으로 우리는 다 같이 새 마음으로 착한 일에 나서고 기도의 생활에 들어섭시다. 이는 불을 밝혀 들고 주님을 맞이하는 지혜롭고 충직한 종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런 종들은 행복합니다. 그 주인은 띠를 띠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을 들어 줄 것입니다"(12,37).


 

 




교만의 증상들



이기심

자기의 욕심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짓밟고 있다면, 자기의 재능을 활용해도 다른 이에게 축복이 되지 못한다면 자신의 재능을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중심적인 교만으로 인해서 섬김을 받고자 하며, 항상 자기만 옳다고 여기며,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자신의 소원이 항상 성취되기를 원하는 마음이 자라나게 된다.


우월감

교만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중요하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그들을 멸시하도록 부추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교리나 행동, 고유의 가치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여기게 만든다. 우리를 분리시키는 것은 교리나 불화가 아니라 바로 교만이다. 서로에게 주고받을 만한 가치 있는 것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믿을 때, 모든 분쟁과 분열, 불신, 갈등과 불화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비꼬는 말

비꼬는 말은 위장된 유머로서 다른 사람의 결점을 부각시켜 상처를 입히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편견을 드러낸다. 비꼬는 말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았거나 감정이 상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며 당당히 그것을 다룰 용기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마음속에는 쓴뿌리가 자라나는 것이다.


정죄와 비난

교만한 자는 비판하고 정죄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장점을 잘 발견하지 못한다. 상대방의 장점이 드러나면 삐딱하게 받아서 무시해 버린다. 비난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자신의 기쁨이나 은혜를 다른 사람과 나누지 못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도 충분히 다른 사람을 모함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연약한 점에 대해 있는대로 얘기해 버리는 것은 곧 그 사람에 대한 모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참지 못함

참지 못한다는 것은 곧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계획, 일정을 사람보다 더 중시한다는 것을 나타내며, 사람들이 잘못했을 때 참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에 사랑과 절제가 없다는 증거다.


탐심

질투와 탐심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 탐심은 우리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과는 동떨어진 세상의 것을 바라보게 하는 태도와 방식이다.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해 갈망할 것이다.


강퍅한 마음

마음이 강퍅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어려움을 당했을 때 은근히 기뻐한다. 다른 이들을 위로할 줄도 격려할 줄도 모르며, 다른 사람이 잘 되는 일에 함께 기뻐해 주지 못한다. 강팍한 마음으로 변해가는 첫 단계는 싫어하는 사람과 마주하지 않는 것이다. 만나는 것을 피하게 되면서 서서히 냉각되어 그들에 대한 관심이 사라진다. 그대로 방치하면 교만에 뿌리를 내린다.


배우기 싫어하는 마음

고침을 받지 않아도 될 만큼 완전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 어떤 잘못을 지적할 때, 그 말을 경청하는가?, 화를 내는가? 합리화하고 변명하는가? 아니면, 해명하는가? 성숙한 사람일수록 남의 충고나 지적을 잘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훈계 속에는 최소한의 진실이 들어있게 마련이다.


아부

칭찬과 아부는 같은 것이 아니다. 칭찬은 다른 사람을 신실히 세워주기 위한 것이지만, 아부는 조종하려는 의도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얻기 위한 정직하지 못한 행위이다.


자기연민

상처받고 지치고 약점잡히고 오해받고 압박받고 죄를 지을 떄, 그리고 낙심하거나 침체될 때 우리는 쉽게 자기연민에 빠진다. 이런 습관을 깨뜨리기 위해 때로는 격전을 치러야 하며, 그럴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자기 연민은 교만을 조장하며 그 이면에 있는 이기적인 목적을 합리화한다. 만족할 줄 모르며 이기적이기 때문에 또 다른 무언가를 요구한다.

(창골산 봉서방)

 






성모 승천 (루카 1,39-56)



우리 교회는 성모 마리아께서 하늘 나라로 영광스럽게 개선하시어 하늘에 오르셨음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모 승천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분명한 기록이 없다 하더라도 모든 크리스찬들은 의심할 여지 없는 역사(성전)로 믿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높은 자격과 신분을 보아서라도 그분의 육신이 무덤에 묻혀 썩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또한 성경의 말씀을 좀더 깊이 살펴볼 때 그분이 하늘 나라에 오르셨음은 추호도 의심할 수 없습니다. 인간 마리아는 그의 전 일생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했습니다(1,38).
이러한 성경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우리 교회는 성모 승천을 모든 신자들이 반드시 믿어야 할 진리로 공포하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모님의 승천을 경축하면서 성모님이 세상에 살면서 지니셨던 마음가짐의 일부를 복음을 통해 잠시나마 더듬어 보기로 합시다. 복음에서 성모님은 언니 엘리사벳으로부터 축복의 인사를 받으십니다(1,42). 그러나 당신은 축복을 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고 축복받는 모든 일은 다 하느님의 은혜요 덕분이라고 이르십니다(1,49). 성모님은 지난날 미천했던 자신의 처지를 보더라도 축복받을 만한 이유가 없음을 솔직히 밝히십니다(1,48). 당신이 가지신 것은 가난과 미천 같은 보잘것 없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이렇게 엄청난 은혜를 베푸시는 것으로 보아, 하느님께서는 가난하고 낮은 사람들에게 특별히 큰 은혜를 베푸신다는 사실을 전인류에게 알려 주십니다(1,50). 하느님의 이 같은 섭리를 찬송하는 마음이 성모님의 감사가(1,46-55) 전체에 잘 흐르고 있습니다. 성모님이 읊으신 이 감사가는 성모님 한 분의 감사가일 뿐 아니라, 동시에 당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당신 이전의 모든 사람들과 당신 이후의 모든 사람을 대표한 감사가이기도 합니다.

성모님은 평범한 인간이시면서도 우리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성모님께는 항상 인간이라는 신분에서 더하거나 덜하거나 하는 과장과 꾸밈이 없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신분에 솔직하셨고 그 이상을 넘어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시는 높은 지위에 올림을 받으신 다음에도 당신은 여전히 비천한 여종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심으로써(1,38.48), 당신 본래의 겸손한 자세에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성모님의 이 같은 겸손한 자세야말로 하느님의 어떠한 은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완전한 바탕이기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와 같이 성모님께 크신 은혜를 주신 것처럼, 진실하고 겸손한 바탕 위에 당신의 모든 계획을 펴신다는 섭리를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모 승천을 축하하면서, 하느님의 엄청난 은혜를 받게 된 성모님의 깊은 겸손을 마음으로부터 본받고 몸으로 따를 때 성모 승천을 축하하는 뜻이 되겠습니다.

(김용배 신부님)

 






성모 승천 대축일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8월 15일은 구세주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하느님에게서 받으신 영광을 찬미하는 날입니다. 
동정녀께서는 우리보다 먼저 그리스도의 부활에 함께하시어,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셨습니다. 복되신 동정녀께서는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어머니이십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은 성모 마리아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은총을 받으신 것을 경축하는 대축일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4대 의무축일 중 하나에 해당하는 축일인 만큼 중요하고 의미가 깊은 축일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 축일이 가지는 중요한 의의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정도로 되새겨 보면서 축일을 지낸다면 더욱 뜻 깊은 시간이 되리라 믿습니다.


첫째로 이 대축일에 우리는 ’마리아의 복되심과 완전하심’을 기억합니다.
승천한다는 의미는 우리 가톨릭 교회 안에서는 예수님과 같이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오른다는 뜻입니다. 흔히 생각하듯이 우리 영혼만이 하늘로 오르는 것이 아니지요. 이런 의미로 볼 때 인류 역사 안에서 영육의 승천을 이루신 분은 그리스도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뿐입니다. 바로 이 특전이 바로 성모 마리아의 복되심을 명확히 밝혀주며, 이 복된 은총으로 말미암아 완전하게 되어 하늘나라로 승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시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마리아의 동정의 몸과 흠 없는 영혼이 누리는 영광’을 기념합니다.
우리는 이 성모승천교의가 믿을 교리로 선포되기 전 세기인 1854년에 이미 ’원죄 없이 잉태되심’의 교의선포와 이미 초 세기부터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교회와 신자들의 깊은 믿음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죄 물듦 없이 세상에 태어나셨고 동정녀로서 아기 예수님을 자신의 태중에 모셨으며, 이를 세상에 낳으신 후에도 변함없는 동정을 지니신 성모님의 티 없이 깨끗한 성심은 당연히 큰 사랑과 공경을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이 공경은 성모 승천 교의를 통해 명백하고 합당한 것으로 증명된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는 성모님이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으심’을 기념합니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나의 어머니요, 형제요, 자매라고 역설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에 너무도 합당한 분이 바로 성모님이셨고,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실 때 이미 한 몸을 이루었으며 그리스도 수난의 고통과 십자가를 누구보다 진솔하게 함께 나누신 분이 마리아였습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는 모든 점에서 그리스도를 완벽하게 닮으셨고,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닮음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당연한 결과임을 이 성모 승천 교의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넷째로 이 대축일은 ’우리도 성모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상기하게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며 하늘나라의 잔치에 자리하길 바랍니다. 이런 희망을 이룬 인간은 유일하게 마리아뿐입니다.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이 길을 처음으로 닦으셨고, 이 닦여진 길로 처음 걸어가신 순수한 인간 피조물은 성모 마리아이시기에 그분과 같은 유한한 인성만을 지닌 우리 보통 사람들도 성모님처럼 승천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함으로 떨고 우리 인류에게 얼마나 기쁜 희망의 등대역할을 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상에서 간략하게 성모승천 대축일이 지니는 의의들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 의미를 묵상하면서,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우리도 당신 곁으로 올 수 있도록 전구하시는 성모 마리아의 깊은 사랑과 놀라운 중재력을 믿고 열심히 성모님께 우리 자신과 가족, 그리고 온 인류를 봉헌하도록 합시다.


*~*~*~*~*~*~*~*~*~*~*~*~*~*~*~*~*~*~*~*~* 

“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http://예수.kr ,  http://마리아.한국)

 


자비의 예수님,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과 모든 거룩한 연옥영혼에게 구원의 은총 속에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와 교황님과 사제와 수도자와 온 세상의 모든 이들과 태아에게도 은총과 자비를 베푸소서. 온 세상과 우리 나라에도 사랑과 평화와 축복이 가득하게 이끌어주소서. 성모 마리아님과 배필이신 성 요셉과 성인의 통공 안의 모든 가족들은 하느님께 빌어주소서. 이 모든 것을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돌아가신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주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여, 양점상 마리아와 장한상 요셉과 장가브리엘를 위해 하느님께 자비를 빌어주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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