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카떼린 라부레 (Katharina Laboure)

1) 어린 시절

어릴 때 이름은 조에 라부레(Zoe Laboure) 였다. Moutiers-Saint-Jean 시내의 작은 마을(Feinles-Moutiers)에서 1806년 5월 2일 11명의 자녀 중 9번째 (아들 8명 딸 3명)로 태어났다. 조에가 9살 때 1814년 1월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 가셨다. 어린 가슴에 죽은 어머니의 관 옆에서 슬픔에 잠겨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또 다른 어머니 한 분이 계시다는 안도감이 들게 되었다. 그래서 성모상 앞에서, “이제부터 성모님이 나의 어머니가 되어 주소서” 하고 기도를 드렸고 그 기도를 들어 주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안에 모든 살림은 큰언니(Marie-Louise)가 하게 되었고 두 동생 조에와 토니(Tonine)가 조금씩 돌보아 주었다. 2년 정도 언니는 집안살림을 하다가 (1818년 여름)뤼드박에 있는 사랑의 딸 수녀회에 들어갔다. 12세된 조에에게는 무거운 짐이었지만 동생 토니와 함께 가정을 돌보기로 굳게 결심을 하였다.
그 해 Moutiers-Saint-Jean시에 있는 성당에서 1월 25일 첫영성체를 하였다. 집에서 45분 정도 걸리는 성당을 매일 다니며, 이때 처음으로 자신도 수녀원으로 부르고 계신 분이 있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그 부르심에 응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조에는 일생동안 잊어버릴 수 없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조에는 성당 안에 들어가 있었고, 마침 그 성당 안에서는 어떤 노사제가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조에 역시 미사에 참례하고 있었다. 미사가 끝나자 조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떤 환자를 방문하게 되어 환자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방금 성당에서 본 그 노사제가 안에 있었다. 조에는 반사적으로 노사제의 시선을 피하여 급히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데 그 노사제는, “하느님께서 너에게 맡기신 특별한 일이 있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명심하여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일이 일어난 지 얼마 안되어 조에는 수녀원 기숙사에서 일하고 있는 올케 언니를 찾아보기 위하여 샤띠옹으로 가게되었다. 수녀원 면회실로 들어가자마자 벽에 걸려 있는 액자를 보았다. 그 그림은 꿈에 본 그 노사제(빈센트 성인)였다.
하느님께서 어디로 부르시는가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던 것이다.

2) 사랑의 딸 수녀원에 입회

18세가 되었을 때 모든 것을 마음속에 굳게 결정한 다음 아버지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생을 헌신할 수 있도록 사랑의 딸 수녀회에 입회하고 싶다고 애절하게 말씀드렸지만 아버지는 집안 일이며 농장, 가축 등은 누가 돌볼 것인가 하며 강하게 반대하였다.
조에는 아버지의 반대가 심함을 알고 성모님께 기도하면서 자신의 성소를 따를 수 있도록 도우심을 빌며 올케 언니에게 자신의 의지와 뜻을 아버지께 설득시켜 주기를 간청하였다. 결국 아버지는 수녀원 입회에 동의하게 되었다.
1830년 4월 21일 조에는 파리의 뤼드박(Rue du Bac)에 있는 사랑의 딸 수녀원에 청원자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조에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수련을 받기 시작했다. 이제 조에는 카떼린 라보레(Katharina Laboure)수녀로 불리게 되었다. 규칙이 명하는 것을 세심하게 지켰으며,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모든 힘과 정성을 기울여 덕행의 길로 나아갔다.
카떼린 라보레 수녀는 다른 수녀들보다 인간적으로 더 우월한 점도 특별한 점도 거의 없었으며, 장상의 눈에 들려고 애쓰는 기색도 전혀 없었다. 성모님의 발현이 있은 것은 카떼린 수녀가 이 수녀원에 입회한지 얼마 안되어서의 일이다. 이런 발현이 일어난 때는 마침 수녀원에서 빈센트 성인의 유해를 옮겨 모셔놓고 축제를 지내던 기간이었다.
카떼린 수녀는 빈센트 성인이 자신의 생을 어떻게 지켜 주었는지 이미 경험한 바가 있었기에 남달리 특별한 신뢰심을 갖고 그 앞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카떼린 수녀는 유해 상자 위에 하얀빛을 발하는 빈센트 성인의 심장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은총을 내려주시도록 하느님께 전구해 주시기를 간청하였다. 다음날, 그 심장을 다시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사랑의 상징인 붉은 빛이었다. 셋째날 보았을 때는, 아주 검붉은 색으로 변하여 있었다.
이 체험을 고백 신부님께 모두 털어놓았지만 신경을 너무 쓰지 말라고 타일렀다. 고백 신부인 Aladel신부는 이때부터 카떼린 수녀를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고, 카떼린 수녀는 이런 일이 있은 후에도 전과 별 다름없이 매일 일과에 평범하게 힘을 쏟고 있었다.
선택받은 카떼린 라부레 수녀는 수련기를 마치고 노인들을 돌보는 양로원(Enghien)에서 47년간을 지냈다. 양로원에 살고 있는 노인들을 위하여 간호하고 주방에서, 빨래방에서, 양로원 현관문간에서 그리고 닭들을 키우는 닭 모이 주는 수녀로 쉴새없이 일하였다. 신경통으로 고통을 받아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해야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원죄없으신 성모님상 앞에서는 항상 멈추어 기도드리곤 하였다.

성인들이 덕을 쌓기 위해 하느님께서는 때때로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고 힘든 장상을 보내시기도 한다. 카떼린 수녀 생애 안에서도 그런 장상이 있었다. 뒤페 원장이었다. 16년간 차가운 눈초리와 비웃는 태도로 카떼린 수녀를 대하였다. 환자 돌보는 일에서부터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이하는 문간 일까지 주어서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데 등한히 하여 병에 걸리고 기력이 쇠하여졌다.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는 등 흉을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카떼린 성녀는 이 모든 것을 잘 참아 받았다.

3) 성모님의 첫 번째 발현

1830년 7월 19일 파리시내는 악마가 판을 치고 있는 듯 거리는 흥청거리는 인파로 뒤범벅되어 아수라장이었으며, 파리의 성당은 텅 비어 있고, 어떤 사제도 수단을 입고 거리를 다닐 수 없었다. 술집과 환락가에 모인 사람들은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귀족들은 귀족들대로 종교적 인생관을 갖고 있거나 피력하는 자를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던 파리에서 성모님은 발현하셨던 것이다.
파리의 뤼드박(Rue du Bac) 수녀원에도 밤이 깊었고, 모든 수녀들은 조금 전에 끝기도를 마치고 성당에서 나오고 있었다. 다음날 7월 19일은 창설자 빈센트 성인의 대축제일이었다. 성당에서 침실로 돌아온 카떼린 수녀도 다른 수녀들과 마찬가지로 침실에 들어갔다. 그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자고 있는 카떼린를 깨우고 있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얼마동안 살펴보았지만 별다른 일이 없었기에 꿈을 꾸었나 보다 하며 다시 잠을 청했다.
또다시 “라보레 수녀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귀에 분명히 들려왔다. 카떼린 수녀는 흰 커텐을 열고 밖으로 내다보니 어떤 소년이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 소년의 얼굴은 찬란한 빛으로 싸여 어두운 침실까지 환하게 비추어 주며, 머뭇거리고 있는 수녀에게 “지금 성당 안에 성모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빨리 성당으로 오세요.”라고 말하여 주었다.
카떼린 수녀는 급히 옷을 입고 침실을 빠져 나왔다. 소년은 어두운 복도를 앞장서 나갔고, 그 뒤를 환하게 비추어 주었다. 카떼린 수녀가 성당에 들어섰을 때, 이미 성당 제대 위에 놓인 초에 불이 모두 켜져 있었다. 소년은 제대가 놓여있는 안에까지 올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이때 어디선가 밤 12시를 알리는 벽시계 소리가 은은히 들려왔고 잠시 후 비단 옷이 끌리는 것 같은 소리를 들었다. 바로 이 순간, 소년은 “여기 동정녀께서 계십니다.” 하고 말했다. 카떼린 수녀는 소년이 가리키는 곳에 성모님이 앉아 계신 것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곳은 그들의 영적 지도 신부인 Aladel신부가 늘 앉아 계시던 곳이었다.
카떼린 수녀는 순간적으로 착각이나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자 수녀를 성당까지 인도했던 소년의 목소리가 “천상의 어머니께서 불쌍한 인간에게 당신이 원하시는 모습으로 발현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이십니까?”라고 카떼린 수녀에게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카떼린 수녀는 모든 의심을 떨쳐버리고 그 앞에 엎드렸다. 얼마 후, 두 손을 마리아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넋을 잃은 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순간 카떼린 수녀는 무한한 행복감을 맛보았으며,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그 당시 경험했던 행복을 다시는 맛보지 못했다고 회고하였다.

성모님께서는 왼손으로 감실을 가리키시며, 필요할 때, 고통을 받을 때 저곳에서 많은 위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 카떼린 수녀에게 부탁의 말씀을 하셨다. 그 말씀은 카떼린 수녀가 이 일로 고통받을 것과 앞으로 닥칠 모든 일을 순박과 신뢰심으로 받아들인다면 묵상 기도 중에 성령의 감도를 받게 될 것인데 이것을 영적 지도 신부에게 꼭 말해야 된다는 말씀이었다.
이때 카떼린 수녀는 빈센트 성인의 심장 발현이 생각나서 질문을 하였더니, 성모님께서는 묵묵히 계시다가 슬픔과 고통스러운 모습으로
“프랑스에 위기가 닥칠 것이다. 십자가는 멸시를 받고 예수의 옆구리는 다시 열려 온통 피로 물들일 것이고, 모든 사람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때 나는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너는 꼭 이 제대로 오너라. 이 제대 앞에서 누구를 막론하고 위로와 힘과 은총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후 지도 신부(Aladel신부)에게 전하라고 하시면서 “사랑의 딸 수녀회” 운영에 관한 몇가지 점을 말씀하셨다. 이 일을 잘 수행하기 위해 특별한 주님의 은총이 내릴 것이라는 것도 말씀해 주셨다. 또 앞으로 닥칠 시련에 대해서도 말씀을 들려 주셨다.
“큰 시련이 물밀 듯이 닥칠 것이다. 그러나 너희들은 아무 것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하느님의 특별한 보살핌이 늘 이곳에 있을 것이고, 빈센트 성인도 너희들을 보호하리라. 나 역시 너희들과 함께 있겠으며, 너희에게 항상 은총으로 도와주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카떼린 수녀의 일생 중 이 순간은 모든 것이 멈추고 있는 듯 느껴졌다. 말씀을 모두 마치시고, 성모님은 의자에서 일어나시어 카떼린 수녀의 시선으로부터 서서히 멀어지면서 아주 사라지셨다. 얼마 후 카떼린 수녀도 일어났다. 자기를 이곳까지 인도하였던 소년은 자기 수호 천사임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수호천사는 “그분은 가셨습니다.”라고 말하면서 앞장서서 성당을 나와 복도를 지나서 침실까지 바래다주고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카떼린 수녀가 자리에 누우니 어디선가 2시를 알리는 벽시계 소리가 들려왔다. 카떼린 수녀는 보고들은 것 때문에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모든 이에게 자기가 받은 이 은혜를 알리고 싶었으나 믿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뒤따랐다. 날이 밝자 카떼린 수녀는 Aladel신부에게 성모님의 발현 경위와 말씀들을 전했으나 영신지도자이며, 고백신부인 그는 차갑고 쌀쌀하게 말하였다.
“라보레 수녀, 더 이상 이 일에 대하여 신경 쓰지 마시오. 머리 속의 상상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니, 환상을 깨끗이 지워 버시오.”
이때부터 카떼린 수녀에게 고난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영신지도신부의 그 냉랭한 반응 때문에 자신이 간직하고 있는 비밀을 그 어느 누구에게도 감히 털어놓을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카떼린 수녀가 고통을 당하고 있었지만,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성모님만이 카떼린 수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4) 성모님의 두 번째 발현

1830년 대림 첫 주일 전날 11월 27일 토요일 오후 5시 30분 카떼린 수녀는 성당 안에서 무릎을 꿇은 채 기도하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비단옷이 땅에 끌리는 듯한 소리에 눈을 들어보니 수녀의 눈앞에 동정녀 마리아가 나타나 계셨다.
의복은 흰빛으로 밝게 빛났고, 발까지 완전히 덮고 있었으며 머리에는 수건을 쓰고 계셨다. 발 밑에는 반구가 놓여 있었고, 손에는 아주 작은 지구의를 들고 계셨는데 그 지구의를 주님께 바치기 위해 치켜들때 성모님의 얼굴에는 빛을 발하였다. 성모님의 손가락에는 보석 반지들이 끼워있었고 빛을 환하게 발하고 있었으며, 반지의 수는 3개인데 크기도, 색깔도, 반짝이는 빛의 강도도 차이가 있었다. 후에 카떼린 수녀는 “제가 짧은 순간에 보고 느끼고 경함한 것을
말로 표현하기란 어렵습니다.” 라고 말하였다. 카떼린 수녀가 성모님을 보고 있는 동안 “지금 보고 있는 지구의는 전 세계를 가리키며 특히 프랑스와 그 국민들을 나타낸다. 또한 나에게 은총을 구하는 모든 이에게 부어줄 은총의 상징이 있다.”하시는 소리와 함께 성모님을 둘러싼 타원형을 볼 수 있었다. 또 그 가운데 “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달아드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라는 글자가 새겨졌으며, 어디선가 “이 모습 그대로 메달을 주조하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 “이 메달은 은총의 메달로서 이것을 갖고 다니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큰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또 신앙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에게도 은총을 풍부히 내릴 것이다.” 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메달속의 성모님과 함께 그 옆에 메달 뒷면이 나타났다. M자 위에 가로 막대를 대고, 그 위에 십자가가 있고 십자가와 M자 밑에는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을 상징하는 심장이 그려져 있었으며, 예수성심은 가시관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성모성심은 칼로 관통되어 있었다. 잠시 후 성모님은 서서히 사라지셨다.

5) 성모마리아의 세 번째 발현

그해 12월 말경 성탄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 어느 날 밤이었다. 성모님께 대한 그리움으로 카떼린 수녀는 성당에서 묵상기도를 하고 있던 중 비단옷이 끌리는 듯한 소리를 듣고 눈을 떴을 때, 성모님은 감실 위 공중을 날아다니시며, 손에서는 이상한 빛이 새어나왔다. 머리 위에는 전과 같은 광채가 둘러싸여 있었고 그 광채 속에 새겨진 글자도 전과 똑같았다.
“오,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달아드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성모님은 다시 카떼린 수녀에게 이 모습과 같은 메달을 꼭 만들라는 지시하셨다. 그리고 나서 카떼린 수녀에게
“손에서 발하는 이 빛들은, 나에게 은총을 간구하는 사람들이 받을 은총을 상징하고 있다.”라는 성모님의 다정한 음성이 메아리쳤고 모든 것을 순박한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이는 카떼린 수녀의 모습에 성모님은 만족해 하셨다.
성모님은 카떼린 수녀에게 “내 딸아, 앞으로는 나를 더 이상 볼 수는 없겠지만 네 기도 중에 내 음성만은 꼭 들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림자가 사라지듯이 성모님의 모습은 사라졌다. 마치 영혼 안에서 일어난 것처럼 자리에 누워 방금 가졌던 성모님과의 대화를 다시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아침에 성모님께 순명하기 위해 이번에도 Aladel신부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드렸다. 이번만큼은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고 카떼린 수녀의 고백을 하나하나 놓치지 않고 조용히 앉아 들었다. 그리고는, “가슴 부분에 무슨 글자를 써넣어야 되는지 성모님께 물어 보라”고 말하였다. 카떼린 수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M자와 성심들이 모든 걸 다 말하고 있다.”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이 말을 카떼린 수녀는 Aladel 신부에게 말씀드렸다.

카떼린 수녀의 수련기간도 이제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수녀원 측에서는 카떼린 수녀가 메달 주조문제에 대하여 침묵을 지키도록 조처하였고, 수녀로서는 자유로이 이 일을 할 수 없도록 순명 서약으로 묶여 있는 몸이 되고 말았다. 그때마다 성모님의 말씀을 회상하곤 하였다.
“너는 어느 정도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고통으로 인해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6) 기적의 메달 주조 완성

카떼린 수녀는 성모님이 원하시는 메달을 생각하며 그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고통을 받았다.
“Aladel신부가 내 원의를 들어줄 날은 꼭 오고 말 것이다. 그는 내 뜻을 찾아 따르려는 착한 사람이니 나를 알면서도 마음 상하게 할 리가 없다.” 이런 성모님과의 내적 대화가 있은 후 Aladel신부를 찾아가서 자신이 느끼고 있는 바를 솔직하게 말씀 드렸다. Aladel신부는 성모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바로 지나친 의심을 했던 자신이라는 생각을 하자 자신의 눈을 어둡게 했던 그 어떤 것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생각되었다.
Aladel신부는 성모님이 바라시는 것을 이루도록 내 힘을 송두리째 바치리라하고 다짐한 후 곧 총장신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대주교를 찾아뵈었다. 대주교는 “성모님의 부탁에 따라 주조하는 것에 대해 그 어떤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그 계획 속에서 성모님의 메달을 더 이상 지체하지 마시고 주조하도록 하십시오.” 하였다.
대주교의 이런 확인이 있자 Aladel신부는 주조해야 할 메달의 디자인을 결정하였다. 카떼린 수녀에게 나타나신 그 모습대로 하여 앞면에는 성모님이 지구위에 발을 디디고 서 계시고 발 밑에는 뱀이 짓밟혀 있도록 하였다. 성모님의 손에는 광채가 발하여 있고, 머리위에는 타원형의 광태를 둘러 그 속에 “오 원죄없이 잉태하신 마리아여, 당신께 달아드는 저희를 위해 빌어주소서” 라는 글자를 새겨 넣게 하였다. 뒷면에는 M자를 중심으로 위에 십자가를 아래에는 예수성심과 성모성심을 그려 넣도록 하였다.
빨리 되리라고 기대했던 메달 주조는 콜레라 전염병으로 지연되었으나, 1832년 6월 30일 최초의 메달이 주조되어 Aladel신부에게 전해졌다. 메달을 받아든 카떼린 수녀의 얼굴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이 메달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성모님께서 카떼린 수녀에게 미리 하셨던 말씀이 실현되기 시작했다. Aladel신부는 첫번째 주조된 메달을 대주교에게 보내 드렸다. 메달을 받은 대주교는 이 메달에 깊은 경의을 표하고 나서 성모님의 약속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관할 구역 내에 전에 대주교였다가 이단자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주교를 위해 메달을 손에 들고 죄인의 회개를 위해 기적을 내리시도록 열렬히 기도드렸다. 그 결과 주교를 회개시킴으로써 자신의 지난 과거를 뉘우치며, 고백 성사를 받고, 이어 병자 성사와 영성체을 영한 후 조용히 이 세상을 떠나갔다. 성모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은총을 주시겠다는 말씀이 처음으로 이렇게 성취된 것이다.
카떼린 수녀의 말대로 이 메달은 놀랄 만큼 빠른 속도로 주조되어 퍼져 나갔다. 이 기적의 메달의 초창기 전파자들은 카떼린 수녀가 몸담고 살고 있는 파리 “사랑의 딸 수녀회” 수녀들이었다.
그 즈음 프랑스 국내는 대혁명으로 인해 소리 없이 비명에 죽어갔다. 파리 시내에 있는 전교회 수도원 수련소도 폭격을 맞아 할 수 없이 Dax로 이전되어 갔다가 어느 정도 혁명이 끝날 즈음 인근 지방으로 피신하였던 수녀들도 다시 돌아왔다. 카떼린 수녀의 건강은 갈수록 악화되어 갔고 노인들을 돌보느라 자신의 건강은 등한시하여 기력이 쇠하여졌다.
1876년 초 카떼린 수녀는 이 해가 마지막이 될 것 같다고 하면서 성모님께로부터 위임받은 한가지 사명을 완전히 이행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Aladel신부는 세상을 떠났다. 카떼린 수녀는 답답하여 뒤페 원장수녀를 찾아가서 손에 지구의를 드신 성모상을 하나 제작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원장 수녀는 카떼린 수녀의 요청에 동의하여 수녀가 원하는 성모상을 곧 제작하도록 조처하였다. 12월 8일 누워 있는 카떼린 수녀에게 병문안을 온 원장 수녀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느냐”고 물었을 때 카떼린 수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제 성모님과 빈센트 성인을 만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대답하였다.
12월 31일 주일날, 카떼린 수녀는 영성체을 한 후 별 고통 없이 오후 6시, 70세의 생을 마감하고 숨을 거두었다. 임종을 지켜보며 원장수녀는 기도하였다. 1877년 1월 3일 장례식 날, 카떼린 수녀의 시신은 46년동안 지냈던 양로원 성당 지하실에 묻었다.
56년만에 카떼린 수녀의 시복을 위해 시신을 검안할 때 시신은 부패되지 않고 사망했을 때의 그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살아 생전에 성모님을 본 눈은 그대로 생기가 돌고 있었고 수도복도 그대로였다. 1907년부터 로마에서는 시복 준비를 시작했고, 1933년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카떼린 수녀는 시복되었으며, 1947년 교황 비오 12세는 카떼린 수녀를 성녀로 전세계에 선포하였다.
지금 성녀의 유해는 뤼드박 ‘사랑의 딸 수녀회’ 모원에 안치되어 있으며, 카떼린 수녀가 성모님의 발현을 본 바로 그 자리에는 지구의를 손에 들고 계신 성모상이 조각되어 모셔져 있고 그 밑에 카떼린 수녀의 유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