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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미사 (백) 2024년 4월 20일 (토)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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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미사 강론]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사목방문 미사[2019년 9월 8일 주일]

132469 정진영 [jjwriter] 2019-09-11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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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199 8일 주일[연중 제23주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지혜서 9,13-18

화답송 : 시편 90(89),3-4.5-6.12-13.14 17(◎ 1)

2독서 : 필레몬서 9-10.12-17

복음 : 루카 복음 14,25-33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1033&gomonth=2019-09-08&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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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성하의 사목 여정

모잠비크와 마다가스카르, 모리셔스

(2019 9 4-10)

 

거룩한 미사

 

교황 성하의 강론

 

소아만드라키자이 교구 경기장 (안타나나리보)

2019 9 8일 주일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루카 복음 14,25)라고 이야기합니다. 많은 군중들이 그분의 길을 따라 모였던 것처럼 여러분도 그분의 메시지를 받고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려고 많은 분들이 왔습니다. 그러나 또한 여러분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많이 쉬지 못하여 왔고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이 여기에서 밤을 보내기조차 하셨습니다. 오늘 루카 복음은 그 헌신이 얼마나 힘들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우리는 루카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는 그의 이야기 안에서 저 요구들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분께서는 모든 이들,  특히 거리와 광장과 골목에 사는 버림 받은 이들이 초대 받는 잔치의 비유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세 가지 자비의 비유로 마무리합니다. 그 자비의 비유 안에서 잔치는 잃었던 것이 찾아졌을 때 죽은 것처럼 보이는 이가 기쁨으로 맞아들여지고 새 출발의 가능성을 갖고 생명으로 회복되는 곳에서 베풀어집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희생들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만남의 기쁨에 찬 경축의 빛 안에서만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요구는 가족 관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제한될 수 있고 또는 오로지 혈연이나 특정 그룹, 파벌 또는 특정 문화의 일원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어주신 새로운 생명이 골치 아프게 하는 것처럼 보이거나 말도 안되게 부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옳고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결정적인 기준이 가족이 되어 버릴 때 우리는 결국 특권과 배제의 문화로 이어지는 악습들을 정당화하거나 축성하고 봉헌하기까지 합니다. 편파, 비호, 그 연장선으로서 부패함. 스승님께서는 우리가 이것을 넘어서서 보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분께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다른 이들을 형제 자매로 볼 수 없는 사람, 자신의 가족이나 문화나 사회적인 배경과 상관없이 그들의 삶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을 보여 주지 못하는 사람은 누구든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복음 14,26). 그분의 헌신적인 사랑은 모든 이에게 주어진 선물이고 그리고 모든 이를 위해 계획된선물입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요구는 우리의 사적인 안건 또는 폭력과 분리 그리고 심지어 살인과 추방 테러리즘과 소외의 행위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이름과 종교의 명분을 남용할 이데올로기에 대한 우리의 집착과 하늘 나라를 우리가 동일시하려고 한다면 그분을 따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이 요구는 우리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희석화시키거나 협소하게 만들지 말고 오히려 형제애와 연대 안에서 역사를 세우라고 착취의 어떤 형태에도 반대하면서 지구와 그 선물에 대한 완전한 존중 안에서 역사를 세우라고 용기를 북돋웁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통로로서의 대화, 실행동의 법도로서의 상호 협력, 방법과 기준으로서의 상호 이해”(Document on Human Fraternity, Abu Dhabi, 4 February 2019)를 실천하라고 우리를 격려합니다. 그리고 스승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야 하는 것(마태오 복음 13,24-30 참고)을 알지 못하는 가르침들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격려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모든 것이 오로지 우리 자신의 노력과 자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해서 우리가 계속해서 자기 정당화로 치달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 수 있는지요! 또는 우리가 제1독서에서 들은 것처럼 소유물을 축적하는 경주가 숨막혀지고 압도할 때 그것은 오로지 우리의 이기주의와 비윤리적인 도구를 사용하려는 우리의 의지를 키웁니다. 예수님의 요구는 우리가 감사하는 방법을 다시 발견하라는 것이고 개인적인 승리보다 훨씬 더 우리의 삶과 타고난 재능들도 선물의 결실이라는 것(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55), 우리가 오로지 하늘 나라에서만 알게 될 이름을 가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조용한 상호작용을 통해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선물의 결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방법을 다시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요구들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하느님 나라가 오심을 경축하도록 준비시키고 싶어 하시고 그리고 그들을 결국 종살이의 가장 나쁜 형태 -즉 자기 자신만을 사는 것-인 죽음의 장애에서 해방시키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의 작은 우주로 물러나는 것은 유혹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자리를 거의 남겨두지 않는 것으로 끝나 버립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분 사랑의 조용한 기쁨을 즐기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선한 일을 하려고 열망하지 않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자기 자신을 닫아 버림으로써 겉보기에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더 비통해지고 더 불평하고 더 활기 없어집니다. 이것은 온전하고 품위 있는 삶을 사는 방법이 전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뜻도 아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마음 안에 그 원천이 있는 성령님 안에 있는 삶도 아닙니다(복음의 기쁨 2 참조)

 

이 요구들로 주님께서는 그분께서 예루살렘을 향해 걸으시는 것처럼 우리에게 우리의 눈을 들어 보라고, 우리의 우선순위를 조정하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삶의 축과 중심이 되시도록 하느님을 위한 자리를 만들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보듯이 얼마나 많은 남자와 여자들, 젊은이들과 아이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으며 철저한 궁핍 안에 있는지요! 이것은 하느님 계획의 일부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시급하게 우리에게 우리의 자기 중심주의, 우리의 개인주의와 우리의 오만에 대해 죽으라고 부르시는지요!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형제애의 영 안에서-우리가 하느님의 가족으로 태어나게 된 예수 그리스도의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온 영 그리고 그 안에서 모든 이들은 그 또는 그녀의 고귀함 속에서 이해 받고 받아 들여지고 인정 받기 때문에 사랑 받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인간의 고귀함에 대한 경멸을 마주 대할 때 우리는 종종 팔짱을 낀 채 있거나 악의 잔인한 힘 앞에서 우리 절망의 표시로 손을 내뻗으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무관심 속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거나 무력함 속에서 손을 내뻗으며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믿는 이로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세계 가난한 이의 날 강론, 2018 11 18).

 

우리가 방금 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다시 한번 출발하라고 명령합니다. 감히 이 질적인 도약을 하면서 그리고 사회 정의를 위한 우리의 개인적인 삶을 위한 토대로서 우리의 이 개인적인 초연함을 받아들이면서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오로지 권력, 성공 그리고 돈의 기만적인 안전함만을 생각하게 만들고 인간적인 영광에 대한 추구만을 생각하게 만드는 저 모든 형태의 우상 숭배에 함께 저항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앞에 놓아 주신 요구는 그분께서 몸소 우리 앞에 놓아 주신 새 생명의 기쁨을 맛보기 시작하자 마자 힘들어 하며 짓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양처럼 탕자처럼 길을 잃었을 때조차도 그분께서 십자로 골목에서 먼저 우리를 찾으신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이 겸손한 리얼리즘 그것은 하나의 사실주의, 그리스도교의 현실성-이 위대한 도전을 하도록 우리에게 영감을 주게 하소서. 그리고 여러분의 아름다운 나라를 복음이 생명이 되는 곳 그리고 생명이 하느님의 더 위대한 영광을 위한 것이 되게 하는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망을 여러분에게 주기를.

 

우리 자신을 헌신합시다. 그리고 주님의 계획을 우리 자신의 것으로 만듭시다.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documents/papa-francesco_20190908_omelia-madagascar.html

미사 동영상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events/event.dir.html/content/vaticanevents/en/2019/9/8/messa-madagascar.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소리 미사 강론 ->

마리아 사랑넷 https://www.mariasarang.net/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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