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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제1독서 (2코린8,1~9)

130453 김종업 [rlawhddjq] 2019-06-18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제1독서 (2코린8,1~9)

 

"환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은 기쁨이 충만하여, 극심한 가난을 겪으면서도  아주 후한 인심을 베풀었습니다.  나는 증언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그러면서 성도들을 위한 구제 활동에 참여하는 특권을 달라고 우리에게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그렇게까지 기대하지는 않았는데도, 먼저 주님께 자신을 바치고,  또  하느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도 자신을 바쳤습니다."  (2-5)

 

코린토 후서 8장 2절은 당시 마케도니아 교회의 상황과 더불어 그들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풍성한 헌금을 할수 있었던 이유를 언급한다. 마케도니아 교회는 환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기쁨이 넘쳤고, 극심한 가난 속에서도 아주 후한 헌금을 했다.

 

실제로 필리피서 1장 29절, 30절이나 테살로니카 전서 1장 6절, 2장 14절, 3장 3절과 4절, 테살로니카 후서 1장 4-10절 등등에서는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당한 환난의 많은 시련들이 거론되어 있다.

 

그들은 실제로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든 고난가운데 있었기에 다른 지역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인 아주 후한 헌금을 한 것은 주목할 일이다.

 

그들은 결코 부유한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가난 역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지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환난과 가난을 자신들의 기쁨과 부요함을 드러내는 계기로 삼았다.

 

코린토 후서 8장 2절에서 '인심'으로 번역된 '하플로테토스'(haplotetos)'liberality', 'generosity' 로 번역되는데, '관대함', '헌금', '연보' 라는 뜻이다. 이것은 타인들을 향한 열린 마음과 관대함을 뜻한다.

 

코린토 후서 9장 11절과 13절에서도 이 표현이 '후한 인심', '관대함' 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단연코 이런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자신들이 겪고 있던 물질적 결핍에도 불구하고, 자신들보다 더 심한 결핍을 겪고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그들의 열린 마음과 관대함 그 자체가 구제활동을 자발적으로 하게 된 동기이며, 또한 그것이 그들 가운데에 하느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중요한 표지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태도"가난한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자같이 보이지만 실은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는자"(2코린6,10)의 모습을 지닌 바오로 사도의 삶의 태도와 동시에 자신이 가진 모든 소유를 내놓은 마르코 복음 12장 41절 이하의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진정한 관대함이란 넉넉한 소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가진 것이 별로 없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참된 자선일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선의 가치는 결코 양이 아니라  희생의 기준에 의해서 축적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러한 가난한 온갖 시련 가운데서도 관대한 사랑과 열정을 보인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모습은  코린토 전서 16장 1-4절에서 사랑의 결핍이나 인색함을 보이는 코린토 교인들의 모습과 명백하게 대조가 된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헌금의 특성은 두 가지로 나온다.

 

첫째로 그들은 '힘이 닿는 대로' 내놓았을 뿐 아니라 '그 이상으로' 내놓았다. '힘이 닿는 대로'(kata dynamin; 카타 뒤나민)란 표현은 일반적인 헌금의 기준이다.

 

즉 헌금은 외부의 강요나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득에 대한 고려와 함께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돈을 남겨두고 드리는 것이 자연스럽고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그 이상으로'(para dynamin; 파라 뒤나민; '힘에 지나도록')내놓았다는 말은 마케도니아 교인들이 자신들의 현재와 미래를 완전히 하느님의 손에 의탁하는 자세로 헌금했다는 것을 말한다(2코린12,9; 마태6,8.25-34; 필리4.19).

 

여기서 '이상으로' 번역된  전치사 '파라'(para)'~이상으로'(above), '~을 넘어서'(beyond)라는 의미를 나타낸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능력'(dynamis; 뒤나미스)의 범위를 초월하여 구제 헌금을 예루살렘 교회로 보냈던 것이다.

 

둘째로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타율이나 강제가 아니라 '기꺼이' 헌금했다. 여기서 '그들은 ~기꺼이' 로 번역된 '아우타이레토이'(authairetoi)의 원형 '아우타이레토스'(authairetos)'자기 자신' 뜻하는 인칭 대명사 '아우토스'(autos)'선택하다' 라는 뜻을 지닌 '하이레티조'(hairetizo)합성어에서 파생된 형용사로서 '자기가 원한', '자발적인', '독자적인' 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것은 바오로 사도가 마케도니아 교회들의 궁핍하고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서 일부러 헌금을 부탁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참으로 놀라운 헌금 태도인 것이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이러한 구제 활동 계획에 참여하기를 '간곡히 청했다'는 사실 있다(2코린8,4).

 

'우리에게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원문의 '메타 플레스 파라클레세오스'(meta polles parakleseos)를  '간곡히' 라고 번역했는데, 여기서 '폴레스'(polles; 심히, 너무도; much)가 포함되어 있어 헌금을 하겠다는 그들의 간청이 얼마나 강렬했는지를 드러내준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예루살렘 성도들을 위해 헌금하는 것을 하나의 '특권' (karin; 카린; gift; 선물, 은혜) 으로 생각했으며, 성도가 누릴 수 있는 그 영광스러운 특권에 자신들도 동참할 수 있는 영광을 달라고 구했던 것이다.

 

또한 '청하였습니다'로 번역된 '데오메노이'(deomenoi)'데오마이'(deomai)의 현재분사로서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간청이 과거에 한번으로 끝난게 아니고 마치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매우 진지하고 지속적이었다는 것을 드러낸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클라디우스 황제 통치 때, 심한 기근과 유다인들로부터 혹독한 박해를 경험하고 있었던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사도11,27-30)에게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지고 끈끈한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애 보여주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코린토 후서 8장 5절그들의 예루살렘 교회를 향한 관대함의 특징이 헌금을 얼마나 많이 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먼저 하느님께 완전히 헌신했다는 데에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자신을 먼저 하느님께 온전히 드린 자는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고, 이로써 하느님의 일을 하는 봉사자들에게도 물질적인 후원을 할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5,44)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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