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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미사강론]성령강림대축일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성하의 강론[ 2019년 6월 9일 주일(성령 강

130371 정진영 [jjwriter] 2019-06-14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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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2019 6 9일 주일[성령 강림 대축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사도행전 2,1-11

화답송 : 이사 12,2-3.4ㄴㄷㄹ.5-6(◎ 6ㄴㄷ)

2독서 : 코린토 1 12,3-7.12-13

복음 : 요한 복음 20,19-23

http://maria.catholic.or.kr/mi_pr/missa/missa.asp?menu=missa&missaid=10604&gomonth=2019-06-09&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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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 대축일 거룩한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광장

2019 6 9일 주일

 

확신 없는 50일 후에 제자들에게 오순절이 왔습니다. 참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기쁨에 넘쳐 그들은 그분을 보았고 그분의 말씀을 들었고 그분과 함께 음식도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의심과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미래에 대해 확신하지 못하면서 부활하신 주님을 선포할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잠가 놓은 문 뒤에서 만났습니다(요한 복음 20,19. 26. 참고). 그렇게 성령께서 오시고 그들의 걱정은 사라집니다. 이제 사도들은 그들을 붙잡으려고 보내진 사람들 앞에서 조차도 두려움 없는 자신을 보여줍니다. 전에 그들은 자신의 생명을 구하는 것에 대해 걱정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일찍 그들은 이층 방에 모여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모든 나라에게 전하기 위해 나아갑니다. 예수님의 승천 전에 그들은 하느님의 나라가 그들에게 오기를 기다렸습니다(사도행전 1,6 참고). 이제 그들은 미지의 땅으로 여행할 열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전에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말한 적이 거의 절대 없었고 그들이 그렇게 했을 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을 때처럼 그들은 자주 크게 실수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솔직하게 숨김없이 모든 이들에게 말합니다. 갑자기 성령님에 의해서 회복되어 활기를 되찾던 때에 제자들의 여정은 끝나 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확신이 없음에 압도되어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은 그들에게 새로 태어남을 주시는 기쁨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전혀 추상적인 실체가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가장 구체적이고 가까우신 사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분이십니다. 어떻게 그분께서 이렇게 하실까요 사도들을 생각해 봅시다. 성령께서는 그들에게 상황을 더 쉽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화려한 기적을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어려움과 반대자들을 없애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성령께서는 사도들의 삶에 부족해 왔던 일치, 그분 자신의 일치를 가져다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일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 안에서의 일치. 마음 속에서 자신의 마음 안에서 제자들은 변화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우리의 마음 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맞아 들이지 않는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우리도 부활한 존재로서 살아 있지 않으면 부활하신 분께서 살아계시다는 것을 알아도 아무 소용없습니다. 우리 안에 예수님을 살아 있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내면으로부터 일으켜 세우십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분께서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복음 20, 19.21)라는 말을 되풀이 하시고 성령을 주십니다. 그것이 진정한 평화이고 사도들에게 주신 평화입니다. 평화는 외부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을 역경과 박해에서 피하게 해 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성령을 받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사도들에게 내려진 평화, 문제들로부터 벗어나서가 아니라 문제들 안에서 자유를 가져다 주는 평화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 집니다. 그분의 평화로 가득 차 있을 때 우리의 마음은 깊은 바다와 같습니다. 그 표면이 파도로 휩쓸릴 때조차도 그것은 평화롭게 머뭅니다. 그것은 박해조차도 축복으로 바꿀 수 있을 만큼 그토록 심오한 조화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자주 표면에 머물러 있기를 선택하는지요! 성령님을 찾기보다 우리는 둥둥 떠 있으려고 합니다. 이 문제나 저 문제가 일단 끝나야, 일단 내가 더 이상 저 사람을 안 봐야, 일단 상황이 나아져야 모든 일이 나아질 거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성령님을 찾기보다 둥둥 떠 있으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표면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하나의 문제가 가면 다른 것이 오고 우리는 다시 근심하게 되고 불편해 집니다. 우리가 평온함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피하면서 잠깐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평화를 가져다 주지 않을 것입니다. 달라지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평화, 성령의 일치입니다. 오늘날의 광적인 삶의 속도로 일치가 완전히 무시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초조하게 지쳐 버리는 위험을 감수하고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모든 것에 나쁘게 반응합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빠른 해결책을 찾습니다.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 살아 있다는 것을 계속 느끼기 위해서 계속 잇따라 약을 먹으면서. 그러나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령이 필요합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광란에 질서를 가져다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휴식 없는 가운데에 계시는 평화이고 좌절 가운데 계시는 확신이시고 슬픔 안의 기쁨이시고 늙음 안에 젊음이시고 시련의 때에 계시는 용기이십니다. 폭풍우가 치는 삶의 흐름 가운데에서 그분께서는 희망의 닻을 내리십니다. 성 바오로가 오늘 우리에게 이야기하듯이 성령께서는 우리가 두려움을 향해 물러나지 않게 하십니다. 그분께서 우리가 사랑 받는 자녀임을 깨닫게 하시기 때문입니다(로마서 8, 15 참고). 그분께서는 위로자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다정하신 사랑을 가져다 주십니다. 성령께서 계시지 않으면 모든 것을 모으는 사랑이 결핍되면서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은 흐트러집니다. 성령께서 계시지 않으면 예수님께서는 과거의 저명인사로 남습니다. 성령님께서 계시면 그분께서는 우리 자신의 시대에 살아계신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계시지 않으면 성경은 죽은 문자입니다. 성령께서 계시면 그것은 생명의 말씀입니다. 성령께서 계시지 않으면 그리스도교는 기쁨 없는 윤리주의입니다. 성령께서 계시면 그것은 생명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내면에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 가운데 일치를 가져다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 가지 지체들을 하나의 구성물로 세우시면서 우리를 교회로 만드십니다. 성 바오로는 교회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자주 여러 가지라는 한 단어를 반복하여 말하면서 이것을 잘 설명합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직분은 여러 가지활동은 여러 가지…”(코린토 1 12, 4-6). 우리는 여러 가지 우리의 자질들과 은사들 안에서 다릅니다. 성령께서는 그것들이 동일해 지지 않도록 그것들을 창조적으로 나누어 주십니다. 이 여러 가지에 근거하여 그분께서는 일치를 세우십니다. 처음 창조 때부터 그분께서는 이렇게 해 오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혼돈을 질서로 바꾸시는것에 조화를 창조하시는 것에 전문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다양함과 풍성함과 개성을 창조하시는 것에 전문가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이 다양함의 창조자이시고 그리고 동시에 다양함에 조화를 가져다 주시고 일치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분만이 홀로 이 두 가지 일들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의 세상에서 조화의 부족은 극명한 차이들로 이어져왔습니다. 이것들은 너무 많이 가진 사람들과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들, 백 살까지 살고 싶은 사람들과 태어나지도 못하는 사람들. 컴퓨터 시대에 거리감은 더 커집니다. 우리가 소셜 미디어를 더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 사회성이 떨어집니다. 우리를 교회로 하느님의 백성으로 그리고 인류 가족으로 새로 살게 하시는 성령님이 우리는 필요합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다시 살게 하시기를! 항상 둥지를 틀고 싶은 유혹이 있습니다. 우리의 작은 단체와 우리가 좋아하는 일들과 사람들에 집착하고 싶은 유혹, 모든 더러움에 영향 받고 싶지 않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이 단지 한 둥지로부터 한 분파로 가는 작은 발걸음입니다. 교회 안에서조차도. 우리는 얼마나 많이 우리 자신을 어떤 사람이나 어떤 것에 반대하여 우리 정체성을 규정하는지요! 성령께서는 반대로 멀리 있는 사람들을 모아 들이시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을 일치시키시고 흩어진 사람들에게 집을 가져다 주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 가지 음조들을 하나의 일치 안에서 조합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무엇보다 먼저 좋은 것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잘못을 보시기 전에 각 개인들을 보시고 그들의 행동에 앞서 그 사람을 보십니다. 성령께서는 교회와 세상을 아들 딸들 형제 자매들의 공간으로 만드십니다. 이 명사들은 어떤 형용사들 앞에 나타납니다. 요즘 슬프게도 형용사들이나 모욕적인 말을 내뱉는 것이 유행입니다. 우리가 사물의 실체를 이름 짓는 명사들에 대해 잊어 버리는 형용사의 문화 안에서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내가 공유하고 싶지 않은 다른 의견에 대한 첫 번째 반응으로서 모욕의 문화. 나중에 우리는 이것이 모욕을 당한 사람들뿐 아니라 모욕한 사람들에게도 해롭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악을 악으로 되갚고 희생자에서 공격자가 되는 것은 전혀 삶을 헤쳐나가는 방법이 되지 못합닙니다. 성령에 의해 사는 사람들은 불일치가 있는 곳에 평화를 다툼이 있는 곳에 일치를 가져다 줍니다. 영적인 사람들은 악을 선으로 갚습니다. 그들은 오만함을 온유함으로 대하고 악의를 선의로 대하고, 고함소리를 침묵으로, 뒷담화를 기도로, 패배주의를 격려로 대합니다.

 

영적으로 되기 위해서 성령의 일치를 맛보기 위해서 우리는 사물을 보는 그분의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그때에 모든 것이 변합니다. 성령과 함께 교회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고 선교는 개종이 아니라 기쁨의 전파입니다. 타인이 형제 자매가 되고 같은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모든 이들이 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성령 없이 교회는 하나의 조직이고 그 선교는 선전이 되고 그 친교는 하나의 행사가 됩니다. 많은 교회들이 사목 계획을 세우고 많은 것들을 토론하는데 시간을 보냅니다. 그것은 일치를 향한 길이 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그것은 성령의 방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분열을 향한 길입니다. 성령께서는 교회에 필요한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Saint Paul VI, General Audience, 29 November 1972 참고). 그분께서는 그분께서 사랑 받는 곳에 오시고 그분께서 초대 받는 곳에 오시고 그분께서 기대되는 곳에 오십니다.”(보나벤투라 성인, 부활 제4주일 설교)

 

형제 자매 여러분, 매일 성령의 은사를 간구합시다. 성령이시여, 하느님의 일치이시여, 두려움을 믿음으로 자기 중심을 자기 선물로 바꾸시는 당신이시여, 우리에게 오소서. 우리에게 부활의 기쁨과 늘 젊은 마음을 주소서. 성령이시여, 우리의 일치이시여, 우리를 하나의 몸으로 만드시고 교회와 우리 세상에 당신의 평화를 부어주시는 당신이시여. 성령이시여 우리를 일치를 이루는 사람으로[만들어 주소서], 선함을 씨 뿌리는 사람으로, 평화의 사도로 만들어 주소서.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documents/papa-francesco_20190609_omelia-pentecoste.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 http://www.podbbang.com/ch/1771273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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