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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선교사 3위 순교하신 날 (순교일; 9월21일)

140853 정태욱 [uiuihhh8] 스크랩 2020-09-18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선교사 3위 순교하신 날

순교일; 9월21일

     

    

    

 

 

          

 

      

                    

                   

         
  聖 엥베르 라우렌시오

222
관련성지새남터순교일1839.9.21

  

   

  

   

한국 이름은 범세형(范世亨), 조선교구 제2대 교구장이며
주교로는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조선교구 초대 교구장인 소
(브뤼기에르)
주교가 입국도 못한 채 병사하자
제2대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되어 1837년 5월 주교품을 받았으며
같은 해 말 조선 입국에 성공하였다.

그의 입국으로 조선교구는 그보다 앞서 입국한 나
(모방),(샤스탕)
두 신부와 더불어
교구 설정 6년, 교회 설립 53년 만에 비로소 선교 체제를 갖추었으며,
1839년 초 신자수는 9천 명을 넘게 되었다.
그는 또한 한국인 성직자 양성에도 뜻을 두어
정하상 등 네 명의 열심한 신자들을 뽑아 사제로 키우고자 하였으나
때마침 불어닥친 박해로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났을 때 자신의 거처가 알려지게 되자
교우들에게 화가 미칠 것을 염려하여 스스로 포졸들에게 잡히는 몸이 되었다.
나, 정 두 신부에게도 인편으로 자수할 것을 권유하여 다같이
1839년 9월 21일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이 때 그의 나이는 43세였으며 조선에 입국한 지 불과 2년 만이었다.

      

*주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      

 

  

 

 

죽음이 기다리는 동양의 끝자락 낯선 조선 땅

주님 사랑으로 입국한 선교 사제,

    

모진 박해에 내몰리고 있는 신자들의 더 큰 희생을 막기 위해
입국 2년만인 43세에 자수하고 순교하신

성 엥배르 라우렌시오 범주교 님이시여,

   

순교를 자청했던 선교사제의 지고한 사랑을 기억하는 저희에게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聖 모방 베드로

222
관련성지새남터순교일1839.9.21

 

 

      

서양인으로는 최초로 조선에 입국하여 순교한 신부로
1836년 1월 입국하여 서울 정하상
(39.9.22일 순교)
의 집에 머물며
제2대 교구장인 범 주교를 도와 경기 충청 등 지방까지 선교하였다.
 
그는 한국인 성직자 양성에 마음을 두고
1836년 2월에 최양업을, 3월에는 최방제를, 7월에는 김대건을 서울로 불러
직접 라틴어를 가르치고 성직자가 되는 데 필요한 덕행을 쌓게 하다가,
때마침 귀국하는 중국인 유방제 신부와 함께 이들을 비밀리에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고 성직자가 3명이나 입국한 사실이 당국에 알려지게 되자
범 주교에 이어 자수하였다.
1839년 9월, 홍주에서 정
(샤스탕)
신부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어
모진 형벌을 받은 끝에 새남터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하셨다.
그의 나이는 35세, 한국에 입국한 지 3년 9개월 만이었다.

한국 이름은 나 백다록(羅伯多祿),


*
주교회의 중앙협의회 자료에서

  



   

.          

        

      

    

서양인 사제로서는 처음 입국한 모방신부님,

최양업님과 김대건님을 사제의 길로 이끌고

   

입국 3년만인 35세에 새남터의 이슬이 되신

방 베드로 羅신부님이시여

      
방인 성직자를 키우기 위해 애쓰신 님의 영원에 따라

꽃처럼 피어난 이 나라의 모든 수도 성직자들에게

천상 기도의 축복을 보내 주옵소서!...아멘+

      

      

  

 

 

 

 

 


  聖 샤스탕 야고보

222
관련성지새남터순교일1839.9.21

 

    

   

 

 

한국 이름은 정 아각백(鄭牙各伯), 두 번째로 조선에 입국한 서양인 선교사이다.
1827년 1월 파리 외방 전교회 사제가 된 정(샤스탕) 신부는
1836년 12월 조선 입국에 성공하여 곧 한국말을 배우는 한편
나 신부와 함께 각 지방에 퍼져 있는 교우들을 찾아 성사를 거행하였다.

당시의 서양인 성직자들은 상제 옷으로 변장하고 험한 산길을 헤매야 했고,
소금에 절인 야채 따위로 주린 배를 채워야 했으며,
밤새도록 고해성사를 주고 미사를 드린 다음 날 새벽에는
또 다른 마을로 길을 재촉해야만 했다.
그들은 이러한 고난을 감수해 가며 오직 복음 전파에만 힘썼던 것이다.
1839년에 일어난 기해박해는 이 땅을 수많은 천주교인들의 피로 물들였고
정 신부도 범 주교, 나 신부와 함께 그 해 9월

새남터에서 순교의 월계관을 쓰게 되었다.
그의 나이는 35세, 이 땅에 들어온 지 2년 9개월 만이었다.

             

         

* 주교회의 자료집에서 발췌

 

구노의 아베 마리아Gounod, Charles Francois (1818~1893)

....구노가 대학 친구로서 함께 음악을 즐겼던 엥베르 범 주교의 순교 소식을 듣고 헌정(獻呈)한 곡....

 

  

     

 

 

 

 

상복으로 변장하고 어둔 밤 험한 산길을

신자들의 집을 찾아 헤매었던 이방인 사제

 

소금에 절인 배추로 배를 채우며 이 마을 저 마을을 헤매면서도

한없이 정다웠던 조선 신도들과의 만남에

환한 미소를 지었던

사스땅 야고보 鄭신부님이시여

    

주님의 뜻에 따라 이 땅에서, 3년도 못 채우고 순교의 칼날 아래 쓰러지셨지만

이 겨례에게 영원한 빛을 남기신 님을 기리오니

천상의 기도 가운데 저희를 기억해 주옵소서!...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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