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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교황님 미사 강론]콩고 공동체를 위한 거룩한 미사[2019년 12월 1일 주일(대림 제1주일)]

134811 정진영 [jjwriter] 2019-12-24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index.html

https://www.vaticannews.va/e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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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19121일 주일[대림 제1주일]

[독서와 복음 말씀] 1독서 : 이사야서 2,1-5

화답송 : 시편 122(121),1-2.4-5. 6-7.8-9(◎ 1 참조)

복음 : 마태오 복음 24,3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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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e Francis celebrates Mass with Rome's Congolese community 

콩고 공동체를 위한 거룩한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강론

 

성 베드로 대성전

2019 121일 주일

 

프란치스코 교황 : 평화.

회중 : 형제 사랑

프란치스코 교황 : 형제 사랑

회중 : 기쁨

 

오늘의 전례 말씀 중에 제1독서에서 세 번 반복되고 한편 복음에서는 사람의 아들이 올 것”(마태오 복음 24, 44) 이라고 말하면서 끝나는 하나의 동사 오다 또는 가다(come)”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오십니다. ‘대림(Advent)’이라는 말이 벌써 그 이름에서 이러한 확신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왜냐하면 대림(Advent)라는 말이 오다 또는 도착하다 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오십니다. , 이것이 우리 희망의 뿌리이고 하느님의 위로가 세상의 환난 속에서 우리에게 와 닿는다는 확신이고 말이 아니라 현존으로 우리 가운데 오시는 그분의 현존으로 이루어진 위로입니다.

 

주님께서 오십니다. 오늘 전례력의 첫날인데 이 선포는 우리의 출발점을 나타냅니다. 즉 우리는 좋은 일이거나 불행한 일거나 모든 사건들을 넘어서 주님께서 우리를 홀로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분께서는 2000년 전에 오셨고 그분께서는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또한 오늘 나의 삶 안으로 그리고 여러분들의 삶 안으로 오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이 삶이 모든 문제들과 근심과 불확실성과 함께 주님으로부터 방문을 받습니다. 이것이 우리 기쁨의 원천입니다. 주님께서는 결코 지치신 적이 없으시고 결코 우리에게 지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오고 싶어하시고 그분께서 우리를 방문하고 싶어 하십니다.

 

오늘 오다 또는 가다(come) 라는 동사는 하느님과 결합될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결합됩니다. 사실 제1독서에서 이사야가 이렇게 예언합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 오면서 말하리라.’,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이사야서 2,3). 이 땅의 악은 각자 사람이 다른 사람 없이 그의 혹은 그녀 자신만의 길을 따른다는 사실에서 비롯되며 예언자는 놀라운 환시를 줍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주님의 산으로 올라갑니다. 성전, 하느님의 집이 산들 위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이사야는 그렇게 하느님의 집으로의 초대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손님들이고 그리고 초대받은 사람들은 예정되어 있고 그들은 환영 받습니다. “오너라”, 하느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집에 모든 이들을 위한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오너라, 나의 마음 속에 하나의 민족뿐 아니라 모든 민족들이 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멀리서 왔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집을 떠났고 여러분은 여러분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러분에게 소중한 것들을 떠났습니다.여기에 도착해서 여러분은 역경과 예상치 못한 사건들과 함께 따뜻하게 맞아들임을 찾아 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여러분은 언제나 손님으로 환영 받습니다. 그분께 우리는 결코 이방인이 아니고 기다리시는 자녀들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느님의 집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언제나 여기서 마음 편안하기를. 주님을 향해 함께 걸어가기 위해서 그리고 이사야의 예언이 ,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이사야서 2,5) 라고 끝나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 우리는 여기에 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주님의 빛보다 세상의 어둠을 더 좋아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과 함께 가자고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께 아니오, 저는 안 갈래요라고 대답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자주 뻔뻔스러운 직접적인 아니오가 아니라 기만적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에서 노아 떄”(마태오 복음 24, 37)처럼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고하시면서 우리에게 경고하신 아니오입니다. 노아 때에 어떤 일이 일어 났습니까. 일어난 일은 새롭고 강력한 어떤 것이 막 일어나려는 때에 사람들은 그저 온통 먹고 마시는 일에 생각하고 있어서(마태오 복음 24, 38) 아무도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그저 삶을 모두 그들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로 축소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열정 없는 김빠지고 수평적인 삶에 만족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기대가 없이 그저 자기 자신들을 위한 요구만 있고 소비할 어떤 것만 있었을 뿐입니다. 오실 주님에 대한 기대입니다. 우리가 소비할 어떤 것에 대한 요구가 아닙니다. 이것은 소비주의 입니다.

 

소비주의는 신앙을 그 뿌리에서 손상시키는 바이러스입니다. 왜냐하면 그 소비주의가 인생이 오로지 여러분이 가진 것에 달려 있다고 믿게 만들고 그리고 그렇게 당신에게 다가가고 당신 옆에 계신 하느님을 당신이 잊습니다. 주님께서 오시지만 그러나 당신은 당신이 느끼는 갈망을 따르기를 더 좋아합니다. 당신의 형제들이 당신의 문을 두드리지만 그러나 그는 당신에게 성가신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신의 계획을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소비주의의 자세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믿음의 위험들을 지적하실 때 그분께서는 강력한 적들, 적개심과 박해를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있어 왔고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믿음을 손상시키지 않습니다. 진정한 위험은 그것이 아니라 마음을 마취시키는 것들입니다. 그 진정한 위험은 소비주의에 대한 의존입니다. 그것은 물건들이 마음에 짐 지우게 하고 마음을 흐트러지게 둡니다(루카 복음 21, 34)

 

그러면서 사람들이 먹고 살지만 더 이상 그들이 무엇을 위해서 사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그토록 많은 소유물들을 가지고 있지만 더 이상 선행을 하지 않습니다. 집은 물건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러나 아이들이 없습니다. 이것, 우리가 고통 받고 있는 인구통계의 겨울은 우리가 오늘날 직면한 드라마입니다. 물건으로 가득 찬 집 그러나 아이들이 없습니다. 시간이 오락으로 소비되고 그러나 사람들은 하느님을 위한 시간이 없고 다른 이들을 위한 시간이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물건들을 위해서 살아 갈 때 물건들은 결코 충분하지 않으며 탐욕이 늘어나고 다른 이들이 방해가 되고 결국 사람들은 위협받는다고 느껴버리고 그리고 그들은 영영 불만족스럽고 화를 내면서 미움의 수준은 올라가고 나는 더 원해, 나는 더 원해, 나는 더 원해…” 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소비주의가 지배할 때 언제나 이것을 봅니다. 얼마나 많은 폭력이 있는지, 설사 그것이 단지 말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적을 찾아내려는 분노와 욕망이 얼마나 대단한지요! 그렇게 세상이 치명적인 무기로 가득 차 있고 우리는 우리가 분노로 우리의 마음을 계속 무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에서 우리를 다시 깨우고 싶어하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나의 동사로 그렇게 하십니다. , “깨어 있어라”(마태오 복음 24,42). “조심하여라, 계속 깨어 있어라.” 깨어 있다 라는 것은 파수꾼의 임무였습니다. 파수꾼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잠들었을 때 살펴 보기 위해 깨어 있었던 사람입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덮는 잠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깨어있기 위해서 확실한 희망을 갖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밤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새벽이 곧 시작되리라는, 그리고 그렇게 그것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오시고 그분의 빛이 가장 짙은 어둠조차도 밝힐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깨어 있는 것, 계속 깨어 있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삶이 축적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유혹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 이것이 유혹입니다, 삶의 의미가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을 때 행복하다는 그 기만을 벗겨내는 것은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번 달 모든 곳에서 빛나는 소비주의의 눈부신 빛들에 저항하는 것 그리고 기도와 자선은 시간 낭비가 아니라 오히려 위대한 보물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그리고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열 때 우리는 물건들이 우리에게 결코 줄 수 없을 것이고 이사야가 제1독서에서 선포한 소중한 좋은 것, 평화가 왔음을 알립니다. ,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거슬러 칼을 쳐들지도 않고 다시는 전쟁을 배워 익히지도 않으리라”(2.4). 이것은 우리에게 또한 당신의 본향을 생각하게 만드는 말씀입니다. 오늘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동부 지역에서 위협 받는 특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침묵이 공모하고 외부로부터 부추겨 지는 분쟁이 타오르는 베니와 미넴브레의 영토에서 평화를 위해 기도합시다.

 

오늘 여러분은 가장 아름다운 인물 복자 Marie-Clémentine Anuarite Nengapeta를 기념하고 있습니다. 복자는 예수님께서 너는 네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므로 나는 너를 용서한다!”고 하신대로 자신의 사형집행인에게 말하고 나서 폭력적인 죽음을 당했습니다. 타인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되지 않고 오히려 타인과 함께 하는 사람들이 되는 미래 그리고 전쟁을 섬기는 경제에서 평화를 섬기는 경제로 바뀔 미래를 위해서 사랑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이웃 민족들의 도움으로 무기가 버려질 수 있도록 복자께 전구를 청합시다.

 

프란치스코 교황 : 들을 귀가 있는 사람

회중 : 그가 듣게 하라!

프란치스코 교황 : 깨달을 마음이 있는 사람

회중 : 그가 깨닫게 하라!

 

 

강론영어원문 ->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homilies/2019/documents/papa-francesco_20191201_omelia-comunitacattolica-congolese.html

 

<소리로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1. 마리아 사랑넷 https://www.mariasarang.net/ (->신앙생활->교황님 미사 강론)

2. 팟빵 http://www.podbbang.com/ch/1771273(->교황님의 심쿵 미사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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