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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사도신경 열다섯번째/성령을 믿으며

133172 김종업 [rlawhddjq] 스크랩 2019-10-14

 

 

사도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사도신경 열다섯번째(2019.10.14)

성령을 믿으며

(사도행전 14-5)

4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아멘

 

사도행전 53-4절 보세요 3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하나니아스, 왜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성령을 속이고 땅값의 일부를 떼어 놓았소 4 그 땅은 팔리기 전에도 그대 것이었고, 또 팔린 뒤에도 그 돈은 그대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 아니오 그런데 어쩌자고 이런 일을 하려는 생각을 마음속에 품었소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속인 것이오.”

하나니아와 삽비라와 자기 소유를 팔아서 얼마를 감추어 두고 그게 전부라고 거짓말을 했어요 그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너희들은 성령을 속였다 그러죠 그런데 뒤에서는 그 성령을 하느님이라고 불러요 성령을 속였다 그래놓고 뒤에서는 하느님을 속였다 그런다 말입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나 이 사도행전을 기록한 루가 그리고 초대교회 모두가 성령을 하느님으로 배우고 인정했으며 고백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겁니다 사도바오로도 성령을 하느님에 영이라고 불렀던 거에요

로마서 89절 보세요 9 그러나 하느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사시기만 하면, 여러분은 육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을 모시고 있지 않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바오로는 성령을 가리켜서 하느님의 영 이라고도 하고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해요 이렇게 우리는 성부 하느님과 성자 하느님과 성령 하느님이 영원하신 한 하느님이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 확인할 수 있어요 따라서 우리는 성령을 향해서 오라 가라 명령을 하거나 성령은 마치 인격도 없는 무슨 능력이나 현상에 불과한 것처럼 홀대해서도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느님이세요 성령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런데 그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게 된 거에요 그렇다면 그 성령은 왜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되신 거죠 예수님에 십자가가 우리를 구원했어요 그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에 관한 모든 것을 완전하게 완벽하게 충족시킨 하느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완벽한 십자가의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졌단 말입니다 그런데 왜 굳이 예수님은 올라가고 성령은 내려오고 우리 안에 들어오고 이런 일이 왜 있어야 되냐 말이에요

첫째로 하느님은 구원받은 택한 백성들에 이성과 인격에 하느님과 하느님에 은혜와 하느님에 은혜를 떠난 자들에 실상을 올바로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길 원하시기 때문에 성령을 우리의 인생에 보내신 거에두번째로 성령 하느님은 우리 택한 백성들을 성부 하느님에 일에 동참시켜서 당신에 나라를 완성하시는데 동역자로 쓰시기 위해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거에요 그래서 사도바오로가 자기를 가리켜 하느님의 동업자라고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느님의 동업자로 만들어서 하느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안에 들어오시는 거에요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곧바로 승천하지 않으시구요 무려 40일 간이나 이 땅에 머물먼서 제자들에게 뭘 가르치고 가셨어요 뭘 가르치고 가셨습니까

사도행전 13절 보십시오 3 그분께서는 수난을 받으신 뒤, 당신이 살아 계신 분이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사도들에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러면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번 나타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셨어요 주님은 이제 제자들을 통해서 당신이 하시던 하느님 나라의 일을 하실 거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던 거에요 그리고 그 일이 어떤 일인지를 가르치신거에요 그런데 그 하느님 나라의 일에 관해서는 예수님께서 이미 제자들에게 확인시켜주신 적이 있었어요 그 일이 뭔지 볼까요

요한복음 628-29절 보세요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보시다시피 하느님 나라의 일은 그 나라의 백성들이 하느님과 예수님만을 믿는 자로 완성이 되는 거에요 그게 하느님 나라의 일이에요 돈이나 명예나 관계나 이런 이 세상의 힘을 믿던 이들이 하느님과 예수님만 믿는 자로 완성이 되는 게 하느님 나라의 일이에요 예수님이 바로 그 일을 하다가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하느님만 믿었고 그분이 시키는 일에만 절대 순종하다가 가신 거죠 그게 믿음이라 그랬어요 자신을 비우고 하느님으로 그 그릇을 채워 내는거 그리고 그렇게 도덕적 피조물들이 하느님과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만을 믿는 자로 완성이 되어져 가는 길에 하느님에 백성들이 하느님에 나라로 돌아오게 되는 거에요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하느님 나라로 완성이 되어져 가는데 하느님 나라는 뭐다 바실레이아 통치권 ....하느님의 통치에 순종하는 자로 지어져가는게 하느님 나라가 되어가는 거거든요 우리가 하느님 나라에요 그 하느님 나라로 우리가 완성되어져 가는 길에 하느님의 백성들이 돌아옴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에 거시적인 나라가 완성이 되어져 가는 거에요 그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에 일인 겁니다 그런데 그 일은 성령에 도움이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비워지고 내가 부인되어지고 내가 십자가를 지는 일은 절대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우리의 노력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성령이 오시는 거에요 예수님에게도 공생에 직전에 성령이 임하셨죠 왜 우리에게 그걸 보여주시는 거에요 예수님도 성령이 임하자.... 그 성령에 이끄심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게 되시더라를 보여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공생애 직전에 성령이 눈에 보이게 임하는 것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고.... 성경에 기록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왜 나에게는 성령이 비둘기 같이 안내려 오시나 이런 생각 하시면 안되는 거에요 성도 안으로도 그런 이유로 성령이 강림을 하시는 거에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일에 관해서 제자들을 가르치신 후 어떤 분부를 하는지 보세요 하느님 나라의 일을 그들에게 40일간 가르치셨다 바로 밑에 나오는 구절이 이 구절입니다

사도행전 14 4 예수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계실 때에 그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나에게서 들은 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분( 성령 )을 기다려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너희는 며칠 뒤에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이게 오늘 본문이에요 40일간 하느님의 일에 관해서 설명을 하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성령 강림을 기다리라고 하신 후에 승천을 하셨어요 하느님 나라의 일을 하기 위해서 너희가 예루살렘이 머물면서 아버지의 약속하신것 즉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거에요 그때까지는 절대 하느님에 일을 하겠다고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는 예루살렘 절대 떠나면 안된다는 거에요 따라서 성령세례는 우리가 하느님의 일 다시 말해서 하느님과 예수님만을 우리의 행복의 근원으로 온전히 믿게 되는 일에 꼭 필요한 것이였다라는 거에요 그게 구원이잖아요 그러니까 우리의 구원에 반드시 필요한게 뭐다 성령이라는 뜻이에요 따라서 성령은 무슨 능력이나 권능으로 오셔서 우리에게 신비한 체험을 하게 해준다거나 방언이나 예언이나 신유 등의 은사를 체험하게 해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를 부인하고 세상에 힘을 기각당하면서 오로지 하느님과 예수님의 은혜만을 꼭 붙들고 믿는자로 지어져 가는 길에 도움을 주러 오시는 분이란 말이에요 완전히 반대로 꺼꾸로 생각하고 있는 거에요 오늘날 교회는요 다른말로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의해서 탄생한 교회들에 삶 속에 예수님에 그 지상에서의 삶을.. 순종에 삶을 그대로 재현시키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성령은 우리에게 오시는 거란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보혜사라고 부르는 거에요 保惠師 헬퍼

요한복음 1416-18절 보세요 16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의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너희는 그분을 알고 있다. 그분께서 너희와 함께 머무르시고 너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18 나는 너희를 고아로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

16절에 또 다른 이라고 번역이된 헬라어 알로스라는 단어는요 구별이 되는 똑같은 것 구별은 되지만 똑같은 것 이라는 뜻이에요 우리의 이성으론 그게 뭔지 이해가 안가죠 그죠 구별은 되는데 어떻게 똑같아 그런데 알로스는 그런 단어에요 똑같은 다른 것 이런 뜻이거든요 그러니까 분명히 구별이 되는데 하나라는 거에요 그게 알로스에요 그러니까 예수님과 성령님은 구별이 되는 한 분이라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도 보호자고 성령님도 보혜사인 거에요 그러니까 첫번째 보혜사는 누구다 예수 그러니까 또 다른 보혜사라 그러잖아요 그런데 그 첫번째 보혜사 파라클레토스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어떻게 보혜사의 일을 하셨어요 어떻게 우리를 위로하고 어떻게 우리를 도우셨죠 그 첫번째 보혜사가 그걸 알면 두번째 보혜사가 이 땅에 왜 왔는지 우리가 알거 아닙니까 우리가 원하는 이 세상 것들을 풍성히 제공하고 우리의 모든 소원을 다 이루어주시는 것으로 우리를 도우셨습니까 아니에요 분명 많은 기적을 행했지만 .....그건 복음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기적이였어요 오히려 그거 안해주고 죽는다고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이 죽여버린 거 아닙니까 그거 해주러 오신분 아니란 말이에요 오히려 우리의 기대와 세상적 소망을 무참하게 허물어 버리고 루가복음에 보면 엠마오 마을로 내려가는 이들이 우리는 희망을 다 잃었다라고 이야기 하쟌아요 오히려 예수님은... 우리의 희망을 세상적 희망을 무참하게 다 허물어 버리시고 십자가를 지고 죽어버렸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보혜사 예수님은 우리의 세상적 필요를 채우는 것으로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한게 아니라 우리의 죄와 악이 되셔서 죽으시는 것으로 우리를 도우시고 위로한 거에요 예수님이 이 땅에 보혜사로 오셔서 하신일은 그거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 하느님은 우리 안에서 무슨 일을 하실까요 역시 첫번째 보혜사이신 예수님의 일을 똑같이 하신단 말입니다 알로스니까 또 다른 같은 보혜사니까 성령님은 그렇게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적으로 역사적으로 죄와 악을 죽이는 일 즉 자기 부인의 일을 도우시러 우리에게 오신 거란 말입니다

죄가 뭐에요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하느님 앞에 절대 의존적 존재로 살아야 하는 도덕적 피조물이 하느님의 자리를 찬탈한게 죄잖아요 하마르티아 관역을 벗어나다 관역을 벗어난 삶을 사는게 죄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 죄와 악을 허문다는건 뭐에요 우리가 우리만을 위해서 살려고 했던 그런 모든 시도와 노력들 거기에서 우리를 끌어 내려서... 오히려 우리의 소원과 우리의 야망과 비전을 기각시켜 버리고 하느님에 말을 듣는 자로 살게 만드는게 성령의 도우심이란 말입니다 18절을 보시면 예수님은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신다고 하셔놓고 잠시 후에 내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라고 이야기 하시잖아요 그러니까 성령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 맞는 것이고 그 예수 그리스도의 영은 오히려 우리 안에서 우리의 기대와 소원과 야망을 기각시키고 우리의 죄와 악을 죽이는 일을 하러 오신 거에요 예수가 그일을 성취해 냈고 경험과 역사속에서 성령 보혜사가 또 다른 보혜사가 그일을 행하신단 말입니다 그게 알로스인거에요

마르코복음 1619-20절보세요 19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20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그 여자들은 자기들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베드로와 그 동료들에게 간추려서 이야기해 주었다. 그 뒤에 예수님께서도 친히 그들을 통하여 동쪽에서 서쪽에 이르기까지, 영원한 구원을 선포하는 거룩한 불멸의 말씀이 두루 퍼져 나가게 하셨다. 아멘. 

그런데 보세요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하는데 주께서 함께 일하신다 라고 이야기를 해요 하느님 우편에 앉아 계신 주님은 뭐고 우리와 함께 역사하시는 주님은 뭐냐 말이에요 그 예수 그 주님이 그 이 땅에 내려오셔서 사신 순종의 삶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심으로 성령을 통해 역사하심으로 그 순종에 삶을 .....지금 우리에게 이해시키고 있고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내고 계시는 거에요 그래서 그 주님이 우리와 함께 일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오셔서 하느님 절대 의존자의 삶을 사신 유일한 그분 그분의 삶이 이제 우리가 성령을 받게 되면 우리 속에서 들어나게 되는 거에요 성령은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완전히 다른 종류의 능력으로 이 땅에 오신 거에요 예수처럼 순종하다가 죽는 자로 만드시는 능력으로 오셨단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감옥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럼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지 할 수 있으면 거기서 나와야지 왜 거기 앉아서 능력주시는자 안에서 모든지 할 수 있다 그러냐 말이에요 성령의 능력을 받으니까 감옥이 감옥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분명히 수난을 받고 있는데 그게 견뎌지더라는 거에요 그게 우리에게 온 성령의 능력입니다 아니 더 정확히 이야기 할까요 진짜 성령의 능력은 일 잘하고 있는 사도바오로를 그가 교만할까봐 감옥에 쳐 넣는게 성령의 능력입니다 그가 自高할까봐 육체의 가시 스콜롭스 뭐라 그랬어요 장대같은 꼬챙이를 이쪽 옆구리에서 이쪽 옆구리로 뚫는게 바로 가시에요 스콜롭스, 그런 무시무시한 질병을 그의 삶에 허락하는게 성령의 능력이란 말입니다 그걸 고쳐주는게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 오늘날 교회가 이게 뭐냐 말이에요 도대체가 이게 교회입니까 완전히 꺼꾸로 믿고 있잖아요 하느님이 하느님나라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거에요 오늘날 교회는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완전히 순종하는 자로 이 땅에서 교회에서 지어져 가는 거란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조금이라도 세상적인 어떤 유익을 포기하거나 세상적인 힘을 놓게 되는그런 일이 있으면 극구 말려요 어떻게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자식들은 그렇게 산다는데 부모가 말이죠 예수 안믿는겁니다. 성경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를 모르는 거에요

 

마태복음 2818-20절 보세요 18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잘보셔야 되요 이 말씀은 전도나 선교에 힘쓰라는 명령으로 주신게 아닙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하느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萬有의 왕으로 등극을 하셨어요 따라서 주님이 승천을 하셔서 하느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건 주님의 왕권의 회복을 상징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분이 당신에 그 왕권 권세 ....그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세요 능력을 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하세요 그러고 뭐라 그러셨어요 내가 양들을 이리들에게 보내는것 같다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러면서 뱀처럼 지혜로워라 그러죠 그 말은 무슨 말이라 그랬어요 뱀의 지혜는 뭐에요 인류를 타락시킨 뱀의 지혜 왜 니가 피조물의 자리에 있어야 돼 하느님의 자리로 올라가 그게 뱀의 지혜잖아요 그러니까 양아 이리들에게 가서.... 이리들이 너 문다고 양의 신분 벗어 놓고 ....호랑이로 변해서 응전하지 말아라라는 거에요 그게 뱀의 지혜입니다 그러니까 이리들에게 양을 보내면서 양으로 몰려 죽으라는 거에요 예수가 이리들에게 십자가에서 물려 죽었잖아요 그런데 하느님의 일이 거기서 승리로 들어나더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우리에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 명령은 예수님의 승천 바로 직전에도 제자들에게 주어져요 사도행전 18절 보세요 8 그러나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28장에 지상 대명령과 동일한 명령이에요 다만 마태복음의 그 모든 민족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바뀐것 뿐이지 똑같은 명령이에요 이 두 명령을 종합하면 이렇게 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에 왕으로 등극하셨어요 예수님이 만유를 통치하신다.라는 그런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만유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권능을 주시는데 그 권능이 성령을 통해 성령강림으로 주어진게 된다는 거에요 그래서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고라는 말이 들어가 있는 거죠 그런데 성도가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으면 모든 민족 앞으로 나가서 그들에게 세례를 주는 일을 하게 되는 거고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는 일이라는 거에요 맞아요 근데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성도들과 함께 있을 것이라는 그 약속을 그 명령뒤에 붙이고 계세요 그건 내가 돕지 않으면 ....너희들은 절대 그 삶을 못산다는 거에요 그게 예수님이 성령으로 다시 오셔야 하는 이유입니다 아니 세례를 주고 증인이 되는게 뭐 그리 힘들어서.... 예수님이 우리안에 성령으로 다시 오셔야 한다는 것인가

여러분 지금 누구에게 세례 줄수 있어요 세례가 뭐에요 물뿌리는거 세례에요 증인은 뭐에요 보세요 우리도 세례를 받았죠 세례 누구에게 받았습니까 무슨 세례 받았어요 성도는 누구에게 무슨 세례를 받았습니까 예수님으로 인해 성령세례를 받아요 그게 세례라는 행위로 세크라맨토로 우리에게 주어진것 뿐이지 이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 세례를 안받으면 구원 못받나요 그러나 거기에는 복음의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이란 말입니다 볼까요

마르코복음 18절 보세요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성령으로 예수가 우리에게 세례를 주셔야 우리가 구원을 받는거죠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에요 그러나 그 분은 우리에게 세례를 주시기 위해 ...무엇을 해야 했어요 본인이 먼저 세례를 받아야 했어요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세례를 주는 사람은 본인이 먼저 세례를 받아야 되요 그 세례가 뭐였어요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가 십자가였습니다. 부활이였어요 십자가와 부활 보세요

루가복음 1250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십자가죠 세례는 뭐에요 그냥 물에 푹 담겨셔 죽이고 다시 살려 내는게 세례니까 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새 사람으로 부활하신게 세례란 말입니다 세례가 담고 있는 메시지잖아요 그런데 그걸 우리의 옛 사람을 죽이고 새 사람으로 살려내는 구원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 세례를 주는 이의 선 세례가 전제되야 된다 말입니다 따라서 너희들은 모든 민족에게 세례를 주어라 라는건 무슨 말이에요 모든 민족에게 가서 이리같은 모든 민족에게 가서 양처럼 맞아 죽으라는 뜻입니다. 그 앞에 가서 죽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처럼 그래도 막 세례주고 그러실 거에요 힘든겁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보혜사로 돕지 않으면 그 일은 절대 할 수 없는 거에요 그래서 성령이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를 주라는 건 너희들이 먼저 죽고 그 죽음으로 다른 이들을 세상 속에서 죽여내라는 거에요 물론 옛 사람이죠 내가 죽는 죽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이들이 세상에서 죽을 수 있게 만들어라가 세례를 주어라에요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며 세상속에서 죽을때 그 삶을 통하여 하느님을 알지 못하던 자들의 옛 자아가 죽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게 되는 새 창조가 일어나게 되는 거에요 그게 전교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성도가 성도를 낳는 것 이라고 성경이 기록을 하는 거에요 그러니까 전교는 자기 부인과 십자가가 선행되지 않고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거에요 그 길에 일어나는 하느님의 열심 그것이 전교입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은혜에 의한 창세기 때에 하느님의 명령의 성취라고 할 수가 있어요

하느님은 태초의 인간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라고 명령을 내리셨죠 그리고 거기에 해산에 고통을 더하셨어요 해산의 고통은 왜 왔어요 죄 때문에 왔잖아요 따라서 죄된 세상에서 성도가 생육하고 번성하기 위해서는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뭐가 전제되는 거에요 필연적으로 해산의 고통이요 그래서 창세기에 해산의 고통이 들어가 있는 거에요 바로 그 명령이 성령에 의해 이 세상에서 교회안에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죄악된 세상에서 교회를 낳는 자로 생육하고 번성하는 자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해산의 고통을 겪으며 우리의 영적 자녀를 낳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바오로가 교회보고 내가 너를 낳았다 이런 표현을 자주 하잖아요 디모테오 한테도 내가 너를 낳았다 언제 낳았어요 자기가 ...이런 의미에서 내가 너를 낳았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그리고 여자는 교회는 해산을 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라구도 표현을 했던 거죠 디모테오전서 2장에 나오잖아요 갑자기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여자는 해산을 하므로 구원을 받는다 평생 해산 못한 사람은 구원을 못받아요 그게 아니라 그랬죠 여자는 성경에서 항상 뭐다 교회 어린양의 신부인 교회를 상징하니까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서 자기 부인과 십자가라는 해산의 고통을 반드시 통과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 일로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고 확장되는 거에요

내가 완성되는게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고 나로 인해 다른 이들이 교회로 들어오는게 또 하느님 나라의 완성 아닙니까 그일 하는 거에요 그게 하느님 나라의 일이에요 예수님이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가르쳤던 일이 바로 그 일이에요 그런데 그게 성령의 도움이 없으면 안되기 때문에 성령이 오시는 거고 그러니까 성령에 의해서 창세기 122절에 그 하느님에 명령이 성취가 되는 거에요 그게 모든 민족에게 가서 세례를 주라는 거에요 니가 죽고 낳으라는 것입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에 증인이 된다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증인이라는건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어떤 사건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이 그 일에 대해여 낱낱이 증거할 수 있을때 그를 증인으로 증거할 수 있죠 보지도 못한 애가 나와서 증거하면 위증죄로 감옥갑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는건....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을 직접 본 자들 처럼 그분의 삶을 자신의 삶과 입으로 증거하는 자로 살게 된다는 말인거에요 그런데 그 예수의 삶이 어떤 삶이였습니까 자신의 모든 힘과 능력을 전부다 비워 버리고 하느님으로 그 빈그릇을 채워서 하느님께 죽기까지 순종하는 삶이였어요 당신도 하느님인데... 그는 근본 하느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우고 죽기까지 십자가를 지기까지 하느님께 순종했다 그게 예수잖아요 그게 증인이였단 말입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라는거 그리고 하느님이 어떤 분이다라는걸 예수님이 이땅에 내려와서 증거하셨어요 그래서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봤다고 하는 거에요 그런데 그분이 이땅에서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으로 하느님을 증거했단 말입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은혜의 하느님이며 사랑의 하느님이라는 거에요 그런데 그 증인의 임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니깐요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거에요 예수께서 완전한 자기부인의 삶을 살았잖아요 그리로 우리를 끌고 가는 거에요 내가 너희를 그런 증인으로 만들고야 말거야 그런데 그 완전한 자기부인의 삶이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 이 세상 어디에서도 다 일어나야 한다라는 거에요 교회 안에서만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만 거룩한척 연극하지 말라는 거에요 여기서만 홀리하면 뭐합니까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가서 증인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현장에서 여기서 쇼하는건 아무나 할 수 있어요 그 말은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게 되는 범위가 어떤 지역에 한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에서든 그 삶을 살게 될테니까 그때 당황하지 말라는 거에요 아울러 동시에 그 증인됨에 삶에 주도권은 너희에게 있지 않다라는 거에요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니가 싫어도 내가 그렇게 만들고 말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자기부인과 십자가의 삶으로 힘겹게 진행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어려운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라고 확정지어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그 삶이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삶이기에 권능의 성령이 우리에게 보혜사로 오셔서 우리를 도와 주셔야 한다는 거에요 따라서 성령은 우리를 하느님 앞에서 무력하고 불가능한 자로 폭로를 하심으로 결국 하느님께 완전히 항복하는 자로 만들러 오시는 거지 우리의 능력이 되어서 신비한 것을 체험하게 해주시거나 대단한 은사를 주어서 상대적 비교 우위적 우월감을 주시기 위해 오신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 기적은 다른 종교에 다 있어요 방언 이슬람 힌두교 불교에 다 있습니다 神癒 거기서 더 많이 일어나요 은이빨 금이빨로 변하는거 이슬람교에서 300년 전에 먹다 버린거 교회가 지금 주서 먹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그런거 하러 오신거 아니라니깐요 우리를 애초에 창조의 목적대로 하느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 완전히 비워 내시기 위해 오신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하셔셔 성령세례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는 하느님 절대 의존자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고 가신 거에요 성령으로 잉태된... 우리가 성령을 받고 바로 그 삶을 살게 될 것을 미리 한번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받았다고 야 나한테 기도받으러와, 이사람 어떤 사람이다 귀신들린 삶이라 그랬잖아요 성경에서 변모산 아래에서 그들이 그짓하고 있었다니깐요 그건 겨자씨 같은 믿음 아니잖아요 예수님이 요르단강에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실때 성령이 비둘기 처럼 임했어요 그때부터 예수님의 삶이 마치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마지막장에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당신의 모든 계획과 뜻과 희망사항을 전부 기각당한체 누군가 밖에서 띠를 띠우고 그분을 이끌어 가는 그런 자기부인의 삶을 사셨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그 겟세마니에서 땀이 피가 되는 기도에서 아버지 할 수만 있으면 내 뜻은 이래요 할 수만 있으면 이 독배를 나에게서 지나가게 해주세요가 내 뜻인데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성령받은 내가 그 삶을 살았다 얘들아 성령받은 내 백성들아 너희가 그 삶을 살게될거야 베드로도 그렇게 살게 될거야....너는 꺼꾸로 메달려서 죽게 될꺼야 성령이 밖에서 너를 띠띠우고 너를 끌고 갈거야 지금까지는 니가 니가 가고 싶은데로 다녔잖아 이제는 안돼 성령이 올거거든.... 예수님이 요한복음 마지막에서 그 이야기 하시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의 인생이 우리 뜻대로 그렇게 안되는 거에요. 인생을 우리의 뜻대로 바꾸어 달라고 하느님께 그렇게 메달리면 안된다니깐요 그러면 죽어요 밖에서 띠 띠우고 하느님이 우리를 끌고 가셔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원수 앞에서도.... 예수님의 삶을 보여주는 자로 지어져 가게 되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 유대인들이 개 취급도 안했던 사마리아와 당시 유대인들을 식민 통치했던 원수 그 땅끝 로마사람들에게 까지도 예수의 증인의 삶을 보여주게 된다는 그런 뜻이에요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거에요 바로 그 얘기 전에 제자들이 뭐라고 그랬어요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그랬잖아요 그러면 이스라엘을 회복할라면 어떻게 해야 되요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를 때려 부셔야 된다는 말입니다 역시 이기적인 기대를 하고 있단 말이에요 이스라엘을 회복할라면 로마를 때려 부셔야 되는데 예수님이 그 이스라엘을 회복할때가 이땝니까 라고 물어보는 제자들에게 너희들을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야 되는데 지금 나에게 로마를 부셔달라고 하는거냐 그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 이야기의 배경은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우리의 원수 앞에까지 가서 ...그들 앞에서 그들을 품고 죽는 그 자리로 성숙되어져 가는 거에요 고지 꼭데기에 올라가서 강자로 존재하기 위해 하느님이 여러분을 도우시는게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예수 믿기 전에 너희들 한번 계산해봐 너희들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될지 계산해 보고 믿어 그렇지 않으면 너희 도저히 못쫓아온다 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그 삶을 가능하게끔 도와주시는 거에요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한 거에요 그래서 그들은 로마에 무력대응을 하지 않았어요 그냥 카타콤에서 사자굴에서 기름가마 속에서 그냥 십자가를 쥐고 죽어 버렸어요 그랬더니 로마가 그리스도교에게 무너졌습니다 카타콤에서 죽었어요 당시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채택했을때.... 카타콤에서 꺼낸 시체가 200만구였어요 그때 로마 전체의 인구가 100만 이였습니다 그 세상에게 200만이 맞아 죽었더니 승리가 주어지더라는 것입니다 그게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인 거에요 그건 교회를 향한 하느님의 역사적 메시지였어요

죄와 악은 내가 그 죄와 악에 맞아 죽을 때 소멸이 되요 도저히 세상의 힘에 원리로는 이해가 안가는 거죠 내가 때려 죽어야지 어떻게 내가 맞아 죽는데 게가 죽어요 전자가 세상의 힘에 원리고 후자가 바로 하느님 나라의 십자가의 원리인 것입니다 그거는 하느님 나라의 삶의 원리에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와 악이 되셔서 죽으셨다는 건 다 아시죠 고린도후서 5. 예수님이 인간세상의 죄와 악에 의해 십자가에서 살해당하신 거에요 예수님은 이 세상의 죄와 악이 십자가에 달리신 당신께로 쏟아질때 전가가 될때 마징가 제트의 레이져빔이 되갖고 그걸 다 공격해서 없앤게 아니라 다 품에 안아 버렸어요 심장 깊숙히 악이 죄가 뚫고 들어오는데 맞았어요 품어 안았습니다 그리고 죽어버린거에요 그랬더니 하느님 백성들의 죄와 악이 거기서 같이 죽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에서 예수를 못박아 죽인 거에요 우리의 죄와 악이 그분을 죽였는데 그 분이 그걸 품어 안고 죽어버리니까 우리의 죄와 악이 같이 죽어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원리로 우리는 이 세상을 살게 되는 거에요 우리는 이땅에서 멸망의 자식 유다와 같은 자아 숭배와 이기라는 그런 죄와 악에서 젖어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그 죄와 악은 자기 이외의 다른 이들을 모두 경쟁자와 원수로 간주하죠 이러한 죄와 악의 공격이 시기 질투 분열 다툼 험담 모함 전쟁 등의 현실로 나타나는 거에요 그러한 때에 성도는 거기에 응전을 하는게 아니라.... 죄와 악에 원흉인 땅끝을 품어 안고 죽어 버리는 거에요

땅끝까지 이르러 세례를 주는 거에요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는 거에요 예수의 증인 그 삶을 살 수 있겠냐구요 그래서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을 그리로 끌고 가실려고 그런데 무슨 성령집회니 뭐니 하면서 거품물고 벌벌떨고 쓰러지고 이게 뭣들하는 짓이냐구요 성령이 고작 다른 종교에도 있는 그런 신비한 것을 체험하고 경험하게 해주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는 줄 아십니까 그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무당들도 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우리에게 경험케 해주기 위해 하느님이 이 땅에 오신거 아니에요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과 당신 나라에만 관심 있으시다니깐요 제발좀 알아 들으세요 그러고도 또 딴데 가갔고 연말에 안수기도 받으러 돌아다니지 마시고 그런 왠수들이 있더래니까. 따라서 신자가 성령을 받았다는 가장 큰 증거는 예언을 하고 방언을 하고 큰 능력을 발휘하고 하는게 아니라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점점 약한자가 되어가고 점점 겸손한 자가 되어가고 점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자신을 잃어 가는자가 되는 거에요 야 나는 자신이 있어 어 나는 하루에 24시간 내내 구원에 대해서 한번도 의심해 본 적이 없어 정신병자입니다 예수님이거나 절대 그럴 수 없어요 우리에겐 대적이 있고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 앞에 낱낱이 우리가 폭로될때마다 점점 나에 더러움을 더 깊이 보게 되요 그래서 죽기 전에 바오로가 야 이 죽음의 몸에서 누가 나를 좀 건져다오 라고 까지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그런데 우리는 점점 믿음이 좋고 능력이 있고 대단한 것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런 사람으로 변해가는 걸 신앙의 깊이라고 이야기를 한다니깐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돌아다니는 사람들 지금 젓병물고 돌아다니는 거에요 절대 그럴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겨자씨 처럼 작은 것으로 들어나야 되고 하느님에 일하심이 그곳에서 강함으로 들어나는 것 그것이 겨자씨 같은 믿음인 거에요 그리고 그 겨자씨 같은 삶을 가능하게 도와주는 분이 바로 성령님인 것입니다

우리는 땅끝까지 가서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거지 어떤 이유로도 다른 이들의 우위에 서서 교만을 떨어서는 안되요 그게 말씀이어도 안되요 오히려 상대방 앞에서 죽어서 작은 겨자씨가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하여튼 내가 제일 작은 자여야 되고 내가 제일 죄인이여야 되요 그게 증인입니다 그게 세례를 주는 거에요 그게 죽는 거잖아요

그래서 초대 교회때 하나니아와 삽피라가 죽은 거에요 아니 재산 다 팔아서 자기꺼 조금 챙기고 교회에다가 헌금한게 뭐 그렇게 대단히 잘못된 거에요 다 내야 되요 꼭 하나니아와 십피라가 이게 전부입니다라고 이야기 했단 말입니다 전부라는건 뭐에요 자랑하고 싶었다는 거에요 나는 전부냈어 전부라고 이야기 한 거에 키포인트에요 교회는 그렇게 나를 들어내고 자랑하는게 아니다 그래서 죽여버린 것입니다 그런 자기 자랑이 들어올 수 없는게 하느님 나라라는 걸 보여주는 거에요 죽은 거에요 근데 내가 성경을 좀 많이 읽었다고 지식이 좀 많다고 다른 이들 앞에서 나를 자랑해요 다른 이들을 폄하합니까 그게 하나니아와 십피라 아닙니까

그러한 복음의 현실이 사도행전에서 성령이 임하시기 전에 열두 사도을 채우는 사건으로 등장하는 거에요 여러분 왜 꼭 열두사도 여야 되죠 그냥 열한명이서 열심히 하면 안되요 언제 예수님이 열두명 꼭 채워서 일하라고 명령을 했나요 왜 나중에 야고보가 죽었을땐 열두명 안채웠을까요 꼭 필요한거라면 그때도 채웠어야지 죽을때 마다 계속 채웠어야지 왜 요 때만 채울까요 성령이 오시기 바로 전에만 왜 열두명으로 채울까요 여러분 가롯 유다 대신에 마티아가 열두사도에 대열에 합류하는 사건은 아주 소중한 복음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 거에요 우선 열둘이란 숫자의 기원이 어디인지 알아야죠 열두지파 열두사도는 야곱의 열두아들에서 기인한 거에요 야곱의 다른 이름은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이 된 거에요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교회를 상징하며 한시적으로 설명용 교보재로 쓰이던 구악의 공동채를 말해요 그래서 요한묵시록에 가면 하느님의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내려오는데 거기에 열두지파 열두사도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거에요 따라서 열둘은 하느님의 교회 즉 완성된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을 지칭하는 숫자인 거에요 그런데 그 열둘중에 하나가 멸망에 자식이였어요 마귀라고 하느님이 이야기 했죠 예수님이 하나가 멸망의 자식이였어요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게 있습니다. 그 멸망의 자식인 유다와 다른 열한 제자들이 뭐가 달라요 유다는 배신을 했다가 예수님의 무죄를 외치면서 남자답게 장렬히 자살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했어요 유다의 배신보다 그게 더 더러운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내죄는 내가 책임진다라고 장렬하게 자살도 안했어요 그인간들은 뭐가 달라요 똑같다라는 것입니다

유다는 멸망의 자식 유다는 나머지 열한 제자들을 포함한 모든 죄인들을 상징하는 자였던 거에요 그 자가 십자가 앞에서 죽는 거에요 그의 죽음과 함께 그 멸망에 자식인 그 죄가 죽음으로 하느님에 교회가 탄생되게 되는 거에요 바로 그러한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의 탄생이 마티아의 선출로 들어나는 것입니다 유다로 대표되는 엣사람 열둘이 죽고 마티아로 대표되는 새로운 열둘이 하느님의 은혜로 탄생이 되는 거에요 그 일이 바로 성령이 임하므로 이루어 질 것이다 를 보여주기 위해 멸망의 자식 유다로 대표되는 열둘이 죽는 사건과 새로운 마티아가 열둘로 들어와서 성령을 받는 일로 묘사가 되어 있는 거에요

성경에 사도행전 122절 보면요 제자들이 열둘을 채워서 하고자 하는 일이 나와요 뭐라 그래요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하자 그래요 열둘을 채워서 그 어구를 좀더 원어에 맞게 변역을 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자라는 뜻이에요 증인이란 말이 거기 똑같이 나온다 말이에요 예수님의 증인이 되자 그러니까 유다로 대표되는 옛사람 열둘은 절대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에, 멸망의 자식 유다속에서 전부다 죽여버리고 유다 대신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수 있는 어떤 자를 세우는 거에요 세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거에요 그런데 그 증인의 삶은 성령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삶인 거에요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 바로 직전에 새로운 열둘이 채워지는 거에요 그리고 거기에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성령이 부어짐으로 해서 교회가 진짜 새 사람 새 교회가 되어서 예수의 증인으로의 삶을 시작하는 거에요 그때 비로소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흩어지는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다락방에서 나오면 안되요 절대 나오지 말라 그랬단 말입니다. 베드로의 말에 의하면 멸망의 자식 유다는 제곳으로 갔다 그러죠 사도행전 125절에 제곳이 뭐에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았다는 거에요 그 말은 이제 맛디아로 대표되는 새로운 공동체 교회 열둘은 어떻게 살게 된다 제곳으로 못가요 띠띠우고 성령이 이끄는 곳으로만 가야되요 그게 어디에요 십자가란 말입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어려분의 뜻대로 잘 되어지는게 맞아요 안되는게 맞아요 그래서 그런 왠수를 만난거에요 그래서 그렇게 사업이 쫄딱 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병이 걸린거에요 이 세상의 힘으로는 절대 너희들 행복할 수 없으니까 너희들 부인하고 세상에 대하여 죽으라고 그게 성도에 올바른 삶인 것입니다 성도들은 모두 예수의 삶 증인의 삶 십자가의 삶으로 밖에서 띠띠운채 끌려가게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유다는 율법으로 상징되었던 구약의 열두 지파를 대표하는 거고 마티아는 성령으로 은혜로 완성이 되는 신약의 교회가 되는 거에요 그렇게 오순절 성령이 오심은... 우리 안에 유다를 죽이고 새로운 마티아로 탄생을 시켜 마티아는 뭐하는 사람.... 예수의 증인으로 사는 사람 마티아로 탄생을 시켜서 예수의 증인으로 세우는 일이에요 그게 성령의 일입니다.

인간은 그렇게 무력해요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과 동거동락을 하면서 숙식을 같이 했던 열두 제자중 하나 유다잖아요 그 열두제자중 하나도.... 하느님의 은혜가 아니면 멸망에 자식으로 쓰러질 수 밖에 없는 거에요 그래서 제자 중에서 배반자가 나온 것입니다 유다가 뭐 그렇게 대단한 잘못을 했어요 딴 사람들은 그거 할 수 없었을까요 아니 그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의 얼굴을 몰랐을까요 왜 성경에 굳이 유다가 예수를 팔았다는 이야기가 나오겠습니까 그러니까 창세기부터 요한묵시록까지를 여러분이 하나로 은혜로 십자가로 딱 뚫고 있지 못하면 그런 얘기들에 대해서 여러분은 대답을 못하는 것입니다 유다가 예수를 팔았다는게 뭘 어떻게 팔았다는 거에요 돈받았다고 아니란 말입니다. 거기에는 전체의 구속사가 작은 그림으로 담겨 있는 거에요 왜 하느님의 백성을 상징하던 아담에게서 범죄가 나오고 왜 하느님의 백성을 상징하던 이스라엘이 그러한 엄청난 하느님의 기적을 경험하고도 광야에서 다 죽어야 했으며 왜 하느님의 백성을 상징하던 열두제자 가운데서 背徒가 나오게 하셨는지 이제 아시겠죠 사도바오로에 의하면 마지막 심판때에도 하느님의 교회에서 배도하던 이들이 먼저 나오고 멸망의 자식이 죽은 뒤에 하느님 나라가 완성된다 그래요

(데살로니카후서 23-4) 3 누가 무슨 수를 쓰든 여러분은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먼저 배교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무법자가 나타나야 합니다. 멸망하게 되어 있는 그자는 4 신이라고 일컬어지는 모든 것과 예배의 대상이 되는 것들에 맞서 자신을 그보다 더 높이 들어 올립니다. 그리하여 신으로 자처하며 하느님의 성전에 자리 잡고 앉습니다.

거기서 멸망의 자식의 예수님이 유다를 가리켜 한 말과 똑같은 단어라 그랬죠 유다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인 거에요 하느님의 나라는 그 어떤 종교적 열심이나 노력등에 의해서 성취되는게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은혜로만 완성이 된다는 걸 그렇게 성경이 창세기부터 묵시록까지에 걸쳐서 반복하여 기록하고 있는 거에요 그 어떤 노력이나 열심과 조건도 전부 필요없다 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으로 태어난 것도 믿는 집안에서 태어난 것도 다 소용없는 거에요 거기서 배도가 일어났단 말입니다 성도는 성령에 의해서만 태어날 수 있다 바로 그 이야기가 첫번째 제자그룹의 대표인 유다 대신 새로운 은혜의 피조물을 상징하고 대표하는 마티아가 채워지는 이야기 속에 함의되어 있는 거에요 그래서 나중에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야고보가 숨졌을 때에는 사도들이 굳이 열둘을 채우지 않는 것입니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였다는 거에요 잘 아시겠죠

거기에 대한 또 다른 예가 성령이 오시기 전에 다락방에서 열심히 기도를 했던 120명의 무리 이야기인 거에요 혹자들은 그러한 제자들의 기도의 행위를 들어서 제자들이 열심히 기도해서 성령이 임했다고 하면서 성령세례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기도 해요 정말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이 오세요 제자들이 기도해서 성령이 임한거 아니에요 성령은 바로 그 날 오순절날 오시기로 이미 구약때부터 아니 창세전부터 계시가 되어 있었어요 성령이 오시기 전에 제자들이 기도를. 한 사건은 오히려 교회의 존재론적 본질에 관한 명시인 거에요 교회는 그 어떤 종교행위나 그 어떤 열심으로도 교회가 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겁니다. 신자의 근거는 신자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부으시는 하느님에게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하느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 전에는 절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당부했던 거에요 다락방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었던 그들이 오순절 성령강림 이전에 사기충천 용기백배하여 그 다락방을 나셨다면 사도행전은 거기서 끝나는 거에요 거기서 나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이 오시기 전에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를 한 사건이나 열두제자를 채우는 사건등을 들어서 그들이 성령이 오시기 전에 이미 교회로서의 모습을 보인 거라느니 아니라느니 그런 논쟁은 절대 무가치한 거에요 성경은 거기에 전혀 관심이 없어요 성도는 이미 창세전에 구원을 받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제자들의 구원의 시점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여러분에게 성경은 성경의 유일한 독자인 교회에게 구원의 진리만을 가르치는데에 목적을 두고 있을 뿐이란 말입니다 성도는 기도를 통하여 성령을 불려내렸다가 다시 내보냈다가 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니에요 성도의 기도는 오히려 하느님 저희들의 힘으로는 절대 증인의 삶을 살수 없습니다 라는 항복 선언이어야 되는 거에요 거기에 성령이 임하자 교회가 되더라라는 그런 교회의 존재론적 본질을 보여주는게 120무리의 기도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하면서도 성령이 오시기 전에는 다락방에서 못나갔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성령은 굳이 오순절날 오셔야 됐는가

출애굽기 가보세요 1911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 달 바로 그날, 그들은 시나이 광야에 이르렀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후 3월 첫째날 시나이산에 도착했어요 거기서 율법을 받습니다. 십계명을 받아요 유대 월력으로 바로 그날이 오순절날이에요 출애굽 이후에 첫번째 오순절이에요 그 첫번째 오순절날 모세가 시나이산에 올라가서 율법을 받는데요 바로 그 시각 시나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어요 인간들이 인생과 역사에 중심에 자신을 올려놓고 하느님은 마치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는 능력이나 힘 정도로 생각하는 아담적 죄에 본질이 낱낱이 폭로되고 있던 거죠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한 신을 만들자 그리고 금송아지를 만들었으니까 거기에 중심은 우리였어요 그게 죄잖아요 하느님 절대 하위에서 살아야 되는 인간이 그걸 타고 올라가서 나를 위해 당신은 나를 도와줘야 돼 이게 죄이니까 그게 금송아지 사건 이죠 금송아진 뭐였어요 풍요의 신이였잖아요 다산의 신 애굽의 풍요의 신 가나안의 풍요의 신 이게 전부 소였단 말이에요 그게 죄란 말이에요 그때 하느님의 율법이 그들에게로 내려가서 그들에게 던져짐으로 심판이 일어나는 거에요 그건 죽을 일이다라를 보여주는 거에요 볼까요

출애굽기 3227-28절 보세요 27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각자 허리에 칼을 차고, 진영의 이 대문에서 저 대문으로 오가면서, 저마다 자기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죽여라.’” 28 레위의 자손들은 모세가 분부한 그대로 하였다. 그날 백성 가운데에서 삼천 명가량이나 쓰러졌다.

율법이 죄에 와서 닿자 3천명이 죽어요 이게 바로 하느님의 은혜를 떠난 모든 인간들의 현실이에요 그래서 하느님은 인간들에게 은혜의 새 언약을 주시는 거에요

에레미아 31장 보세요 31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32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남편이 되어서 손을 끌고 갔는데도 언약을 깨고 금송아지 만들어 내더라는 것입니다) 33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우리는 다 그렇게 죽어야 되는데 ....성령을 하느님이 보내셔서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자로 반드시 만들어 내고야 말겠다라는게 새 언약이에요 그일이 오순절날 일어난 거에요 그리고 그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새 언약이라고 하니까 옛 언약 이후에 나온 싱싱하고 새로운 언약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새 언약은 하느님의 작정속에 들어있던 원래의 계획을 이야기 하는 거에요 그게 새 언약이에요 죄인들은 새 언약, 즉 성령의 강림으로 인해서면 예수님의 증인으로 거듭날 수 있다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서 ....율법 옛 언약 구약이 잠시 몽학 선생으로 등장했던 거에요 바로 이 새 언약의 현실이 사도행전의 오순절날 성취가 되는 거에요

신약의 오순절... 사도행전에 오순절 날에도 똑같이 심판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성령이 임하는데 불의 혀처럼 임한다 그러죠 불은 히브리 사람들에 의해서 항상 심판을 상징하는 언어로 쓰이던 거에요 불 그런데 그 불이 혀처럼 갈라졌다 그래요 그건 성령의 불에 의해서 성령 받은 자와 성령받지 못한 자 즉 신자와 불신자가 갈라짐을 상징하는 거에요 성령에 의해서 어떤 한 무리는 심판을 받게 되고 어떤 한 무리는 살아나는 거에요 자연스럽게 한 무리가 살아나면 그건 한 무리는 심판받는다 뜻이니까

사도행전 2장 보면 3 그리고 불꽃 모양의 혀들이 나타나 갈라지면서 각 사람 위에 내려앉았다. 4 그러자 그들은 모두 성령으로 가득 차, 성령께서 표현의 능력을 주시는 대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12 그들은 모두 놀라워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인가하고 서로 말하였다. 13 그러나 더러는 새 포도주에 취했군.” 하며 비웃었다.

방언으로 말할때에 어떤 이들은 그 말을 하느님의 큰일로 알아 들었다 그러고 어떤 사람들은 이 사람들이 새 술에 취했구나라고 못알아 들었다는게 극명하게 들어납니다 심판이 일어나는 거에요 그렇게 새 언약에 의한 은혜의 새 영이 부어지게 되면 ....똑같이 자기들의 세상적 유익을 위해서 예수를 때려죽인 죄인들이 도륙의 대상이 아닌 구원의 대상이 되는 거에요 그게 새 언약이란 말입니다 신약의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보세요

사도행전 24141 베드로의 말을 받아들인 이들은 세례를 받았다. 그리하여 그날에 신자가 삼천 명가량 늘었다.

구약의 오순절날은 3천이 도륙되어 죽고 신약의 오순절에는 은혜로 3천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느님의 은혜로 여러분이 뭘 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혜로, 율법으로는 다른 말로 인간의 행위나 조건에 의해서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의 앞에서 도륙을 당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하느님은 애초에 당신의 은혜에 의해서만 당신에 백성들을 존재케 하고 살게 하시기로 작정하셨던 거에요 하느님의 백성들은 하느님의 은혜를 의지해서만 다른 말로 하느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서 존재할 때에만... 생존이 가능하고 그 때 가장 행복하다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해 이 역사와 우주와 시간과 공간이 잠시 사용되고 있는 거에요

그렇다면 오순절날 성령 강림과 함께 임했던 방언 사건은 도대체 뭔가 여러분이 확실히 아셔야 할 건 오순절날 터진 방언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이 아니라 외국어에요 포린 랭귀지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적어도 15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각기 자기내 나라 자기 지방의 말로 알아들었다 그러죠 외국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은 다른 나라 말이에요 따라서 성령을 받으면 무조건 방언을 해야 한다 그러고 우리 교회에서는 개도 방언을 한다는둥 이딴 소리하는 사람들은 정말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사도행전의 그 방언사건은 ....은혜의 성령이 오심으로 ..어떤 무리들에게서 흩어졌던 언어가 하나로 통일이 되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에요 하나였던 언어가 최초로 흩어지게 된 사건은 다름 아닌 바벨탑 사건이잖아요 인간들이 자신들의 힘을 의지하여 하늘에 닿으렸던 시도였어요 아담의 죄와 똑같은 거에요 그걸 모형으로 보여준 거에요 그게 바벨탑이에요 죄에요 그게 아담의 죄의 복사판 그일로 하느님은 인간들을 저주하셨고 언어를 흩으셨어요 그러니까 방언은 저주의 표징이였던 거에요 그러니까 오늘날도 여러분 방언하는 사람들을 보면은 아 우리는 저렇게 저주받아서 하느님의 말을 못알아 들을 수 밖에 없었는데 이제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구나 그게 흩어진 언어로 저주의 삶을 살수 밖에 없었던 죄인들에게 은혜의 성령님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로의 회복이 일어난 거에요 그래서 그들이 다 같은 언어로 듣게 된거에요 ...그게 구원이란 말입니다 피조물의 자리를 떠나서 ....하느님의 자리에 오른 죄인들을 ....성령으로 하나가 되게 하셔서 구원해 내시는 일, 그게 성령이 하시는 일이에요 따라서 성령은 우리의 바벨탑을 계속 무너뜨리는 일을 하시지, 여러분의 바벨탑 쌓기를 계속 도와주는 분이 아니란 말입니다

여러분이 바벨탑을 차곡차곡 쌓아서 여러분의 선행이나 여러분의 헌금이나 봉사나 종교행위를 의지하게 하여 여러분이 하느님 저 잘했죠 이 자리로 못가게 만드신다니깐요 오히려 자꾸 여러분의 무력함을 세상과 여러분 자신에게 폭로시켜요 그래서 저는 하느님의 은혜 아니였으면 큰일날뻔 했습니다. 라는 자리로 끌어 내리는 거에요 그게 겨자씨 같은 믿음이라니깐요 이해가 가시는 거에요 역사는 바로 그러한 새 창조를 목적으로 하여 시작이 된 거에요 그렇게 오순절날 임하신 은혜의 성령으로... 하느님에 교회가 탄생이 되는 은혜의 나라 이야기가 성경 전체의 주제인 거에요

창세기 12땅은 아직 꼴을 갖추지 못하고 비어 있었는데,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

수면(물위) 뭐에요 죄잖아요 항상 성경에서 바다 물은 죄였으니까 죄 위에 ....혼돈과 공허 엠프티 위에 ....하느님의 영이 운행하시자 ...빛이 있으라 하시면서 창조가 와르르 일어났잖아요 그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읽은 그 오순절 성령 강림사건에서 새 창조의 사건으로 확 들어나버리는 거에요 그러니까 첫창조는 이 새창조의 모형이였던 거에요

그리고 출애굽 홍해사건에서 그 바다위에 바람이 밤새도록 불었다 그러죠 르와흐 바람 성령이에요 그러자 그 물이 저주의 물이 쪼개지면서..... 하느님의 백성들이 거기서 살아 올라오는 구원의 이야기 그 이야기가 오순절에서 한번 더 보여지는 거에요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 하느님의 영이 임했으면 좋겠다....라고 기도했던 모세의 그 예언적 기도가 바로 오순절날 성취가 되는 거고,

요엘서 3장에 1 그런 다음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그리하여 너희 아들딸들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며 젊은이들은 환시를 보리라. 고 그 이야기가 바로 오순절날 성취가 된 거고, 또 하느님의 영광이 성전에서 떠났다가 다시 새로운 성전으로 하느님의 영광이 돌아온 그 에스겔서의 사건 또한 오순절 사건의 모형으로 나타난거고 왜 멸망의 자식이 유다가 죽고 ....하느님의 영광이 율법에서 떠나갔다가 ,,,,다시 은혜의 십자가로 돌아오는 사건이니까 그리고 성령으로 잉태되셔서 성령을 받으시고 성령의 사람으로 성령에게 이끌림을 받는 삶만을 살아내시다가 결국 완전한 순종의 절정 그 십자가를 지신 예수의 삶이. 바로 오순절 성령사건의 모형이였던 거에요 그래서 예수님은 옛 성전을 헐어라 내가 사흘만에 새 성전을 새우리라 라고 말씀하신 거에요 율법으로는 인간의 노력과 지혜와 힘으로는 절대 예수의 증인의 삶 자기 부인의 삶을 살아낼 수 없어요 그러니까 율법의 그 성전 첫성전 헐어버려라 새성전 내가 새운다 그리고 우리를 성전으로 만들어 주시고 우리 안에 성령이 오시는 거에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기인한 성령의 임재를 통해서만 성도는 하느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 완성될 수 있어요 바로 그 복음의 이야기가 오순절날 성령의 강림으로 현실이 되어 나타난 거에요 이게 성경입니다

성경이 어려워요 성령세례 뭔지 아시겠죠! 성령세례는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이 단 한번 받게 되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오순절파의 주장처럼 오순절 이후에도 사마리아에서 에페소에서 고넬리오의 집에서 성령이 눈에 보이게 임한것을 예로 들어서 오늘날도 성령이 임하면은 그런 소란이 일어나야 된다라는 이야기하는건 정말 무식한 거에요 그건요 오순절날 임했던 교회에게 임했던 그 사건이.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에서도 진짜 일어난다라는걸.... 교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딱 고자리에서만 눈에 보이게 성령이 임했던 거에요 그걸 같고 오늘날에도 그렇게 임해야 된다라고 우기는게 얼마나 무식한 짓이에요

여러분 요한묵시록 11장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애굽에서도 섰고 소돔에서도 섰다라고 그러죠 그게 무슨 얘깁니까 언제 거기 섰어요 예수님의 십자가는... 2천년전 골고다에서 딱 한번 섰는데 그 십자가가 모든 역사를 아우르며 적용이 된 거죠 그래서 우리가 십자가로 말미암아 구원 받은거 아니에요 우리 안에 십자가가 선거 아닙니까 그것처럼 전 역사를 아우르면서.... 이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인한 교회의 탄생이 이렇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일어날 것이다를 보여주는게 거기에서 눈에 보이게 성령이 임한 고 사건이란 말입니다 그걸 갖고 오늘날도 성령은 이렇게 소란스럽고 수선스럽게 임해야 된다라는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죠 아닌거에요 여러분 그런데 속지 마세요

그러면 성령 충만은 뭐에요

에페소서 123절 보세요 23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든 면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로 충만해 있습니다.

그가 누구에요 예수 ...그런데 그에 충만이라는건 뭐죠 그리스도에 충만 그리스도는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니까 자 성령충만이 뭐라는 거에요.... 교회라는 거에요 교회는 성령 충만으로 비로소 존재할 수 있어요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교회는 비로소 탄생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교회는 성도는 전부 성령충만에 의해 탄생이 되고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똑같은 삶을 살게 되는자로 지어져 가는 길에 성숙되는 과정속에서 보여지는 현상들을 성령충만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무슨 능력이 막 나타나고 병자가 일어나고 이게 성령충만이 아니라 교회 자체가 성령 충만이라 말입니다 그래서 성령충만하라 그러면서 술취하지 말라라고 이야기 하는게 뭐냐면은 술에 취하면 술에 이끌림을 당하는 것처럼 성령 충만한 자는 성령에 의해서 탄생되고 성령에 의해서 이끌려간다라는 의미에서 술취하지 말라를 성령충만과 같이 올려놓고 설명을 한 거에요 그리고 항상 성령충만을 이야기 할때는 복음 전파가 같이 붙어 있어요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분의 그 십자가가 ...우리의 입과 우리의 삶 속에서 들어나게 되면서 그 복음이 편만하게 전파되고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어지는 그 모든 걸 성령 충만이라고 하는 거에요 여러분은 성령을 받으신 이후에도 하느님 절대 의존적 존재로 고난을 통과하면서 계속 자라셔야 되요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셨지만 루가복음에 보면 그분이 지혜와 키가 자랐다 그러죠 예수님이 언제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걸 아셨을까요 태어나자 마자 그렇지 않아요 적어도 12살 이전이라는건 확실하죠 그러나 예수님의 지혜와 키가 자라갔어요 예수님도 말씀을 공부하면서 아 내가 하느님의 아들이구나를 알았단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임하여 교회로 탄생이 된 여러분도 자라가야 되요 뭘 통해 말씀을 통해서...그 말씀을 통해 나중에 아 내가 진짜 하느님의 자녀구나를 깨닫게 되는 거에요 그걸 구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을 해주기 위해 성령이 오신거에요 그런데도 아직 성령의 도움을 받아 벌벌 떨고 싶으세요 이상한 춤추고 싶으세요 은이빨 금니빨로 바꾸고 싶습니까 그런 유치한데 속지마세요 성령은 그런거 하러 오신분 아니였어요. 성령은 우리를 하느님의 백성으로 완성하러 오신 것입니다 그 성령이 여러분을 이끌고 계시는 한..... 여러분은 여러분의 뜻대로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사는 이 삶이 맞는 거에요 힘들지만 잘 이겨내시고 열심히 가십시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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