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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ㅣ체험
가톨릭교회중심교리(26-4 박해 후기의 선교 활동)

133158 김중애 [ji5321] 스크랩 2019-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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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한국 순교자들의 선교활동
26-4 박해 후기의 선교 활동
조선교구의 선교사 추세 -
교구 설정으로 인하여 임명된
교구장 부르기에르 주교는
끝내 입국을 못하고 남 만주땅에서
선종하셨으며, 1835년 초에
모방신부 입국, 1837년 2 대
교구장 엥베르 주교의 입국으로
  한국교회는 교회법상 자치권이
성직자들에 의해 정상체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839년 세 성직자의
순교로 다시 6년 간 평신도
지도자들의 활동으로 이어졌고
 1845년 부제 김대건의 귀국,
서품, 그리고 3대 교구장의
입국으로 다시 사목체계가
바뀌었습니다. 
  선교사들의 선교활동 -
조선교회에서 활동한
선교사들은 소박한 선교활동을
임기응변으로 하였습니다. 
 사회생활에서 이들은 제약을
 받고 있었으므로 사제를
만나고 싶어하는 수많은
교우들의 호소에 일정한
 거주지 없이 60여 년을 계속
 여행하며 사목해야 하는
 실정이었습니다. 
 마침내 1836년부터
1942년 사이에 126명의
선교사가 파견되었으며 
 그 중 12명은 순교하였습니다.
  그간 이 선교사들은 다각도로
 한국교회의 선교에 공을
들였는데 특기할 만한 것을
정리하여 본다면, 
 방인 사제 양성:
1890년 민 대주교 시대의
교세는 서울, 인천, 원산, 
 부산등에서는 그 주변
 10리 안의 선교활동이
보장되었었고 1891년에 용산에
대신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신자들의 전례 생활:
지식층보다는 서민층에
 섞이면서 기초교리들의 
 교육과 전례의 의미를
주력하여 교육하였습니다. 
 회장중심의 공소체제 생활:
선교사들의 부족으로
정착이 불가능하여 여행하는
 사목활동이었습니다. 
 그래서 각 공동체에 신자들의
영신생활을 주도해 나갈
책임자를 공소 회장으로
임명하여 기초교리교육,
신심생활유지 등을 맡겼습니다.
  여성활동의 지위와 향상:
19세기 말에 샬트르 바오로
수녀들이 입국하여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에 주력하였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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