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악, 윤리적 악, 죄, 원죄, 가해 연중 제12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가연중12주일> [1250_마지막 아담] 1181_새아담 792_ free_w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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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20 ㅣ No.2068

[내용 보강 일자: 2023년 6월 22일] 

게시자 주 1: (1) 오늘의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게시자 주 2 다음에 있습니다.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41.htm <----- 필히 시청 요망

 

"KF94 마스크 미착용, 착용 시의 커다란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실험 동영상들 - 오미크론 출현 이전인 2021년 10월 14일에 확보한 자료들임" 제목의 졸글에 추가된 중요한 방역 수칙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2: [첫 공지 일자: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

(1) [PC 혹은 노트북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바로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New American Bible (NAB)에서 발췌된 오늘의 영어 전례성경 본문(즉,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들을, 화답송 등과 함께, 청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제(2)항 으로 이동하여 안내대로 하십시오.][원 출처: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http://ch.catholic.or.kr/pundang/4/cbs/Cycle_A/Ordinary/a_ot_12_mp3 <----- 여기를 클릭하라  


[스마트폰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i) 위의 주소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가만히 있으면 가지게 되는 작은 메뉴판 한 개에서, 다른 브라우저로 열기를 선택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ii) 사용 중인 스마트폰에 이미 열려있는 본글의 브라우저를 찾아서 거기로 이동한 후에,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있는 주소를 누르면,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06년 12월 10일(다해 대림 제2주일)부터 지금까지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안내된 English Bible Study 까페[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영어 성경공부 자료실]에서 필자가 지속적으로 전달 제공해온 자료이므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1)항에서 듣게 되는 NAB에서 발췌된 영어 전례성경 본문들 등을 또한 눈으로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lub.catholic.or.kr/community/asp/club/attboard/read.asp?type=attboard&schcode=pundang4biblestudy&seq=8&id=1270 <----- 또한 필독 권고   

 

이것도 또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바로 위에 제(1)항제(2)항 제공의 정보들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함께 활용하면, 영어 듣기 및 읽기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 끝) 

[이상, 2023년 6월 22일자 내용 보강 끝]    

 

 

가해 연중 제12주일 온라인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청취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가해연중제12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하십시오

가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 II, 가톨릭출판사, 2008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가연중12주일> 가해 연중 제12주일  

 

예레미야 20,10-13; 마태오 복음서 10,26-33; 로마 5,12-15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a_ot_12.htm <----- 전문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The first reading from the prophet Jeremiah and the passage from the Gospel of St. Matthew emphasize two characteristic aspects of Christian life: on the one hand, persecutions and difficulties and, on the other, trust in God who allays all fear. "I hear so many disparaging me… But Yahweh is at my side, a mighty hero," confesses Jeremiah. "Do not be afraid of those who kill the body but cannot kill the soul… So there is no need to be afraid; you are worth more than hundreds of sparrows," Jesus exhorts his disciples. Why should we not fear? Because, in the words of the second reading: "the free gift is not like the effect of one man’s sin." There is no comparison between the power of persecutors and the power of God.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예레미야 예언서로부터 발췌된 제1독서 및 마태오 복믕서로부터 발췌된 단락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있어, 다음과 같은, 두 특징적 양상들을 강조합니다: 한편으로, 박해와 어려움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모든 두려움을 가라앉히시는 분이신 하느님 쪽으로 신뢰.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제 곁에 계시니 저를 박해하는 자들이 비틀거리고 우세하지 못하리라"라고 예레미야는 고백합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라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훈계하십니다. 우리는 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는지요? 왜냐하면, 제2독서의 말씀이 다음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 선물의 경우도 그 한 사람이 죄를 지은 경우와 다릅니다." 거기에는[즉, 이 말씀에는] 박해자들의 힘과 하느님의 힘 사이에 어떠한 대조도 있지 않습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A. 오늘의 제1독서, 복음 말씀, 그리고 제2독서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ot_12.htm  

 

B.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 II, 제79-86쪽 

 

입문:

 

 

오늘의 제1독서:

 

 

오늘의 복음 말씀:

 

게시자 주: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연중 시기에는 주일 미사 중의 복음 말씀은 마태오 복음서에서 발췌되어 봉독됩니다. 

 

오늘의 제2독서:

 

주제: [아담의 원죄와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의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

 

게시자 주: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연중 제9주일부터 제24주일까지 주일 미사 중의 제2독서는 로마서에서 발췌되어 봉독됩니다.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D. "원죄"(原罪, original sin)에 대하여 

 

D-1. Necessary Preliminary Concepts (필수 예비 개념들)

 

[내용 추가 일자: 2020년 6월 28일]

게시자 주: 그리스도교 전통적 교의 신학, 성서 신학 및 윤리 신학에 있어 가장 근본 개념들, 즉, 공리(axioms)들 중의 하나인 "악"(evil)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우선적으로, 소위 말하는, 이원론적 사고에 빠지지 않기 위하여,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다음으로, 어떤 대상(objects)들에 있을 수 있는 악(evil)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대상들 사이에 있는 질서(orders)들에 있을 수 있는 악(evils)들을 말하는, 더 구체적으로, 하느님과 나와 이웃 사이에 있는 절서들에 있을 수 있는 악(evils)들을 말하는, "죄"(sin)라는 한 개의 속적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들에는, 말단(terminals)들인 대상(objects)들 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들 사이의 질서(orders)들, 그리고 말단(terminals)들로서의 이들 질서들 사이의 질서들, 등(etc.)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죄는 항상 악이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명확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상, 2020년 6월 28일자 내용 추가 끝]

 

D-1-1.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85.htm <----- 전문 필독 권고

[제목: 악(惡, evil)의 정의(definition) 외; 게시일자: 2011-07-18]

(발췌 시작)

2.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 에 실린 "악(惡, evil)"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입니다. 이 설명에서, 첫 번째 문장이 해당 용어의 정의(definition)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e/e194.htm 


EVIL


The privation of a good that should be present. It is the lack of a good that essentially belongs to a nature; the absence of a good that is natural and due to a being. Evil is therefore the absence of what ought to be there.


(졸번역)
악(惡, EVIL)


현존하여야만 하는 어떤 선()(a good)의 결여(privation)를 말한다. 이것은 어떤 본성에 본질적으로 속하는 어떤 선(善)결핍(lack)을 말하며, 그리고 자연적이며 그리고 어떤 있음(a being)에 기인하는(due to) 어떤 선의 부재(absence)를 말한다. 그러므로 악(惡, evil)은 거기에 마땅히 있어야만 하는 바의 부재를 말한다.


게시자 주: 따라서 "죄(sins)들은 모두가 악(惡, evil)"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10월 28일]
그러나, 참인 이 명제의 역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일반적으로 악(evil)이 항상 죄(sin)인 것은 아닙니다.

다른 한편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 꼭 필독 권고

"윤리적 악(moral evil)은 항상 죄(sin)임"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8월 5일]
게시자 주: 다른 한편으로, 위에 주어진 "악(惡, evil)"정의(definition)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이원론자들이 있을 수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도록 하십시오.
[이상, 내용 추가 끝].

----------

3.
그러면, 선(善, good)정의(definition)는 무엇일까요?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 에 실린 "선(善, good)"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설명에서, 첫 번째 문장이 해당 용어의 정의(definition)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g/g091.htm 


GOOD


In general, whatever is suitable or befitting someone or something. Practically, however, it is that which all things tend toward or desire. The good is the desirable, and therefore the object of the natural (or supernatural) needs or tendencies of a being.


(졸번역)

선(善, GOOD)


일반적으로, 어떤 자 혹은 어떤 사물에 적합하거나 혹은 적절한 것 무엇이든지를 말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모든 사물들이 향하는 경향이 있거나(tend) 혹은 욕망하는(desire) 바 바로 그것을 말한다. 선한 사물(善, the good)들은 바람직한 것(the desirable)들을 말하며, 따라서 어떤 있음(a being)의 자연적 (혹은 초자연적) 필요한 것(needs)들의 혹은 성향들의 대상(object)을 말한다.  

(이상, 발췌 끝)

 

D-1-2.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84.htm <----- 전문 필독 권고

[제목: 윤리적 악(moral evil)은 죄이다; 2012-10-27]

(발췌 시작)

1. 들어가면서
일반적으로, 죄(sin)는 악(evil)이나, 그러나 그 역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음의 가르침들에 따라, "윤리적 악(moral evil)"은 입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9월 22일]
그리고 혹시하여 말씀드립니다만, 위의 첫 번째 문장은 다음의 각 문장과 논리적으로 동치입니다(logically equivalent):

 

(i) 일반적으로, 악은 죄를 포함하는 더 큰 개념이나, 그러나 그 역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ii) 일반적으로, 죄를 지은 자는 악한(나쁜) 자이나, 그러나 악한(나쁜) 자가 항상 죄를 지은 자는 아닙니다 


(iii) 일반적으로, 죄를 지은 자는 악한(나쁜) 자들 중에 포함되나, 그러나 악한(나쁜) 자가 항상 죄를 지은 자들 중에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iv) 일반적으로, 오로지 악한(나쁜) 자들 중에서 죄를 지은 자가 있을 수 있으나, 그러나 그 역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v) 일반적으로, 오로지 악 중에서 죄가 있을 수 있으나, 그러나 그 역이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이번 글에서는 이에 대하여 자세하게 들여다 보도록 하겠습니다.

 

게시자 주: "윤리(倫理, morality)"정의(definition)는 아래의 제3-1항에 주어져 있는데, 이 정의(definition)를 먼저 읽도록 하십시오. 

 

[...]

 

3-1.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morality(倫理, 윤리)"에 대한 설명입니다.

게시자 주: 아래의 설명에서 파란 색칠을 한 첫 번째 문장이, "개인 윤리", "직업 윤리", "사회 윤리", "국가 윤리", "그리스도교 윤리" 등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대단히 추상적인 개념인, "윤리(倫理, morality)" 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m/m297.htm
(발췌 시작)
MORALITY

Relation between a human act and the final destiny of a human being. It is the norm of behavior that flows from each person's ultimate end, which is the possession of God in the beatific vision.

 

Depending on what is conceived to be this final destiny, morality will be determined accordingly. Since Catholic Christianity believes that this destiny is heaven, a human act is either good or bad according as it leads to or detracts a person from his or her heavenly goal. The moral norm of human acts, therefore, consists in their aptitude at leading one to that end. Such an aptitude cannot be created by the human will, nor is it entirely at the disposition of some arbitrary divine freedom. It flows necessarily from the nature of God, from the human nature elevated by grace, and from the nature of the acts themselves. Hence the norm or morality contains precepts that transcend every legislative will. The acts related to them are said to have an intrinsic (essential) morality of good or evil. Extrinsic morality, on the other hand, is external to this built-in relationship between action and purpose; they depend exclusively on the free dictate of the legislator. 

윤리(倫理)/윤리성(morality, 도덕)

인간의 행위(a human act)와 인간(a human being)의 최종 운명(the final destiny) 사이에 있는 관계(relation)를 말합니다.
이것은, 지복직관 안에서 하느님의 소유라는 각 인격의 궁극적 끝/목적지(ultimate end)로부터 흘러나오는 처신의 기준(the norm of behavior)입니다.

바로 이 최종 운명이라고 생각되는 바(what)에 의존하여, 윤리/윤리성(morality)은 그에 적절하게 결정될 것입니다. 가톨릭 그리스도교는 바로 이 운명이 하늘(heaven, 천당)(*)이라고 믿기에(believes), 한 인간의 행위는 이 행위가 한 인격을 그자의 혹은 그녀의 천상에 있는 목표(heavenly goal)로 이르게 하거나 혹은 이 목표로부터 딴 데로 돌림에 따라서 선하거나(good) 혹은 악하거나/나쁘거나(bad) 둘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행위들의 윤리적 기준/표준(the moral norm of human acts)(**)은 바로 그러한 목적으로 누구든지를 이르게 함에 있어 그들의 일반적 적합성 혹은 적절성(aptitude)(***)을 주된 부분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적합성 혹은 적절성은 인간의 의지에 의하여 창조될 수 없으며, 또한 그것은 어떤 임의적인 하느님의 자유로움이라는 성향(disposition)에 전적으로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본성으로부터, 은총에 의하여 고양된(elevated)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그리고 행위들 그 자체들로부터, 필연적으로 뒤따릅니다. 따라서 이 기준/표준(norm) 혹은 윤리/윤리성(morality)은 모든 입법 의지(legislative will)를 능가하는(transcend) 규범(precepts)들을 포함합니다. 이 규범들에 관련된 행위들은 선(good) 혹은 악(evil)이라는 어떤 내재적 (본질적) 윤리/윤리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집니다. 다른 한편으로, 외재적 윤리/윤리성(external morality)은 행동(action)과 목적(purpose) 사이에 있는 바로 이러한 내장된(built-in) 관계에 대하여 외재적이며(is external to), 그리고 그들은 입법자의 자유로운 권위있는 규정(規程, dictate)에 독점적으로(exclusively) 달려있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6년 5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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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번역 오류] [영어로 "the kingdom of heaven" 으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천국(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 이, [영어로 "heaven(s)" 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의]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천당"의 옛말이라는 주장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 두 차용 번역 용어들은 16-17세기에 중국에 파견되었던 예수회 소속 선교사 신부님들에 의하여, 예수 재림의 날까지 결코 동일하지 않은 두 개의 개념들을 나타내기 위하여, 처음으로 차용(借用)되어 사용되기 시작한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이기 때문이다.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이 사실을 처음으로 구체적으로 확인한 시점은 지난 2015년 8월 중순이었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보고의 글은 다음에 있으니, 꼭 읽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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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내용 추가 끝]


3-2.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moral good(윤리적 선)"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m/m285.htm
(발췌 시작)
MORAL GOOD

That which ennobles human nature because it conforms to what a person should be. Applied to human actions, it is that quality by which they lead human beings to the eternal destiny for which they were made and, already on earth, give a person the true happiness to which everyone aspires.

 

윤리적 선(moral good)

인간의 본성을 고상하게 하는(ennobles) 바로 그것을 말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한 인격이 마땅히 지녀야만 하는 바(what a person should be)에 합치하기(conforms to) 때문입니다. 인간의 행동(human actions)들에 적용되면, 이 선은, 그것에 의하여 인간의 행동들이 영원한 운명(eternal destiny) 쪽으로 인간들을 인도하는(lead to) 바로 그 자질(quality)을 말하는데, 여기서 인간의 행동들은 이 운명을 위하여 마련되었으며 그리고, 이미 지상에서, 한 인격(a person)에게, 그것 쪽으로 모든 이가 열망하는, 참 행복을 제공합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3.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moral evil(윤리적 악)"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m/m282.htm

(발췌 시작)
MORAL EVIL

Sin, as distinct from physical evil, which is some form of suffering. It is evil because it is contrary to the will of God; it is moral evil because it is caused by a free created will acting against the law of God, who does not want moral evil as an end or as a means. The Council of Trent condemned the contrary doctrine (Denzinger 816). God simply permits moral evil because of consideration of human freedom, and because he has the wisdom and power to cause good to arise from evil. In the end, moral evil will serve the supreme purpose of the universe, the glorification of God, since it reveals his mercy in forgiving and his justice in punishing.

 

윤리적 악(moral evil)

고통받음(suffering)의 어떠한 형태를 말하는,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 물리적 악)(*)으로부터 구분되는 것으로서, 죄(sin)를 말합니다. 이 죄악(evil)인데 왜냐하면 하느님의 의지에 상반되기 때문이며, 그리고 이 죄는 윤리적 악(moral evil)인데 왜냐하면 이것이 어떤 목적(an end) 혹은 어떤 수단(a means)으로서 윤리적 악을 원치 않으시는 하느님의 법(the law of God, 신법)에 반하여 행동하는 한 개의 자유로운 창조된 의지(a free created will)에 의하여 야기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55항과 제1761항에 주어진, 위의 제2-1항에서 발췌 인용되고 있는, 윤리적 악(moral evil)의 정의(definition)를 필히 참조하라]. 트리엔트 공의회(The Council of Trent)는 [이에] 상반되는 주장을 단죄하였습니다(condemned)(Denzinger 816).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자유(human freedom)에 대한 고려 때문에, 그리고 악(evil)으로부터 선(good)이 일어나게 하는 지혜와 힘을 당신께서 가지고 계시기에, 윤리적 악을 단체적으로(simply) 허락하십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11항과 제322항). 종말에서(in the end), 윤리적 악은, 하느님을 찬미함/찬양함(the glorification of God)이라는, 우주의 지고한 목표에 이바지할(serve) 것인데, 왜냐하면 용서함에 있어 당신의 자비(mercy)를 그리고 벌함에 있어 당신의 의로움(justice)을 바로 이 악이 명백하게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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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형이하학적 악(physical evil, 물리적 악)"의 정의(definition)는 아래의 제5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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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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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3년 9월 12일]

3-4.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good works(선행들)" 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첫 번째 문장이 이 용어에 대한 정의(definition) 입니다:

 

출처: http://therealpresence.org/dictionary/g/g096.htm

(발췌 시작)
GOOD WORKS.

 

Morally good acts that, when performed in the state of grace, merit supernatural reward. The term became highly controverted in Reformation times, when the leaders of Protestantism, notably Martin Luther (1483-1546), claimed that faith alone, and not good works, justifies. Implicit in the Catholic doctrine on good works is the belief that man’s nature has not been totally depraved by reason of Adam’s fall. Man is able freely to co-operate with divine grace to perform good works. His liberty is not totally enslaved by sin.

 

선행들 (good works)

 

윤리적으로 선한 행위(morally good acts)들(*)을 말하는데, 이들은 은총의 지위에서 수행될 때에 초자연적 보상/상급(reward)을 공로로 받을 만합니다(merit). 이 용어는, 프로테스탄트주의(Protestantism)의 지도자들이, 특히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년)가, 선행들이 아니라, 믿음만(faith alone)이 [하느님께서] 사람을 용서하고 받아들인다(jsutifies)라고 주장하였던, 개혁 시기(Reformation times)에 있어 몹시 논쟁하게(controverted) 되었습니다. 선행들에 대한 가톨릭 교리(Catholic doctrine)에 있어 함축적인(implicit) 것은 사람의 본성이 아담의 타락이라는 이유 때문에 전적으로 타락되지 않았다믿음(belief)입니다. 사람은 선행들을 수행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divine grace)과 자유롭게 상호 협조할 능력이 있습니다. 그의 자유(liberty)는 죄에 전적으로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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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인간의 행위(human act)" 라는 대단히 중요한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 용어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글 중의 게시자 주 1-1에 있으니 필독하라:
[이상, 2014년 10월 26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발췌 끝)

 

D-2. Definition of Original Sin (원죄의 정의) 외

 

D-2-1.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41.htm <----- 전문 필독 권고

[제목: 죄의 정의, 원죄, 성령을 거스르는 죄 등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1-12-05]

(발췌 시작)


다음은, St. Joseph 판 New American Bible(NAB)의 부록인, Bible Ditionary에 주어진 "sin(죄)"에 대한 설명입니다:

(발췌 시작)
SIN. In the Old Testament sin is not so much a wrong action in one's conscience as something which disrupts the order of the world wished by God, and particularly the covenant fixed by the law. Thus the Israelite did not search himself for deep causes or establish its relationship with original sin; it is necessary to wait for the book of Wisdom to find such an allusion (2, 24). The New Testament describes sin as relating to original sin and tells of the universal sorrow because of sin (Rom 1-5) rased by the Redemption (Rom 5-8). It describes responsibility for it. This conception of sin thus became linked with the ideas of faith and love which gave life to Christians (Rom 13, 8ff; 1 Cor 5, 9; 13, 4ff).

죄(SIN). 구약 성경에 있어 죄는, 하느님에 의하여 바라게 되는 세상의 질서(순서, order)를, 그리고 특히 율법에 의하여 정해진 계약을, 파열시키는(disrupts) 그 무엇으로서, 우리의 양심(one's conscience) 에 있어 어떤 잘못된 행위 정도가 아닙니다(is not so much). 따라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깊은 원인을 스스로 찾거나 혹은 원죄(original sin)와 그것의 관계를 확립하지 않았으며, 그리하여 그러한 어떤 암시를 발견하기 위하여 (지혜 2,24) 지혜서를 기다리는 것이 필요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원죄에 관련되는 것으로서 설명하며 그리고 속량(Redemption)에 의하여 지워지는 (로마 5-8) 죄로 인한(because of) 보편적 후회/뉘우침(the universal sorrow)에 대하여 말합니다 (로마 1-5). 이것은 이에 대한 책임을 설명합니다. 따라서 죄에 대한 이러한 개념 형성(conception)은, 그리스도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었던, 믿음(faith, 신덕)과 사랑(love, 애덕)의 개념(ideas)들과 관련지어지게 되었습니다 (로마 13, 8 및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 1코린토 5,9; 13,4 및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12년 12월 13일]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sin(죄)"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s/s331.htm 
(발췌 시작)
SIN

"A word, deed or desire in opposition to the eternal law" (St. Augustine). Sin is a deliberate transgression of a law of God, which identifies the four essentials of every sin. A law is involved, implying that there are physical laws that operate with necessity, and moral laws that can be disregarded by human beings. God is offended, so that the divine dimension is never absent from any sin. Sin is a transgression, since Catholicism holds that grace is resistible and the divine will can be disobeyed. And the transgression is deliberate, which means that a sin is committed whenever a person knows that something is contrary to the law of God and then freely does the action anyway. (Etym. Old English synn, syn, sin; Old High German sunta, suntea, perhaps to Latin sons, guilty.)

죄(sin)

"영원한 법(the eternal Law)(*)에 반하는 어떤 말(word), 행위(deed) 혹은 욕망(desire)"을 말합니다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죄는 하느님의 법에 대한 어떤 고의적 위반/침범(a deliberate transgression)인데, 이것은 모든 죄에 있어서의 네 개의 본질적 요소들을 식별합니다. 어떤 법(a law)이 개입되는데, 이것은 필연적으로 작동하는 형이하학적 법(physical laws, 물리 법칙)들이 있음과, 그리고 인간들에 의하여 무시될(disregarded) 수 있는 윤리법(moral laws)들이 있음을 뜻합니다. 하느님께서 침범을 당하시며(is offended), 그리하여 그 결과 어느 죄로부터도 하느님의 양상(樣相)(divine dimension)은 결코 결여되지 않습니다. 죄는 어떤 침범/위반인데, 왜냐하면 가톨릭 신앙은 은총이 저항을 받을 수 있으며(resistible) 그리고 하느님의 의지는 불순종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hold)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침범은 고의적인데, 이것은 한 인격(a person)이 어떤 것(something)이 하느님의 법에 상반되는 것을 알면서 게다가(and then) 어떤 식으로든 그 행동을 자유롭게 행할 때에는 언제든지 한 개의 죄가 범해짐을 뜻합니다. [어원. Old English synn, syn, sin; Old High German sunta, suntea, perhaps to Latin sons, guil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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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eternal law(영원한 법)"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글의 제2-2항에 주어져 있으니 또한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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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1-1. 위의 질문은,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나해 연중 제10주일 복음 말씀(마르코 복음서 3,20-35)제28-29절에 대한 질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하여 고찰하기 전에, 이 질문 중에 등장하거나 직결되어 있는, 특정한 신학적 개념들을 표현하는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들을 이어지는 제1항의 나머지 부분에서 우선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CCCC 391. 하느님의 자비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뜻합니까?
CCC 1846-1848, 1870

하느님의 자비(mercy)를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잘못들을 시인하고 우리의 죄들에 대하여 회개하는 것을 뜻합니다(implique). 하느님 스스로 당신의 거룩하신 말씀과 당신의 성령으로써 우리의 죄들에 대하여 털어놓게 하시며(lays bare) 그리하여 양심의 진실성(truth of conscience)과 용서의 가망성(hope of forgiveness)을 우리에게 제공하십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heart_c1846.htm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ot_9_c184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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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CC 392. 무엇이 죄(sin)입니까?
CCC 1849-1851, 1871-1872

“영원한 법(eternal law)에 반하는 어떤 말(a word), 행위(an act), 혹은 욕망(a desire)”이 죄입니다(성 아우구스티노). 죄(sin)는 하느님의 사랑(love)(*)에 불순종하여 하느님께 맞서는 거스르는 행위(offense)입니다. 죄는 인간의 본성을 해치며 인간의 연대성(human solidarity)을 손상시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수난(passion)에서 죄의 심각성을 완전히 드러내셨으며 그리고 당신의 자비로써 죄를 이기셨습니다(overcame)(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heart_c1849.htm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ot_9_c1849.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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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하느님의 사랑"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의 글에 있으니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86.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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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성경공부 해설서의 가해 연중 제12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에서 발췌

CCCC 393. 다양한 죄들이 있는지요?
CCC 1852-1853, 1873

많은 종류의 죄들이 있습니다. 죄들은 그 대상(object)에 따라 아니면 그들이 어기는(violate) 덕(virtues)들 혹은 계명(commandments)들에 따라 구분될 수 있습니다. 죄들은 하느님, 이웃, 혹은 죄를 범하는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죄들은 생각의 죄들, 말의 죄들, 행위의 죄들, 혹은 태만(omission)의 죄들로 또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엮은이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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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CC 394. 죄들은 그 심각함에 따라 어떻게 구분되는지요?
CCC 1854

대죄(mortal sin, 죽을 죄, 즉 그냥 놔두면 죽음을 초래하는 죄)와 소죄(venial sin, 가벼운 죄) 사이에 구분이 있게 됩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2_c185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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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성경공부 해설서의 가해 연중 제13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에서 발췌

CCCC 395. 사람이 대죄를 범하는 경우는 언제입니까?
CCC 1855-1861, 1874

사람이 대죄(mortal sin)를 범하는 경우는, 중대한 사안(grave matter), 충분한 인지(full knowledge), 그리고 의지가 개입된 동의(deliberate consent), 이들 세 가지 요소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을 때입니다. 대죄는 우리 안에 있는 애덕(charity)을 파괴하고, 우리로부터 성화은총(sanctifying grace)을 빼앗으며, 그리고, 만약에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지옥(hell)이라는 영원한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대죄는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세례성사와 고해성사를 통하여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3_c185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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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CC 396. 언제 사람이 소죄(venial sin)를 짓게 되는지요?
CCC 1862-1864, 1875

사람이, 대죄와는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소죄를 범하는 경우는, 개입된 사안이 덜 심각하거나, 심지어 그것이 중대하다 하더라도, 충분한 인지 혹은 완전한 동의가 결여되어 있을 때입니다. 소죄는 하느님과의 계약을 깨뜨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소죄는 애덕(charity)을 약화시키며 세상 재화(created goods, 창조된 재화)들에 대한 질서가 결핍된 애착(disordered affection)을 드러냅니다. 소죄는 덕(virtues)들의 실천과 윤리적 선(good)의 실행에 있어 영혼의 전진(progress)을 방해합니다. 소죄는 정화하는 잠벌(暫罰, poena temporalis, temporal punishment,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 일시적인 형벌)을 마땅히 받을 만합니다(merits)(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3_c1862.htm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이상 발췌문들로부터, 특히 가톨릭 보편 교회가 가르치는 죄(sin)정의(definition)

“영원한 법(eternal law)(*)에 반하는 말, 행위, 혹은 욕망(desire)"(성 아우구스티노)

임을 학습하였으며, 그리고 죄들의 종류들 등에 대하여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반한다" 함은, 죄를 범하는 자의 자유의지의 개입을 또한 포함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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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eternal law(영원한 법)"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글의 제2-2항에 주어져 있으니 또한 꼭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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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다음은 죄들 중에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에 의한 첫 번째 죄, 즉 원죄(original sin)정의(definition) 및 이 원죄의 결과들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입니다.

참고: 특히 가톨릭 보편교회가 가르치는 믿음(faith)에 동의하고 이 믿음을 온전하게 받아들임에 있어, 원죄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및 이성적/논리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므로, 원죄의 정의(definition)를 반드시 숙지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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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CCCC 76. 원죄(original sin)가 무엇인지요?
CCC 404, 419

모든 인간들이 그 안에서 태어나게 되는 원죄는 원래의 거룩함과 의로움(original holiness and justice)을 상실당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 죄는 우리에 의하여 ‘범해진(committed)’ 죄가 아니라 ‘감염된(contracted)’ 죄이며, 그리고 이 죄는 어떤 인격적 행위(a personal act)가 아니라 출생의 상태(a state of birth)를 말합니다. 모든 인간들의 원래의 단일성(original unity) 때문에, 이 죄는 ‘모방(imitation)에 의하여서가 아니라, 번식(propagation)에 의하여’ 아담의 후손들에게 전달됩니다. 이 전달은 우리가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는 하나의 신비(a mystery)로 남아 있습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ot_10_c404.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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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CC 77. 다른 어떠한 결과들이 원죄로부터 비롯되는지요?
CCC 405-409, 418

원죄의 결과로 인간의 본성(human nature, 인성)은, 완전히 타락됨 없이, 그 본성적 힘(its natural powers)들에 있어 상처가 나게 됩니다(is wounded). 인간의 본성은 무지(ignorance)에,  고통(suffering)에, 그리고 죽음의 지배(dominion)에 복종하게 되며 그리고 죄를 향하여 기울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성향은 사욕편정[concupiscence, 偏情](*)이라고 불립니다(엮은이 번역).

(*): ‘사욕편정[concupiscence, concupiscentia, 偏情]’ 용어는 다음의 설명을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5.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ot_10_c40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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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2.12.17]
(*) 번역자 주: 현재까지 국내의 가톨릭계에서 사용중인, 영어로 "concupiscence"로 번역되는 라틴어 단어 "concupiscentia"의 번역 용어인 "慾偏情"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를 클릭한 후에, 제2-2-4항제2-2-5항반드시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5.htm <----- 필독 권고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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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htm

[제목: 원죄와 구원의 신비; 게시일자: 2005-03-01; 최초 작성일: 2001-01-31 오전 6:09:28]

원출처: http://bbs.catholic.or.kr/home/bbs_view.asp?num=1&id=1512375&PSIZE=20&searchkey=N&searchtext=%EC%9B%90%EC%A3%84&menu=orgbbs_conserva3 

 

D-2-2.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23.htm <----- 전문 필독 권고

[제목: 아담의 원죄(original sin, 첫 번째 죄)의 원인; 게시일자: 2013-01-16]

(발췌 시작)

게시자 주 5: 결국에 아담과 하와가 범하였던 원죄(original sin, 첫 번째 죄)와 관련하여 일련의 그 일어나는 순서는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i)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셨던 과자연적 은총(과성 은혜, preternatural gifts)들 덕택으로 욕편정(慾編情, concupiscience) 이성(reason)의 완전한 통제 [즉, 욕부재(慾不在)의 상태(the state of integrity)]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물리칠 수 있었던, 뱀의 유혹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ii) 창세기 2,17
에 기록된 하느님의 의지(God's will)에 반하는 방향으로, 즉, 윤리적 악(moral evil)의 방향으로,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자유 의지(free will)행함(act)이라는 불순명(disobedience)의 죄(sin)를 범하였으며 [주: 아담과 하와는 이미 이 단계에서 자신들의 첫 번째 죄(원죄)를 범함] 바로 이 스스로 자초한 첫 번째 죄(그들의 원죄) 때문에,

(iii) 창세기 2,17에서의 계약의 말씀대로의 저주(the curse)가 그들에게 내려, 하느님께서 그동안 그들에게 베푸셨던 초자연적 은총(초성 은혜, supernatural gifts)들과 과자연적 은총(과성 은혜, preternatural gifts)들 모두를 거두어들이심에 따라 원 은총(original grace)과 원 의로움(original justice) 모두를 박탈당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서,

(iv) 그동안 그들의 내면에 감추어져 있었던,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닌욕편정(慾編情, concupiscience)이 드디어 처음으로 드러나, 즉, 현실태화하게 되어,

(v) 시각을 통한 선악과의 먹음직스러움이라는 감각의 자극 때문에, 역시 그 자체로는 죄가 아닌한 개의 정(情)(a passion)으로서 활동을 하게 되고,

(vi) 그리고 이 활동하는 (慾, concupiscience, 욕편정)은 또한, 이미 활동 중인, 윤리적 악(moral evil)으로 향하는 아담과 하와의 자유 의지와 처음으로 결합하여,

(vii)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선악과를 따 먹는 한 개의 행동(an action)을 구체적으로 밖으로 표출하였던 것입니다.

(이상, 발췌 끝)

 

D-2-3.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95.htm <----- 전문 필독 권고

[제목: 창세기 3,22 - 원죄로 상실당한 것들; 게시일자: 2012-04-14]

(발췌 시작)

7-1. 과자연적(preternatural) 용어의 정의(definition):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preternatural" 이라는 신학적 용어에 대한 설명이며 첫 번째 문장이 이 용어의 신학적 정의(definition)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p/p415.htm

PRETERNATURAL
That which is beyond the natural but is not strictly supernatural. It is preternatural either because natural forces are used by God to produce effects beyond their native capacity, or because above-human forces, angelic or demonic, are active in the world of space and time. (Etym. Latin praeter, beyond + natural, nature.)

과자연적/과성적(過自然的/過性的, PRETERNATURAL)


자연적인 것들을 넘어서나 그러나 엄밀하게 초자연적(supernatural)이 아닌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자연적 힘들이 그들의 자연적인 능력을 넘어서는 결과들을 산출하고자 하느님에 의하여 사용되기 때문에, 혹은 천사적 혹은 악마적, 인간 위의 힘들이 시공간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 안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둘 중의 하나 때문에, 과성적(과자연적)입니다. [어원. Latin praeter, beyond + natural, nature.]

우리말 번역문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90.htm

7-2. 과자연적 선물(preternatural gift)의 정의(definition) 및 이 선물의 예(examples)들: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preternatural gifts" 이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이며 첫 번째 문장이 이 용어의 신학적 정의(definition)입니다:

출처: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p/p416.htm

PRETERNATURAL GIFTS

 

Favors granted by God above and beyond the powers or capacities of the nature that receives them but not beyond those of all created nature. Such gifts perfect nature but do not carry it beyond the limits of created nature. They include three great privileges to which human beings have no title--infused knowledge, absence of concupiscence, and bodily immortality. Adam and Eve possessed these gifts before the Fall.

과자연적 선물들/과성적 선물들(過自然的/過性的 선물들, PRETERNATURAL GIFTS)


자연의 힘들 혹은 능력들 위의 그리고 넘어서는 하느님에 의하여 허락되는 우의적 도움(favors, 즉, 은총)들을 말하는데, 자연은 창조된 자연 모두의 힘들 혹은 능력들을 넘어서지 않으면서 그들을 받아들입니다. 그러한 선물들은 자연을 완미하게 하나 그러나 그것을 창조된 자연의 한계들을 넘어서까지 운반하지 못합니다. 이 선물들은, 그들에 대하여 인간이 아무런 권리(title)도 가지지 못하는,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커다란 특권들을 포함합니다: 주입된 지식(infused knowledge),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의 부재, 그리고 몸의 불사(不死) 가능성(bodily immotality). 아담과 하와는 타락 이전에 이들 선물들을 소유하였습니다.

우리말 번역문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9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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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12.12.17]

(*) 번역자 주: 현재까지 국내의 가톨릭계에서 사용중인, 영어로 "concupiscence"로 번역되는 라틴어 단어 "concupiscentia"의 번역 용어인 "慾偏情"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이다.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를 클릭한 후에, 제2-2-4항제2-2-5항반드시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5.htm <----- 필독 권고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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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선물의 예(examples)들에는
,

주입된 지식(infused knowledge),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의 부재 (즉, integrity),
몸의 불사(不死) 가능성(bodily immotality), 
죄 없음(sinlessness), 
고통(pain)의 부재 가능성, 
이 땅의 주인(Lord) 

이 포함됩니다.

추가적 출처/근거: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90.htm (제3항)

7-3 초자연적(supernatural) 용어의 정의(definition)

다음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용어집"에 주어진 "supernatural[초자연적(超自然的), 초성적(超性)]"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이며 첫 번째 문장이 이 용어의 신학적 정의(definition)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cc_glossary.htm
(발췌 시작)
SUPERNATURAL


Surpassing the power of created beings; a result of God's gracious initiative. Our vocation to eternal life is supernatural (1998; cf. 1722).

초자연적/초성적(超自然的/超性的, SUPERNATURAL)

 

'피조물(created beings)들의 힘을 능가하는' 을 말하며, 그리고 [이것은] 하느님의 자애로우신 주도(gracious initiative)의 결과입니다.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으로의 우리의 소명(vocation, 부름을 받음)은 초자연적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998항; 제1722항 참조).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피조물들, 즉 "창조된 있음(created beings)들" 중에는, 특히 하느님의 아들(sons of God)들로 불리는 천사(angels)들 등의, "영적 있음(spiritual beings)들"도 포함됨을 잊지 마십시오.

7-4. 그리고 초자연적 선물(supernatural gift)의 예(examples)들에는, 초기 은총(the initial grace)뿐만이 아니라, 일곱 성사에 의하여 베풀어지는 상존 은총(habitual grace/sanctifying grace), 조력 은총(actual grace) 등의 은총들, 그리고 특히 세례성사 시에 세례를 받는 자의 영혼에 하느님에 의하여 주입되는 다음의 것들, 등이 포함될 것입니다:

신덕/믿음(faith)(출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9항),
애덕/사랑(charity)

망덕/희망(hope)

성령칠은(the seven gifts of the Holy Spirit)

성화 은총/상존 은총(sanctifying grace). 

(이상, 발췌 끄)

 

게시자 주: 그러니까.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언급된 과성은혜/과자연적 선물(preternatural gifts)들 및 초성은혜/초자연적 선물(supernatural gifts)들 모두 상실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세례성사를 시작으로하여 초성은혜(supernatural gifts)들 모두는 회복될 수 있게 되었으나, 그러나 과성은혜(preternatural gifts)들은 천상 교회에 들어가기 전에는 누구에게도 회복되지 않고 있습니다. 

 

D-2-4.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96.htm <----- 전문 필독 권고

[제목: 사욕편정 자체가 죄일까요?; 게시일자: 2012-05-01]

(발췌 시작)

[간략한 요약 답변]
주신 질문은, 신학적으로, 그러한 유혹을 포함하는, 번역 용어인,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 사욕)으로 불리는 바"가 "죄(sin)"인가 혹은 아닌가? 하는 신학적 질문에 포함됩니다.

이에 대한 간략한 요약 답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죄(sin)"란, 당사자의 자유 의지(free will)가 개입하여, 하느님의 법에 반하는 어떤 것을 하느님의 법에 반함을 알면서도 생각, 말, 혹은 행동으로 행하였음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를 들어, 설사 하느님의 법에 반하는 어떤 행위라고 하더라도 행위자가 이 점을 모르고 행한 잘못은, 하느님의 법에 맞서 거스르는 행위자 자신의 자유 의지의 개입이 없으므로, 이후에 행위자가 그 잘못을 인지하게 될 때까지는, 여전히 죄가 아닙니다. 여기를 클릭하여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용어사전에 주어진 "죄(sin)"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을 읽으십시오.

(2) 만약에, 번역 용어인, "사욕편정" 그 자체가 "대죄(mortal sin)"이라면, 고해성사를 반드시 보아야 합니다.

(3) 그렇지 않다면, 고해성사를 반드시 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리고 "소죄(venial sin)"는 미사에 참례함으로써 하느님의 용서를 받습니다].

(4) 다른 한편으로, 가톨릭 보편 교회는, 번역 용어인, "사욕편정(사욕/욕정, 偏情, concupiscence)"으로 불리는 바를 "죄(sin)"라고 가르치지 않고, "[윤리적] 악으로 기울어지는 성향(an inclination to evil)"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05항(<--- 클릭하십시오)] 이라고 정의하며(define), 그리고 성전(사도전승, Tradition)"죄로 기울어지는 성향(an inclination to sin)"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64항(<--- 클릭하십시오)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26항(<--- 클릭하십시오)] 으로 불러 왔는데 [주: 죄(sin)는 악(evil)이나, 그러나 그 역은 항상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윤리적 악(moral evil)은 죄입니다], 바로 이렇게 부르는 것 자체가 "사욕(사욕편정, 偏情, concupiscence)" 그 자체는 죄가 아님을 또한 의미합니다.

유의 사항 한 개: 그러나 16세기 초반에 나타났던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년)를 시작으로 하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자들"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을, 즉 "악으로 기울어지는 성향" "원죄(original sin)"로 불리는 "죄(sin)"동일시하였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406항(<--- 클릭하십시오)].

국내의 일부 가톨릭 신자들(여기에는 개신교로부터 가톨릭으로 개종한 분들 포함)도 개신교측의 신자들처럼, 교리 지식의 부족 때문에"죄로 기울어지는 성향"인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을 어떤 "죄(a sin)"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은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이 결코 아닙니다.

영어가 가능한 분들께서는, 여기를 클릭하면, 사욕편정이 죄가 아니라는 트리엔트 공의회의 가르침을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클릭한 후에 제5항의 마지막 부분을 읽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이 트리엔트 공의회의 선포를 요약하여 언급하고 있는,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concupiscence(사욕편정)"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클릭한 후에 마지막 부분을 읽도록 하십시오.

(5) 그러나, 사욕(사욕편정, 偏情, concupiscence)에 윤리적 악(moral evil)의 방향으로 당사자의 자신 고유의 자유 의지(free will)가 개입하여 동의(consent)를 함으로써, 비로소 한 개의 죄(a sin)가 성립됩니다.

이것은 또한,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64항(<---클릭하십시오)
에서 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6) 따라서, "사욕(사욕편정), 즉 죄(sin)/악(evil)으로 기울어지는 성향" 그 자체는 "소죄((venial sin)"도 아니므로, 고해성사를 반드시 보아야 할 필요/의무가 없습니다.

(7) 여기를 클릭하면,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의 부재, 즉 사욕부재(不在, integrity)"가 원죄의 결과, 비록 사람들이 세례성사를 받고 그리고 고해성사를 보더라도 그리하여 하느님의 입양된 자녀들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여전히 상실당한 상태에 있는 것들인, 과자연적(過自然的) 선물(prenatural gifts)들,과성적(過性的) 선물들, 즉 과성은혜過性恩惠)]들 중의 하나임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클릭한 후에 제7-2항을 읽도록 하십시오.

(8) 여기를 클릭하면, 영어로 "integrity"로 번역되는 라틴어 신학적 용어인 "integritas"정의(definition)를 읽을 수 있습니다. 클릭한 후에, 제3항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번역자 주"를 읽도록 하십시오.

(9)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대사전에 주어진 사욕편정에 대한 설명은, 사욕편정(偏情, concupiscence)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오류입니다.

주의 사항 한 개: 혹시라도, 가톨릭 교회의 세례를 받고자 하는 의향이 있으신 분이 마땅히 할 수 있는, 그리고 마땅히 하여야 하는, 위와 같은 종류의 "심각한(?) 질문"에 대하여, "그럼요! 고해성사를 반드시 보아야 합니다" 라고 당당히(?) 답변하는 것은, 얼핀 듣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하나, 그러나 사실은,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에 근거하지 않고 답변자 개인의 추측/판단에 근거한 대단히 잘못된 답변이며, 더 나아가,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유일한 교회인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

(이상, 발췌 끝)

 

D-2-5.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01.htm

[제목: 펠라지우스 이단 및 원죄에 대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가르침; 게시일자: 2011-08-31]

 

D-2-6.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41.htm 

[제목: 원죄와 구속(속량), 의화와 통공(자비), 영원한 구원; 게시일자: 2011-11-04]

 

D-2-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3.htm <----- 전문 필독 권고

[제목: 사람에게 있는 분노와 질투는 원죄의 결과들; 게시일자: 2012-01-21]

 

D-2-8.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1.htm <----- 전문 필독 권고

[제목: 원죄가 카인(Cain)을 통하여 그 후손 대대로 이어져 내려간다는 설명은 우리 모두가 카인의 후손이라는 심각한 착오(錯誤)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부적절한 오류의 설명이다; 게시일자: 2019-11-05]

 

 

E. "原罪"(원죄)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출처 및 기원에 대하여

 

D-3-1.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66.htm <----- 또한 전문 필독 권고

[제목: 원죄(原罪) 라는 가톨릭 고유한 한자 용어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 중의 출처와 기원은 방자유전, 권4, 인류원시 이다; 2017-09-30]

(발췌 시작)

2-6. 다음은 1610년에 저술된, "방자유전"권4의 두 번째 책인, "인류원시"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71-1618_디에고_데_판토하/1600_방자유전.htm  

(발췌 시작)

방자유전_권4_114-130_전인류원시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주: 인류원시 제3쪽(17p)에서, 이 책(즉, 인류원시)이 저술된 해가 기원후 1610년임을 밝히고 있음] [(2017년 9월 7일) 주: "성모마리아" 라는 표현들이 사용되고 있음. 제27쪽에서, "득죄"라는 용어 대신에 "범죄"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2017년 9월 30일) 주: "원죄" 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3.

이상, 위의 제2항에서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1) "한문 문화권" 안에 있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원죄(原罪)" 라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가,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 중에서판토하 신부님(1571-1618년)"방자유전", 권4의 두 번째 책으로서, 1610년에 저술된 "인류원시"에서 최초로/처음으로 사용된 가톨릭 교회의 고유한 용어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냐하면, 중국 본토에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첫 번째 선교사인 로버트 모리슨이 중국 [광동 지역]에 처음으로 도착한 시점이, 1610년보다 약 200년 뒤1807년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

(*) 게시자 주: 이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있는 졸글의 제4항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3.htm [2015년 8월 4일자 글] <----- 필독 권고

-----

(이상, 발췌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393. 다양한 죄들이 있는지요?
CCC 1852-1853, 1873


많은 종류의 죄들이 있습니다. 죄들은 그 대상(object)에 따라 혹은 그들이 어기는(violate) 덕(virtues)들 혹은 계명(commandments)들에 따라 구분될 수 있습니다. 죄들은 하느님, 이웃, 혹은 죄를 범하는 자신들에게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수 있습니다. 죄들은 생각의 죄들, 말의 죄들, 행동의 죄들, 혹은 태만(omission)의 죄들로 또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엮은이 번역).

 

CCCC 394. 죄들은 그 심각함에 따라 어떻게 구분되는지요?
CCC 1854


대죄(mortal sin, 죽을 죄, 즉, 그냥 놔두면 죽음을 초래하는 죄)와 소죄(venial sin, 가벼운 죄) 사이에 구분이 있게 됩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2_c1852.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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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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