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요즈음 들어와 salvation에 대응하는 차용 번역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 구원救援 이라는 용어의 출처에는 아담 샬 신부님에 의하여 저술된 주교연기(1643년)가 포함된다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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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01 ㅣ No.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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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면서 및 유관 사료 분석 I

 

1-1. 다음에 발췌된 바를 포함하는 글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수동태 동사 "be saved"가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수동태 동사 "구함을 받는다"으로 직역 번역이 되지 않고, 명사 "salvation"(구원)의 수동태형 동사 "구원을 받는다"으로 번역이 된 한 개의 예(example)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발췌 시작)

가해 부활 제4주일(착한 목자 주일) 온라인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츨처: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2/가해부활제4주일.mp4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I, 가톨릭출판사, 2007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가부활4주일> 가해 부활 제4주일


요한 복음서 10,1-10; 사도행전 2,14.36-41; 1베드로 2.20ㄴ-25

 

오늘 전례성경의 주제: 양 우리(sheepfold) 쪽으로 유일한 문(the gate)으로서, 예수님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a_east_4.htm <-----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As the gate to the sheepfold, Jesus is the metaphor that summarizes the message of the liturgy. Jesus says of himself: "I tell you most solemnly that I am the gate of the sheepfold" (Gospel). In the Acts of the Apostles, Peter exhorts his listeners: "You must repent … and every one of you must be baptized in the name of Jesus Christ for the forgiveness of your sins" (first reading). Again Peter, in his First Letter, writes: "You had gone astray like sheep, but now you have come back to the shepherd and guardian of your souls" (second reading), showing one of the functions of the gate, which is to protect the flock from anything that could harm it.

 

양 우리(sheepfold) 쪽으로 유일한 문(the gate)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전례의 메시지를 요약하는 은유(metaphor)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복음서). 사도행전에서, 베드로(Peter)는 자신의 청중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제1독서). 또다시 베드로는, 자신의 첫 번째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는데, "여러분이 전에는 양처럼 길을 잃고 헤매었지만, 이제는 여러분 영혼의 목자이시며 보호자이신 그분께 돌아왔습니다." (제2독서), 이 기술은, 양떼를 해칠 수 있는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이 무리(flock)를 보호하는, 문의 역할/기능(functions)들 중의 하나를 보여줍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오늘의 복음 말씀인 요한 복음서 10,1-10 중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양들의 문이다. ...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통하여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will be saved),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게 하려고 왔다(I came so that they might have life and have it more abundantly)."

 

(졸번역) 

구함을 받게 될 것이고(will be saved), 또 드나들며 풀밭을 찾아 얻을 것이다.  ...

[주: 이 세상에서의 삶에 있어 일시적 구원에 양들의 참여를 말씀하시는 듯함.]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을 수도 있고 또 더 넉넉하게 얻을 수도 있도록 하고자(might have life and have it more abundantly) 왔다.

[주: 이 세상에서 및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난 후에, 희망하는, 영원한 구원에 양들의 참여를 말씀하시는 듯함.]

(이상, 졸번역 끝)

 

공동번역성서 요한 복음서 10,9:

 

출처: http://maria.catholic.or.kr/bible/read/bible_read.asp?menu=bible&m=4&n=50&p=10  

(발췌 시작)

9   나는 문이다. 누구든지 나를 거쳐서 들어 오면 안전할뿐더러 마음대로 드나들며 좋은 풀을 먹을 수 있다.

(이상, 발췌 끝)

 

A.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27.htm <----- 필독 권고

[제목: 빈도수가 높은 성경 용어들; 게시일자: 2020-01-24]

(발췌 시작)

300 salvation 구원 [주: NAB 신약 성경 본문 중에서 총 44번 사용되고 있음.]

242 save 구하다

155 saved 구함을 받은

109 savior 구세주

137 delivered 

(이상, 발췌 끝)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유관 보편 교회 문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Lumen Gentium, 제6항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east_4.htm <----- 필독 권고

출처 2: http://www.intratext.com/IXT/ENG0037/__P8.HTM 

출처 3: https://www.vatican.va/archive/hist_councils/ii_vatican_council/documents/vat-ii_const_19641121_lumen-gentium_en.html 

출처 4: http://www.albummania.co.kr/gallery/view.asp?seq=192844&path=120726085919&page=83 

출처 5: http://www.cbck.or.kr/Documents/Council 

(출처 1로부터 발췌 시작)

In addition to the title of Good Shepherd, Christ applies to Himself the image of the door into the sheepfold of the Church. "The Church," Vatican II teaches, "is a sheepfold, the sole and necessary gateway to which is Christ (cf. John 10:1-10). It is also a flock, of which God foretold that He Himself would be the shepherd (cf. Isaiah 40:11; Ezekiel 34:11ff), and whose sheep, although watched over by human shepherds, are nevertheless at all times led and brought to pasture by Christ Himself, the Good Shepherd and Prince of shepherds (cf. John 10:11; 1 Peter 5:4), who gave His life for His sheep (cf. John 10:11-1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Lumen Gentium", 6]. 

 

착한 목자라는 칭호에 추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교회(the Church)라는 양 우리 안쪽으로 들어가는 문의 모습을 당신 자신께 적용하십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교회(the Church)는, 그리스도 쪽으로 향하는 하나뿐인 그리고 필수적인 통로(gateway)인, 하나의 양 우리(a sheepfold)입니다 (요한 복음서 10,1-10 참조). 교회는 또한 하나의 무리(a flock)인데, 이 무리에 관하여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께서 목자가 장차 될 것이라고 미리 말씀하셨으며(이사야 40,11; 에제키엘 34,11부터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 참조), 그리고 그 양은, 비록 인간인 목자들에 의하여 위험에서 지켜지게(watched over)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시간들에 있어, 착한 목자이시고 목자들의 군왕이신, 그리스도 당신 자신에 의하여 목초지(pasture) 쪽으로 인도되고 그리고 데려오게 되는데 (요한 복음서 10,1-10; 1베드로 5,4 참조), 그분께서는 당신의 양(sheep)을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십니다 (요한 복음서 10,11-15)".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Lumen Gentium", 6].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B. 일시적 구원(temporal salvation)과 영원한 구원(eternal salvation)의 차이점:



 

가해 부활 제2주일 (자비 주일) 제2독서 1베드로 1,3-9 중의 제5절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에서 발췌:

 

(발췌 시작) 

그리스도교 신앙의 목표인 구원(salvation)은, 하나의 미래의 사건으로서 제시되고 있다. 한 번 구함을 받음(once saved)은 항상 구함을 받음(always saved)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영원한 구원(eternal salvation)에 대한 하나의 희망일 뿐이다. [Salvation, the goal of Christian faith, is presented as a future event. Not once saved, always saved, but a hope for eternal salvation.]

(이상, 발췌 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99.htm <----- 필독 권

[제목: 구원이라는 용어의 성경적 정의(definition) 외; 게시일자: 2011-08-24]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5.htm <----- 필독 권고

[제목: 모세의 구리 뱀과 십자고상의 의미 외; 게시일자: 2012-02-07]

 

주의 사항 한 개: 다수의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들에 의하어 번역된] 한문본 성경들의 요한 복음서 10,9에서, 우리말본 성경들에서와는 달리, "구원"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음:

출처: https://bible.fhl.net/new/ob.php?book=all&chineses=43&chap=10&sec=9 

 

C. 다른 한편으로, 국내의 우리말본 성경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구원(救援)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출처: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92-1666_아담_샬/1643_주교연기.htm  

(발췌 시작)

주교연기_권1_조물주묘유무형무시무종무소부재_44-49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2017년 12월 14일) 주: 제26쪽에 "조물주", "무형", "무시무종", "무소부재". "3부즉", "유형", "재", "자주", "환우", "인영", "상물", "물상", "천주", 제27쪽에 "작자", "총작자", "질모", "결의", "자립", "유결", "무결", "유근", "전미", "유형", ""유소부재", "주제", 제28쪽에 "무소부유", "무소부재", "무시", "자생", "자유", "시", "소이연", "무종", "유종", "한시", "무한", "유한시", "주심", "전재", "환우", 제29쪽에 "6합", "구우", "조물자", "소조", "소재", "소존", "무소부재", ""유형제자", "신체", "유소재", "유소부재", "구원", "인심지영", "각", "유신물", "인류", 제30쪽에 "결의", "계", "보존", "주소조", "자소조", "환우" 등의 용어들이 사용됨.]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네 번째 열(column)을 보라.

 

(유관 부분 발췌 시작)

每見人罹急難 仰首呼號以望救援 豈徒然哉?

 

사람들이 급난(急難)을 만나면(罹) 머리를 들어올려(仰首) 구원(救援)을 바라기 때문에(以望) 괴로워하면서 큰 소리로 울부짖는(呼號) 것을 매번 보는데, 어찌 그렇게 할 뿐이겠는지요(豈徒)? 

(이상, 유관 부분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발췌 끝) 

 

[내용 추가 일자: 2020년 10월 12일]

게시자 주: 그런데, 바로 위에 발췌된 한문 문장에서, 救援(구원)의 의미는, 예수님의 구속/속량(redemption) 위업의 한 개의 열매/결과로서 입을 수도 있게 되는 혜택인, 그리하여 신약 성경과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에서 말하는, "salvation"(구원)을 의미하지 않고, 이와 무관하게, 다만 위험으로부터 구조/구출(rescue, save)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2020년 10월 12일자 내용 추가 끝]

 

주의 사항 한 개: 다수의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들에 의하어 번역된] 한문본 성경들의 요한 복음서 10,9에서, 우리말본 성경들에서와는 달리, "救援"(구원)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음:

 

출처: https://bible.fhl.net/new/ob.php?book=all&chineses=43&chap=10&sec=9 

(이상, 발췌 끝)

 

[내용 추가 일자: 2020년 5월 25일]

게시자 주 C: 다음을 또한 참고하라: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4.htm

(발췌 시작)

1-2.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중국에 파견되었던 예수회 소속의 선교사  미카엘 루지에리(1543-1607년) 신부님에 의하여 1584년에 초간된 것으로 알려진, "천주성교실록", 진유일천주장(제1쪽)에서 "천주", "영혼", "천당" 이라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43-1607_미카엘_루지에리/천주성교실록_1_진유일천주장_11-13.pdf <----- 클릭한 후에 전후 문맥 안에서 읽도록 하라

(발췌 시작)

천당_in_천주성교실록_1_진유일천주장_제1b쪽.jpg

 

게시자 주: (1)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첫 번째 열(column)을 보라.

 

(2) 그런데, 바로 이 첫 번째 열에서, "救援"(구원) 대신에, 언뜻 보기에 전후 문맥 안에서 "救援"처럼 읽히고 그리고 "拯救"(증구, to save, 구하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救拔"(구발)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 발췌 끝)

(이상, 발췌 끝)

(이상, 게시자 주 C 끝)

[이상, 2020년 5월 25일자 내용 추가 끝]

 

1-2. 언뜻 보기에, 그러한 두 가지 우리말 번역문들 사이에 "무슨 차이점이 있느냐?" 혹은 "무슨 문제가 있느냐?"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그러나 구원(salvation)에, 

 

(i) 일시적 구원(temporal salvation)

 

(ii) 판단자/심판자인,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의향이 심판/판단의 시점인 미래에 고유하게 행사 되기 때문에 그리고 피조물인 우리가 심판/판단의 주관자이신 그분의 의향을 사전에 모두 알 수 없기 때문에, 피조물인 우리가 오로지 희망할 뿐인 영원한 구원(eternal salvation)이 있는 한,

 

성경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그리스도교 보편 교회의 핵심 문헌들이, 우리말로 번역되는 과정에 번역자에 의하여 이들 두 차이점들이 절대적으로 존중되지 않고, 우리말로 번역된 보편 교회의 문헌들을 읽는 독자들이, 번역자들이 의도하는대로 어느 한 종류 쪽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없도록, 의도적으로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이 되는 것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하더라도, 교의 신학적으로 참으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1-3. 다른 한편으로, 대다수의 천주교 신자들의 경우에, "일시적 구원"(temporal salvation)을 두고서 통상적으로 "救援"(구원)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리고 아마도 소위 말하는 4말교리 때문인듯, "救援"(구원)이라는 용어가 "영원한 구원"(eternal salvation)을 의미한다고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바로 위의 제1-2항에서 지적한 바가 사고에 있어 상당한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 어원에 있어,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는 명사인 "구원"(salvation)은 동사 "구하다/구출하다"(to save)의 명사형인 것이지, 그 반대로, "구하다/구출하다"(to save)가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는 명사 "구원"(salvation)의 동사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그리스도교 교회의 핵심 문헌들에 있어, 영어로 "to save"(구하다/구출하다)로 번역되는 단어를, 예를 들어, "구하다/구출하다"로 번역하지 않고, "구원(救援)하다"로 번역하거나, 혹은 영어로 "to be saved"로 번역되는 단어를, 예를 들어, "구함을 받다"로 번역하지 않고, "구원(救援)을 받다"로 번역하는 것은, 부지불식간에, 사고에 있어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에, 번역 오류라 아니 지적할 수 없습니다.

 

2. 유관 사료 분석 II

 

2-1.

2-2-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NAB(New American Bible)의 신약 성경에서, "salvation"이라는 명사가 사용된 예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C5.HTM   

 

(i) 마태오 목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서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고,

(ii) 루카 복음서에서는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총 6번 사용되었으며,

(iii) 요한 복음서에서는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총 1번 사용되었고,

(iv) 사도행전에서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총 5번 사용되었으며,

(v) 로마서에서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총 4번 사용되었고,

(vi) 1코린토에서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고 2코린토에서 총 3번 사용되었으며,

(vii) 갈라티아서에서는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고,

(viii) 에페소서에서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총 2번 사용되었으며,

(ix) 필레몬서에서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총 2번 사용되었고,

(x) 콜로새서에서는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으며,

(xi) 1테살로니카에서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총 2번, 2테살로니카서에서 총 1번 사용되었고,

(xii) 1티모테오에서는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고, 2티모테오에서 총 2번 사용되었으며,

(xiii) 티토서에서는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고,

(xiv) 히브리서에서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총 7번 사용되었으며,

(xv) 야고보서에서는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고,

(xvi) 1베드로에서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총 4번 사용되었고 2베드로에서 총 1번 사용되었으며,

(xvii) 1요한, 2요한, 3요한에서는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고,

(xviii) 유다서에서 총 1번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으며, 그리고

(xix) 요한 묵시록에서 총 3번 "salvation"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음.

 

2-1-2.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save(s)"라는 동사가 사용된 예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EV.HTM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2/FJ.HTM 

 

(i) 마태오 복음서에서 총 8번 사용되었고,

(ii) 마르코 복음서에서 총 5번 사용되었으며,

(iii) 루카 복음서에서 총 9번 사용되었고,

(iv) 요한 복음서에서 총 2번 사용되었으며,

(v) 사도행천에서 총 2번 사용되었고,

(vi) 로마서에서 총 1번 사용되었으며,

(vii) 1코린토에서 총 5번 사용되었으며 그리고 2코린토에서 총 1번 사용되었고,

(viii) 갈라티아서, 에페소서, 그리고 콜로새서에서 사용되지 않았으며,

(ix) 1티모테오에서 총 1번 사용되었으며 그리고 1티모테오에서 사용되지 않았고,

(x) 히브리서에서 총 2번 사용되었으며,

(xi) 야고보서에서 총 5번 사용되었고,

(xii) 1베드로에서 총 1번 사용되었고 그리고 2베드로에서 사용되지 않았으며,

(xiii) 유다서에서 총 1번 사용되었고,

(xiv) 요한 묵시록에서 사용되지 않았음.

 

2-1-3.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saved"라는 동사가 사용된 예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M0.HTM 

 

(i) 마태오 복음서에서 "saved"라는 동사가 총 6번 사용되었으며,

(ii) 마르코 복음서에서 "saved"라는 동사가 총 7번 사용되었고,

(iii) 루카 복음서에서 "saved"라는 동사가 총 10번 사용되었으며,

(iv) 요한 복음서에서 "saved"라는 동사가 총 4번 사용되었고,

(v) 사도행전에서 "saved"라는 동사가 총 10번 사용되었으며,

(vi) 로마서에서 "saved"라는 동사가 총 8번 사용되었고,

(vii) 1코린토에서 "saved"라는 동사가 총 5번 그리고 2코린토에서 총 1번 사용되었으며,

(viii) 에페소서에서 "saved"라는 동사가 총 2번 사용되었고,

(ix) 1테살로니카에서 "saved"라는 동사가 총 1번 그리고 2테살로니카에서 총 1번 사용되었으며,

(x) 1티모테오에서 "saved"라는 동사가 총 2번 그리고 2티모테오에서 총 1번 사용되었고,

(xi) 티토서에서 "saved"라는 동사가 총 1번 사용되었으며,

(xii) 1베드로에서 "saved"라는 동사가 총 2번 사용되었고 그리고 2베드로에서 사용되지 않았고,

(xiii) 유다서에서 "saved"라는 동사가 총 1번 사용되었므여,

(xiv) 요한 북시록에서 "saved"라는 동사가 사용되지 않았음.

 

게시자 주 2-1: 다른 한편으로, 다수의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들에 의하어 번역된] 중국의 개신교회 측의 중국어본 성경들에서, 우리말본 성경들에서처럼 "救援"(구원)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지 않은 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루카 복음서 3,6에서 "拯救"(증구)가 사용됨 

https://bible.fhl.net/new/ob.php?book=all&chineses=42&chap=3&sec=6  

요한 복음서 10,9에서 "得救"(득구, be saved)가 사용됨: 

https://bible.fhl.net/new/ob.php?book=all&chineses=43&chap=10&sec=9 

로마서 10,1에서 "得救"(득구)가 사용됨:

https://bible.fhl.net/new/ob.php?book=all&chineses=45&chap=10&sec=1 

(이상, 게시자 주 2-1 끝)

 

2-2.

2-2-1. 위의 제2-1-1항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면, NAB ("New American Bible") 중의 신약 성경의 본문 중에서 "salvation"["救援"(구원)]이라는 번역 용어가 총 44번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2-2-2. 그리고 위의 제2-1-2항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면, NAB ("New American Bible") 중의 신약 성경의 본문 중에서 "save(s)"(구하다)라는 번역 용어가 총 43번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2-2-3. 그리고 위의 제2-1-3항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면, NAB ("New American Bible") 중의 신약 성경의 본문 중에서 "saved"(구하였다, 구함을 받다)라는 번역 용어가 총 62번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따라서, NAB ("New American Bible") 중의 신약 성경의 본문 중에서 이들 용어들이 총 44 + 43 + 62 = 149번 사용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2-3.

2-3-1. 그런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런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970년대에 우리말로 번역된 "공동번역성서" 중의 신약 성경 본문에서 "구원"이라는 번역 용어 혹은 이 용어의 동사형 파생어들이 종 134번 사용되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maria.catholic.or.kr/bible/search/bible_search.asp?n=&p=&bb_no=&code=&JangNo=&JeolNo=&submit_root=ctindex&ctxtPlace=search&page=&ctindex=new&prindex=0&Keyword=%EA%B5%AC%EC%9B%90 

 

2-3-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2000년 대희년 이전에 우리말 번역이 완료된 "200주년 신약성서" 중의 신약 성경 본문에서 "구원"이라는 번역 용어 혹은 이 용어의 동사형 파생어들이 총 151번 사용되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maria.catholic.or.kr/bible/search/bible_search.asp?n=&p=&bb_no=&code=&JangNo=&JeolNo=&submit_root=&ctxtPlace=search&page=&ctindex=200new&prindex=0&Keyword=%EA%B5%AC%EC%9B%90 

 

2-3-3.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2005년에 그 초판이 발행된 "새 번역 성경" 중의 신약 성경 본문에서 "구원"이라는 번역 용어 혹은 이 용어의 동사형 파생어들이 종 163번 사용되었음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maria.catholic.or.kr/bible/search/bible_search.asp?n=&p=&bb_no=&code=&JangNo=&JeolNo=&submit_root=&ctxtPlace=search&page=&ctindex=new2&prindex=0&Keyword=%EA%B5%AC%EC%9B%90 

 

질문 1: "구원"(salvation)이라는 번역 용어 혹은 이 용어의 동사형 파생어 번역 용어들이 사용된 횟수가, 불과 30여년의 짧은 세월 속에서, 134번에서 151번, 그리고 163번으로, 증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요? 혹시라도, 그리스어 신약 성경 본문 중에 사용된 대응하는 그리스어 성경 용어들이 이 짧은 기간 중에 갑자기 그렇게 바뀌었기 때문인지요???

 

질문 2: "구원"(salvation)이라는 추상 명사는, 그 어원에 있어, "구하다"(save)에 기인하여 파생된 명사임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무슨 이유로, 꺼꾸로, 이 추상 명사의 파생어들로서 "구원하다", "구원을 받다" 등의 동사들을 번역 용어들로서 사용함으로써, 우리말로 번역이 된 성경 본문을 읽는 보통 수준의 독자들이, (i)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다수의 기적(miracles)들에 의하여 베풀어진 "일시적 구원들"(temporal salvations)과, 다른 한편으로, (ii) 소위 말하는, 종말론적인 "영원한 구원"(eternal salvation)을 분명하게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시도하였는지요??? 

 

[내용 추가 일자: 2020년 10월 20일] 

3. 유관 사료 분석 III

 

연대순에 있어 거슬러 올라가면서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3-1. 다음은, 한기근 신부님에 의하여 번역되어 1907년에 초간된 우리말본 "예수진교4패"에서 발췌한 바인데, "구원"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가 사용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출처: 우리말본 예수진교4패

(발췌 시작)

구원_in_사도행전15_1_1907_우리말본_예수진교4패_제25b쪽.jpg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3-1: 다음에 발췌된 바는, 바로 위에 발췌된 우리말본 "예수진교4패"의 번역 대본인, 프랑스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의 동중화 신부님(1854-1936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905년에 초간된, 한문본 "야소진교4패" 중의 유관 부분인데, 한자 표현 "得救"(득구)가 우리말본 "예수진교4패"에서 "구원을 얻다"로 번역되었음을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54-1936_동중화/1905_야소진교4패.htm  

(발췌 시작)

득구_in_사도행전15_1_1905_야소진교4패_제11쪽.jpg

(이상, 발췌 끝)

 

3-2. 그리고, 일본에서, (i) 1888년에 출판된 제4판, Hepburn(1815-1911년)의 "화영영화어림집성"(ii) 1896년에 출판된 "화영대사전", 이들 둘 다에, "救援"이라는 단어가 없음을 필자가 확인하였습니다.

 

(이 글의 결론 1) 영어로 "salvation"으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의 번역 용어로서 "救援"(구원)이라는 명사가 일본에서, 아무리 빠르더라도, 19세기 말까지 사용되지 않았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3. 다음은, 1880년에 일본 요코하마에서 초간된 "한불자전"에서 발췌한 바인데,

(i) "구완(救)하다""구원(救援)하다" 둘 다가 표제어들로서 수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고, 그리고

(ii) 이들 둘 다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음을 또한 확인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30-1884_리델/1880_한불자전.htm <----- 여기를 클릭하면


필자가 어렵게 확보하여 제공하는 [제공처: 분당골 가톨릭 문서 선교 홈페이지 capax Dei], 예를 들어, 우리말 고어체 표기의 변천과정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 제공자가 없어서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서 전혀 구할 수 없었던, "한불자전 전문 pdf"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구완救_구원救援_in_1880_한불자전_제203쪽.jpg

(이상, 발췌 끝)

 

3-4. 따라서. 이번 항에서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들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2) 당시에, 우리나라, 중국, 그리고 일본 요코하마 등에 머물면서 "한불자전"을 마련하여 출판한 분들이, 우리나라 조선 안에서 한자 단어 "救"(주: 요즈음 음값으로, "구원할" 구)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구완하다"라는 우리말 표기가 기 사용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나서, "구완"에서 "완"이 나타내는 한자 낱글자가 ""일 것이라고 추정한 후에,(*1) "구원(救援)"이라는 명사에 "-하다"라는 접미사를 붙인 "구원(救)하다"라는 우리말 신조어 단어를 처음으로/최초로 만들어,(*2) "한불자전"에, "구완()하다" 바로 다음에. 한 개의 표제어로서 또한 수록하였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

(*1) 게시자 주: (1) 바로 이 추정의 타당성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북경 관화 발음(Mandarin)이 "yuán"임에 의하여 뒷받침된다는 생각이다:

 

출처 1: https://ctext.org/dictionary.pl?if=en&char=%E6%8F%B4 

출처 2: https://ctext.org/dictionary.pl?if=en&reading=yu%C3%A1n&method=pinyin (12 strokes)

 

(2) 그리고 더 나아가, 또한 바로 이 추정의 타당성은, 예를 들어, 다음에 발췌된, 1912년에 출판된 Herbert Giles(1845-1935년)의 "A Chinese-English Dictionary"에 제시된 중국어 방언 음값 설명들에 의하여 뒷받침된다는 생각이다:

 

출처: Giles의 "A Chinese-English Dictionary"

(발췌 시작)

완_원援_in_1912_Giles_Chinese_English_Dictionary_제1700-17011쪽.jpg

 

게시자 주: 위에서, 특히 "북경 관화" 발음이 "yüan"이라고 밝히고 있음에 또한 주목하라:

 

R = 패문운부

C = Cantonese (광동)

H = Hakka (객가)

F = Foochow

W = Wênchow

N = Ningpo (영포)

P = Peking (북경),

M = Mid_China,

Y = Yanchow

Sz = Ssuch'uan (四川, 사천)

K = Korean,

J = Japanese

A = Annamese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45-1935_Herbert_Giles/방언들에_대한_안내_in_1912_Giles_Chinese-English_dictionary_2nd_Ed_권1_제xii쪽.jpg <----- 필독 권고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45-1935_Herbert_Giles/방언들에_대한_음값표_in_1912_Giles_Chinese-English_dictionary_2nd_Ed_권1_제xvii-xviii쪽.jpg <----- 필독 권고

(이상, 발췌 끝)

 

(*2) 게시자 주: 그러니까, 동사 "救"(구하다)가, 우리나라에서 "구완할 구" 혹은 "구원할 구"로 읽히다가, 동사 "救"(구하다)의 한 개의 파생어 명사인 "구원(救)"이라는 명사의 또다른 한 개의 파생어로서, 정확하게 동사 "救"(구하다)의 의미를 가지는, "구원(救)하다"라는, 참으로 논리적으로 악순환(logically vicious circle/cycle)인 얼토당토 않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입니다. 

-----

 

(이 글의 결론 3) 우리말 표기 "구완하다"에서 "구완"이 순수한 우리말이 아님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4) 동사 "救"(구하다, save, rescue)가, 우리나라 조선에서, 참으로 기이하게도, 이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과정에 이 낱글자 "救"가 사용되고 있는, "구완할 구" 혹은 "구원할 구"로 읽히다가, 동사 "救"(구하다)의 한 개의, 제1차적, 파생어 명사인 "구원(救援, salvation)"이라는 명사의 또다른, 한 개의, 제2차적, 파생어로서, 그러나 정확하게 동사 "救"(구하다, save, rescue)와 자구적으로(literally) 동일한 의미를 가지는, "구원(救)하다"(save, rescue)라는, 참으로 논리적으로 악순환(logically vicious circle/cycle)인 얼토당토 않는, 신조어 한 개우리나라 조선에서 만들어졌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 글의 결론 5) (질문 1 및 질문 2에 대한 답변) 만약에 본글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한 바를, 최근에 이르기까지, 우리말로의 성경 번역 작업에 참여한 분들이 제대로 알고 있었더라면(가정법 과거 완료), 성경 본문의 우리말로의 번역 과정에서 야기되어 흐르는 세월 속에서 점점 더  퍼지고 있는, 본글의 질문 1질문 2에서 지적한, 변별력 상실의 문제점들은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3-4: 바로 위에 있는 (이 글의 결론 4)에서 지적하고 있는 논리적으로 악순환(logically vicious circle/cycle)의 문제점은,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는, 한자 자전에 수록된 "倨慢"(거만)이라는 단어에서, 이 단어의 구성 성분으로 사용되고 있는 낱글자 "倨"와 낱글자 "慢"의 의미를 각각 설명하면서, "거만할 거", "거만할 만"이라고 하고 있으니, 어떻게 "倨慢"(거만)이라는 한자 단어의 의미를 독자들이 제대로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겠는지요???

https://hanja.dict.naver.com/word?q=%E5%80%A8%E6%85%A2&cp_code=0&sound_id=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지금 지적한 종류의 문제점의 심각성에 대한 또다른 예(example)를 다루고 있는 졸글/논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2.htm <----- 필독 권고

[이상, 2020년 10월 20일자 내용 추가 끝]

 

작성 중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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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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