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가해 연중 제25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가연중2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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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8 ㅣ No.2103

 

[내용 추가 일자: 2023년 9월 23일] 

게시자 주 1: (1) 오늘의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게시자 주 2 다음에 있습니다.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3.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41.htm <----- 필히 시청 요망

 

"KF94 마스크 미착용, 착용 시의 커다란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실험 동영상들 - 오미크론 출현 이전인 2021년 10월 14일에 확보한 자료들임" 제목의 졸글에 추가된 중요한 방역 수칙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2: [첫 공지 일자: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

(1) [PC 혹은 노트북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바로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New American Bible (NAB)에서 발췌된 오늘의 영어 전례성경 본문(즉,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들을, 화답송 등과 함께, 청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제(2)항 으로 이동하여 안내대로 하십시오.][원 출처: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http://ch.catholic.or.kr/pundang/4/cbs/Cycle_A/Ordinary/a_ot_25_mp3 <----- 여기를 클릭하라  


[스마트폰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i) 위의 주소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가만히 있으면 가지게 되는 작은 메뉴판 한 개에서, 다른 브라우저로 열기를 선택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ii) 사용 중인 스마트폰에 이미 열려있는 본글의 브라우저를 찾아서 거기로 이동한 후에,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있는 주소를 누르면,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06년 12월 10일(다해 대림 제2주일)부터 지금까지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안내된 English Bible Study 까페[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영어 성경공부 자료실]에서 필자가 지속적으로 전달 제공해온 자료이므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1)항에서 듣게 되는 NAB에서 발췌된 영어 전례성경 본문들 등을 또한 눈으로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lub.catholic.or.kr/community/asp/club/attboard/read.asp?type=attboard&schcode=pundang4biblestudy&seq=8&id=1288 <----- 또한 필독 권고   

 

이것도 또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바로 위에 제(1)항제(2)항 제공의 정보들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함께 활용하면, 영어 듣기 및 읽기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 끝) 

[이상, 2023년 9월 23일자 내용 추가 끝]

 

 

가해 연중 제25주일 온라인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청취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27/가해연중제25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聽取) 혹은 시청(視聽)하십시오 

[오류 바로잡음: 1:16:08 에서 잘못 말씀드린 "교수형"(絞首刑, hanging) "참수형"(斬首刑, decapitation)으로 바로잡습니다. 바오로는 로마의 옛 성벽 바깥에 위치한 한 장소에서, 로마시민권자이기에 십자가형에 처해지지 않고, 참수형(斬首刑, decapitation)으로 순교하였으며, 심지어 그의 머리가 땅에 떨어져 세 번 튄 각 자리들에서 셈들이 솟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San_Paolo_alle_Tre_Fontane]

가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 II, 가톨릭출판사, 2008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3.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복습 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새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복습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복습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복습 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복습 7: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제시된 '애덕'(chari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제목: 애덕(charity)이라는 덕; 게시일자: 2013-11-04]을 학습할 수 있다[본문 중에 포함된 key word: Christoph Cardinal Schönborn]: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복습 8: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erfection.htm

 

복습 9: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heart), 즉, 성체 성혈에 의하여 구약 성경의 유관 예언들이 구현된 그리스도교 고유한 구속/속량(Redemption) 신비와 관련하여,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유관 부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성경 용어인 ‘Cor/heart’을,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대신에, ‘마음’(mind)으로 잘못 번역을 한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필자의 졸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9,28; 이사야서 53,12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히브리서 10,7; 칠십인역 시편 40,6-8[7-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3.htm 

[제목: 칠십인 역 시편 40,6-8 및 히브리서 10,5-7: 을 마련해 주셨다 vs 대중 라틴말본 및 마소라본 시편 40,7-9: 귀를 열어 주셨다???; 게시일자: 2020-06-15]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tue.htm

 

히브리서 10,12; 시편 110,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히브리서 10,17; 예레미야 31,33-34: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1.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느님께서 접촉하시는 우리의 신체 부위는 어디?; 게시일자: 2015-01-0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6.htm <----- 필독 권고

[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의 우리말 번역 작업 자체가 해석/주해 작업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게시일자: 2015-02-17]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8.htm 

 

복습 1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에서, (i) 성부 하느님의 계시, (ii) 구속/속량 신비, 그리고 (iii)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신비로 구성된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신비/오적(奧跡)(mysteries)들에 공통인 특징들 중의 하나인,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 상태, 즉, ‘코스모스(cosmos)’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개시된, 성경 용어인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새 창조’의 핵심 성경 용어인 'recapitulation/recapitulatio'의 차용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총귀(總歸)’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5.htm 

(이상, 복습 끝) 

 

 

<가연중25주일> 가해 연중 제25주일  

 

이사야 55,6-9; 마태오 복음서 20,1-16; 필리피 1,20ㄷ-24.27ㄱ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 II, 제303-314쪽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이사야 55,8)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질투하는(envious) 것이오?" (마태오 복음서 20,13-15).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 (필리피 1,23-24).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A.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신성적 은총’(divine grace), 즉, ‘은총’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청/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race_2343.htm <----- 꼭 필청/필독 권고

 

B.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the district of Judea across the Jordan)이 어디를 말하는지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요르단_강_273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81.htm <----- 필독 권고

 

(ii) 요세푸스의 Antiquities of the Jews(18.5.2 §119)에 의하면, 사해 동쪽 중앙 해변 근처의 황량한 모압(Moab) 언덕에 위치하는 헤로데 대왕에 의하여 건설된 마케루스(Machaerus) 요새에 세례자 요한이 갇혔던 감옥이 있었다.  

 

C.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세례자 요한이 왜 죽임을 당하게 되었는지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청/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헤로데_대왕의_가계도_설명_2859.htm <----- 꼭 필청/필독 권고

 

D. (a) 예수님과 당신의 교회와의 관계의 상태의 성경 근거로서 강생하신 하느님이신 예수님의 명확한 가르침인 ‘혼인의 불가해소성’(b) 공동체(community)/운명공동체/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 1910년경에 처음으로 등장한 용어)의 최소 단위를 말하는 ‘성가정’이,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에 주목하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가정'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청/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892.htm [주: 가해 성가정 축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E.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해 연중 제6주일 복음 말씀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ot_6.htm

 

F.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영성 신학 등에 있어 가장 중요한(the most important),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의 핵심(core)인, 초자연적 상태를 나타내는, ‘천국’(天國), 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출처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천당’(天堂, heaven)‘천국’(天國, the kingdom of heaven)옛말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면서, 필독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concept_errors.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translation_errors.htm <----- 필독 권고
[주: 바로 위의 주소를 클릭한 후에, [꼭필독] 라벨이 붙은 글들을 꼭 필독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dom_of_heaven.htm <----- 필독 권고

 

G.

(i) 다음은 ‘성가정’의 정의(definition)이다:

 

성가정(holy family, 聖家庭)이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경의(敬意)/존중(尊重)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충실한/충실이라는 관계 안에 있는 애덕(love of piety/pious love)의 실천으로 충만한 가정(家庭)을 말한다.

 

여기서, 주님이신 예수님의 새 계명에서 말해지고 있는 애덕의 실천을 위하여, 상대방의 결함들을, 먼저 잘 파악하고 그리고, 중심 이동을 하여, 상대방의 입장에서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함이 필수적임을 또한 잊지 말라.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가정’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학습할 수 있다. 필정/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love_of_piety_2892.htm <----- 필독 권고

 

H.

(i) 인간에 대한 네 개의 주요 덕들, 즉 사추덕(four cardinal virtues)들 중의 하나인 정의(justice, 의덕)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정의(definition)와 참고 자료들은 가해 연중 제17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에 주어져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집(CCCC) 제381항 및 각주들을 학습하라.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용어인 ‘정의’(justice)의 정의(definition)와 적용 예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청/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justice_2367.htm <----- 필청/필독 권고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영어로 ‘piety’로 번역되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그 적용 예들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청/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iety의_의미는_경의_혹은_존중과_함께_당연한_의무들에_대한_충실이다_2834.htm <----- 꼭 필청/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J.
(i)
바로 이 질투 때문에(out of envy) 이들 첫째가 이 포도밭의 주인인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 십자가형을 받게 하였던 것이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학습할 수 있는, 가해 수난 성지 주일 복음 말씀(마태오 26,14-27,66)에 포함되는, 동일한 번역 오류가 있는, 마태오 복음서 27,18을 또한 필히 참조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jealousy_vs_envy_3103.htm <----- 꼭 필청/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칠죄종(seven capital sins)들 중의 하나인 ‘질투(envy)’와 칠죄종들에 포함되지 않는 ‘시기(jealousy, 의심하고 꺼림)’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시기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질투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필청/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10.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jealousy_vs_envy_2668.htm

 

K.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정의’(情意, affection)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성경_및_교리_용어_affection은_애정으로_번역되지_말아야_한다_3156.htm <----- 필청/필독 권고

 

L. 죽음(death)에 대한 정의(definition)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대축일(9월20일) 제1독서 본문 해설 및 각주에 있다.

 

M.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4개의 핵심 문헌들 중의 한 개인 “인류의 빛”(Lumen Gentium) 제5항‘그리스도의 복음’이란 곧 지상에 ‘하느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God)를 말한다고 가르친다. 여기서 번역 용어인 ‘나라’(kingdom)‘통치’를 의미함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청/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com_of_God_2548.htm <----- 꼭 필청/필독 권고

 

N. ‘하느님 앞에 있는 신분/지위’란 곧 ‘현실유’(actual being), 즉, ‘존재’(existence)를 말한다.

 

O.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한 인격이 ‘그리스도와 통공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그리스도의 계명들을 준수함’임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청/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예수님과의_통공의_필요충분조건은_예수님의_계명들을_지키는_것이다_3086.htm <----- 꼭 필청/필독 권고

 

 

P.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독서들에 대한 해설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ot_25.htm <----- 필독 권고 

 

Q.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a_ot_25.htm <----- 전문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Way" is a word that recurs very frequently in the Bible, and is explicitly or implicitly present in this Sunday’s liturgy. First of all, there is the way of man. "They grumbled at the householder, saying, These last worked only one hour, and you have made them equal to us who have born the burden of the day and the scorching heat" (Mt 20: 11-12). Then there is the way of God, "Friend, I am doing you no wrong; did you not agree with me for a denarius? Take what belongs to you and go; I choose to give to this last as I give to you. Am I not allowed to do what I choose with what belongs to me? Or do you begrudge my generosity" (Mt 20: 13-15). This is why, in the first reading we read: "For my thoughts are not your thoughts, neither are your ways my ways" (Is 55: 8). Finally, the way of the Christian is shown to us by Paul: "I am hard pressed between the two. My desire is to depart and be with Christ, for that is far better. But to remain in the flesh is more necessary on your account" (Phil 1: 23-24). The way of the Christian is that of the will of God as it is made manifest over time.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권도"(權道)/"방식"/"방도"(方道)/"길"/"도"()/"도리"(道理)(way)는 성경에서 매우 자주 상기되는(recurs) 한 개의 단어이며, 그리고 바로 이 주일의 전례 안에 분명하게 혹은 암시적으로 현존합니다(is present). 무엇보다도 먼저, 다음과 같은 사람의 방식이 있습니다: "그들은 밭 임자에게 투덜거리면서,  ‘맨 나중에 온 저자들은 한 시간만 일했는데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고생한 우리와 똑같이 대우하시는군요.’ 하고 말하였다." (마태오 복음서 20,11-12). 그러고나서 다음과 같은 하느님의 방식이 있습니다: "친구여, 내가 당신에게 불의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오.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 당신 품삯이나 받아서 돌아가시오. 나는 맨 나중에 온 이 사람에게도 당신에게처럼 품삯을 주고 싶소. 내 것을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아니면, 내가 후하다고 해서 질투하는(envious) 것이오?" (마태오 복음서 20,13-15). 바로 이것이 오늘의 제1독서에서 우리가 다음을 읽는 이유입니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이사야 55,8). 최종적으로, 그리스도인의 방식은 바오로에 의하여 우리들에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여 있습니다. 나의 바람은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편이 훨씬 낫습니다. 그러나 내가 이 육신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이 여러분에게는 더 필요합니다." (필리피 1,23-24). 그리스도인의 방식은, 그것이 점차적으로(over time)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듯이, 하느님의 의지(the will of God)의 바로 그 방식입니다.  

 

DOCTRinal MESSAGE

The way of man.
As humans, we are accustomed to thinking of our inter-personal relations in terms of a contract and of commutative justice. Certainly, this occurs in employment relations, where the worker by contract exchanges his labor for a wage. However, people apply these categories to their relationship with God – relations based on a contract, on merit, on justice! In the face of this situation, in today’s liturgy, God tells the person who thinks he is right, "You are wrong. My relations with individuals is not those of an employer, nor are your relations with me those of an employee." God is not unjust. He goes beyond justice – "For as the heavens are higher than the earth, so are my ways higher than your ways" (Is 55: 9). Here the freedom of love and goodness prevail. The "just" man is disconcerted by this divine way of acting and feels the grip of envy. This means that he has not undertaken the way of God, the way of freedom and goodness of the Father. He will have to change his mentality, to make the transition from being "just" to being justified.

The way of God. "Just" is certainly one of adjectives attributed to God, but this is not the way chosen by God in his relations people in history. Furthermore, Revelation speaks of the "justice of God," not in commutative, but rather in salvific terms: God is just insofar as he justifies us, saves us from our sins and redeems us through his Son. His justice alters our justice, because it is impregnated with love and goodness. How far God’s justice is from mere contractual justice! This is why, the final phrase of the text of the Gospel is disquieting for some and comforting for others. "Thus the last will be first, and the first, last." Those that seek commutative justice in their relationship with God will be last in the Kingdom of God, while those that let salvific justice act in their life will be first. Such are the ways of God, so distant and different from our own!

 

The way of the Christian. Paul is the symbol and figure of one who has been conquered by Christ, the figure of a genuine Christian. Like Jesus Christ, Paul has made the will of God the way of his existence. This is why he does not have "personal ways," but rather lets God manifest his will to him in the events of each day. While his wish would be to die and be with Christ, his mission is such that he feels called to continue living to preach the Gospel. He does not choose. He lets God show him the way, whatever it may be, and he is ready to follow that way with promptness and joy. A Christian does not have "his own way." It is God who opens up the way to him, day after day.

(이상, 발췌 및 일부 분장들의 우리말 번역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347. 혼배성사에 중대하게 반하는 죄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CCC 1645-1648

 

간통(adultery)과 일부다처(혹은 일처다부, polygamy)는 혼배 성사(sacrament of matrimony)에 반하는데, 이것은 이들이 사람(man)과 여자(woman)의 동등한 존엄과 그리고 혼인한 사랑의 일치 및 독점성에 모순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죄들은, 부부애(conjugal love)로부터 자녀들이라는 선물을 빼앗아 버리는 자신의 출산 가능성에 대한 고의적인 거부와 혼인의 불가해소성(indissolubility)에 반하여 나아가는, 이혼을 포함합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25_c1645.htm

 

CCCC 349. 이혼을 한 후에 재혼한 사람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은 무엇입니까?
CCC 1650-1651, 1665

 

교회는, 주님께 충실하므로, 민법상(civilly) 이혼을 한 이후에 재혼을 한 사람들의 결합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혼인하면, 그 아내를 두고 간음하는 것이다. 또한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혼인하여도 간음하는 것이다.”(마르코 복음서 10,11-12). 교회는 그러한 사람들을 향하여 세심한 염려를 분명히 나타내며 그리고 믿음의 삶, 기도의 삶, 애덕의 일(works of charity)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에 대하여 그리스도인 교육을 하는 삶을 살기를 격려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법을 객관적인 견지에서 위반한 그들의 사정이 지속되는 한, 그들은 고해성사(sacramental absolution)를 받을 수 없고, 영성체를 할 수 없으며, 그리고 교회의 일부 책무(responsibilities)들도 수행할 수 없습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25_c1650.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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