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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다주님수난성지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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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08 ㅣ No.2410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410.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묵상 동영상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4/다해주님수난성지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聽取) 혹은 시청(視聽)하십시오  

가해/나해/다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묵상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해 I, 가톨릭출판사, 2009년.

묵상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410.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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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0/다해사순제2주일.mp4 <----- 복습 0부터 복습 3까지 매우 간략한 복습: 01:05-10:33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12:18-12:48에서 기억에 의존하여 말씀드린 바는 오류가 분명합니다. 창세기 17,5를 꼭 참조하십시오]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views_0-3_2377.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1:05-10:33 [즉, 01분05초-10분33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views_0-3_2377" 

 

복습 0: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미 그리스도인들인 새 교우/세례 준비자(Catechumens)들을 위한 세례명 선정 안내의 글[제목: 축일표에 따른 성인, 성녀 모음으로 바로가기.. [세례명 선정시 꼭 참고]; 게시일자: 2003-03-08]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0.htm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 필독 권고

 

복습 1: 다해 대림 제3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7/다해대림제3주일.mp4 18:01-19:50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alism_2317.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다해 대림 제3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8:01-19:50[즉, 18분01초-19분50초]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alism_2317"]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학습 시에 필수적인 "실재론(realism)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실재론을 인정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그리스도교 부활 신앙 등을 인정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8.htm <----- 필독 권고

 

복습 2: 나해 연중 제3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2:38[즉, 32분38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iety"][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iety_2301.htm]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한문 문화권 안에는 없는 개념인 것으로 파악되기에,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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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3/다해사순제5주일.mp4 <----- 의로움/올바름의 근거인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된 올바름: 03:08-04:20-05:37; 10:31-14:30; 47:26-51;15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22:09에서 "오는 성금요일"은 "오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로 바로잡습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0-08-01]을 참조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ctitude_2401.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3:08-04:20-05:37; 10:31-14:30; 47:26-51;15 [즉, 03분08초-04분20초-05분37초; 10분31초-14분30초; 47분26초-51분15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ctitude_2401"]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受容)된 올바름’(rectitude), 즉,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영원한 법에 순응/부합하는, 마지막 끝 쪽으로 최적의 방향성 및 기울어짐과 함께 움직이도록 (어떤 방식, 시간, 혹은 정도에 있어) 합당하게 명해지고 있는 바(that which is being duly ordered to the last end, conforming to the eternal law)의 수용(受容)이라는 올바름"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제1689번 글 및 제1690번 글의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titude.htm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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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4/다해연중제4주일.mp4 <----- 시기(jealousy), 질투(envy): 15:48-16:48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234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5:48-16:48 [즉, 15분48초-16분48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envy_2340"]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칠죄종들에 포함되지 않는 "시기"(jealousy)와,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질투"(envy)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시기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질투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으며,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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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6: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 필독 권고

 

(ii) 교의적으로 ‘하느님의 외 아드님(성자, Son of God)’ = ‘(유일하신) 말씀(the Word)’ = ‘(영원한) 지혜(eternal Wisdom)’ = ‘로고스(Logos)’이 성립함에 대한 설명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예수 성탄 대축일(낮) 복음 말씀(요한 복음서 1,1-18) 해설의 각주에 주어져 있으니 참고하라. 혹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27.htm <----- 필독 권고 

 

복습 7: (i)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은 곧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를 말한다(LG 5).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iii)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영성 신학 등에 있어 가장 중요한(the most important),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의 핵심(core)인, 초자연적 상태를 나타내는, ‘천국’(天國), 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출처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천당’(天堂, heaven)은 ‘천국’(天國, the kingdom of heaven)의 옛말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면서, 필독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4.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concept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translation_errors.htm <----- 여기를 클릭한 후에, [꼭필독] 라벨이 붙은 글들을 꼭 필독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dom_of_heaven.htm

 

(iv)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시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혹은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영어로 ‘the kingdom of God’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가, 1704년 혹은 그 이전의 시기에, 이미 ‘神國’(신국)으로 번역되었고,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神國’이 우리말 표현 ‘하느님의 나라’로 번역되었는데, 그러나, 왜냐하면 그 자구적 의미에 있어 통치의 개념이 곧바로 연상되지 않는, ‘國’(나라 국) 낱글자가 번역 용어인 ‘神國’(신국)에서 사용된 것이 참으로 유감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다.

 

(v) 다른 한편으로, ‘kingdom’, 즉, ‘regnum‘이, 어원적으로, ‘king’(임금) + ‘dominion’(통치), 즉, ‘king‘s dominion’(임금의 통치)를 의미하므로, 예수님께서 지상에 개시((開始)하신(inaugurates) ’하늘 나라‘, 즉, ’하느님의 나라‘, ‘國’(나라 국) 낱글자 때문에 연상하게 되는 장소의 개념이 아닌, 원 성경 용어의 의미인, 지상에 있는 [진리 그자체인(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55항)] 하느님이라는 임금의 통치‘(the reign of God)로 이해하면 훨씬 더 쉽게 이해됨에 반드시 주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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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3/다해사순제5주일.mp4 <----- 구속/속량(redemption)은 구원(salvation)과 결코 논리적으로 등가인 개념이 아님: 07:10-08:40; 21:03-22:16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22:09에서 "오는 성금요일"은 "오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로 바로잡습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0-08-01]을 참조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demption_2401.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7:10-08:40; 21:03-22:16 [즉, 07분10초-08분40초; 21분03초-22분16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demption_2401"]     

복습 8: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구속(救贖)/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demption_2303.htm <----- 필청/필독 권고 


(ii) 요한 복음서 6,27에서, ‘인장’(seal, 印章) 대신에, ‘인정’ 운운한 것은 번역 오류가 분명하다는 생각이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석 성경”의 각주에서 이 번역 오류를 바로잡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htm <----- 꼭 필독 권고

 

(iii) 바로 이 심각한 번역 오류와 관련하여, 본 해설서의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에 포함되는 (a) 에페소서 3,40에서 성 바오로가 가르치는 바 그리고 (b) 이에 대한 해설을 꼭 학습하도록 하라. 그리고 (c)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요한 복음서 6,27; 2코린토 1,22; 에페소 1,13; 4,30을 그 성경 근거들로 제시하는, ‘인호(印號, seal)’에 대한 가르침인,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698항을 학습할 수 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698.htm <----- 필독 권고 

출처 2: https://cbck.or.kr/Documents/Catechism/Read/698 <----- 필독 권고 

 

(iv)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경우에, 성세성사(the sacrament of Baptism)에서 처음으로 ‘인호(印號, seal)’를 받음의 교의 신학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혜택을 지속적으로 입기 위함이며(에페소서 4,30), 그리고 이것은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이신, 즉, 강생하신 거룩한 말씀이신, 즉, 성부 하느님과 인류 사이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이신, 예수님의 인성(人性, humanity)(요한 복음서 6,27) 및 피조물인 세례를 받는 자의 인성(人性, humanity)(에페소서 4,30),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이 새겨짐이라는 성경 내용에 근거하고 있다.

 

(v) 성세성사, 견진성사, 신품성사를 받는 자들의 영혼(souls)들에 바로 이 인장(seals, 印章)들의 새겨짐, 즉, 성사의 인호(印號)(sacramental characters)들이 박힘에 의하여,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즉, ‘영성’(靈性, spirituality)을 우리가 받아들이게 되어, 그리하여 그 결과 '새 인간'/'새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에페소서 4,24의 가르침뿐만이 아니라, '새 인간'/'새 사람'이라는 상태의 유지가, 예수님의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위업의 지속적인 결과로서, 가능할 수도 있게 되었음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본 해설서의 나해 연중 제19주일 제2독서 해설의 일부로서 발췌된 에페소서 4,30에 대한 성 예로니모의 해설을 반드시 학습하고, 또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227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272항, 제1273항, 제1274항을 학습하도록 하라.

 

(v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혼’이 그 형상(form)인 인간의 형상인(formal cause)인 ‘imago Dei’(하느님의 모습) 그리고 ‘영성’(靈性, spirituality)이라는 대응하는 번역 용어의 출처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92.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apax_Dei.htm <----- 필독 권고 

 

(v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은, 즉, 대세(代洗, private baptism)가 아닌, 세례 인호(印號, seal)가 포함된 장엄 세례(solemn baptism)를 받은, 그리스도인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통공(communio, 하나 됨)’의 필요충분조건‘예수님의 계명의 준수’임을 증명하는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55.htm <----- 필독 권고 

 

(v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에 의한 기름부음 받는 세례를 받지 아니 한, 즉, 세례 인호(印號, seal)가 포함되지 않은, 따라서 대부분의 개신교회 측의 세례가 포함되는, 대세(代洗, private baptism)만을 받은 그리스도인’이 영성체를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_private_baptism.htm <----- 필독 권고 

 

(ix) 나해 연중 제3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sealed_character_2301.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55:22[즉, 55분22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sealed_character"]

 

(a) 여기서 말하는 ‘하느님과의 인격적(personal) 친밀한 대화’를 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바로,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아닌,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세례’(즉, 장엄 세례, solemn baptism)에서, 영혼(soul)을 그 형상(form)으로 가지고 있는 인간/사람이, 아담과 하와의 원죄의 결과로서 훼손된, 자신의 형상인(formal cause)을 완미하게(perfectly) 회복시켜야 함이며, 그리고 바로 이 형상인의 완미한 회복(perfect recovery)을 위하여, 주교(bishop)/사제(priest)/부제(deacon)에 의하여 세례를 받는 자의 영혼에 새겨지는 ‘인호’(印號, the sealed, character)를 받아야 함에 반드시 주목하라.

 

(b) 하느님께서 개입하시어 주관하시는 신성적(divine) 인과 관계의 지속적 형성에 있어, 인간/사람이,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아닌, ‘성령으로 기름부음받는 세례’(즉, 장엄 세례, solemn baptism)에서, 자신의 형상인을 완미하게(perfectly) 회복시켜야만 비로소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밀한 대화’에의 참여자 및 수혜자가 될 수도 있으며 그리하여 그 결과, 소위 말하는 자연계의 물리 법칙에서처럼 ‘공명 현상’(the phenomenon of resonance)이, 하느님과 사람/인간 사이에 ‘영적 공명 현상’(the phenomenon of spiritual resonanc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그리하여 그 결과, ‘하느님과의 인격적 친밀한 대화’라는 한 개의 기적(miracl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그리하여 그 결과, 또한 은총(grace)이라는 도움에 의하여 ‘악습(vices)들’이 ‘덕들’(virtues)로 교정되는 습관에 있어서의 변화가 발생하게 되어, 하느님 쪽으로 ‘회심’/‘윤리적으로 변화’(‘conversion‘ to God)라는 한 개의 윤리적 기적(a moral miacle)이 발생할 수도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이다.

 

(c)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유관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weakness_229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39_private_baptism.htm <----- 필독 권고

 

복습 9:

(i) 다음은,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서 발췌한 바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30-1884_리델/1880_한불자전.htm <----- 여기를 클릭하면


필자가 어렵게 확보하여 제공하는 [제공처: 분당골 가톨릭 문서 선교 홈페이지 capax Dei], 예를 들어, 우리말 고어체 표기의 변천과정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 제공자가 없어서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서 전혀 구할 수 없었던, "한불자전 전문 pdf"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셩셔_셩셰_셩심_셩신_in_1880_한불자전_제404쪽.jpg

 

게시자 주: "셩심"(聖心)을 프랑스어로 설명하면서, "마음"아니라, "Cœur" (심장; 라틴어: Cor)가 사용된 것에 반드시 주목하라.

(이상, 발췌 끝)

 

(ii)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heart), 즉, 성체 성혈에 의하여 구약 성경의 유관 예언들이 구현된 그리스도교 고유한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신비와 관련하여,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유관 부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성경 용어인 ‘Cor/heart’을,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대신에, ‘마음’(mind)으로 잘못 번역을 한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필자의 졸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9,28; 이사야서 53,12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히브리서 10,7; 칠십인역 시편 40,6-8[7-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3.htm 

[제목: 칠십인 역 시편 40,6-8 및 히브리서 10,5-7: 을 마련해 주셨다 vs 대중 라틴말본 및 마소라본 시편 40,7-9: 귀를 열어 주셨다???; 게시일자: 2020-06-15]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tue.htm

 

히브리서 10,12; 시편 110,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히브리서 10,17; 예레미야 31,33-34: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1.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느님께서 접촉하시는 우리의 신체 부위는 어디?; 게시일자: 2015-01-0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6.htm <----- 필독 권고

[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의 우리말 번역 작업 자체가 해석/주해 작업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게시일자: 2015-02-17]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8.htm  


복습 1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에서, (i) 성부 하느님의 계시, (ii) 구속(救贖)/속량 신비, 그리고 (iii)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신비로 구성된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신비/오적(奧跡)(mysteries)들에 공통인 특징들 중의 하나인,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 상태, 즉, ‘코스모스(cosmos)’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개시된, 성경 용어인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새 창조’의 핵심 성경 용어인 'recapitulation/recapitulatio'의 차용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총귀(總歸)’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5.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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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5/다해연중제5주일.mp4 <----- "은총"의 정의(definition): 12:00-12:41; 47:10-48:58; 50:50-56:06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04:11과 18:59에서 "팔삭둥이"로 잘못 읽은 것을, 교안 본문대로, "칠삭둥이"로 교체합니다. 그리고 18:59에서 "형이상학적"으로 잘못 읽은 것을, 교안 본문대로 "형이하학적"으로 교체합니다.]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race_2343.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2:00-12:41; 47:10-48:58; 50:50-56:06 [즉, 12분:00초-12분:41초; 47분:10초-48분:58초; 50분:50초-56분:06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grace_2343"]

 

복습 11: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고유한 번역 용어인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출처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2.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1.htm [출처]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race.htm  <----- 꼭 필독 권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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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3/다해사순제5주일.mp4 <-----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받으시는 영광은 단계적이고 예수님의 부활 시점에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더해지는 영광은 곧 '새 창조'의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 14:30-16:05; 51:15-52:26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22:09에서 "오는 성금요일"은 "오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로 바로잡습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0-08-01]을 참조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lory_2401.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4:30-16:05; 51:15-52:26 [즉, 14분30초-16분05초; 51분15초-52분26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glory_2401"] 

복습 12: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하느님의 영광이라는 번역 표현의 정의(definition),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i)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받으시는 영광(glory)이 단계적임과 (ii) 예수님의 부활 시점에 성부 하느님에 의하여 예수님께 더해지는 영광이 곧 ‘새 장조’의 매우 중요한 원리임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제 2017번 글을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glory_2343.htm <----- 꼭 필청/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8.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7.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lory.htm <----- 필독 권고

 

복습 13: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제시된 '애덕'(chari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제목: 애덕(charity)이라는 덕; 게시일자: 2013-11-04]을 학습할 수 있다[본문 중에 포함된 key word: Christoph Cardinal Schönborn]: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 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전통적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그리스도교(Christianity, 즉, 예수님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용어들인, 예수님의 새 계명의 이해에 필수적인, 오늘의 복음 말씀과 제2독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명사 ‘사랑’(love, agape, charitas, charity, amore)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 및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동사 ‘사랑하다’(to love, agapao, diligere, amor)의 자구적 어의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 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1.htm [가해 부활 제6주일 말씀전례 묵상]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47.htm [번역 용어인 사랑하다의 의미] <--- 꼭 제일 먼저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2.htm [사랑들의 차이점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08.htm [하느님의 뜻(의지, will)]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애덕(charity)이라는 덕(신학대전여행)]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5.htm   [사랑/애덕의 정의(definition) 외]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0.htm [하느님의 사랑]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0.htm [사랑의 의미는?]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37.htm [애덕의 결여/부재(cupiditas)는 모든 죄의 뿌리]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4.htm [Ubi caritas et amor 혹은 Ubi caritas est v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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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3/다해사순제5주일.mp4 <----- 필리피서 3,11에서 [그리스도교] 희망이란, 곧, 당사자인 나를 위한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을 말한다; 주관적 구속(subjective redemption)이란 무엇을 말할까?: 16:05-17:47; 47:26-52:26-54:46-57:09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22:09에서 "오는 성금요일"은 "오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로 바로잡습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0-08-01]을 참조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divine_love_for_myself_2401.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6:05-17:47; 47:26-52:26-54:46-57:09 [즉, 16분05초-17분47초; 47분26초-52분26초-54분46초-57분09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divine_love_for_myself_2401"]  

(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인성(人性)적 사랑(human love)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필리피서 3,11에서 바오로가 말하는 바로 이 초자연적 희망(hope, 망덕)이 당사자 자신을 위한 신성적 사랑(divine love)임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3.htm  
[3자들 사이의 자연적 사랑 dilectio 에만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이 가능하다] 

 

(iv)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들 용어들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에 대한 추가적인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ept_of_love.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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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14:

가. 나해 그리스도 왕 대축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4/나해그리스도왕대축일.mp4 [오류 정정: 이 동영상 중의 육성(肉聲) 설명에서, (i) 18:29-18:36[18분29초-18분36초] 사이에 말해진 "하스모니아 왕조""셀레우키드 왕조"로, (ii) 31:26-31:29[31분26초-31분29초] 사이에 말해진 "예수님께 제몰로"를, 교재 본문과 동일하게, "하느님께 제물로"로, 그리고 (iii) 33:50-35:23[33분50초-35분23초] 사이에 말해진 "순음력""태음력"으로, 바로 잡습니다. 참고 자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주일_전례성경_학습자들을_위한_입문자료_모음_2007-10-09.pdf]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_2305.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6:30-39:15[즉, 36분:30초-39분15초]를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 (*)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erfect_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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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해 연중 제32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02/나해연중제32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4:31[즉, 04분31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erfection"][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ion_2301.htm]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완미(完美)한(perfect) 것은 완전(完全)한(complete) 것이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erfection.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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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15: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의로움/올바름’(righteousness)‘정의’(justice)의 차이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묵상 동영상을 꼭 청취하도록 하라. 특히, ‘정의로운 자(the just)들’ 중에서만 오로지 ‘의로운 자(the righteous)들’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1.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45.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ii) ‘의로운 자들’(the righteous), 즉, ‘의인들’‘의로운 일들’(piety), 즉, ‘선행들’(good works)을 실천한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있을 수 있는데,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나열하신 ‘의로운 일들’, 즉, ‘선행들’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복습 16: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credere Deum’(信天主, 신천주), ‘credere Deo’(信賴天主, 신뢰천주), 그리고 ‘credere in Deum’(信仰天主, 신앙천주)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므로 필히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ii) 혹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믿다"(believe)"쪽으로 믿다"(believe in)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복습 17: (a) 영어 번역문들에서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형이상학적 의미가 잘 보존되도록 우리말로 직역 번역을 하고자 한다면, 천주교회가 이미 존재하는 지역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 역할(요한 복음서 14,6)이 알려진 지역에서, 다음의 인과 관계들이 성립함과 모순되지 않도록 번역되어야 함을 항상 유념하도록 하라:

(i)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믿는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신앙 고백을 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세례를 받는 자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입양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고, 그리고
(ii) 세례를 받은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장차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얻는 자들, 즉, 천상영복을 누리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인과 관계'라는 형이상학적 의미에 관한 용례(usage example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meaning_of_so_that_statement.htm <----- 필독 권고

 

복습 18: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기적’(miracle), ‘이적’(wonder). ‘표징’(sign)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9.htm <----- 필독 권고 

 

복습 19: [情(정, passion)과 욕정(欲情, lust)의 차이점]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정(情, passion)’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5.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assions.htm <----- 필독 권고

(이상, 복습 끝) 

 

복습 2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절망’/‘자포자기’(despair, hopelessness)이 포함되는, 성령에 거스르는 죄들 여섯 개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blasphemy2Holy_Spirit.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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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사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3/다해사순제5주일.mp4 <----- 그리스어 성경 용어인 '새'(new"의 두 가지 의미들: 06:37-07:10

[오류 바로잡음: 바로 위의 동영상 22:09에서 "오는 성금요일"은 "오는 주님 만찬 성목요일"로 바로잡습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0-08-01]을 참조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two_meanings_of_Greek_new_2401.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6:37-07:10 [즉, 06분37초-07분10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two_meanings_of_Greek_new_2401"]   

A.
복습 2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를 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그리고 우리말 등의 지역 언어들의 한계 때문에 동일하게 ‘새로운(nova, nouveau, new)’으로 번역되는, 그러나 동일한 의미를 결코 나타내지 않는, 두 개의 그리스어 단어들인 ‘새로운'(kainos, 카이노스)‘새로운'(neos, 네오스)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s)들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글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two_meanings_of_Greek_new_2387.htm <----- 필청/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ainos_vs_neos.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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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4/다해연중제4주일.mp4 <----- 교만(pride): 14:30-15:13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ride_234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4:30-15:13 [즉, 14분30초-15분13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ride_2340"]

 

복습 22: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용어인, 칠죄종들 중의 하나인, ‘교만’(pride)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ride.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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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연중 제4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14/다해연중제4주일.mp4 <----- 허영(vainglory): 15:13-15:48; 기적, 망망, 허영: 30:08-37:13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vainglory_234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5:13-15:48 30:08-37:13[즉, 15분13초-15분48초 30분:08초-37분:13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vainglory_2340"]

 

(ii) ‘교만’의 딸(daughters)들 중의 하나로서, 그 자체로는 소죄(venial sin)로 분류되는, ‘허영(vanity, vainglory)’의 정의(definition)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72_vainglory.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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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23: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의 공생활 전후 당시의 이스라엘의 지도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PalestineChristHR.jpg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the_journey_&_deeds_of_Jesus_&_scriptual_index.htm <----- 되도록 자주 참조하라

[주: 예수님의 공생활 당시의 행적들이, 4복음서들 중의 근거 구절들의 제시와 함께, 자세하게 표기된 지도임. 확대하여 보도록 하라. 다만, 1881년에 출판된 지도이다보니,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의 고향[벳사이다(Bethsaida)]의 위치 오류, "Coasts of Judea"(마태오 19,1; 마르코 10,1) 표기 오류 등의 오류들이 있음]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사도 베드로의 고향[벳사이다(Bethsaida)]의 위치를 고고학 고증를 거쳐 찾아내는 과정 등에 대한 글[제목: 요르단 건너편 유다 지방(마태오 19,1)??? 유다 지방과 요르단 건너편(마르코 10,1)???; 게시일자: 2021-10-02]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81.htm <----- 필독 권고

 

복습 24: 나해 연중 제30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99/나해연중제30주일.mp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1:00[즉, 11분00초]부터 잠깐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concupiscence"]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사욕편정’(慾偏情, concupiscence)이 죄가 아님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사악할 사; 주: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 수록된 옛 발음은 ) 낱글자를 사용하는 ‘慾偏情’이라는 한자표기는, 16세기 중반에 개최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단(heresy)으로 단죄된 마르틴 루터의 주장에 동의하여, 바로 이 ‘사욕편정’이 죄임을 말하기 때문에, 명백한 번역 오류임에 반드시 주목하라 [부제: 죄가 아닌, 죄 쪽으로 기울어지는 성향을 말하는, 사욕(私慾)/사욕편정(私慾偏情, concupiscence) 등에 대하여;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concupiscence_229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9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10.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6.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upiscenc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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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습 2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마태오 복음서 5,3; 루카 복음서 6,20에서, "복되도다" 혹은 "복되어라" 대신에, 1970년대"공동번역성서"에서 처음으로 도입된"행복하여랴!"로 번역된 표현이 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임을 지적하는 졸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blessed_are_2350.htm <----- 필독 권고

 

 

<다주님수난성지주일> 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입성 복음: 루카 복음서 19,28-40; 이사야 50,4-7; 루카 복음서 22,14-23,56; 필리피 2,6-11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 I, 제355-392쪽 

 

오늘의 입성 복음 중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 (루카 복음서 19,38)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이사야 50,5)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루카 복음서 22,19ㄴ.20ㄴ)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모든 혀는, 성부 하느님의 영광에 이르기까지(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필리피 2,11)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Lord_2410.htm <----- 필정/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Lord_3103.htm <----- 필정/필독 권고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술이부작(述而不作)하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오늘의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에서 교재 본문 중의 특정 내용들에 대한 추가 설명들이 주어지고 있는 부분들:

 

* 예루살렘 등 성지 순례 안내:05:17-06:04

* 대추야자나무(date palm)/종려나무 란? 06:04-06:47

* 파스카 저녁식사에서 먹었던 쓴나물에 대하여: 06:47- 07:13

* 최후의 만찬이 거행된 실제 날짜가 언제였을까?: 07:13-08:21; 50:14-51:24

* 직무 사제직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의 가르침: 08:21-08:41

* kingdom의 차용 번역 용어인 나라/國’(나라 국)에는 통치라는 의미가 보이지 않는 문제가 있다: 08:41-09:06

* 본시오 빌라도가 실존 인물이었는음을 고증하는 고고학 유물의 발견: 09:08-09:50

* piety(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09:50-10:40

* 비옥한 초승달: 10:40-10:59

* 오을의 독서들의 주제 및 교리 메시지; 11:00-12:14-25:38

* 완전하다와 완미하다의 커다란 차이점: 12:57-14:48;

* 하느님의 아드님: 14:50-15:40

* 구속자, 지성적으로 및 윤리적으로 변성하게 하시는 분, 지성덕, 윤리덕: 15:40-18:13

*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입문: 25:49-28:14

* 입성 복음 입문: 28:14-28:45

* 제1독서 입문: 34:25-34:44

* 가상칠언: 37:22-38:50 

* 제2독서 입문: 39:06-39:54

* 필리피서 2,11에 있는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 40:28-47:00-50:00

* 복음 말씀 입문 및 간략한 해설: 50:00-53:33

*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가르침: 52:40-53:12

* 3분 복음/교리 묵상: 53:33-56:28

 

A. 예수님께서 살리셨던 라자로의 무덤이 있는 장소인 베타니아에 대한 성지순례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Jerusalem_Bethany.htm

 

B. 예수 눈물 성당에 대한 성지순례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Jerusalem_DominusFlevit.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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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4/다해주님수난성지주일.mp4 <----- 대추야자나무(date palm)/종려나무 란? 06:04-06:47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date_palm_241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6:04-06:47 [즉, 06분04초-06분47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date_palm_2410"]  

C.

성경을 읽을 때에 우리는 야자나무(coconut palm)와 종려나무[date palm, Date, Phoenix dactylifera(학명), 대추야자나무]는 분명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다. 즉, 야자나무는 팔레스티나 지역에 자라지 않으나 성경에 등장하는 종려나무는 팔레스티나 지역에 오래 전부터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종려나무는 원산지가 일본 규슈로 알려진, 열매가 식용이 아닌, 종려나무(windmil palm, Trachycarpus excelsa)와는 다른 종려나무이며, 이 종려나무의 열매는 이집트 및 중동 지역에서 생산되는 중요한 과일들 중의 하나이다. 이 종려나무는, 이들이 생명을 주는(life-giving) 물, 즉, 오아시스 근처에 자라기에, 영원한 생명과 희망의 상징들이 되었다.

참고 자료 1: Food at the time of the Bible, pp. 41-43, Miriam Feinberg Vamosh, Palphot Ltd.

참고 자료 2: http://ch.catholic.or.kr/pundang/4/bible_food/date_palm.htm <----- 필독 권고 

참고 자료 3: http://ch.catholic.or.kr/pundang/4/fiatlux2000/windmill_palm.htm

 

D. 다음의 자료들을 또한 참고하면, 성경에 등장하는 다수의 식물들에 대하여 알 수 있다:

참고 자료 4: http://ch.catholic.or.kr/pundang/4/bible_food/plants_ppt.htm 

참고 자료 5: http://ch.catholic.or.kr/pundang/4/bible_food/plants_k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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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i)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의 제1독서는 매년 동일하며, 나해 연중 제24주일 제1독서(이사야 50,4ㄷ-9ㄱ)와 거의 동일하다. 그리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일치 정신에 따라 1969년에 개정된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이사야서의 네 개의 ‘고통 받는 종의 노래들’의 제1독서 발췌 현황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가해-I 주님 세례 축일 제1독서 입문의 각주 및 다음의 주소에 저속하면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palm.htm

 

(ii) 매년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제2독서(필리피 2,6-11)는, 제1독서와 마찬가지로, 동일하며, 가해 연중 제26주일 제2독서(필리피 2,11)에 포함된다.

 

(iii) 필리피서 2,6-11은 또한 매년 9월 14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제2독서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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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4/다해주님수난성지주일.mp4 <----- (클릭하십시오) 파스카 저녁식사에서 먹었던 쓴나물에 대하여: 06:47- 07:13

 

[안내: 우선적으로, 바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06:47- 07:13 [즉, 06분47초- 07분13]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쓴나물은_어떤_나물일까_2410"][본 화면을 갖게 하는 전달용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쓴나물은_어떤_나물일까_2410.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F.

(i) 다음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나해-I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 말씀(마르코 복음서 14,1-15,47)의 해설 중에 있는 이 쓴 나물에 대한 설명이다:

 

하로셋 소스(haroset saurce, 혹은 charoset sause)는 파스카(과월절) 밤 축제 동안에 주로 먹게 되는 과일과 견과류, 즉 껍질이 단단한 열매들로 만들어진(예를 들어, 호두 열매들과 사과들로 만들어진) 달콤하고, 검은 색깔의, 덩어리진 죽이다. 이 소스의 색깔과 구성(texture)은 그들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 벽돌들을 만들기 위하여 마련하였던 회반죽(mortar)을 상기하기로 되어있다. 이 소스는, 단독으로 먹는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을 찍어 먹는 소스로서, 쓴 나물을 찍어 먹었다. 여기서 쓴 나물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있는 동안에 그들이 참고 견디어 낸 고통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할 것이다. ‘charoset’ 단어는 ‘진흙(clay)’을 뜻하는 히브리 단어인 ‘cheres’로부터 유래한다.

 

(ii) 성 목요일 제1독서(탈출기 12,1-8.11-14) 해설과 다음의 자료와 이 자료에 있는 사진들을 또한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enc/charoset.htm 
 

G. 최후의 만찬이 거행되었던 위층 방에 대한 성지순례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Jerusalem_Upper_Room.htm

 

%%%%%%%%%%

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4/다해주님수난성지주일.mp4 <----- 최후의 만찬이 거행된 실제 날짜가 언제였을까?: 07:13-08:21; 50:14-51:24


[안내: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7:13-08:21; 50:14-51:24 [즉, 07분13초-08분21초; 50분14초-51분24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the_exact_day_of_Last_Supper_2410"][본 화면을 갖게 하는 전달용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the_exact_day_of_Last_Supper_2410.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H.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최후의 만찬’이 거행된 실제 날짜가 언제였는지에 대한 졸글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the_exact_day_of_Last_Supper_2305.htm <----- 꼭 필청/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루카 복음서 22,16; 22,18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03항의 가르침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46.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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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파스카 식사의 순서와 관련하여 다음의 지료를 또한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ce_Passover.htm

 

J.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매년 파스카 저녁 식사 및 초막절 등에서 불리는 ‘위대한 알렐/할렐’에 대하여 더 자세하게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78.htm

 

K.
(1)
다음은 직무 사제직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120항의 가르침이다:
 

CCC 1120 서품(敍品) 직무 또는“직무 사제직”은 세례로 받은 보편 사제직에 봉사한다. 서품 직무는 성사들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활동하고 계심을 보증한다. 성부께서 강생하신 성자께 맡기신 구원의 사명은 사도들에게 위임되었으며, 사도들을 통하여 그 후계자들에게 위임되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대신하여 일하도록 그분의 성령을 받는다. 이처럼 서품 직무는 사도들이 말하고 행한 것과 전례 행위를 연결하는 성사적인 끈이며, 사도들을 통하여 전례 행위를 성사의 근원이며 설립자이신 그리스도께서 말하고 행하신 것과 연결하는 끈이기도 하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1120.htm

 

(2) 다음은 직무 사제직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집(CCCC) 제336항의 가르침이다: 출처: 본 해설서 시리즈의 나해-II 연중 제26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336. 어떠한 권위를 가지고 사제 직무는 수행하게 되는지요?

CCC 1547-1553, 1592

 

서품을 받은 사제들은, 그들의 성별된 직무(sacred ministry)의 행사에 있어, 자신 고유의 권위에 따라서도 아니고, 심지어 공동체의 명령(mandate) 혹은 위임(delegation)에 의하여서도 아니며, 오로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위격(Person)으로 그리고 교회의 이름으로 말하고 행동합니다. 그러므로 ‘직무 사제직(ministerial priesthood)’은 열심 신자들 모두에게 공통인 ‘보편 사제직(평신도 사제직)’과는 단지 그 정도에 있어서 뿐만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른데, 이는 열심 신자들의 봉사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이 직무 사제직을 제정하셨기 때문입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ot_26_c1547.htm

 

(3) 직무 사제직은 예수님께서 신약 성경의 4복음서들에서 직접 말씀으로 명하였으나(요한 복음서 1,42; 마태오 복음서 16,18-19; 요한 복음서 21,15-17; 마태오 복음서 18,18), 보편 사제직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다(요한 묵시록 1,6; 5,9-10; 1베드로 2,4-10). 따라서 누구든지 보편 사제직을 언급할 경우에는 반드시 직무 사제직을 또한 언급하여야 할 것이다. 직무 사제직과 보편 사제직의 성경적 근거 및 이들의 차이점들에 대한 엮은이의 졸글은 다음에 있으니 읽어보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3.htm <----- 필독 권고 

 

L. 복습 7: (v) 

‘kingdom’이라는 단어로부터는 ‘왕의 통치(reign)’라는 의미가 드러나나, ‘나라’라는 단어로부터는 이러한 의미가 드러나지 않는 차이점이 있다는 생각이다. 이와 마찬가지 문제가, ‘kingdom of heaven’을 ‘하늘의 왕국’이 아닌 ‘하늘 나라(즉, 천국)’로 번역할 때에도 있다는 생각이다. ‘천당(heaven)’과 다른 개념인, 하느님 나라(Kindgom of God), 즉, 하늘 나라(Kingdom of heaven, 즉, 천국)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 해설서의 성탄 전야 제1독서(이사야 62,1-5) 해설의 각주를 참고하라.

 

M. 올리브 산에 대한 성지순례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Jerusalem_MountOlive.htm

 

N.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도를 하신 장소인 올리브 산의 겟세마니 동산에 세워진 대성당에 대한 성지순례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Jerusalem_Basilica_Agony.htm

 

O. 예수님께서 체포된 자리에 설립된 베드로 통곡 성당에 대한 성지순례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Jerusalem_Gallicantu.htm

 

P. 카야파 대사제의 집이 있었던 장소라고 전해지는 곳에 대한 성지순례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Jerusalem_ArmenianMountZion.htm
 

Q. ‘빌라도 법정’ 및 ‘채찍질 성당’에 대한 성지순례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Jerusalem_Flagellation.htm

 

R. 에돔(이두메아) 사람으로 매우 뛰어난 건축가였던 ‘유다인의 왕’으로 불렸던 헤로데 대왕이, 자신을 싫어하는 유다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기존의 항구 도시들을 거치지 않고 로마 제국과의 교역을 원활하게 유지할 목적 때문인 듯, 기원전 22-10년경에 새로 건설하여 로마 제국의 첫 황제인 아우구스투스(Augustus)에게 헌정한, 카이사리아 항구 도시에는 로마 원형 극장이 있는데 이 극장 근처에서 본시오 빌라도를 언급하는 돌판이 1961년에 발굴되었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성지순례 안내 및 다음의 기원후 1세기의 팔레스티나 지역의 약도를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ontius_Pilate_230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Caesarea_Pilate_Inscription.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palestine_nt_times.htm (약도)

 

S. 다음의 성지순례 안내를 참고하면, 헤로데 대왕이 기원전 40년경에 마사다(Masada)로 도피를 하였으며 그 이후에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유다인의 왕’으로 인정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Israel_Masada.htm

 

T. 헤로데 대왕과 그의 후손들에 대한 설명 및 자료는 본 해설서의 주님 공현 대축일 복음 말씀(마태오 복음서 2,1-12) 해설 및 각주에 있으니 참고하라.

 

U. 십자가의 길 제2처에 위치한 ‘저주와 십자가 짊어지심 경당’에 대한 성지순례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Jerusalem_Condemnation.htm

 

V. ‘십자가의 길’에 대한 성지순례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Jerusalem_ViaDolorosa.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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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4/다해주님수난성지주일.mp4 <----- piety(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09:50-10:40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iety_241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09:50-10:40 [즉, 09분50초-10분40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iety_2410"]   

W.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어로 ‘piety’[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iety_2301.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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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4/다해주님수난성지주일.mp4 <----- 가상칠언: 37:22-38:50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seven_words_on_the_cross_241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7:22-38:50  [즉, 37분22초-38분50초 ]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seven_words_on_the_cross_2410"]   

X.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상칠언’(架上七言)이라는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고유한 번역 용어의 출처 및 신약 4복음서들 중의 해당 절들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09.htm <----- 필독 권고 

 

%%%%%%%%%% 

Y. 예루살렘 성전의 지성소(Holy of Holies)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본 해설서의 부활 제3주일 제2독서(요한 묵시록 5,11-14) 해설을 참고하라.

 

Z. ‘생명을 주는 땅’은, 중동에 위치한 인류 문명의 4대 발상지들 중의 하나인, ‘비옥한 초승달(Fertile Crescent)’ 지역을 말할 것이다. 다음은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 대한 소개글(영문)이며, 이 글 중의 지도를 잘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예리코(Jerich)를 포함하여 사마리아 지역이 이 ‘비옥한 초승달’ 지역의 남쪽 끝 부분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bible_food/Fertile_Crescent.htm

 

2A. 중동의 ‘비옥한 초승달(Fertile Crescent)’ 지역이 원산지로 알려진 일년생 식물인 아마(flax)에 대한 소개글(영문)은 다음의 자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bible_food/flax.htm

 

2B. 예수 그리스도께서 묻히셨다 부활하신 무덤 위에 성녀 헬레나(St. Helena)에 의하여 처음 지어졌던 성묘 성당에 대한 성지순례 안내는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Jerusalem_Holy_Sepulcher.htm

 

2C.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나바르 성경 주석서에 제시된 ‘파스카 축제’ 및 ‘누룩을 넣지 않은 빵 축제’의 시작일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루카 복음서 22,1에 대한 해설을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palm.htm 

 

(ii) 그리고 예수님의 공생활 시기에 유다교 축제일들이 어떻게 정해졌는지에 대한 설명은 다음에 있으니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update/c_palm.htm <----- 필독 권고 

출처: Food at the time of the Bible, pp. 7-9, Miriam Feinberg Vamosh, Palphot Ltd.

 

%%%%%%%%%%

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4/다해주님수난성지주일.mp4 <----- 완전하다와 완미하다의 커다란 차이점: 12:57-14:48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ion_241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2:57-14:48  [즉, 12분57초-14분48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perfection_2410"] 

2D.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완전하다와 완미하다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완미(完美)한(perfect) 것은 완전(完全)한(complete) 것이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perfection_2301.htm <----- 필독 권고    

 

%%%%%%%%%%

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4/다해주님수난성지주일.mp4 <----- 구속자, 지성적으로 및 윤리적으로 변성하게 하시는 분, 지성덕, 윤리덕: 15:40-18:13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demption_241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15:40-18:13  [즉, 15분40초-18분13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redemption_2410"]

2E.

복습 8: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속량’(贖良)[주: “한어대사전”에 수록되어 있지 않은, 한국한자어임], 즉, ‘구속’(救贖, redemption)‘구원’(salvation)과 논리적으로 등가의 개념이 결코 아님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Redemption_2303.htm <----- 필청/필독 권고 

 

%%%%%%%%%%

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4/다해주님수난성지주일.mp4 <----- 필리피서 2,11에 있는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의 출처는 개신교회 측 중국어본 신약성경이다: 40:28-47:00-50:00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Lord_241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40:28-47:00-50:00  [즉, 40분28초-47분00초-50분00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Lord_2410"]

2F.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필리피서 2,11에 있는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가 발생하게 된 원인 등에 대한 졸글[제목: 필리피 2,11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게시일자: 2021-03-28]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92.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92_Chapter_Two.htm <----- 국내의 개신교회 목회자들의 필독 권고   

 

%%%%%%%%%%

다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24/다해주님수난성지주일.mp4 <-----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가르침: 52:40-53:12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dom_of_God_2410.htm]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52:40-53:12 [즉, 52분40초-53분12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kingdom_of_God_2410"]

2G.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의 가르침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46.htm <----- 필독 권고   

 

%%%%%%%%%% 

2H.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독서들에 대한 해설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palm.htm <----- 필독 권고 

 

2I.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c_palm.htm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Pain! A historical reality and God’s plan. Here lies the center of the message of Palm Sunday. The servant of Yahweh (first reading) suffers blows, insults and spitting, but the Lord helps him and shows him the meaning of pain. Saint Paul, in the Christological hymn of the Letter to the Philippians (second reading), points to Christ who "emptied himself, taking the form of a slave." In the account of the Passion according to Saint Luke, Jesus faces unspeakable and countless forms of suffering, like a slave, but he knows that everything has been foreseen by the Father, and thus entrusts his spirit to the Father.

 

고통(pain)! 한 개의 역사적 실재(reality) 및 하느님 계획. 바로 여기에 오늘 주님 수난 성지 주일 메시지의 중심이 놓여있습니다. 야훼의 종(the servant of Yahweh)(제1독서)은 주먹다짐들, 모욕들, 그리고 침밷음 당함의 고통들을 겪으나(suffers),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를 도우시고 그리고 그에게 고통(pain)의 의미를 보여주십니다. 성 바오로는, 필리피인들에게 보낸 서간의 그리스도론 찬미가(Christological hymn)에서(제2독서), "당신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모습을 취하신" 분이신 그리스도 쪽으로 가리킵니다. 성 루카에 따른 주님 수난(passion) 이야기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명의 종처럼, 말할 수 없는 및 헤아릴 수 없는, 고통받음의 형태들에 직면하시나, 그러나 당신께서는 이 모든 것이 성부[하느님]에 의하여 이미 예견되었던 것임을 알고 계셨으며, 그리하여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당신의 영(spirit)을 성부[하느님]께 맡기셨습니다.

 

DOCTrinal MESSAGE


교리 메시지

 

Christ, man of suffering. Christ’s suffering may be gauged quantitatively, and is enormous according to this yardstick. However, the supreme value of Christ’s pain is rooted above all in its quality. It has quality based on three pillars: Jesus is the perfect man, who experiences and lives suffering with perfection; Jesus is the Son of God, and thus it is God himself who suffers in him; Jesus is the Redeemer of the world and of humanity, who takes on the pain and transforms it through God’s salvific power. This is why in Christ’s life, especially in his Passion and Death, pain is a historical but also a mystical reality. It is solidarity with people and at the same time the judgement and justification of the sinner; that is, the mystery of salvation. Saint Luke’s account of the Passion takes us by the hand to the prayerful contemplation of Christ in the different episodes of this mystery of pain. Let us contemplate Jesus’ silent pain, which he manifests at the Last Supper when faced with Judas’ betrayal (Lk 22:22), or during the inopportune discussion of the disciples on ranks and first places (Lk 22:24ff). Let us look at his intense, debilitating pain in Gethsemane, to the point of sweating blood due to his loneliness, due to his having been forsaken by men and by his very Father, due to the burden of the world’s sin. Let us contemplate his ineffable pain following Peter’s denial of his love, the dignified pain in the face of love mocked by the soldiers with blasphemy and baseness, the noble pain of the innocent man condemned by the chiefs of the people and by the ruling power, the holy and pure pain due to the dishonor inflicted upon him when he is believed to be a criminal, the physical pain of the nails that pierce his hands and feet, and the ultimate pain of his agony. Christ, "a man of pain and accustomed to suffering." Christ, who in his body and soul collects all pain and sorrow, as in an earthen bowl.

 

그리스도, 고통받음의 사람. 그리스도의 고통받음은 정량적으로 측정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리고 당신의 고통받음은 바로 이 척도에 따르더라도 엄청납니다(enormous).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통(pain)의 지고한 가치는, 무엇보다도 위에, 그 질(its quality)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은, 다음과 같은, 새 개의 기둥들 위에 근거하는 질(quality)을 가지고 있습니다: (i) 예수님께서는, 완미하게(with perfection) 고통받음을 경험하시고 그리고 고통받는 삶을 살아가시는 분이신, 유일하신 완미(完美)한 사람(the perfect man)이시고; 그리고 (ii)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아드님(즉, 성자)이시고 그리하여 [오늘 복음 말씀에 기술된]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 당신 안에서 고통을 받으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God) 자신이시며; 그리하여 (iii) 예수님께서는, 고통(pain)을 떠맡아(takes on) 하느님의, 구제(救濟)를 베푸시는, 힘(God's salvific power)을 통하여 이 세상 및 인류를 변성(變成)하게 하시는(transforms) 분이신이 세상의 및 인류의, 유일하신 구속자(救贖者)(the Redeemer)이십니다. 바로 이것이 그리스도의 삶 안에서, 특별히 당신의 수난(passion) 및 죽음 안에서, 고통(pain)이 한 개의 역사적이고(historical), 그러나 또한 한 개의 신비로운(mystical), 실재(reality)인 바로 그 이유입니다.  이 실재는 사람들과의 연대성(solidarity)이며 그리고 동시에 죄인의 심판(judgement) 및 의화(justification), 즉, 구원의 신비(the mystery of salvation), 입니다. 예수님의 수난(passion)에 대한 성 루카의 이야기는 바로 이 고통의 신비의 [다음과 같은] 다른 에피소드들 안에서 그리스도에 대한 기도를 드리는 관상(prayerful contemplation) 쪽으로, 손 맞잡음에 의하여(by the hand), 우리들을 데려갑니다.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배반자 유다와 대면하게 되셨을 때인 최후의 만찬에서(루카 복음서 22,22) 혹은 등급들과 첫 자리들에 대하여 제자들의 시의 적절치 않은 논의 동안에(루카 복음서 22,24 및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 분명하게 드러내셨던, 예수님의 침묵하는 고통(silent pain)을 관상하도록(contemplate) 합시다. 우리들은, 겟세마니 동산에서, 당신의 외로움 때문에, 사람들에 의하여 및 당신의 바로 그 성부에 의하여 이미 내버려졌음(having been forsaken) 때문에, 이 세상의 죄의 무거운 짐(burden) 때문에, 피땀을 흘리는 정도에까지, 당신의 격렬한(intense), 약화시키는(debilitating) 고통(pain)을, 바라보도록 합시다(look at).  우리들은 다음을 관상하도록 합시다: (i) 당신의 사랑(love)에 대한 베드로의 부인(denial)을 뒤따르는 당신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ineffable pain), (ii) 군인들에 의하여  신성모독(blasphemy) 및 야비함(baseness)과 함께 조롱을 받는, 사랑의 얼굴(face of love) 안에 있는, 위엄있는 고통(dignified pain). (iii) 이 백성의 우두머리들에 의하여 및 통치하는 힘에 의하여 단죄받은 이 선량한 사람(the innocent man)의 고귀한 고통(noble pain), (iv) 당신이 한 명의 범죄자이라고 [그들이] 믿게 되었을 때에 당신 위에 가해진 불명예/치욕/모욕(dishonor) 때문에 거룩하고 순수한 고통(holy and pure pain), (v) 당신의 양팔들과 양발들를 관통하는 못들에 기인하는 형이하학적 고통(physical pain), 그리고 (vi) 당신 고뇌의 궁극적인 고통(untimate pain). 그리스도, "고통의(of pain), 그리고 고통받음(suffering)에 익숙해진 분이신, 사람 한 분". 그리스도, 흙으로 만든 그릇으로서, 당신의 몸 및 영혼 안에 모든 고통(pain) 및 슬픔(sorrow)을 모으시는 분. 

 

Christ is not alone in his pain. Already the Servant of Yahweh, the figure of Christ, is certain that in the midst of his pain, "the Lord will help him" (first reading). In Gethsemane, the Father sends him an angel, not to free him from pain, but to comfort him (Lk 22:43). On the way to Calvary, he is accompanied by a group of women "who mourned and lamented for him" (Lk 23:27). Crucified on Jesus’ right is the good thief, who rebukes the other criminal and proclaims Jesus’ innocence, "But this man has done nothing wrong." Throughout the Passion, Jesus felt that he was abandoned by the Father, but also that the Father was at his side in a very intimate way, and this is why before dying he can exclaim, "Father, into your hands I commit my spirit." Saint Luke reports the glorification of Christ’s pain - and the consequent solidarity with him - after his death in the centurion’s confession, "Truly, this was an upright man." We also see this glorification in the repentance of the crowds who "went home beating their breasts," and again when we hear the announcement to the women who have gone to his tomb, "He is not here, he has risen." The second reading emphasizes God’s closeness to the obedient Christ until his death with enthusiastic terms: "...and gave him the name which is above all other names." Neither God nor people left Christ alone in his pain. This statement holds true for all people. People, like Jesus, will find in other people the cause of their pain, but will also find in them a friendly presence and a comfort that stems from solidarity.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고통(pain)에 있어 홀로 계시지 않습니다. 벌써, 그리스도의 표상인, 야훼의 종(the Servant of Yahweh)은 자신의 고통의 한가운데에 "주님께서 자신을 장차 도와주실 것"임을 확신합니다 (제1독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성부께서, 당신께 한 명의 천사를 보내시는데, 당신을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하여서가 아니고, 당신을 위로하기 위하여서 입니다 (루카 복음서 22,43). 골고타 언덕 쪽으로 가는 길에서, "당신을 위하여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로 구성된 한 집단이 그분과 함께 갑니다 (루카 복음서 23,27). 예수님의 오른쪽에 십자가 형벌을 받고 있는 자는 선한 도둑인데, 그는 다른 범죄자를 꾸짖고 그리고 예수님의 무죄(innocence)를 "그러나 바로 이 사람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라고 선포합니다 (루카 복음서 23,47).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 전체에 걸쳐, 성부에 의하여 버림받으셨다고 느끼셨으나, 그러나 또한 성부께서 어떤 매우 친밀한 방식으로 당신 편에 계심을 느끼셨으며, 그리고 바로 이것이 숨을 거두시기 전에 당신께서 "아버지 당신 손들 안쪽에 제가 나의 영을 맡깁니다"라고 외치셨던(루카 복음서 23,46) 바로 그 이유입니다. 성 루카는 그리스도의 고통(pain)이 영광을 받음(the glorification of Christ’s pain)을 - 그리고 그 결과로서 일어난 당신과의 연대성(solidarity)을 - 백인대장의 고백에서 당신의 죽음을, "정녕 이사람은 의로운 분이셨다" 라고(루카 복음서 23,47ㄴ) 보고합니다. 우리는 또한 바로 이 영광을 받으심(this glorification)을, "가슴을 치며 집으로 돌아간" 군중의 회개에서(루카 복음서 23,48), 그리고 또다시 당신의 무덤 쪽으로 갔던 여자들 쪽으로 선언인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 그분께서는 이미 되살아나셨다"를 들을 때에(루카 복음서 24,5ㄷ), 봅니다. 오늘의 제2독서는 당신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명하시는 그리스도 쪽으로 하느님의 친밀(closeness)을 "... 그리고 모든 다른 이름들 위헤 있는 유일한 이름(the name)[즉, 주님]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라는 열렬한 용어들로써(필리피 2,9ㄴ), 강조합니다. 당신의 계획 안에서 하느님과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당신의 고통 안에 결코 홀로 남겨두지 않았습니다. 바로 이 진술(statement)은 모든 사람들의 경우에 여전히 진리입니다(holds true).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 안에서 그들의 고통(pain)의 원인을 장차 발견할 것이나, 그러나 또한 연대성(solidarity)으로부터 유래하는 어떤 우의적 현존(a friendly presence) 및 어떤 위안(a comfort)을 그들 안에서 장차 발견할 것입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113. 예수님께 사형 선고를 받게 하였던 고발들이 무엇이었습니까?
CCC 574-576


일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선포하셨기 때문에, 율법에,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 그리고 특히 유일하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에, 반하는 행동을 하였다고, 예수님을 고발하였습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빌라도(Pilate)가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할 수도 있도록 하고자, 그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겼습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palm_c574.htm

 

CCCC 117. 누구에게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는지요?
CCC 595-598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그 시기에 살고 있었던 모든 유다인들에게 혹은 그들의 후손(descendants)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전가될(be imputed) 수 없습니다. 각각의 개별 죄인(each single sinner), 즉, 각각의 인간(every human being)은 실제로 이 구속자(救贖者, Redeemer)의 고통받음들의 원인이고 도구(cause and instrument)이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바로 이 점에 있어 그리스도인들이면서도 더 자주 죄에 빠지거나 혹은 자신들의 악습들을 즐기는(delight in their vices) 자들일수록 더 커다란 비난과 마주칩니다(falls on)(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c_palm_c595.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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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자 주: 2020년 가해 부활 제3주일부터, 매주 시리즈의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본 "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교안"은 통상적으로 이틀 동안의 묵상 후에 작성되고 있으며, 그리고 묵상 동영상 녹화 후에 추가적인 묵상의 결과로서 내용 보강이 진행되기도 합니다. 

 

[아래의 안내 첫 공지일자: 2021년 3월 10일]

이곳은 2004년에 굿뉴스 서버에 개설된 "가톨릭 문서 선교회"가 운영/관리하는 Big DataBase Archive 구축 공간 및 2000년 대희년부터 당시 교육부 지원 공동연구/교육용 SGI Origin 3400 수퍼컴퓨터 사용자들을 위하여 연구/개발해 온 고유한 AI 알고리즘/빅 데이터 분석 기법 기반 최신 연구 결과물들의 제공처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또한 이곳은, 문화장벽(culture barriers)들/언어장벽(language barriers)들 등에 기인하는 형이상학 개념(metaphysical concepts)들의 전달 장애/훼손/오류 등의 조기 회복/복원 및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이들 개념들 사이에 현존하는 진리인 유의미한 관계의 상태들의 전달/발견 등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추구해 온, 연구/교육, 선교/전교/복음화 및 토착화, 공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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