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하느님의 관대, 오병이어 기적, 사랑, 가해 연중 제18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가연중18주일> 832_빵늘림기적 773_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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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31 ㅣ No.2083

[내용 추가 일자: 2023년 8월 3일] 

게시자 주 1: (1) 오늘의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게시자 주 2 다음에 있습니다.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3.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41.htm <----- 필히 시청 요망

 

"KF94 마스크 미착용, 착용 시의 커다란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실험 동영상들 - 오미크론 출현 이전인 2021년 10월 14일에 확보한 자료들임" 제목의 졸글에 추가된 중요한 방역 수칙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2: [첫 공지 일자: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

(1) [PC 혹은 노트북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바로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New American Bible (NAB)에서 발췌된 오늘의 영어 전례성경 본문(즉,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들을, 화답송 등과 함께, 청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제(2)항 으로 이동하여 안내대로 하십시오.][원 출처: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http://ch.catholic.or.kr/pundang/4/cbs/Cycle_A/Ordinary/a_ot_18_mp3 <----- 여기를 클릭하라  


[스마트폰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i) 위의 주소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가만히 있으면 가지게 되는 작은 메뉴판 한 개에서, 다른 브라우저로 열기를 선택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ii) 사용 중인 스마트폰에 이미 열려있는 본글의 브라우저를 찾아서 거기로 이동한 후에,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있는 주소를 누르면,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06년 12월 10일(다해 대림 제2주일)부터 지금까지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안내된 English Bible Study 까페[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영어 성경공부 자료실]에서 필자가 지속적으로 전달 제공해온 자료이므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1)항에서 듣게 되는 NAB에서 발췌된 영어 전례성경 본문들 등을 또한 눈으로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lub.catholic.or.kr/community/asp/club/attboard/read.asp?type=attboard&schcode=pundang4biblestudy&seq=8&id=1277 <----- 또한 필독 권고   

 

이것도 또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바로 위에 제(1)항제(2)항 제공의 정보들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함께 활용하면, 영어 듣기 및 읽기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 끝) 

[이상, 2023년 8월 3일자 내용 추가 끝]

 

 

가해 연중 제18주일 온라인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청취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17/가해연중제18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하십시오

가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해 II, 가톨릭출판사, 2008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3.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복습: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새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가연중18주일> 가해 연중 제18주일  

 

이사야 55,1-3; 마태오 복음서 14,13-21; 로마 8,35.37-39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a_ot_18.htm <----- 전문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오늘 독서들의 주제


Although the word does not appear in the liturgical texts, generosity is perhaps the key to these texts. The generosity of God invites us to participate gratuitously in the messianic banquet: "He who has no money, come, buy and eat" (Is 55: 1). God’s generosity is revealed by Jesus Christ when he multiplied the loaves and fish for thousands of people, satisfied their hunger. Thereafter, the disciples still collected twelve baskets full of leftovers (Gospel). Before God’s generosity, Paul believed that there was nothing in heaven or on earth that could separate us from the love of the Father manifested in Jesus Christ (cf Rom 8: 38-39).
 

관대(generosity)는, 비록 이 단어가 이 전례 본문들에 나타나지 않으나, 아마도 이들 본문들 쪽으로 열쇠/실마리(key)일 것입니다. 하느님의 관대가 우리들을 메시아의 연회(messianic banquet)에 무상으로(gratuitously) 참여하라고, 다음과 같이, 초대합니다: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이사야 55,1). 하느님의 관대는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분께서 사람들 수천 명들을 위하여 빵들과 물고기를 증식하시어, 그들의 배고픔을 만족시키실 때에, 분명하게 드러내어집니다. 그런 후에, 제자들은 남은 조각들로 가득찬 광주리들을 여전히 수집하였습니다 (복음 말씀). 하느님의 관대 앞에서, 바오로(Paul)는 우리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하게 드러내어진 성부의 사랑(the love of the Father)으로부터 분리할 수 있는 어떠한 것도 하늘에(in heaven) 혹은 땅 위에(on earth) 있지 않음을 믿었습니다[즉, 진리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로마 8,38-39 참조).

 

DOCTRinal MESSAGE

 

교리 메시지


In the Holy Scriptures, many names are attributed of God. He is God, the Almighty. He is just, wise, and rich in mercy, etc. There is no text in which it is said that God is generous, but this divine trait underlies and fills all of the other attributes. Omnipotence, divine justice, and mercy emanate from his infinite generosity. We can thus say that God is extremely generous when manifesting his power, his justice, or his mercy. 

 

성경 본문들 안에서, 수많은 이름들이 하느님으로부터 기인하게 됩니다. 그분께서는, 전능자(the Almighty)이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정의롭고, 지혜로우며, 그리고 자비에 있어 풍부하십니다, 등 등. [비록] 바로 그곳에서 하느님이 관대하시다고 말해지는 본문은 전혀 있지 않으나, 그러나 바로 이 신성적 특성(divine trait)이 다른 속성들 모두의 근저에 있고 그리고 이들을 채웁니다. 전능(omnipotence), 신성적 정의(divine justice), 그리고 자비(mercy)는 당신의 무한한 관대로부터 발산합니다(emanate).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힘(power), 당신의 정의(justice), 혹은 당신의 자비(mercy)를 명백하게 드러내실 때에, 극도로 관대하시다. 
 
In today’s first reading, God’s generosity is revealed in the context of a covenant. God takes the initiative and establishes a covenant with his people. God himself "pays" for the banquet with which he establishes the covenant. In the multiplication of the loaves, Christ underscores God’s generosity with the overabundance of food. In the Bread of Life Discourse, Jesus says: "I am the bread of life. No one who comes to me will ever hunger; no one who believes in me will ever thirst" (Jn 6: 35). Christ is this overabundant food, bread that never ends, given to us by the Father.

 

오늘의 제1독서에서, 하느님의 관대는 한 개의 계약의 문맥 안에서 드러내어집니다. 하느님께서 주도권을 행사하시어(takes the initiative) 그리하여 당신의 백성과 한 개의 계약(a covenant)을 제정하십니다. 하느님 스스로, 바로 그것으로써 이 계약을 제정하시는, 이 연회를 위하여, 다음과 같이, "지불하십니다(pays)". 빵들의 증식 [기적]에서 그리스도께서 음식의 남아돎으로써 하느님의 관대를 강조하십니다. 생명의 빵 강화에서,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을 것이며, 나 쪽으로 믿는(believe in)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복음서 6,35). 그리스도께서는, 성부에 의하여 우리들에게 제공되는, 결코 끝나지 않는 바로 이 남아도는 음식, 빵입니다.
  
God’s generosity is not an ostentatious display of power or a decoy to impress and attract admiration. God’s generosity responds to human poverty, to a person’s deepest abandonment. A person’s most pressing need is subsistence, and God pours forth his generosity through the fertility of the soil and the fecundity of plants and animals. Man feels the burning desire for the divine, to be united with God, and God’s generosity fulfills this desire completely by revealing himself as the God of history and as the faithful spouse of the covenant. The individual, torn apart by sin and possessed of repentance, needs forgiveness, and God’s generosity opens the arms of his mercy to man as to a prodigal son. The path of life is long for man, and is filled with snares; this is why he seeks a strong hand to hold, a companion and friend to walk with. Thus God shows man his generosity in the Eucharist and the gift of the Holy Spirit. In the human heart burns the desire for immortal life, and God’s generosity reveals to us the risen Christ and our destiny as people who have risen with Christ. In the last analysis, we may assert that Jesus Christ from the Incarnation to the Ascension never ceased showing us the face of God, Father of generous love. Paul began to understand God’s generous love when Christ appeared to him on the road to Damascus. As the years went by, through the divine revelation assimilated over long hours of prayer, he progressively deepened in the infinite greatness of God’s love (longitude, latitude, height and depth). When faced with the extraordinary power of the generous love of the Father, Paul – and with him all of Christ’s disciples – reacts in a genuine and consistent manner. "For I am sure that neither death, nor life, nor angels, nor principalities, nor things present, nor things to come ... will be able to separate us and the love of God, known to us in Christ Jesus our Lord" (Rom 8: 38-39). The Christian cannot help but feel generous in his response to God’s generosity.

 

하느님의 관대는 힘(power)의 어떤 과시하는 발휘(display) 혹은 감명을 주고 그리하여 감탄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어떤 미끼(decoy)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관대는 인간의 빈곤(poverty)에, 한 인격의 가장 깊은 자포자기(adandonment)에, 응답합니다. 한 인격의 가장 절박한 필요(need)는 생존(subsistence)이며,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흙의 비옥(fertility)과 식물들 및 동물들의 다산(fecundity)을 통하여 당신의 관대를 쏳아 내십니다. 사람(man)은, 하느님과 결합되기 위하여, 신성한 것(the divine)들에 대하여 불타는 듯한 욕망을 느끼며, 그리고 하느님의 관대는, 당신 자신을 역사의 하느님으로서 그리고 이 계약의 충실한 배우자로서 드러내심으로써, 바로 이 욕망을, 다음과 같이, 완전하게(completely) 구현하십니다. 죄에 의하여 찢겨진 그리하여 뉘우침에 빠져있는 개인은 용서를 필요로 하며, 그리고 하느님의 관대는, 한 명의 탕자 쪽으로 처럼, 사람 쪽으로 당신의 자비의 팔들을 벌리십니다. 사람의 경우에 삶의 경로는 길고, 그리고 올가미들로 채워져 있으며, 그리고 바로 이것이 왜 그가 붇잡고자 하는 어떤 강한 손을, 함께 걸어가고자 하는 한 명의 동반자 및 벗을, 추구하는 이유입니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thus) 하느님께서는 성찬례 및 성령의 선물 안에 있는 당신의 관대를 사람에게 나타내십니다. 인간의 심장(human heart) 안에서 불멸의 생명에 대한 욕망이 달아오르며, 그리고 하느님의 관대는 일어나신 그리스도 및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일어난 백성으로서 우리들의 운명(destiny)을 우리들에게 드러냅니다. 결국에(in the last analysis), 그리스도께서는 강생에서부터 승천까지 관대한 사랑의 성부이신, 하느님의 얼굴을 우리들에게 보여주심을 결코 멈추지 않으셨다고 우리가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바오로(Paul)는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다마스쿠스 쪽으로 도로 위에서, 나타나셨을 때에 하느님의 관대하신 사랑을 이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해들이 경과함에 따라, 기도로 구성된 오랜 시간들에 걸쳐, 흡수하게 된(assimilated) 신성적 계시(divine revelation)를 통하여, 그는 하느님 사랑의 무한한 커다람(경도, 위도, 높이와 깊이) 쪽으로 (in) 점진적으로 깊어졌습니다. 성부의 관대한 사랑의 비상한 힘(power)과 직면하게 되었을 때에, 바오로는 - 그리고 그와 함께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들 모두는 - 하나의 진정한 그리고 일관성 있는 방식으로, 다음과 같이, 반응합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도, 현재의 것도, 미래의 것도, ...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로마 8,38-39).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 II, 제193-200쪽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이사야서 55,1:

 

1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 없이 술과 젖을 사라.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마태오 복음서 14,19:

 

19 군중에게 풀밭에 자리를 잡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그것을 군중에게 나누어 주었다.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로마서 8,39:

 

38 ...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A.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오늘 가해 연중 제18주일 제1독서, 복음 말씀, 그리고 제2독서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a_ot_18.htm <----- 필독 권고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에 대한 갈망’에 대하여 가르치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제533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48항, 그리고 요한 복음서 7,44가 인용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557항 및 직전의 유관 항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c_ot_13_c2548.htm <----- 필독 권고

 

C.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신성적 사랑(divine love)과 인간적 사랑(human love)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0.htm <----- 필독 권고

 

D.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에 기록되어 있는, 그리하여 이들을 함께 읽고 종합적으로 이해하여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빵 늘림 기적(the miracle of the multiplication of the loaves)’에 대한 다음의 글들을 또한 추가적으로 필히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miracle_of_mult_of_loaves.htm <----- 필독 권고

 

E.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 용어, 즉, 성찬례(Eucharust)가, (i) 성부 하느님 쪽으로 ‘감사(thanksgiving) 안에 있는 찬미/찬양/찬송(praise, blessing)’와 (ii) 인류 쪽으로 ‘축복/강복(blessing)’, 이들 둘 다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설명하는 praise(찬양, 찬송)과 blessing(강복, 찬미, 축복) 용어들의 차이점에 대한 글 그리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360항 및 그 전후 항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2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c1360.htm  <----- 필독 권고

 

F.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중보(中保)’라는 번역 용어가 한문 문화권 가톨릭 교회의 고유한 용어임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875.htm <----- 특히 개신교회 목회자들의 필독 권고

 

G. ‘신성적 도움(divine help)’이, 그리스도 안에서, [크게 두 종류들로 구분되는 신성적 도움들인] (i) 사람을 인도하는(guides) 법(法, law)과 (ii) 그를 떠받치는(sustains) 은총(恩寵, grace)을 통하여 온다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949항의 가르침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의 글에 있으니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2.htm <----- 필독 권고

 

H. 다음은, "오병이어" 용어의 출처인,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줄리오 알레니 신부님(1582-1649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35년에 초간된, 신약 4복음서들을 하나로 묶은 화합복음서, 즉, 조화복음서의 한 종류"천주강생언행기략", 권3,15, 5병2어향5천인 에서 발췌한 바입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582-1649_쥬리오_아레니/1635_천주강생언행기략.htm  

(발췌 시작)

권3_15_5병2어향5천인_68-70 (<---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요한 복음서 6,1-15(매년 부활 제2주간 금요일 복음 말씀; 나해 연중 제17주일 복음 말씀)] [오사정 = 아우구스티노] [주: 조화의 권세가 주님의 손에 존재하여 다섯 개의 빵들이 증식되었다라는 "오병이어(五餅二魚)" 기적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의 해설이 주어져 있음. 그리고 이 해설의 구체적인 출처는 다음 주소에 있는 글에 안내되어 있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86.htm]

 

5병2어_in_1635_천주강생언행기략_권3_15_5병2어향5천인_제19a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다섯 번째 열(column)을 보라.

(이상, 발췌 끝)  

 

[내용 추가 일자: 2022년 6월 19일(다해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출처 2: https://ctext.org/wiki.pl?if=en&chapter=256377&searchu=%E9%A4%85 

(발췌 시작)

第十五節 五二魚餉五千人

 

宗徒還自郡邑,備以所行告耶穌。耶穌攜至僻所,少憩,又因追隨者眾,與宗徒登舟涉他所。諸郡邑人,或先遵陸,或先泛舟,並於水次迎焉。耶穌迄濟,與宗徒登山而坐,複下山誨眾。有疾病者,輒憐而救之。將夕,宗徒告曰:「日雲暮矣,況茲曠野,宜謝遣,俾散村落,以就飲食。」耶穌曰:「無庸,當與以飲食。」乃問斐理伯。斐理伯曰:「今即捐二百銀錢治具,不能望多腹也,況此無可市者。」諳德肋曰:「惟一稚子,攜大麥五、魚二,然於千眾何哉?」耶穌曰:「攜來。乃命宗徒諭眾列坐,或以百,或以五十,計五千餘人,而童婦不與焉。耶穌取與魚昂首向天,謝恩祝福,剖而授宗徒。宗徒隨人所欲多寡,遍給之。眾人飽飫,尚有餘也。耶穌命徹所餘勿失,宗徒斂之,計十二筐焉。眾見耶穌靈異若此,僉曰:「是即我等所望救世之主也。」耶穌辭眾,命宗徒登舟,先往日搦撒地,獨入深山,默用神功。蓋知眾心感戴,將欲擁己為君,而故避之。

 

異哉!吾主全能也。聖奧斯定曰:「耶穌所行靈異諸跡,一一足醒人心,令人由其所見之事,推思所未見之主也。蓋天主本體,自非人目可見,惟因其控制天地萬物之能,恍然見之。如數粒種之微,發生無量數。自非全能之功,曷克至此?但人因習見,忘其奇妙,故時另顯異事,以驚人目,庶其日用而不覺者,因斯異常而豁醒焉。夫吾主宰制天地之大,保養兆民之眾,原更奇異於以數而餉數千人也。人不奇彼而奇斯,非斯奇勝於彼奇,特稀見耳。締思每日普養吾民者誰乎?豈非令地發育,種一而獲十百者乎?故每日發生五穀百果於田地者,即是日發無量數之糧於門徒手者也。造化之權,在吾主之手,其五者猶種也,非種於地以生,乃造地者自命之倍多發也。」美哉!聖人之言,吾輩觀茲可不仰天主變化之全能,並感天主日用之需乎?

(이상, 발췌 끝)

[이상, 2022년 6월 19일자 내용 추가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387. 희망(hope, 망덕)은 무엇입니까?

CCC 1817-1821, 1843


희망(hope, 망덕)은 [초자연덕(超自然德)들인 희망, 믿음(faith, 신덕) 그리고 사랑(charity, 애덕)으로 구성된] 하느님을 향한 덕[theological virtues, 향주덕(向主德), 대신덕(對神德) 등으로 불림]들 중의 하나이며, 바로 이 덕에 의하여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영원한 생명을 우리의 행복으로서 갈망하며 기다리는데, 이 생명을 마땅히 얻기 위하여(merit) 그리고 우리의 지상에서의 삶의 끝에 이르기까지 견디어 내기 위하여 우리의 신뢰를 그리스도의 약속들에 두고 그리고 성령의 은총의 도움에 의지합니다. (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8_c1817.htm 

 

CCCC 388. 사랑(charity, 애덕)은 무엇입니까?
CCC 1822-1829, 1844


사랑(charity, 애덕)은 [초자연덕(超自然德)들인 희망(hope, 망덕), 믿음(faith, 신덕) 그리고 사랑으로 구성된] 하느님을 향한 덕[theological virtues, 향주덕(向主德), 대신덕(對神德) 등으로 불림]들 중의 하나이며, 바로 이 덕에 의하여 우리는 모든 것들보다 우선적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며(love) 또 우리의 이웃을, (우리에게 베푸시는) 하느님의 사랑(love)을 위하여, 우리 자신들로서 사랑합니다(love). 예수님께서는 사랑(charity, 애덕)을 율법의 완성인 새로운 계명으로 삼으셨습니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주는 끈이며”(콜로새 3,14) 그리고 다른 덕들의 기초인데, 사랑(chatiry, 애덕)은 이들 다른 덕들에 생명, 영감(inspiration), 그리고 순서(order)를 줍니다.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며(I am nothing)” 또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럽게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I gain nothing)”(1코린토 13,1-3)(엮은이 번역).

 

주: 향주삼덕들 중의 하나인 ‘사랑(charity, 애덕)의 정의(definition) 중에 사용되고 있는 용어인 ‘사랑/사랑하다(love)’의 개념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글들을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773.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86.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8_c1822.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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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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