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3주일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5년 정기 희년 선포 칙서(요약)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Spes Non Confundit) 마르 5,21-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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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4-06-21 ㅣ No.5802

연중 제13주일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2025년 정기 희년 선포 칙서(요약)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Spes Non Confundit)

마르 5,21-43; '24/06/30

 

오늘은 교황주일을 맞아,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의 내년 2025년 정기 희년 선포 칙서를 짧게 요약하여 나눠보기로 합시다.

 

 1. 오랜 전통에 따라 교황이 25년마다 선포하는 희년 가운데 하나인 다가오는 희년의 핵심 메시지도 희망입니다. 모든 이에게 이 희년이 우리 구원의 ”(요한 10,7.9 참조)이신 주 예수님과 참되고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는 때가 되기를 빕니다. 교회의 사명은 우리의 희망”(1티모 1,1)이신 주 예수님을 언제 어디서나 모든 이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희망의 말씀

2.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믿음 덕분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서 있는 이 은총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리라는 희망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1-2.5)

 

3. 실제로 희망은 사랑에서 비롯되고, 십자가 위에서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성심에서 샘솟는 사랑에 토대를 둡니다. 성령께서는 순례하는 교회의 삶 안에 항구히 현존하심으로써 희망의 빛으로 믿는 모든 이를 밝혀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결코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우리 삶을 지탱하고 활력을 주는 그 희망의 불이 타오르도록 지켜 주십니다.

 

4. 삶에는 기쁨과 슬픔이 이어지고, 늘어나는 어려움으로 사랑이 시험대에 놓이며 환난 앞에서 희망이 무너지는 듯 보이는 것을 압니다. 인내는 성령의 열매 가운데 하나로 우리의 희망을 지켜 주고, 덕이요 삶의 길인 희망의 힘을 길러 줍니다. 인내의 은총을 자주 청하는 법을 배웁시다. 인내는 희망의 딸이며 동시에 희망의 굳건한 토대입니다

 

희망의 여정

5. 희망과 인내의 이러한 상호 작용을 통하여, 희망은 주 예수님과의 만남이라는 목표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을 이끌어 주는 한결같은 길동무입니다.

 

6. 저는 20241224일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성문을 열어 정기 희년을 시작하여, 20261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성문을 닫으면서 끝납니다. 이 성년 동안 그리스도인의 희망의 빛이 모든 이에게 전하는 하느님 사랑의 메시지로 모든 사람을 비추기를 빕니다!

 

희망의 징표들

7. 우리는 하느님 은총에서 희망을 찾을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시대의 징표들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8. 희망의 첫 징표는 오늘날 또다시 전쟁의 비극에 휩싸여 있는 이 세상에서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염원이어야 합니다.

 

9. 희망을 품고 미래를 바라본다는 것은 삶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이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출산율 감소는 오늘날 정신없이 돌아가는 삶의 속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 고용 안정성과 적절한 사회 정책의 부재, 관계에 대한 관심보다는 이윤 추구가 의제를 좌우하는 사회 모델에 따른 결과입니다.

 

10. 우리는 온갖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형제자매들을 위한 희망의 구체적인 징표가 되라는 부름을 받습니다. “너희는 이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한 해로 선언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주민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레위 25,10)

 

11. 교도소와 가정이나 병원에 있는 병자들에게도 희망의 징표를 보여 줍시다. 자신의 나약함과 한계를 경험하는 특별히 어려운 상황에 있는 모든 사람, 특히 개인의 자립과 자유에 심각한 제약이 되는 질병이나 장애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에게도 폭넓은 관심을 기울입시다.

 

12. 희망의 구현 그 자체인 이들, 곧 젊은이들에게도 희망의 징표가 필요합니다.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없으면, 젊은이들은 낙담하고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젊은이들은 교회와 세상의 기쁨이자 희망입니다

 

13. 희망의 징표는 자신들과 가족들의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뒤로하고 떠난 이주민들을 위해서도 존재해야만 합니다.

 

14. 종종 외롭고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노인들과 조부모님들 또한 마땅히 희망의 징표들을 받을 수 있습니다.

 

15. 흔히 생필품조차 부족한 수십 억 명의 가난한 이들에게 희망이 주어지기를 진심으로 청합니다. 가난한 이들은 비난받아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거의 언제나 희생자입니다

 

희망에 대한 호소

16. 희년은 예로부터 전해 온 예언자들의 말씀을 상기시키며 지상의 재화가 소수 특권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것임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17. 희년 동안 1700주년을 맞는 니케아 공의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신성이 부인되고 성부와 한 실체이심이 부정되는 상황에서, 교회의 일치를 지켜 나갈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희망에 닻을 내려

18. 희망은 믿음과 사랑과 함께 그리스도교 생활의 핵심을 표현하는 대신덕의 삼덕을 이룹니다(1코린 13,13; 1테살 1,3 참조). 희망은, 이 향주삼덕이 이루는 불가분의 일치 안에서, 믿는 이들의 삶에 내적 지침과 목표를 제시하는 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19. “[저는]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희망은 이 말씀에서 그 본질적 토대를 발견합니다. 희망은 우리의 행복인 ……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하는 향주덕입니다.

 

20.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자 우리 희망의 기초입니다. 희년은 우리가 세례성사로 받은 새 생명의 선물, 곧 죽음의 극적 사건을 변모시킬 수 있는 생명의 선물에 다시 한번 한없이 감사하도록 하는 기회를 줍니다.

 

21. 그런데 우리는 죽음 이후에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이 죽음의 문턱을 넘어 영원히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바라보고 그 사랑에 참여하면서 하느님과의 충만한 친교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을 떠올리게 됩니다. “저의 온 존재가 당신과 하나 될 때, 더 이상의 고통과 수고는 없을 것입니다. 저의 생명은 당신으로 온전히 채워진 참된 생명이 될 것입니다.”  이 충만한 친교의 특징이 무엇이겠습니까? 행복입니다. 행복은 우리 인간의 소명이고, 모든 이가 열망하는 목표입니다.

 

그런데 행복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기다리고 열망하는 행복이 무엇입니까? 덧없는 쾌락, 한 번 경험하면 계속해서 더 갈망하게 만드는 순간의 만족감, 우리의 마음이 충족되지 않고 점점 더 공허하게 만드는 집착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을 갈망합니다. 행복은 결정적으로 우리에게 충만함을 가져다줄 수 있는 단 한 가지, 바로 사랑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2. 영원한 생명과 관련된 또 다른 현실은, 우리 개개인의 삶의 끝에 그리고 역사의 끝에 있을 하느님의 심판입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깨어 있으면서, 우리의 삶이 심판받게 될 그 순간을 위하여 실제로 우리 자신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희망은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근거 없는 두려움으로부터 보호하는 향주덕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께서 말씀하셨듯이, “심판 때에 우리는 세상과 우리 안의 모든 악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커다란 힘을 체험하고 온몸으로 받아들입니다. 사랑의 아픔은 우리 구원이며 우리 기쁨이 됩니다.”

 

23. 사실, 대사는 하느님 자비의 무한함을 발견하는 방법의 하나입니다. 고해성사를 통하여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죄를 없애시고,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시며, 우리를 일으키시고, 우리를 포용하시며, 그분의 부드럽고 자비하신 얼굴을 우리에게 드러내실 수 있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적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듯이, 모든 죄는 흔적을 남깁니다.’ 죄는 결과를 낳습니다.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의 영향인 외적인 결과만이 아니라 내적인 결과도 낳습니다. “모든 죄는, 소죄까지도, 피조물들에 대한 불건전한 집착을 초래하는데, 이는 이 세상에서나 죽은 뒤에 연옥이라고 부르는 상태의 정화를 필요로 합니다.”

 

용서가 과거를 바꾸지는 않습니다. 용서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바꿀 수는 없지만 미래를 바꿀 수 있게 하고, 분노와 적대감과 복수심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살 수 있게 해 줍니다. 용서는 더 밝은 미래를 가능하게 하는데, 비록 과거의 눈물 자국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처럼 밝은 미래는 과거를 다른 시선으로, 더욱 평화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24. 희망의 가장 탁월한 증언은 하느님의 어머니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 때문에 겪는 슬픔의 고통 안에서 마리아께서는 우리의 어머니, 곧 희망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대중 신심이 계속해서 복되신 동정녀를 바다의 별이라고 부르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바다의 별이라는 호칭은 삶의 폭풍우 한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우리를 도우러 오시어, 우리가 희망과 신뢰 안에서 인내심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도록 지탱하시고 격려하신다는 확실한 희망을 보여 줍니다

 

저는 모든 이가, 특히 고통받는 이들과 가장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지극히 사랑이 넘치는 어머니이시고, 당신 자녀들을 결코 저버리지 않으시며,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이신 성모 마리아께서 가까이 계심을 알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25. 희년을 향한 우리의 여정에서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새겨봅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 우리를 위하여 선구자로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히브 6,18-20).

 

그러므로 다가오는 희년은 시들지 않는 희망,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희망으로 특징지어지는 성년이 될 것입니다. “주님께 바라라. 네 마음 굳세고 꿋꿋해져라. 주님께 바라라”(시편 27[26],14). 찬미와 영광을 이제와 영원히 받으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확신으로 기다리면서 우리의 하루하루에 희망의 힘이 넘쳐흐르기를 바랍니다

 

 

로마 성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프란치스코

 

 

원문: https://www.cbck.or.kr/Notice/20242239?gb=K120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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