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연중 제14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나해) 마태 10,17-22; '24/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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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4-06-21 ㅣ No.5809

연중 제14주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신심

(나해) 마태 10,17-22; '24/07/07

 

예전에 한번 한국교회사연구소와 가톨릭신문이 공동으로, 김대건 신부님께서 주교님과 선교사 신부님들을 모시기 위해 중국까지 왕복한 라파엘호를 복원하였습니다. 라파엘호는 약 11명 정도 탈 수 있는 배입니다. 복원 기념으로 라파엘호를 끌고 중국에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기념행사를 치뤘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국에서 돌아오려고 할 때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최측에서는 김대건 신부님께서 귀국하고자 했던 그때 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신부님들과 참석자들이 작은 라파엘호에 올라타서, 큰 배에 라파엘호를 매달고 출항하고자 했더니, 중국당국에서 출항허가를 내주지 않았답니다. 이유인즉, “너희 나라에 가서 죽으라.”라는 것이었답니다. 너무 위험해서 출항허가를 내주지 않았답니다.

 

지금은 물론 그때도 목숨을 내놓고, 설사 성공하여 조선으로 귀국한다고 하더라도, 죽음의 체포령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종교의 자유가 이루어진 다음에 시도하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까지 위험한 길을 선택했을까?’

라고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또 다시 생각해 보면, 울지 않은 아기 젖 안 주듯이, 원치도 않는 종교자유를 다른 누가 선물해 줄리 없기 때문에, 그 위험한 선교의 길을 택했으리라 짐작이 갑니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오늘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겸 교황 주일을 맞아, , 무엇 때문에, 성인들을 비롯한 우리가 죽음을 무릅쓰고까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지, 교회의 소명을 되새겨 보기로 합시다.

 

첫째로, 교회는 무엇보다 먼저 선교와 복음화를 위한 공동체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서로 사랑하셔서 그 사랑의 열매로 세상이 창조되고, 그 사랑의 힘으로 세상이 굴러가듯이, 교회는 주님의 말씀대로 세상 끝까지 사랑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세상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라(마태 28,19-20 참조)고 하신 명령에 따라 선교합니다. 이 선교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죽으셨다가 부활하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셨고, 마지막 날 우리를 구하러 다시 오시리라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며, 그 기쁜 소식을 따라 변화하는 복음화입니다.

 

그러기에 교황 바오로 6세는 복음 선교는 그리스도를 알리고 세례를 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현대의 복음선교 17),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계획에 상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 사항, 사고방식, 영감의 원천, 생활 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데 있다.”(19)고 말합니다.

 

두 번째로, 교회가 할 일은 사도양성과 공동체 건설입니다.

교회는 성령의 인도로 지상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대리하여, 이 땅에 복음을 선포하며 하느님 나를 완성하기 위해, 교회를 이룰 성직자를 양성합니다. 아울러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의 처세방법에 따라 살지 않고, 가난과 정결과 순명의 복음삼덕을 살아감으로써, 교회의 빛과 기둥이 되는 수도자들도 양성합니다. 그리고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가,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의 삶과 자신이 맡은 역할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대로 실현할 평신도 그리스도인을 양성합니다.

 

이렇게 교회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인도로, 주님과의 친교 안에서 서로 하나되어,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향해 순례하는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고 양성합니다.

 

세 번째로, 교회는 이웃과 사랑나눔을 합니다.

이웃과의 사랑 나눔은 단지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함께하는 것입니다. 함께함으로써 마음을 열고, 마음을 모아 함께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세 번째 소명의 예를 발견합니다.

 

사제도 종교 지도자들도 강도 만난 사람을 못 본 채 지나쳐 갔는데, 평소에 원수로 여기던 사마리아 사람이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루카 10,33-35)라는 예수님의 비유가 우리 사랑 나눔의 원형입니다.

 

성령의 인도로,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영적, 물적으로 어려운 이들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함께하는 일이, 우리 교회가 채워야 할 세 번째 소명입니다.

 

선교와 복음화, 사도양성과 공동체 건설, 이웃과의 사랑나눔, 이 세 가지는 우리 교회의 세 가지 소명이자 신자 생활의 세 가지 기준입니다. 이 세 가지 교회의 사목활동은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받은 예수님의 사도들로부터,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비롯한 모든 성인 성녀들, 그리고 그분들로부터 신앙을 전수받은 오늘 우리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여, 하느님 나라를 만드는 방법이자 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였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로, 그리스도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을 이 땅에서 실현하기 위한 신앙 공동체입니다. 오늘 우리 개인과 교회 공동체의 현실을 점검하고, 주님의 사명을 이루기로 합시다.

 

아울러 성 김대건 안드레아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101위 순교성인들의 뒤를 이어, ‘124위 순교복자분들이 성인 품에 오르시도록, 그리고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님과 조선 왕조 치하의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순교자분들과 근현대 신앙의 증인인 하느님의 종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님과 동료 80위 순교자분들하느님의 종 소 브뤼기에르 주교님이 하루 빨리 시복 시성되어 우리 한국천주교회의 신앙을 드높일 수 있도록 기도하고, 그분들의 순교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민족과 사회에 신앙을 증거하고 사랑을 나눔으로써, 이 땅에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수 있도록 희생봉사합시다.

 

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마태 10,19)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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