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성당 게시판
[시] 어머니, 다시 시작하게 하십시오(성모성월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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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다시 시작하게 하십시오.
숱한 빛과 빛들이 반짝이다 지친 밤이면 어머니, 다시 시작하게 하십시오.
처음 이 낯선 땅에 보내졌을 때에는 세상을 밝히라고 한 번도 사른 적이 없던 크고 빛 고운 생명이, 부서진 조각 위에 터를 닦고 순간에 안식하던 세월을 지나는 동안 그만 유혹의 불길에 다 타고 밑둥에 심지조차 없지만 당신을 위하여 이제 다시 불을 켜겠습니다.
햇살이 눈부신 낮녘에 다시 되돌릴 수 없이 교만한 빛을 너울대던 촛농을 두 손에 모아 손톱 끝에 불을 지피겠습니다. 아픔이 손마디를 갉아 타들어 올 때 어머니, 당신의 아들을 생각하겠습니다.
세상의 아픔을 눈물로 깨물어 옷자락에 담으신 어머니, 삶의 상처마다 바튼 아픔으로 쏟아야 하는 피가 마침내 굳어지고 졸여져서 먹으로 되기까지, 조용히 아픔에도 다져지고 다져지면, 가슴은 타오르다 재로 다 삭은 어둠이어도 어머니, 당신을 바라는 작은 불꽃으로 다시 피어나겠습니다.
하늘을 눈감고 죄 많은 흙 속을 피 흘리며 파들다 마침내는 잎새 시들고 가벼운 향내조차 빼앗긴 내 마음 아실 내 혼자 마음 낱낱이 아실 어머니, 당신 발밑에 뉘우침이 무겁던 한 송이 이름 없는 풀꽃으로 다시 피어나겠습니다.
숱한 빛과 빛들이 반짝이다 지친 그런 밤이면 어머니, 다시 시작하게 하십시오.
- 초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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