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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읽는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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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 [marianna02] 쪽지 캡슐

2000-01-25 ㅣ No.731

좀 길어서 안올리려구 했는데요.. 그래도 올리렵니다.. ^^;;

 

어는 손 이야기

 

  그는 참으로 부지런한 손이었습니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잠시도 쉬는 일이 없었습니다.  봄이 오면 들에 나가 밭을 매고, 가을이 오면 논에 나가 추수를 하였습니다.  추수하다가 낫에 손가락을 베어 상처는 오히려 영광이었습니다.  상처에 새살이 돋고

굳은살이 박히면 그는 그런 자신이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웠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손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손이라는 믿음과 긍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손의 그러한 마음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수몰된 고향을 떠나 강원도 어느 탄광촌의 막장 광원으로 일하게 되면서부터였습니다.  

지하7백미터 지점에서 다시 수평으로 1천미터 정도 이동한 어느 한 지점의 막장에서 일하는 그는 는 탄 캐는 일이

힘들고 피곤했습니다.  농사일에 비하면 너무나 고되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나무와 곷들이 사는 땅 위에서 일한다는 것이 그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참으로 뼈저리게 느껴졌습니다.

  하루는 몸살 감기 때문인지 지벵 돌아오자 그는 몹시 피곤했습니다.  뜨뜻한 구들목에 자신을 집어넣고 추위와 노동에 시달린 몸과 마음을 마냥 쉬고만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엌으로 내려가 솥에 끓여놓은 뜨거운 물을 한 대야 퍼서 발을 씻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사실 늘 발을 씻기는 일이 뭐 별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습니다.  발을 씻기면 자연히 자신도 깨끗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단 한번도 발을 씻기는 일을 싫어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날따라 그는 꼼짝도 하기 싫었습니다.  뜨거운 물에 닿는 것조차 싫고 짜증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동안 늘 그랬던 것처럼 발을 씻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그는 하얗고 깨끗한 발을 씻기다가 문득 발이 밉살스러워졌습니다.  시커멓게 탄가루가 묻을 정도로 열심히 일을 한 그가 일을 하지 않은 허연 발까지 씻겨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날 밤, 그는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피곤한 가운데서 정성것 씻겨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고마운 줄 모르고 쿨쿨 잠만 자는 발을 보자 몹시 마음이 언짢았습니다.

  나는 왜 항상 발을 씻겨주어야 하지? 발이 나를 씻겨주면 안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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