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에서, 마음은 심장을 말합니다 [번역오류] 1032_heart 869_tran KH_errors

인쇄

. [218.55.90.*]

2015-02-10 ㅣ No.1612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 찬미 예수님!

 

 

 

 

입문 게시자 주 1: "특정 개념들 사이에 존재할 수도 있는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tionality)"을 예를 들어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자 단어 "心" 글자에 대하여 어릴 적에 우리가 "마음 심" 이라고 외웠던 것은, 추상적 개념을 나타내는 순수한 우리말 단어인 "마음"이 의미하는 바를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에 우리의 신체의 장기인 심장(心臟)을 나타내는 상형 문자인 "心" 글자를, "마음" 이라는 단어 대신에, 사용하기 위하여서였지, 그 역을 위하여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즉, 한자 단어 "心" 글자에 대하여 어릴 적에 우리가 "마음 심" 이라고 외웠던 것은, 우리의 신체의 장기인 심장(心臟)을 나타내는 상형 문자인 "心" 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와 이 자구적 의미에 근거한, "한 가운데" 등의, 여러 파생 의미들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고자 할 때에, 한자 단어 "心" 글자 대신에, 순수한 우리말 단어인 "마음"을 사용하고자 함이 결코 아니었음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달리 말하여, "心(심장)" 이라는 상형 문자는, 이미 우리들의 기억에 주입된 "마음 심" 이라는 방향성을 가지는 한 개의 연상(an association)의 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마음" 을 연상하게 하나, 그러나, 역으로, "마음" 이라는 순수한 우리말 단어는, 이 단어가 나타내는 개념/의미의 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心(심장)" 을 연상하게 하지 못함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지금 지적한 바에 관하여서는, "표준국어대사전"에 주어진 "마음" 과 "심장"에 대한 설명들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하면서 꼭 읽도록 하십시오.

 

다른 한편으로, 차용 번역 용어들인 "심장(heart)" 과 "마음(mind)" 사이에, 우리말로의 번역 이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원 단어들 "heart" 와 "mind" 이 나타내는 개념들 사이의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ionality)을, 우리말로의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 과정에서 충실하게 보존하여 전달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차용 번역 용어들이 아닌 우리말 단어들인 "심장" 과 "마음"에 대하여 이미 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은 "이들 우리말 단어들이 나타내는 개념들 사이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tionality)"을 우선적으로 올바르게 이해하여야 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바는, 어느 특정 언어에 종속되는 문제가 아니고, 언어 이전에 언어를 통하여 전달될 대상들인, 논리(logic)의 단계에 있는개념들 사이 존재하는 연상(association)의 방향성(directionality)에 관한 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주소를 클릭하면, 차용 번역 용어들인 "심장(心臟, heart)""마음(mind)" 의 차이점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 모두를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heart.htm <----- 필독 권고

(이상, 입문 게시자 주 1 끝)

 

여기서부터 이 글의 본문 시작

 

1. 들어가면서

다음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 전문입니다. 독자들에게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일부 용어들을 굵게 표시하고 색칠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하였습니다:

 

출처: http://www.albummania.co.kr/gallery/view.asp?seq=157803&path=110610121307&page=77

(발췌 시작)
112 1. 우선“성경 전체의 내용과 단일성” 에 특히 유의할 것. 왜냐하면 성경을 구성하는 책들이 아무리 다양하다 해도, 실제로 성경은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 때문에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이후 밝혀진 그 계획의 중심이시며 심장이시다. 84)

          그리스도의 마음85) 알려 주는 성경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신의 
          수난 전에는 성경이 모호하였으므로 이 마음은 닫혀 있었다. 그러나 수난 후에는 성경이 
          열렸다. 이때부터 성경을 깨달은 사람들이, 예언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야 할지를 
          고찰하고 식별하였기 때문이다. 86)

 

-----

84. 루카 24,25-27.44-46 참조.
85. 시편 22(21),15 참조.
86.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시편 해설」 , 21, 11: Opera omnia, 18권(파리, 1876), 350면.

-----

(이상, 발췌 끝)

 

질문 1: 위의 우리말 번역문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려 주는 성경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라고 번역된 문장을 읽고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헷갈리지 않는지요???

 

질문 2: 위의 우리말 번역문에서,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인 "심장""마음"이 사용되었는데, 이들을 각각에 대응하는 원 라틴어 용어들이 무엇인지요? 혹시라도 동일한 라틴어 용어가 아닌지요???

 

질문 3: (번역 오류) 그리고 무슨 이유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에서 "Passover""부활" 로 번역하였는지요???

 

게시자 주 1: 이들 질문들에 대한 답변들은 아래의 제4항에 제시되어 있습니다.

 

2.

2-1, 다음은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라틴어 정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 전문입니다:

 

출처:

(발췌 시작)

112 1. Magnam praestare attentionem « ad contentum et unitatem totius Scripturae ». Etenim licet libri qui illam componunt, valde sint diversi, una est Scriptura ratione unitatis propositi Dei, cuius Christus Iesus centrum est et post Suum Pascha apertum cor. 104


          « Per cor 105 Christi intelligitur sacra Scriptura, quae manifestat cor Christi. Hoc autem 
          erat clausum ante passionem, quia erat obscura: sed aperta est post passionem quia 
          eam iam intelligentes considerant, et discernunt quomodo prophetiae sint exponendae ».
          106

(이상, 발췌 끝)

 

2-2. 다음은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이탈리아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ccc_it/documents/2663cat017-308.PDF

(발췌 시작)
112 1. Prestare grande attenzione « al contenuto e all’unità di tutta la Scrittura ». Infatti, per quanto siano differenti i libri che la compongono, la Scrittura è una in forza dell’unità del disegno di Dio, del quale Cristo Gesù è il centro e il cuore aperto dopo la sua pasqua.84 

          « Il cuore 85 di Cristo designa la Sacra Scrittura, che appunto rivela il cuore di Cristo. 
          Questo cuore era chiuso prima della passione, perché la Scrittura era oscura. Ma la 
          Scrittura è stata aperta dopo la passione, affinché coloro che ormai ne hanno 
          l’intelligenza considerino e comprendano come le profezie debbano essere interpretate 
          ».86

 

-----

84 Cf Lc 24,25-27.44-46.
85 Cf Sal 22,15.
86 San Tommaso d’Aquino, Expositio in Psalmos, 21, 11: Opera omnia, v. 18 (Parigi 1876) p. 350.

-----

 

2-3. 다음은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프랑스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FRA0013/__PR.HTM

(발췌 시작)

112 1. Porter une grande attention " au contenu et à l’unité de toute l’Écriture ". En effet, aussi différents que soient les livres qui la composent, l’Écriture est uneen raison de l’unité du dessein de Dieu, dont le Christ Jésus est le centre et le cœur, ouvert depuis sa Pâque (cf. Lc 24, 25-27. 44-46).

 

          Le cœur (cf. Ps 22, 15) du Christ désigne la Sainte Écriture qui fait connaître le cœur du
          Christ. Ce cœur était fermé avant la passion car l’Écriture était obscure. Mais l’Écriture a 
          été ouverte après la passion, car ceux qui désormais en ont l’intelligence considèrent et
          discernent de quelle manière les prophéties doivent être interprétées (cf. S. Thomas d’A.,
          Psal. 21, 11).

(이상, 발췌 끝)

 

2-4. 다음은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ccc_css/archive/catechism/p1s1c2a3.htm#112

(발췌 시작)

112 1. Be especially attentive "to the content and unity of the whole Scripture". Different as the books which compose it may be, Scripture is a unity by reason of the unity of God's plan, of which Christ Jesus is the center and heart, open since his Passover.79

 

          The phrase "heart of Christ" can refer to Sacred Scripture, which makes known his heart,
          closed before the Passion, as the Scripture was obscure. But the Scripture has been 
          opened since the Passion; since those who from then on have understood it, consider 
          and discern in what way the prophecies must be interpreted.80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2: 다음은 위의 제1항에 발췌된, 기존의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 전문입니다. 이 발췌문이 바로 아래의 제2-5항에 제시된, 많아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우리말 번역문과, 어디서, 얼마나, 그리고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정밀하게 비교/검토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http://www.albummania.co.kr/gallery/view.asp?seq=157803&path=110610121307&page=77

(발췌 시작)
112 1. 우선“성경 전체의 내용과 단일성” 에 특히 유의할 것. 왜냐하면 성경을 구성하는 책들이 아무리 다양하다 해도, 실제로 성경은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 때문에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이후 밝혀진 그 계획의 중심이시며 심장이시다. 84)

          그리스도의 마음85) 알려 주는 성경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신의 
          수난 전에는 성경이 모호하였으므로 이 마음은 닫혀 있었다. 그러나 수난 후에는 성경이 
          열렸다. 이때부터 성경을 깨달은 사람들이, 예언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야 할지를 
          고찰하고 식별하였기 때문이다. 86)

 

-----

84. 루카 24,25-27.44-46 참조.
85. 시편 22(21),15 참조.
86.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시편 해설」 , 21, 11: Opera omnia, 18권(파리, 1876), 350면.

-----

(이상, 발췌 끝)

 

2-5. 다음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졸번역입니다:

 

112 1. '전체 성경의 내용과 단일성 쪽으로' 특히 유의하십시오. 비록 성경을 구성하는 책들이 갖가지라고(different) 하더라도,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그 계획의 중심(center)이고 그리고 심장(heart)인, 당신의 파스카/과월제(過越祭)/유월제(逾越祭)(Passover) 이후에 열린, 하느님의 계획의 단일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한 개의 단일체(a unity)입니다,

 

          "그리스도의 심장(heart)(시편 22,15 참조)" 이라는 표현은, 과거에 성경이 모호하였기
          때문에
당신의 수난 전에 닫혀있었던, 당신의 심장(heart)을 알게 하는, 성경 본문
          (Sacredd Scripture)에 대한 언급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본문은 당신의 수난
          (Passion) 후 지금까지 이미 열려 있는데, 왜냐하면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성경 본문을 
          이해해온 자들이, [성경 본문 중의] 예언들이 마땅히 해석되어야만 하는 바로 그 
          방식대로, 고찰하고 그리고 식별하기 때문입니다.(루카 복음서 24,25-27. 44-46 
          참조) [성 토마스 아퀴나스, 「시편 해설」 , 21, 11:(***) Opera omnia, 18권(파리, 
          1876), 350면].(#1)

 

혹은

 

          "그리스도의 심장(heart)(시편 22,15 참조)"에 의하여 성경은 이해되며(intelligitur),
          [그리고]
성경은 그리스도의 심장(heart)을 드러냅니다(manifests). 그러나, 바로 이
          심장은 당신의 수난 전에, 왜냐하면 성경이 모호하였기 때문에, 닫혀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당신의 수난(Passion) 후 지금까지 이미 열려 있는데, 왜냐하면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성경을 이해해온 자들이, [성경의] 예언들이 마땅히 해석되어야만
          하는 바로 그 방식대로, 고찰하고 그리고 식별하기 때문입니다(루카 복음서 24,25-
          27, 
44-46 참조) [성 토마스 아퀴나스,「시편 해설」, 21, 11:(***) Opera omnia, 
          18권(파리, 1876), 350면].(#2)

 

-----
(*) 번역자 주: 이 우리말 번역문은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마련되었다:

 

(i) 시편 22,15에 대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라틴어 원문 해설 자체에 상당히 난해한 부분이 있다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판단에 따라,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ii) 성 토마스 아퀴나스시편 22,15에 대한 자신의 해설에서, 아래의 제3-6항에 발췌되어 있는성 아우구스티노시편 22,15에 대한 주석을 뒤따르고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되었기에,

 

(iii) 아래의 제3-6항에 발췌되어 있는 성 아우구스티노시편 22,15에 대한 주석 영문본과 이탈리아어본, 프랑스어본 및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에 발췌 인용되어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시편 22,15에 대한 해설의 해당 지역 언어본 번역문들을 십분 참조하여, 위의 우리말 번역문이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에 의하여 마련되었다. 그리고 그 내용 전달에 있어, (#1)(#2)보다 더 나은 번역일 것이다.

 

(iv) 사실 1997년라틴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정본이 마련되기 전인 1992년프랑스어로 저술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초판이 처음으로 발행되었는데,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생각에, 이 프랑스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초판을 집필한 성직자들께서도 제112항의 문장을 프랑스어로 기술할 때에, 또한 필자처럼, 성 아우구스티노시편 22,15에 대한 주석을 이미 알고 있었거나 혹은 참조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번역자 주: 이 문장은 라틴어 정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에 발췌 인용된 성 토마스 아퀴나스시편 22,15에 대한 해설의 의 첫 번째 문장(***)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데, 라틴어본 원문 자체가이탈리아어본, 프랑스어본 및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에 발췌 인용되어 있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시편 22,15에 대한 해설의 해당 지역 언어본 번역문들에 비하여, 상당히 난해하다는 생각이다.

 

(***) 번역자 주: 다음은 시편 22,15에 대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해설에서 발췌한 것인데, 이 주소에  있는, l 시작 바로 직전의 문장(즉, k 의 마지막 문장)이 위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에서 발췌되어 인용되고 있다:

 

출처: http://dhspriory.org/thomas/PsalmsAquinas/ThoPs21H22.htm 

(발췌 시작)

Alia est fortitudo animae, quae consistit in corde; unde dicit, Factum est cor meum tanquam caera liquescens.

 

The other is a strength of the soul which consists in the heart. And so he says, My heart has become like melting wax.

 

Quaerit Augustinus quomodo de Christo capite verum sit: quia hoc videtur provenire ex superabundanti timore, quod non est dicendum de Christo: quia etsi fuerit in eo timor naturalis, non tamen fuit tantus quod liquesceret cor. Et ita intelligitur de Christo non secundum se, sed quantum ad membra, quae quidem sunt cor Christi, quae et praecipue diligit: Phil. 1. Eo quod vos habeam in corde. Et sequitur, Testis est mihi Deus, quomodo cupiam vos esse in visceribus Iesu Christi.

 

Augustine asks how true this is of Christ the head, because this seems to come about from an excess of fear, which is not fittingly said of Christ, since even if natural fear arose in him, nevertheless it was not so much that it melted (or softened) his heart. It is thus not understood of Christ as such, but with respect to his members, which indeed are the body of Christ, and which he especially loves - Phil. 1: ...for that I have you in my heart. And it follows, God is my witness, how I long after you all to be in the bowels of Jesus Christ.

 

Hi fuerunt apostoli qui fuerunt ossa ad sustentandum infirmos in ecclesia, sicut ossa sustentant carnes: Rom. 15. Debemus nos firmiores imbecillitatem infirmorum sustinere.

 

These became apostles who became bones to uphold the infirm within the Church, just like the bones uphold the flesh - Rom. 15: We, the stronger, ought to bear the weakness of the infirm.

 

Et fuerunt corda eorum sicut caera liquescens. Primo mala liquefactione per timorem, sicut in fuga discipulorum: Matt. 26. Tunc relicto eo fugerunt omnes. Et in negatione Petri: Luc. 22. At ille negavit dicens, homo nescio quid dicis.

 

And their hearts became like melting wax. First, by an evil melting (or softening) through fear, like in the flight of the disciples - Matthew 26: Then leaving him, they all fled. And in Peter's denial - Luke 22: But he denied him saying, "Man, I do not know what you are talking about."

 

Secundo bona liquefactione, sicut in conversione discipulorum, ut patet in Petro et Andrea. Vel dicendum quod liquefactio etiam est amoris: Cant. 5. Anima mea liquefacta est. Res antequam liquefiat dura est et constricta in se; si liquescit, diffunditur et tendit a se in aliud.

 

Second, by a good melting (or softening), like in the conversion of the disciples, as is clear with Peter and Andrew. Or it ought to be said that melting (softening) is also of love - Song of Songs 5: My soul has melted (softened). Before a thing melts (softens), it is hard and bound in itself; if it melts (softens), it pours out, and tends from itself into another.

 

Timor etiam quandoque indurat, quando scilicet non est magnus: et sic est etiam de amore, quia quando supervenit amor, tunc ostendit in aliud quod ante in se erat. Et de hac liquefactione potest exponi etiam de Christo, secundum quod est caput: nam hoc liquefieri et est a Spiritu sancto, et est in medio ventris, idest affectus.

 

Fear also hardens sometimes, namely when it is not great. It is also so with love, because when love supervenes, then it shows in another what before was in itself. And concerning this melting (softening), it can even be explained concerning Christ, insofar as he is head. For this melting (softening) is both from the Holy Spirit, and in the midst of his bowels, that is his desire.

 

Vel per cor Christi intelligitur sacra Scriptura, quae manifestat cor Christi. Hoc autem erat clausum ante passionem, quia erat obscura; sed aperta est post passionem, quia eam iam intelligentes considerant, et discernunt quomodo prophetiae sint exponendae.

 

Or, by the heart of Christ is understood Holy Scripture, which manifests the heart of Christ. However, this was closed before the passion, because it was obscure; but is opened after the passion, because they consider it now understanding, and they teach how the prophets are to be explained.

 

혹은 그리스도의 심장(heart)에 의하여 성경은 이해되며, [그리고] 성경은 그리스도의 심장(heart)을 드러냅니다(manifests). 그러나, 바로 이 심장은 당신의 수난 전에, 왜냐하면 성경이 모호하였기 때문에, 닫혀져 있었으나, 그러나 당신의 수난 후부터 [성경은] 열려져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이제 성경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며[루카 복음서 24,25-27. 44-46 참조], 그리하여 그들은 예언들이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지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상, 발췌 및 일부 문장에 대한 우리말 번역 끝)

----- 

 

3.

시편 제22장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의 일곱 개의 마지막 말씀(즉, 가상칠언)들 중의 일부가 기록된, 그리스도의 수난과 관련지어지는 시편인데, 이번 항에서는, 연대순에 있어 거슬어 올라가면서, 시편 22,15에 대한 가톨릭 주석들을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3-1. 시편 제22장에 대한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교리 교육용 일반 알현 강론 말씀 해설은 다음에 있습니다: 

출처: http://w2.vatican.va/content/benedict-xvi/en/audiences/2011/documents/hf_ben-xvi_aud_20110914.html 

 

3-2. 시편 제22장에 대하여 언급하시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교리 교육용 일반 알현 강론 말씀들은 다음에 있습니다: 

출처: "psalm 22"  "general audience" site:http://www.miraclerosarymission.org/

 

3-3. 다음은 1970년에 번역자들의 주석과 함께 처음 출판된 New American Bible(NAB)에 주어진 시편 제22장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_PGE.HTM

(발췌 시작)

[Psalm 22] A lament unusual in structure and in intensity of feeling. The psalmist's present distress is contrasted with God's past mercy in Psalm 22:2-12. In Psalm 22:13-22 enemies surround the psalmist. The last third is an invitation to praise God (Psalm 22:23-27), becoming a universal chorus of praise (Psalm 22:28-31). The psalm is important in the New Testament. Its opening words occur on the lips of the crucified Jesus (Mark 15:34; Matthew 27:46), and several other verses are quoted, or at least alluded to, in the accounts of Jesus' passion (Matthew 27:35, 43; John 19:24).

(이상, 발췌 끝)

 

3-4. 다음은 Haydock's Catholic Bible Commentary 1859 에 주어진 시편 22,15에 대한 주석 전문입니다:

 

출처: http://haydock1859.tripod.com/id746.html

(발췌 시작)
Ver. 15. Water, in the agony, or on the cross, fainting away, Josue vii. 5. --- Bones. In extreme pain, (Calmet) they have been dislocated. (Haydock) --- The bones signify the apostles, who were scattered through the world, to propagate the gospel. (St. Augustine) --- Heart. Which lives and dies first, is now like wax in the fire. (Worthington)
(이상, 발췌 끝)

 

3-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시편 22,15에 대한 해설 전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dhspriory.org/thomas/PsalmsAquinas/ThoPs21H22.htm 

[이 주소에  있는, l (즉, 시편 21,12) 시작 바로 직전의 문장이 위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에서 발췌문으로 인용되고 있다]

 

3-6. 다음은 성 아우구스티노(St. Augustine, 354-430년)시편 22,14-15에 대한 해설 전문인데, 이 해설을 읽어보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에서 발췌 인용된 시편 22,15에 대한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의 해설이, 시편 22,15에 대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해설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www.clerus.org/bibliaclerusonline/en/ce5.htm [교황청 소속 성직자용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15. "I was poured out like water, and all My bones were scattered" (verse 14). "I was poured out like water," when My persecutors fell: and through fear, the stays of My body, that is, the Church, My disciples were scattered from Me.(2)

 

"My heart became as melting wax, in the midst of my belly.

 

 My wisdom, which was written of Me in the sacred books, was, as if hard and shut up, not understood: but after that the fire of My Passion was applied, it was, as if melted, manifested, and entertained in the memory of My Church.

 

성스러운 책들에 나에 관하여 기록되어 있는, 나의 지혜는 과거에, 마치 굳어져 있고 그리고 닫혀져 있는 것처럼, 이해되지 못하였으나, 그러나 나의 수난(My Passion)의 바로 그 불(fire)이 적용된 후, 나의 지혜는, 마치 녹은 것처럼, 드러내어졌고 그리하여 나의 교회의 기억 안에서 유지되었다.

16. "My strength dried up as a potsherd" (verse 15). My strength dried up by My Passion; not as hay, but a potsherd, which is made stronger by fire. "And My tongue cleaved to My jaws." And they, through whom I was soon to speak, kept My precepts in their hearts. "And Thou broughtest Me down to the dust of death." And to the ungodly appointed to death, whom the wind casteth forth as dust from the face of the earth,(3) Thou broughtest Me down.
(이상, 발췌 및 일부 문장에 대한 우리말 번역 끝)

 

4.

다음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 전문입니다. 독자들에게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일부 용어들을 굵게 표시하고 색칠를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하였습니다:

 

출처: http://www.albummania.co.kr/gallery/view.asp?seq=157803&path=110610121307&page=77

(발췌 시작)
112 1. 우선“성경 전체의 내용과 단일성” 에 특히 유의할 것. 왜냐하면 성경을 구성하는 책들이 아무리 다양하다 해도, 실제로 성경은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 때문에 하나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이후 밝혀진 그 계획의 중심이시며 심장이시다. 84)

          그리스도의 마음85) 알려 주는 성경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당신의 
          수난 전에는 성경이 모호하였으므로 이 마음은 닫혀 있었다. 그러나 수난 후에는 성경이 
          열렸다. 이때부터 성경을 깨달은 사람들이, 예언을 어떤 방식으로 해석해야 할지를 
          고찰하고 식별하였기 때문이다. 86)

 

-----

84. 루카 24,25-27.44-46 참조.
85. 시편 22(21),15 참조.
86.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시편 해설」 , 21, 11: Opera omnia, 18권(파리, 1876), 350면.

-----

(이상, 발췌 끝) 

 

4-1. 

 

 

 

 

 

질문 2: 위의 우리말 번역문에서, 차용(借用) 번역 용어들인 "심장""마음"이 사용되었는데, 이들을 각각에 대응하는 원 라틴어 용어들이 무엇인지요? 혹시라도 동일한 라틴어 용어가 아닌지요???

 

질문 2에 대한 답변:

위의 제2항에서 이미 고찰하였듯이,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에서, 영어로 "heart" 로 번역되는 라틴어 성경 용어 "cor""심장" 혹은 "마음"으로 번역이 되었는데, 그러나"심장(cor, heart)"은, 히브리어 구약 성경이 그 기원인, 인간의 신체의 중요한 장기인 형이하학적(physical) 물체를 나타내는 용어이고 그리고 "마음(mind)"은, 인간의 신체의 어느 부위에 있는지 알 수 없는, 추상적(abstract)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이므로, 이러한 임의적/자의적/작위적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명백한 번역 오류입니다. 따라서, 모두 "심장"으로 교체해 주십시오.

(이상, 질문 2에 대한 답변 끝)

 

4-2.

질문 1: 위의 우리말 번역문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려 주는 성경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라고 번역된 문장을 읽고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헷갈리지 않는지요???

 

질문 1에 대한 답변:

위의 제2항에서 함께 고찰한 바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려 주는 성경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라는 우리말 번역문이, 번역 과정에서,

(i) "," 의 생략 이라는, 문장 구조에 있어, 훼손이 발생하였고,

(ii) "... 야 한다" 라는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이 진행되었다는 생각이며, 그리고

(iii) 적절한 차용 번역 용어들의 선정에 실패하였으므로,

번역 오류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지적들과 관련하여, 다음의 두 문장들을 정밀하게 비교/검토해 보십시오. 특히 기존의 번역문은 독자들로 하여금, 논리학에서 소위 말하는, "악순환(cicious cycle, circious circle)"에 빠지게 한다는 생각입니다:

 

[기존의 번역문]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려 주는 성경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이해해야 한다." 

 

[졸번역문 #2] "그리스도의 심장(heart)(시편 22,15 참조)"에 의하여 성경은 이해되며(intelligitur), [그리고] 성경은 그리스도의 심장(heart)을 드러냅니다(manifests)."

 

그런데, 바로 위의 졸번역문 #2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라틴어 원문에 충실한 직역 번역이라는 생각이며, 따라서 라틴어 원문 자체가 난해함을 알 수 있다는 생각인데,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로 이 난해함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에서의 바로 이 발췌문이 이탈리아어본, 프랑스어본, 그리고 영어본 등의 지역 언어로의 번역 작업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많이 해소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졸번역문 #1] "그리스도의 심장(heart)(시편 22,15 참조)" 이라는 구(句)는, 당신의 수난 전에 성경이 모호하였기 때문에 닫혀있었던, 당신의 심장(heart)을 알게 하는, 성경을 나타냅니다(désigne)."

(이상, 질문 1에 대한 답변 끝)

 

4-3. 

질문 3: (번역 오류) 그리고 도대체 무슨 이유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이 우리말로 번역이 될 때에, "Passover""부활" 로 번역될 수가 있는지요???

 

질문 3에 대한 답변:

사실, 다음의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용어 색인용어 검색 결과에 의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에서 "Passover" 라는 용어가 제112항에서 처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이 되는데,

 

66 passover [총 66번 사용되고 있음]

"passover" [총 50개 항들에서 사용되고 있음] 

이 용어가 나타내는 개념이, "부활(Resurrection)" 이라는 용어가 나타내는 개념과 논리적으로 등가인(logicall equivalent) 것입니까???

 

혹시라도, 이들 두 용어들이 동잏한 개념을 나타낸다고 알고 계시는 분들께서는, 예를 들어, 다음의 Modern Catholic Dictionary 에 주어진 설명들을 반드시 학습하도록 하십시오: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p/p102.htm [Passover(파스카)에 대한 설명]

http://www.therealpresence.org/dictionary/r/r128.htm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설명]

 

따라서, 또한 명백한 번역 오류이니,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에서 "부활" 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를, 예를 들어,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43항에서처럼, "파스카"로 교체해 주십시오.

 

4-4. 이 글의 결론

(i) 위의 제2항에 제시된 바,

 

(ii) 제4항에서의 번역 오류 지적들, 그리고

 

(iii)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제목: 신약 본문에서 마음이 마음(mind)이 아니고 심장(heart)인 경우들]에서 말씀드리는 바를 적극 수용하여,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3.htm <----- 필독 권고

 

기존의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12항 전체는 제대로 우리말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게시자 주 4: 다음의 글들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 성경 용어인 "심장(heart)"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어떠한 말씀들을 하시는지 꼭 읽도록 하십시오. 영어로 "heart" 로 번역되는, 그 기원이 히브리어 구약 성경 본문인, 성경 용어는 그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가 [표준국어대사전에 그 의미가 주어진 추상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순수한 우리말 "마음"의 의미가 결코 아닌] 우리 몸/신체의 가장 중요한 장기인 "심장(염통)"을 말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국내의 성직자 및 수도자들께서 꼭 읽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4.htm [성 요한 바오로 2세]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0.htm [성 요한 바오로 2세]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98.htm [베네딕토 16세]<----- 필독 권고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왼 시간: 약 7시간

 



1,716 2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