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성당 게시판

삶의 소중함 일깨워준 '봉사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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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2008-12-18 ㅣ No.11911

독거노인 등 찾아 봉사

나를 환대해 준 눈빛에 세상 원망 모두 사라져
 
중소기업에서 일하다가 회사가 어려워져 사직을 하고 3개월 정도 실업자로 지냈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한 친구가 동업을 제안했다.
잠시 고민했지만 일확천금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불법 성인오락실을 열었다.
두 달도 못 돼 경찰 단속에 걸렸다.
졸지에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80시간까지 선고받은 범죄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난 10월,
법무부 서울동부보호관찰소에 신고하고 2시간 정도 안내교육을 받은 후 강동구 성내동에 있는 성내복지관에 배치됐다. 짜증이 났다.
보호관찰소 직원에게 시비를 걸며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 직원들과 함께 봉사를 나갔다. 서른 집을 돌며 독거노인, 어린 가장들, 장애인 가정을 찾아 도시락을 배달했다.
그리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찾아가 목욕 봉사를 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볕도 들지 않는 지하 방에 혼자 사는 어르신 집이었다. 방문을 열기 전부터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악취가 풍겨왔다. 불편한 몸에 부축해줄 사람도 없는 탓에 그만 방 안에 용변을 보신 것이다. 청소를 하고 준비해온 목욕 도구로 몸을 씻겨드리는데, 거죽밖에 없는 몸에 성한 구석이 없었다. 그런 어르신께서 떠나는 우리에게 빵과 사탕을 쥐여주는 게 아닌가. 복지관에서 준 걸 아껴뒀다가 내놓은 것이다. 뭔가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는 느낌이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 세상에 시비를 걸던 내 마음이 180도 바뀌었다. 이게 아니구나!

도시락을 받고서 고맙다고 웃던 5학년짜리 여자아이 은미(가명)의 웃음도 그랬다.
한 칸짜리 반지하 방에서 교통사고로 누워 계신 아버지와 6살, 4살짜리 동생을 보살피는 소녀 가장이다. 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받으러 들른 은미는 "학교 다니는 게 재미있다"며 씩씩하게 웃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박씨와 소아마비 장애인인 아내 부부도 반지하 방에 살았다. 폐지 수집과 공공근로로 생계를 꾸리는 가족이지만 두 분 모두 우리 손을 잡으며 활짝 웃었다.

밖에 나갔던 분들도 점심 무렵이면 어김없이 집에 돌아와 있었다. 우리가 배달한 도시락으로 세 끼를 때우는 분들도 많았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는 일마다 왜 이리 안 풀리느냐고 세상을 원망하며 불평 불만을 일삼던 내가 한심했다.

열흘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어렵지만 열심히 살고 있는 분들을 보면서 삶의 소중함을 깨닫게 됐다. 점심 때가 되면 도시락을 기다리고 계실 이웃들을 생각하게 됐다. 특별한 것도 없는 도시락이지만 몇 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시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라고, 봉사를 마치고 며칠 뒤 예전에 일하던 회사로부터 연락이 와서 다시 일을 하게 됐다. 앞으로는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며 열심히 살겠다고 다짐한다.

                                                                                     조선일보 / 최강타 ·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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