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방

서울대학교 합격자 생활수기 공모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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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렬 [domini777] 쪽지 캡슐

2010-01-21 ㅣ No.180


    실밥이 뜯어진 운동화 지퍼가 고장 난 검은 가방 그리고 색바랜 옷... 내가 가진 것 중에 헤지고 낡아도 창피하지 않은 것은 오직 책과 영어사전 뿐이다. 집안 형편이 너무 어려워 학원 수강료를 내지 못했던 나는 칠판을 지우고 물걸레질을 하는 등의 허드렛 일을 하며 강의를 들었다. 수업이 끝나면 지우개를 들고 이 교실 저 교실 바쁘게 옮겨 다녀야 했고, 수업이 시작 되면 머리에 하얗게 분필 가루를 뒤집어 쓴 채 맨 앞자리에 앉아 열심히 공부했다. 엄마를 닮아 숫기가 없는 나는 오른쪽 다리를 심하게 절고 있는 소아마비다. 하지만 난 결코 움츠리지 않았다. 오히려 내 가슴 속에선 앞날에 대한 희망이 고등어 등짝처럼 싱싱하게 살아 움직였다. 짧은 오른쪽 다리 때문에 뒤뚱뒤뚱 걸어 다니며, 가을에 입던 홑 잠바를 한겨울에 까지 입어야 하는 가난 속에서도 나는 이를 악물고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 날, 책 살 돈이 필요했던 나는 엄마가 생선을 팔고 있는 시장에 찾아갔다. 그런데 몇 걸음 뒤에서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차마 더이상 엄마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눈물을 참으며 그냥 돌아서야 했다. 엄마는 낡은 목도리를 머리까지 칭칭 감고, 질척이는 시장 바닥의 좌판에 돌아 앉아 김치 하나로 차가운 도시락을 먹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 밤 나는 졸음을 깨려고 몇 번이고 머리를 책상에 부딪혀 가며 밤 새워 공부했다. 가엾은 나의 엄마를 위해서... 내가 어릴 적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는 형과 나, 두 아들을 힘겹게 키우셨다. 형은 불행히도 나와 같은 장애인이다. 중증 뇌성마비인 형은 심한 언어 장애 때문에 말 한마디를 하려면 얼굴 전체가 뒤틀려 무서운 느낌마저 들 정도이다. 그러나 형은 엄마가 잘 아는 과일 도매상에서 리어카로 과일 상자를 나르며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도왔다. 그런 형을 생각하며 나는 더욱 이를 악물고 공부 했다. 그 뒤 시간이 흘러 그토록 바라던 서울대에 합격 하던 날, 나는 합격 통지서를 들고 제일 먼저 엄마가 계신 시장으로 달려 갔다. 그 날도 엄마는 좌판을 등지고 앉아 꾸역꾸역 찬밥을 드시고 있었다. 그때 나는 엄마에게 다가가 등 뒤에서 엄마의 지친 어깨를 힘껏 안아 드렸다. '엄마... 엄마..., 나 합격 했어...' 나는 눈물 때문에 더 이상 엄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엄마도 드시던 밥을 채 삼키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시장 골목에서 한참 동안 나를 꼬~옥 안아 주셨다. 그날 엄마는 찾아 오는 단골손님들에게 함지박 가득 담겨있는 생선들을 돈도 받지 않고 모두 내 주셨다. 그리고 형은 자신이 끌고 다니는 리어카에 나를 태운뒤 입고 있던 잠바를 벗어 내게 입혀 주고는 알아 들을 수도 없는 말로 나를 자랑 하며 시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그때 나는 시퍼렇게 얼어 있던 형의 얼굴에서 기쁨의 눈물이 흘러 내리는 것을 보았다. 그날 저녁, 시장 한 구석에 있는 순대국밥집에서 우리가족 셋은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었다. 엄마는 지나간 모진 세월의 슬픔이 북받치셨는지 국밥 한 그릇을 다 들지 못하셨다. 그저 색 바랜 국방색 전대로 눈물만 찍으며 돌아가신 아버지 얘기를 꺼냈다. '너희 아버지가 살아 있다면 기뻐 했을 텐데...' 너희들은 아버지를 이해 해야 한다. 원래 심성은 고운 분이다. 그토록 모질게 엄마를 때릴 만큼 독한 사람은 아니었어. 계속 되는 사업 실패와 지겨운 가난 때문에 매일 술로 사셨던 거야. 그리고 할 말은 아니지만... 하나도 아닌 둘씩이나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을 둔 애비 심정이 오죽 했겠냐? 내일은 아침 일찍 아버지께 가 봐야겠다. 가서 이 기쁜 소식을 얼른 알려야지. 내가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다투셨는데, 늘 술에 취해 있던 아버지는 하루가 멀다 하고 우리들 앞에서 엄마를 때렸다. 그러다가 하루 종일 겨울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서 한 장만 달랑 남긴 채 끝내 세상을 버리고 말았다. 고등학교 졸업식 날, 나는 우등상을 받기 위해 단상 위로 올라가다가 중심이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계단 중간에서 넘어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움직이지 못할 만큼 온 몸이 아팠다. 그때 부리나케 달려 오신 엄마가 눈물을 글썽이며 얼른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잠시 뒤 나는 흙 묻은 교복을 털어 주시는 엄마를 힘껏 안았고 그 순간, 내 등 뒤로 많은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들려 왔다. 한번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기 위해 매점에 들렀는데 여학생들이 여럿 앉아 있었다. 그날따라 절룩거리며 그들 앞을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구석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측은해 보일까 봐, 그래서 혹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까 봐 주머니 속의 동전만 만지작 거리다가 그냥 열람실로 돌아 왔다. 그리곤 흰 연습장 위에 이렇게 적었다. '어둠은 내릴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어둠에서 다시 밝아질 것이다.' 이제 내게 남은 건 굽이굽이 고개 넘어 풀꽃과 함께 누워 계신 내 아버지를 용서하고, 지루한 어둠 속에서도 꽃등처럼 환히 나를 깨어 준 엄마와 형에게 사랑을 되 주는 일이다. 지금 형은 집안 일을 도우면서 대학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무리 피곤해도 하루 한 시간씩 큰 소리로 더듬더듬 책을 읽어 가며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발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오늘도 나는 온종일 형을 도와 과일 상자를 나르고 밤이 되서야 일을 마쳤다.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어두운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앙드레 말로의 말을 떠 올렸다.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 간다'는 너무도 아름다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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