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리성당 장년게시판

쿰란 동굴에서- 순례의 여정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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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monicacho033] 쪽지 캡슐

2000-07-23 ㅣ No.1648

 순례객을 실은 이집트 버스는  시나이 반도를 거쳐 국경도시인 에일라트에서 순례객을 내려놓는다. 버스에서 짐을 내려 이집트 출국 신고를 하고 이스라엘로 들어가야 한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로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관광 수입으로 살아가는 이집트는 입국때 받는 입국세외에 출국때 출국세를 또 받는다. 이렇다 할 산업이 없고 홍해 바다에서의 석유 생산과 나일강을 젓줄로 한 델타 삼각주 지역의 농업 생산. 그리고 관광으로 간신히 사는 나라이니까 (국민 소득 8백불) 떠나는 관광객들에게까지 작은 돈이지만   알뜰히 달러를 거두는 것 같다.

출국 도장을 받으려고 줄지어 서 있는 관광객들 앞에서 한 이집트인이  여권을 들이미니까 창구 담당자는  먼저 도장을 찍어준다. 그러고보니 여기도 새치기가 있고, 사회 시스팀이  근대화, 현대화되려면 한참인것 같다.

이집트는  일자리가 많지 않고  소득의 분배 차원에서  그런지 관광객들의  차에  별로 필요하지않아도 현지인 인솔  가이드나 경찰을 꼭 대동케 한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논리이다.

 이집트 출국을 마치고 짐을 끌고 100미터쯤 걸어가니 "따바"라는 지역에 있는 이스라엘 출입국관리소가 나온다. 이스라엘은 보안 검사가 철저한 나라이다(텔아비브의 벤구리온 공항은 평균 출입국 수속에 3시간을 잡아야 하는 공항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30명쯤 되는 입국자들의  수속및 짐 검사에 1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우리는 아주 쉽게 끝난거란다. 근무자들은 내 짐에서  예루살렘에 사는 친지 주려고 갖고  간  고추장과 된장을 꺼내놓고 시험용 패치로 용기 주위를  닦고 또 내용물을 조금 떠서 성분 분석까지도 하고 난 후에야  통과시키는 것 이다. 역사 이래로 주변 국가들과 수많은 전쟁을 해왔고 지금도 긴장이 계속되는 나라이니 그럴만도 하겠다.  

 

 이스라엘의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 충남북을 합친 정도이며  인구 8백만명에 국민 소득은 1만6천달러로 우리가 며칠 지낸 이집트와 비교할 때 상당히  잘 사는 나라이다.  수천년을 유랑하며 온갖 설움을 받으며  살아온 유태 민족이 1948년 비로소  정착하여 세운 국가인 이스라엘은  오늘날  컴퓨터 소프트웨어 개발의 중요한 국가요, 세계의 여론을 좌우하는 작지만 영향력 있는 민족이다.

이들의 저력은 어디서 나왔을까. 그것은 종교생활이 기본이 된 탓이란다. 외국에 나가 살아도 매일 히브리어로 된  하느님의 말씀-토라를 읽고 율법을 지키며 교육에 힘써 와 신앙과  히브리 문자를 지킬 수 있었고  철저한 율법의 준수는 악천후의 환경속에서도  건강과 생명을 지키게 했다.   중세시대에  유럽에 페스트나 장티프스등 각종 전염병이 창궐했다. 하수도 시설이 잘 안되어 식수가 오염되어, 많은 이들이 죽었다. 그러나 유태인의 집단 거주지 게토에서만은  사망율이 극히 적었다 한다. 철저한 위생과 종교 생활및 교육등이 그들을 지켜온 저력이다.  

  위도 29~33(한국은 33~43도)도에 자리잡은  이스라엘은 국토의 상당 부분이 사막이다. 그러나 이들은 관개 시설을 잘 개발해 때 메마른 사막에서도 온갖 꽃과 바나나 대추야자등 열대식물및 야채를 키운다.

 식물이 자라는데 필수 요소인 물,공기, 햇볕중 사막의 풍부한 태양을 듬뿍 받고 자란 꽃과 야채는 빛깔부터 선명하고 찬란해 눈길을 끌고  유럽 시장의  40%를 석권한다 .

 

 이스라엘의 국경 도시 아라드에서 하룻밤을 자고 둘째날.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본격적인 성지 순례를 시작한다.

사해 지역의  소돔과 고모라 지역을 지날때는 소금 기둥이 모래 언덕 사이에 마치  고드름처럼 남아 매달려 있는 것이 보인다.또한  "의인 10명만 있어도 이 도시를 살려 주겠다(창세기 19장) "는 야훼의 음성이 생생하게 들리는듯 했다.

 

 AD 69년 로마의 속국에서 벗어나려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역사를 담은  그린  피터 오틀 주연의 영화 "마사다"의 배경인 마사다 요새를 지나가며  유대인의 강인한 민족 정신,  저항 정신을 생각했다.

 

 이날 본 것 중 가장 흥미 있던 것은 쿰란 방문이다.이곳은 사해 사본 성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1947년  양을 치던 베두인 목동이 양 한 마리를  잃어버렸다. 양들은 사막의 더위를 피해 시원한 토굴 속에 숨어버리는 버릇이 있다.  양을 찾기 위해 이 동굴 저 동굴을 기웃거리던  목동은  한 동굴을 발견하고 얼마나 깊은지를 가늠하기 위하여 밑으로  돌을 던졌다.그때 무언가 쨍그랑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소리를 찾아 들어가 보니 아이 키가 훨씬 넘는 큰 오지  항아리와 그  안에 든  두루마리가 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은   두루마리를  시리아의 고물상에 10달러를 받고 팔았다.이것은 뒤에  여러 손을 거쳐 25만달러라는 비싼 값에  동방정교회 총대주교의 손에  넘겨졌다. 그 후 쿰란에 가면 횡재를 한다는 소문이 나 사람들이 몰려왔다.  요르단 국립고고학 박물관장과  프랑스 성서고고학 연구소의 신부님이 발굴 단장이 되어 본격적인 쿰란 발굴 작업을 폈다.쿰란에서 발견된  성경중에는  바룩, 다니엘, 에스델, 유딧, 마카베오, 집회서, 토비트, 지혜서등의 일부가 있다 .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메시아의 구원을  담은 예언서  "이사야서의 완벽한  발견" 이란다.

 이사야서에는

"우리를 위하여 태어날 한 아기, 우리에게 주시는 아드님, 그 어깨에는 주권이 매어지겠고 그 이름은 타고 난 경륜가,용사이신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 불릴 것입니다.(이사야서 9장 6절)"

 는 내용등 인간을  위해  구원자를 보내실 계획이 예언되고 있고  오늘의 성경과  2천년전의 말씀이 조금도 틀림없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 성경을 필사한 주인공은  누구일까?

 BC 4세기, 세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의 영향으로 팔레스타인,이집트

지역에는 헬레니즘  문명이 들어왔으며  북이스라엘은  셀주키아가, 남이스라엘은  톨레미족이 지배하였다. 헬라주의자들은 다신교 신앙을 갖고 있었고 제우스 신의 동상을 세워 경배 할 것을 강요 하는가 하면  예루살렘에서 야훼 하느님께 제사 드리지 못하게 했다.  어수선한 시대적 환경 속에서 종말이 다가 온다고 믿었던 일단의  유대인들은  수도원 운동을  벌인다.

 에세네파의  유대인들은 종말이 가까와 온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들은  흰옷을 입고 정결례를 지키며 종말을 준비하기 위해서 쿰란의 사막에 모여 수도원과 같은 공동체  생활에 들어간다.  낮에는  노동하고 밤에는 기도하며 성경을 적었다. 당시 성경을 필사할  종이-파피루스는 이웃 이집트에서나 구할 수 있었는데 아주  비싸고 귀했다. 따라서 그들은 비싼 파피루스  대신에   아기 양의 가죽을 벗겨 얇게 박피를 해  종이를 만들어 전승되어온 말씀을  적었고  환난에 대비해 하느님의 말씀을 적은 것을 어떻게 보관해야 할까 생각했다. "야훼" " 하느님 "이라는 거룩한 단어가 적힌것을  훼손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고민 끝에  큰 오지 항아리를 구어 그 속에 두루마리를  넣어 동굴에 파묻어 두었던 것이 오늘날 발견된 사해 사본이다.

 

쿰란의 사해 사본 성경 발견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꼽힌다.   사해 사본을  남긴 에세네파 사람들의  구원이나 종말에 대한  태도는  소극적이었지만 그들의 성경 필사작업은 2000년이 지난 오늘날도 성경이 한자도 틀리지 않고 2천여년간  변함없는 하느님의 생명의 말씀을 전해온 그릇임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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