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3박4일의 이별연습 넷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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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익 [asiaman] 쪽지 캡슐

2000-08-01 ㅣ No.1352

3박4일의 그 길었던 이별연습

 

 

넷째날(7.14, 금)

 

 

아침 7시,

내가 첫번째 수술대상자란다. 아내가 중앙수술실까지 따라 온다. 애써 웃음을 지으며 침대위에 누워 있는 나의 어깨를 감싸 쥔다. 지금이라도 이 여자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 길이 있다면 그 무슨 짓이라도 하련만. 나는 잠시 후 의식을 잃으면 그만이겠지만 아내는 바깥에서 피말리는 3시간을 보내야 할 터이지.

 

 

7시반쯤 인가보다. 수술대로 옮겨졌다. 10번만 심호흡하세요, 자, 하나, 둘, 다섯번째도 못세고 정신을 잃었다. 멀리서 누군가가 내이름을 계속 부른다. 일어나세요, 수술 끝났습니다. 잠시후 회복실에 누워 있는 나를 느낀다.

 

 

여러 명의 간호원이 주위를 부산하게 돌아 다닌다. 한 간호원이 가까이 다가와서 얘기한다. 수술이 잘 되었답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10시 반,

회복실에서 병실로 옮기는데 아내가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본능적으로 얼굴을 살핀다. 수고했어, 여보. 다른 별다른 말은 없다. 아마 수술내용에 대해서는 아직 들은 것이 없나 보다.

 

 

11시 반,

상태를 살피러 방에 온 간호사에게 수술결과에 대해 들은 것이 없는지 아내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글쎄요, 수술은 잘 된 것 같구요, 암은 아닌 것 같다고 하던데요.. 순간, 온 몸에 전류가 흐르듯 생기와 희망이 솟구친다. 아내가 병동 주치의를 찾아 뛰어 나간다.

 

 

조직을 떼어낸 후 수술실에서 하는 급속 냉동 조직검사에서 암세포가 발견되지 않았단다. 정밀검사 결과는 2~3일후 나오지만..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 번 경우까지는 아직 밝은 쪽에 두기로 결정해 주셨군요.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앞으로는 삶에 보다 충실하게, 베풀면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오후 4시,

지정의가 회진을 돈다. 병동 주치의와 레지던트, 병리사 등을 대동하고..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들으셨죠? 지옥의 문턱까지 갔다 오신 걸 축하드립니다.

 

 

아내가 다시 확인한다. 정밀검사 결과는 아직 안 나왔는데 간이검사의 정확성이 얼마정도 인지? 99.9%입니다. 그럼 임파선 부은 것은 무엇인지? 물혹이었습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그자리에 악성말고 물혹이 생기는 경우는 정말 드문데..

 

 

그래,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갈 수 있구나. 내 가정, 내 친구, 내 일...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런 걸 덤으로 받은 인생이라고 해야 하는지.

 

 

앞으로는 정말 느낄 줄 알고,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할 줄 알고, 나눌 줄 알고 연민할 줄 아는 그런 삶을 살리라. 이번은 비껴가지만 바로 옆에 삶의 어두운 면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 또 언제든지 나를 찾아 올 수 있다는 것을 매일 상기하면서 살아야겠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개인적으로 몇가지 원칙은 정하고 살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물론 첫번째는 금연입니다, 그리고 몸을 함부로 하지 않는 것(40대 객기는 너무 위험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제 몸이 제 혼자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해 본 듯한 기분이 듭니다.

 

 

나머지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주로 포커스는 앞으로 그럼 순간이 다시 왔을 때

 

남아 있는 자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후회를 줄이자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2. 사랑할 시간과 능력이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하자 (이 보다 중요한 일?...없습니다)

 

3. 관대와 자비와 감사하는 마음을 바탕으로 한 생활 (지금이 행복하다는 걸 충분히 알면서 살아야 겠습니다)

 

4. 인생에 대한 주기적인 고찰과 명상 (집착말고 크게 생각하는 그 무엇을 찾아야...인생이 두려워졌습니다)

 

5. 안락사 합법화를 위한 사회운동 참여-말기암처럼 치유가 불가능하다면 인간으로서 마지막 품위를 유지한 채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할 수 있는 기회와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6. 암극복을 위한 연구지원

 

 

건강에 유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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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모두들 흘려 넘기고 마는 그런 것입니다.

종교적으로 얘기한다면 ’종말론적 삶’이라고 정의 할 수 있겠지만 사실은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도 않게 사는 게 삶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을 다시 한번 여미는 계기가 되셨으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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