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동성당 게시판

메주고리에 성지순례 답사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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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승 [hwang350] 쪽지 캡슐

2001-01-30 ㅣ No.1028

+찬미 예수

 

2001.1.21.일.맑음.

 

일요일 아침, 미리 꾸려놓은 짐들을 갖고 미사를 보기위해 성당으로 향했다. 비행기 시간이 촉박했지만 주일미사를 놓칠 수는 없었다.

 

미사를 마치고 김포공항으로 갔다.

공항에서 나를 제일 먼저 반겨준 사람은 이번 순례의 책임자인 조한준 요한 보스코 형제님이셨다.(앞으로는 보스코 형제님이라 부르겠다.) 형제님은 씨름 선수처럼 우람한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어린 아이같이 맑고 깨끗한 인상으로 나를 반겨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시며 다가오시는 분. 정한수 프란치스코 선교사님이셨다. 그 분은 몸이 성치 않으신데 이번 순례에 동행하신다고 들었다. 그 분에 관한 이야기는 차차 하겠다.

공항에는 이미 많은 순례객들이 모여 있었는데 중고등학생, 내 또래의 청년들, 아주머니, 아저씨, 할머니들까지 연령층이 다양했다.

나의 어머니께서는 먼 길을 나 혼자 보내는 것이 걱정스러우신지 계속 묵주 기도만 하고 계셨다. 어머니께서는 이미 한 번 메주고리에 다녀오신 적이 있고 그때 많은 은총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 순례도 어머니께서 보내주신 것이고 나에게 늘 그곳에서 성모님께서 무엇인가 특별한 은총을 준비하고 계실거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하지만 어머니 말씀처럼 순례의 준비과정이 그렇게 순탄치는 못했다. 이번 순례를 준비하면서 나에게 수낳은 내적,외적 방해들이 있었던 것이다.

예를들면 아직 나는 병역을 마치지 않았기 때문에 병역문제가 걸림돌이었다. 보증인과 각종 서류를 준비하면서 나는 이미 지쳐버렸고 이렇게까지 해서 성지순례를 갈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됐었다.

또 설도 포기하고 6학년 졸업피정도, 학년 인수인계도 포기하면서 말이다. 실제로 순례를 잠시 포기하기도 했었지만 어머니의 도움으로 다시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 만약 그때 그대로 포기했다면...아마 지금 이렇게 답사기를 쓰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런 방해들에 있어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방해가 많은만큼 은총도 많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악의 세력들이 이렇게까지 방해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말이다.

지금 나는 그때 그 말씀에 대해 공감한다.

 

오후 1시 15분, 로마행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의 첫번째 해외여행이자 성지순례가 시작되었다. 아니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비행기 안에서 잠시 옆자리에 앉은 미카엘라 자매님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미카엘라 자매님은 메주고리에를 벌써 네번째 가는 것이라 하셨다. 순간 나는 순례 비용이 만만치가 않은데 해외 여러곳을 가는 것도 아니고 한 곳만을 네번씩이나 가는 것이 조금 의아했다. 그런데 미카엘라 자매님께서는 메주고리에 한 번 갔다와 본 사람은 그곳에 또 가고 싶어지는 곳이라 말씀하셨다.

또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러주시기에 또 가게 되는 것일 뿐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메주고리에는 성모님께서 매일 발현하시는 곳이라 한다. 파티마나 루르드가 이미 발현이 끝난 휴화산이라면 메주고리에는 활화산인 셈이다. 그런데 지금 나에게 있어 그렇게 발현하시는 성모님을 뵈러 간다는 것은 어쩌면 너무 안타까운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서 말씀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미 우리 안에 주님이 계시고 성모님께서 계시는데 그것을 믿지 못하고 성모님의 발현을 보고서야 믿는, 또 그것을 보러가는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미카엘라 자매님 말씀처럼 내가 성모님을 뵈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께서 나를 그곳으로 불러주신 것이기에 가는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12시간 정도의 긴 비행을 마치고 비행기가 로마 공항에 착륙했다. 나의 마음은 12시간의 비행보다 착륙후 비행기에서 내리는데 걸리는 시간인 12분이 더 지루할 정도로 설레였다.

공항에서 우리는 앞으로 8박 9일간 우리를 인도해 주실 지도 신부님인 주명성 마리요셉 신부님과 우리의 입이 되어줄 통역관 남 마르따 자매님을 만나게 된다. (후에 2명의 순례자가 로마에서 합류하면서 일행은 총 22명이 된다.)

로마의 시간은 서울보다 8시간이 느렸다. 도착했을때의 현지 시각이 저녁 5시 15분이었는데 서울의 시각은 하루가 지난 22일 새벽 1시 15분인 것이다. 서울에서의 나의 생활이 이곳 시차와 너무나 맞았기에 시차적응에는 어려움이 없었다.(^.^) 또 현지 날씨는 섭씨 영상 13도였다. 서울이 영하인것에 비하면 대단히 따뜻한 날시였다. 두툼하게 입고 왔던 옷들을 들고 다녀야하는 일이 발생했다.

 

수속을 마치고 우리는 전용버스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 로마의 한 한인 식당을 찾게된다. 그곳에서 된장지게를 먹게 되는데 그다지 맛이 있지는 않았다. 그럴듯도 한 게 로마에서는 한국에서의 재료를 쉽게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내 입에 맞는 음식에 얼마나 잘 적응되어있고 그 생활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를 느꼈다.

그리고 우리는 비로 la borghejiana라고 불리는 숙소로 이동하게 된다. 숙소는 참 좋았다. 건물은 크지는 않았지만 아주 넓은 정원이 잔디밭으로 깔려있었고 길을 따라 곧고 길게 늘어선 가로수 길은 편안하고 고요했다.

나의 룸메이트는 나보다 세 살이 어린 조 아타나시오 형제였다. 아타나시오는 나처럼 어머니의 도움으로 순례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친구였다.

 

이제 내일부터는 본격적인 순례가 시작된다. 내일은 전일 로마 순례가 있을 것인데 우리는 성 계단 성당, 성 라떼란 성당, 성 베드로 성당 등을 가게 될 것이고 밤에는 메주고리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로마에서의 처음이자 마지막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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