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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고리에 성지순례 답사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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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승 [hwang350] 쪽지 캡슐

2001-01-31 ㅣ No.1031

+찬미 예수

 

1.22.월.흐림

 

아침 일찍 눈을 떴다. 빵과 커피로 조금은 낯설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전일 로마 순례를 시작했다.

 

로마의 거리에서 가장 먼저 내 눈에 띄인 것은 도로의 차들이었다. 도로의 차들은 대부분 소형차들이었는데 개중에는 2인승 자동차도 있었고, 오토바이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의 마티즈, 아토스 같은 차들도 있었다.(순간 세라피나 선생님이 보고 싶어졌다.) 마르따 자매님께서는 이곳 사람들의 차 문화는 아주 실용적이라고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지하철, 버스, 전차 등 대중교통이 많이 이용되고 있어서 교통문제가 서울만큼 심각하지 않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래서인지 길은 그다지 막히지 않았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우리나라 사람들의 권위적인 모습이 안타까웠다. 무엇이든지 크고 화려하면 그만이라는 생각, 자기 위선과 품위를 더 위에 두려는 생각은 버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성 계단 성당이었다. 성계단 성당은 성 라떼란 성당의 부속 성당으로 오래전 길을 내면서 분리되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빌라도 총독의 심문을 받으려고 총독의 관저로 올라가던 계단을 이곳에 옮겨 만든 성당이 바로 이 성 계단 성당이다. 예수님께서 온갖 고통과 모욕을 받으며 몇번씩이나 오르내리셨다는 이 계단은 총 28계단으로 되어 있고 이 곳을 찾는 많은 신자들은 이 계단을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오르면서 그 분의 고통을 묵상해보게 된다.

난 매 계단을 주님의 기도를 하면서 올라갔다. 물론 무릎을 꿇고...한 계단 한 계단씩 오르면서 예수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잠시 묵상해 보았다. 이미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아시면서도 자신의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길 원하신 그 믿음.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기꺼이 그 모욕과 고통을 달게 받으신 마음. 나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결코 그러실 수가 없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당에서 내려왔을때 이번 순례객 중 가장 막내인 프란치스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프란치스카는 인제 14살 밖에 안되었는데 자기 언니와 친구와 같이 이번 순례길에 올랐다. 자신이 통회할 죄가 얼마나 될 지도 모르는 그 어린 아이가 그렇게 우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의 맑고 순수한 영혼을 다시금 느낄 수가 있었다. 맑고 순수하기 때문에 주님을 쉽게 받아들이기 쉽게 눈물을 흘릴 수 있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도 이 곳에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 아이들을 위해 기도했다.

 

다음으로 간 곳은 성 요한 라떼란 성당이었다. 성 요한 대성당은 로마의 4대 성당 중의 하나로, 성베드로 대성당 다음으로 중요하다고 한다. 이 성당은 교황 실베스트로때 콘스탄틴 대제가 교회에 기증한 라테란(현지 발음은 라테라노) 지역에 세워졌는데, 원래의 명칭은 구세주의 성당(Basil-ica di Salvatore) 이였다. 이 성당은 그 후 세월이 지나면서 지진과 화재, 야만족의 약탈로 여러 차례 파괴되었고, 교황청이 아비뇽으로 옮겨간 후에는 거의 방치되었다가, 1650에 성년(聖年)을 맞아 보로미니에 의하여 개축되였다고 한다.

 

성당의 현관 왼쪽에서 로마의 몇 개 안되는 유물중의 하나인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대리석상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5개의 문중에 중앙문의 청동문은 과거 고대로마의 원로원에서 가져온 것인데 이 문은 이교도의 문이라고 한다. 이교도의 문을 이 큰 성당의 중앙문으로 사용하는 로마 사람들의 열린 마음을 엿 볼 수가 있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웅장한 모습과 함께 일정한 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12사도상을 볼 수 있었다.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데 예를들면 베드로 사도는 수의권을 상징하는 열쇠를 쥐고 있고, 바오로 사도는 칼과 성서를 들고 있었다. 성당의 맨 앞에는 중앙제단이 있고, 이 제단을 덮고 있는 천개가 있다. 이 천개는 14세기중반에 디 스테파노(Di Stefano)에 의하여 만들어졌는 데, 상단 부분에 베드로와 바울의 흉상이 있다. 이 흉상의 머리부분에 베드로와 바울의 실제 두개골이 보관 되어 있다고 한다. 중앙제단의 오른쪽을 보면, 성당 벽의 상단부분에 유리로 덮여있는 곳이 있다. 이곳에 예수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할 때에 사용한 상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웅장한 건물에서 설명을 듣고 있으니 내 자신이 너무 작아 보였다. 그리고 11시에 우리는 이 성당의 작은 경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해외하는 첫 미사였다. 경당은 중앙 제대를 중심으로 신자들이 양쪽 세로로 마주보고 앉을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 지하철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미사 중에 이곳 저곳에서 울음 소리가 들렸다. 마주보고 앉아 있는 선교사님과 한 자매님이셨다. 나는 그 분들이 왜 우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먼곳에서 미사를 볼 수 있다는 기쁨에서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오히려 분심이 들어 미사에 더 집중할 수가 없었다. 미사는 계속 되었고 주님의 기도를 할 때였다. 여느때와 같이 기도를 하다가 마지막 부분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그 말을 내 입에서 내밷음과 동시에 나는 무언가 미묘한 감정이 나를 사로잡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전에 28번이나 그 기도를 바치며 성 계단을 올랐었고 그 이전에도 수도 없이 많이 했던 그 기도, 주님의 기도인데...난 어쩌면 앵무새마냥 아무 생각없이 기도를 읊어만 댔는지 모른다. 그 기도안에 있는 그 분의 진정한 뜻을 모르고...그랬다.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난 너무나 많은 유혹들에 쉽게 무릎을 꿇고 죄를 지었는지 모르겠다. 그게 죄인줄 알면서도 내 안에 스스로 합리화 시켰던 일들. 그 순간 나에게 있어 그 죄는 죄책감을 면하여 주지만 그 분께서는 이미 나의 그러한 죄로 인하여 슬퍼하고 계시며 고통받고 계시다. 그리고 나는 그 죄에 대한 보속까지도 언젠가는 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는 정말 너무나 많은 눈물을 흘렸다. 흐느끼며 울고 또 울었다. 영성체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성체가 내 마음에 모셔졌다는 게, 나같은 하찮은 죄인에게 그 분의 몸이 모셔졌다는 게 감개무량해서 또 울었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을때 이미 동료 순레객들은 다 나가고 없었다. 나 혼자만이 그 경당에 덩그러니 남아 있을 따름이었다.     성당을 빠져나왔을때 그제서야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아니 이곳에 불러 주신것이 감사했다.

 

중국식으로 점심을 먹고 바로 바티칸 시국으로 가게 되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바티칸은 로마 북서부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작은 주권 국가이다. 교황님이 국가의 원수로 대표되며 모든 가톨릭 신자들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바티칸은 1929년 이탈리아 모소리니 정부와 교황청(비오11세)간에 정교협정인 라떼란 조약(성 라떼란 성당에서 조약이 맺어졌다.)이 성립되어 오늘의 바티칸 시국이 탄생하였다.

바티칸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너무나 많은데 그 중 몇가지만 이야기하겠다.

우선 바티칸 시국에 들어갔을때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성 베드로 광장의 경우  성 베드로 대성당 앞의 웅장한 광장을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돌기둥에 안기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베르니니의 걸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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