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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주고리에 성지순례 답사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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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승 [hwang350] 쪽지 캡슐

2001-02-02 ㅣ No.1033

+찬미예수

 

1.23.화.흐림

 

메주고리에서의 첫 날 밤을 보냈다.

아침을 먹기 위해 사람들이 식당으로 모였다.

이곳의 식사도 로마에서와 별반 틀릴게 없었다. 다만 이곳에서는 점심이 없다. 점심은 성모님의 메시지대로 희생을 위해 봉헌하게 된다. 단식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해진 점심이 없는 것일뿐 간식을 하는 것은 자유이다. 그리고 저녁은 아주 이른 시간에 먹게 된다. 저녁 시간은 대개 3시 반이나 4시이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이 마을의 한가운데에 있는 성 야고보 성당이었다. 성당의 주보 성인이 야고보이다.(나의 주보 성인은 작은 사도 야고보이다. 이곳 성당의 주보 성인은 큰 사도 야고보이다.) 이 성당의 경당을 빌려 미사를 드르게 되었다. 우리 지도신부님께서 집전하시는 한국어 미사였다.

 

그리고 우리는 바로 오리엔테이션을 갖게 되었다. 설명을 해 준것은 영적 담화자(성모님을 실제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 분의 음성을 듣고 있는 사람으로 옐레나와 미리안나 2명이 있다.)중 한명인 옐레나와 그의 남편 이반이었다.

이곳 메주고리에는 오늘날의 보스니아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화국의 남부에 위치해 있다. 원래 이 지역은 90년대 말까지 유고 스라비아 소속이었는데 전뱅 후 독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주민은 총 3500명 정도가 되는데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이며 크로아티아어를 쓴다고 한다.

 

이 지역은 예전에 터키 왕국에 500년 정도 지배하에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독립 후에도 헝가리의 지배를 받게 되고 또 다시 공산주의 정부가 들어서고 지난 91년에는 내전까지 격게 되어 보스니아로 독립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 수많은 시기동안 천주교의 박해도 심했는데 그만큼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을 버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은 프란치스코 작은 형제회의 영향이 큰데 이곳에 상주한 프란치스칸 사제들만 2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그럼 이곳의 발현 약사는 어떠했을까? 이 이야기는 굳이 신자가 아니더라도 신비스럽고 흥미로운 내용이 아닐까 싶다.

 

1981년 6월 24일

 

이날 저녁 대략 6시경에, 포드브로드(PODBROD)라고 알려져 있는 CRNICA언덕에서 아이들은(선견자(Visionary)들 : 이반카 이반코빅, 미리아나 드라비체빅, 비카 이반코빅, 이반 드라기체빅, 이반 이반코빅, 밀카 파블로빅) 팔에 어린 아기를 안고 있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젊은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가까이 오라는 것을 몸짓으로 가리켰다. 그들은 즉시로 그분이 성모님이라고 생각하였지만 놀라고 두려웠던 아이들은 가까이 가기를 꺼렸다.

 

6월 25일

 

아이들은 성모님을 다시 보고 싶다는 희망으로 지난번에 성모님께서 나타나셨던 똑같은 장소에서 한번 더 만나기로 합의하였다. 불현듯 갑자기 빛이 번쩍이었다. 아이들은 위를 올려다보았고 성모님을 보았다. 이때는 아기는 없었다. 성모님께서는 기쁘게 웃고 계셨고 형언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우셨다. 성모님께서는 손으로 가까이 오라고 그들을 가리키셨다. 스스로를 버티고 있던 아이들은 성모님께 다가갔다. 그들은 즉시로 무릎을 꿇고 "주의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기도하였다. 성모님께서는 그들이 성모송을 바칠 때를 제외하고는 그들과 함께 기도하셨다. 기도가 끝난 후 성모님께서 아이들과 말씀하시기 시작하셨다. 먼저 이반카가 두 달 전에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에 관해 성모님께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미리아나는 어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들이 거짓말을 한다거나 미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위해 사람들에게 보여줄 어떤 표징을 주실 것을 성모님께 요청하였다. 마지막에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신다. 나의 천사들아!"라는 말씀을 하시고 아이들을 떠나셨다. 그전에 아이들이 다음날도 성모님을 뵐 수 있는가를 여쭈어 보았을 때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하셨다. 선견자들에 따르면 우연한 만남의 모든 일은 형언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날은 첫째날 함께 있던 2명(이반카 이반코빅, 밀카 파블로빅)이 빠졌었다. 그들 대신 마리아 파블로빅과 야곱 콜로가 있었다. 이 여섯 명의 아이들은 이날 이후로 성모님께서 그들에게 정기적으로 나타나신다고 한다. 발현 첫째날 있었던 밀카 파블로빅과 이반 이반코빅은 성모님을 보고 싶다는 바램으로 발현 장소에 돌아가 보았으나 다시 성모님을 볼 수 없었다.

 

6월 26일

 

기대로 가득 찬 아이들은 6시쯤을 기다렸었는데 그 시간은 지난번에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시간이었다. 그들은 성모님을 만나기 위해 같은 장소를 향하여 가고 있었다. 그들의 기쁨은 존재할 이 모든 일의 결과에 대하여 두려운 걱정과 섞였으나 그들은 매우 행복하였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성모님을 만나기 위하여 그들을 이끄는 어떤 내적인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이 걸어가고 있던 도중에 갑자기 빛이 세 번 번쩍이었다. 이것은 아이들과 그들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성모님의 소재를 가리키는 표시였다. 이 셋째날 성모님께서는 그 전날보다 훨씬 더 높은 곳에서 발현하셨다. 즉시 성모님께서는 사라지셨으나 아이들이 기도하기 시작할 때 다시 나타나셨다. 성모님은 기분 좋게 밝은 모습이셨고 잔잔히 미소짓고 계셨다. 그리고 다시 한번 성모님의 아름다움은 말할 수 없이 압도적인 것이었다. 아이들이 그들의 집에서 출발할 때 어떤 할머니들은 그들에게 그것이 사탄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히 하도록 하기 위해 성수를 가지고 가라고 일러주었다. 그들이 성모님과 함께 있을 때, 비카는 성수를 집어들어 "만일 당신이 복되신 어머니라면 머물러 있고, 아니라면 우리에게서 떠나라"라고 말하며 성모님이 보이는 방향으로 뿌렸다. 이때 성모님께서는 미소를 지으시며 아이들과 함께 남아 계셨다. 그런 다음 미리아나가 이름을 여쭈었을 때 성모님께서는 "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이다"라고 대답하셨고 같은 날 포드브로도 아래에서 성모님께서는 한번 더 발현하셨다. 그러나 이때는 "평화, 평화, 평화, 오지 평화"라고 말씀하시면서 마리아에게만 나타나셨다. 마리아는 성모님 뒤에 십자가를 볼 수 있었다. 성모님께서 다음 말을 우시면서 반복하셨다. "평화가 인간과 하느님 사이에 그리고 모든 사람들 사이에 넘쳐야만 한다". 이 일이 있었던 지역은 발현 장소까지 약 반정도 되는 곳이었다.

 

6월 27일

 

성모님께서 아이들에게 세 번 나타나셨다. 그때에 아이들은 모든 종류의 질문을 하였고 성모님께서는 대답하셨다. 사제들에 대하여, 성모님께서는 이 메시지를 주셨다. "사제들이 확고히 믿는다면, 그들은 사람들의 믿음을 돌볼 것이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거짓말을 한다거나 마약에 취했다고 비난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야곱과 미리아나는 다시 한번 어떤 표시를 요청하였다. 성모님께서는 "아무 것도 두려워 말아라"라고 대답하셨다. 헤어지기 전 다시 오실 것인가를 여쭈었을 때 성모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거라고 표현하셨다. 포드브로도로 내려가는 길에서 성모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신다. 나의 천사들아, 평안하게 가거라"라는 말씀과 함께 헤어지는 인사를 하시려고 한번 더 나타나셨다.

 

6월 28일

 

이른 아침 일찍부터 각계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정오가 되자 약 15,000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이날 본당 신부님이신 요조 조브코 신부님은 아이들에게 그 전날에 보고 들었던 것을 질문하셨다. 평상시와 같은 시간에 성모님은 다시 발현하셨다. 아이들은 성모님과 함께 기도 드렸고 그후에 그들은 질문을 하였다. 예를 들어 비카가 "성모님 저희와 신부님들에게 무엇을 원하셔요?"라고 여쭙자 성모님께서는 "사람들은 기도하고 굳게 믿어야만 한다"라고 대답하셨다. 사제들과 관련하여, 성모님께서는 그들이 굳게 믿고 다른 이들도 같이 행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대답하셨다. 이날 성모님께서는 여러 번 나타나셨다. 여러 번 발현 중 아이들이 왜 성모님께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본당에 발현하시지 않으시는가를 여쭙자 성모님께서는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되다"라고 대답하셨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질문과 호기심들로 아이들을 짓누르는 바람에 힘들고 몹시 불쾌한 날이었으나 아이들은 마치 천국에 있는 것 같이 느꼈다.

 

6월 29일

 

아이들은 의학적인 검사를 받았고 "건강하다"라는 진단을 받았다. 대표 의사의 성명에 의하면 "아이들은 미치지 않았다. 이 아이들을 여기에 데리고 온 사람이 그럴 수는(미쳤을 수는) 있지만......."라고 하였다. 이날 발현산에 이전보다 더 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들은 여느 때와 같은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기도하기 시작하였고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다. 이때 성모님께서는 "사람들은 굳건히 믿고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씀하시면서 믿음을 가지기를 간곡히 타이르셨다. 이날 아이들을 따라가서 그들을 관찰하던 한 여의사는 성모님을 만져보기를 열망하였다. 아이들은 그녀의 손을 성모님의 어깨가 있는 곳으로 가져갔고, 그녀는 따끔한 감각을 느꼈다. 무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여의사는 그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여기 뭔가 이상한 것이 일어나고 있다." 같은 날 다니엘 셋카(setka)라는 이름의 한 아이가 기적적으로 치유를 받았다. 그 여자아이의 부모는 그녀를 메쥬고리예에 데리고 와서 특별히 치유를 위해 기도하였다. 성모님께서 그의 부모가 기도하고, 단식하며 강하게 믿으면 이것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셨고 그래서 그 아이는 치유를 받았던 것이다.

 

6월 30일

 

두 명의 어린 소녀가 아이들에게 편안하게 산책하기 위해 자동차로 좀더 멀리 가자고 제안하였다. 실지로 그들의 의도는 아이들을 그 지역에서 멀리 데리고 가서 평상시의 발현시간이 지나갈 때까지 그들을 데리고 있으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평상시의 발현 시간에 포드브로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내적 부름이 차 밖으로 나오기를 요청하며 그들을 이끌었다. 아이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기도하였고, 성모님께서는 이때 1km 이상이나 떨어져 있던 포드브로드방향에서 그들에게로 가까이 다가 서셨다. 성모님께서는 일곱 번의 주님의 기도를 바치셨다. 그래서 그 소녀들의 속임수는 아무런 효과도 거두지 못하였다. 이 일 이후에 곧 경찰은 아이들과 순례자들이 발현장소인 포드브로드에 계속 가는 것을 방해하였다. 그후 곧 아이들과 군중들조차도 거기에 가는 것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그들의 집이나 벌판등 은밀한 장소에서 그들에게 계속 발현하셨다. 아이들은 이미 확신을 얻었고 숨김없이 성모님과 얘기하였으며, 성모님의 조언을 간절히 구하며 훈계와 메시지를 경청하였다.

 

이런 설명을 듣고 우리는 발현산을 올라가게 되었다. 발현산은 포드브로드라고도 하는데 성모님께서 처음 발현하셨던 곳으로 보통 발현 언덕이라고도 한다. 이 성모님의 발현지를 찾는 수많은 순례자들은 이 산을 맨발로 혹은 무릎으로 기어 오르기도 하는데 순 바위산인 이 산이 자연스럽게 넗혀진 길들과 맨들맨들해진 바위들을 통해 얼마나 많은 순례객들이 이 산을 올랐었는지를 증명해주는 듯 했다.

 

나는 망설일 여유도 없었다. 이미 아주머니 아저씨들께서 신발을 벗고 양말마저 벗어 던진 후였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청년들은 쭈빗쭈빗하며 신발과 양말을 벗기 시작했다. 그리고 묵주기도를 하며 산을 올랐다.

산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묵상할 각 단이 청동으로 된 성화로 들어나 있었다. 처음에 나는 일행 중에 거의 제일 뒤로 쳐저 있었다. 발이 너무 아팠기 때문이었다. 기도도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발이 신경 쓰였다. 그런데 신을 신고 산을 오르는 일행은 그렇다쳐도 신을 신지 않은 나와 처지가 비슷한 일행은 어떠한가? 사실 그들도 발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순각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고통은 어쩌면 나의 육적인 생각에 의한 고통일 지도 모른다고. 내가 살아가며 어떤 벽을 부딪일때 내가 만약 그 벽을 단지 나의 힘만으로 넘으려 한다면 그건 나에게 있어 너무 벅찰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벽을 나의 영적인 힘으로 더욱이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믿음-성령의 힘으로 넘으려고 한다면 그  벽은 더이상 높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의 죄로 인하여 받으셨을 고통은 지금 나의 이런 고통에는 비할 수 없을만큼 클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나의 발은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오히려 만약 내가 이렇게 고통을 느기고 그 고통을 봉헌하여 나의 죄가 치유될 수만 있다면 오히려 더 큰 고통을 맛보고 싶다고 느껴졌다.

성모님의 처음 발현 장소에 다달았다. 울퉁불퉁한 공터에 돌무더기가 놓여있고 그 위에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사람들에 따라 나도 맨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영광의 신비 5단을 바쳤다. 나를 이곳까지 불러주신게 감사했다.

언덕 중간에는 예수님 없는 십자가가 놓여 있었는데 이 십자가는 1981년 6월 26일 발현 세째날에 다른 발현 증인보다 먼저 산을 내려오던 마리아 파블로비치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장소라고 한다.이 장소에서 마리아는 성모님을 한 번 더 뵙게 되는데 성모님은 슬픈 모습에 어깨너머로 십자가를 보이시며 메시지를 남기셨다고 한다.(당시의 메시지는 위에 6/26일자 발현을 참고하길 바란다. "평화,평화..." 성모님의 어깨 너머로 보였던 십자가를 기념해 이곳에 십자가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곳에 머물러 잠시 기도를 하며 성모님게서 말씀하신 평화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 보았다. 난 우리나라의 평화,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하기 이전에 내 마음의 평화를 실현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산을 내려와 저녁을 먹고 공동 미사를 하기 위해 성당으로 갔다. 1시간 동안은 공동 로사리오 시간이었고 1시간은 공동 미사였는데 각 나라의 신부님들이 다 제대에 오르셨다. 주사제는 이곳 신부님이셨지만 복음만은 각나라 사제들이 다 한 번씩 읽었다. 우리나라 주 신부님도 오르셨다. 미사 시간 내내 못 알아들 말로만 진행되다 우리나라 말을 듣게 되어 감사했다.

세계 각국의 말이 통하지 않은 이 많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말로써 주님을 찬양하고 기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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