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촌동성당 게시판

마음의 창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면...

인쇄

황순정 [dieu] 쪽지 캡슐

2000-02-18 ㅣ No.595

가을산행길에서

 

                                     이대근

 

 

 

가을 산행길에서 절로 영글어 떨어진 밤 한 톨 줍다.

만지작 거리다 콱 깨무는 순간 밤벌레 한 마리 고개를 쏙 내민

다.나도 깜짝 놀랐지만 그 녀석은 더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이다.

나는 하마터면 그녀석의 징그러운 몸뚱이를 깨물 뻔했다는 사

실에 놀랐고, 그녀석은 태어나면서부터 살아온 세상 전체가

갑자기 두쪽이 나고 생명까지 두동강날 뻔한 일생일대의 엄청

난 사태의 발생에 놀랐다.

 

아, 누가 있어 어두운 밤 속에 있는 나의 이 집도 흔들어 깨물

어 줄 것인가? 그 앞에 나도 이 추한 몸뚱이를 그대로 드러내

고 싶다.

자기가 전부라고 생각했던 세계가 박살나면서 나타난 시리도

록 푸른 하늘, 그 하늘을 보면서 밤벌레는 죽었다.

나도 그처럼 죽고 싶다. 단 한 번만 그 하늘을 볼 수 있다면 굳

이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지 않아도 그냥 지금 이대로 죽어도

좋다.

 

 

이대근 론지노 신부님의 "당신을 사랑한다 말하지 않게 하소서" 중에 나온 -가을 산행길에서-라는 시 한 토막 입니다.

사소로이 지나칠 수 있는 일을 통해 이런 묵상 하나 떠올릴 수 있음에 정말 많이 놀랐습니다.

 

~~~ 우물안 개구리처럼 자기만의 틀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진 않은지...

    미완성되고 미성숙한 자신의 틀이 완전하다는 착각에 빠져 있진 않은지...

    그로인해 상처와 미움들을 세상속에 흩뿌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37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