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권태하 님의 「내가 개종(?)을 한 이유」를 읽고

인쇄

지요하 [jiyoha] 쪽지 캡슐

2005-03-16 ㅣ No.3358

 

*답십리 본당 형제 자매님들, 안녕하신지요.

 저는 대전교구 태안 본당에 적을 두고 있는 지요하 막시모입니다. 그리고 소설가입니다.

 

오늘은 짬을 내어 서울 답십리 본당 홈을 처음 방문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권태하 도미니꼬 형제님과 여러분의 글을 읽었습니다. 권태하님의 글은 <가톨릭 굿 뉴스> 게시판에서 많이 읽고 있습니다만, 굿 뉴스 게시판에서 읽지 못했던 글들도 있고, 굿 뉴스 게시판에서 읽은 글들보다 더 재미있는 글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권태하님과는 '사돈지간'이라는 인연이 있습니다. 저는 그 인연을 소중히 여깁니다. 사돈이라는 인연 외에 함께 문업(文業)에 종사한다는 인연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권태하님과 교우, 문우, 사돈지간의 인연을 알뜰하게 나누고 아로새기며 살고 있는 거지요.

 

 지난해 여름 '굿 뉴스' 게시판에서 권태하님의 「내가 개종(?)을 한 이유」라는 글을 읽었습니다. 형제님께서 그 글을 답십리 본당 게시판에도 올리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참으로 재미있고 의미 있는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8월 28일 굿 뉴스 게시판에 <권태하님의 「내가 개종(?)을 한 이유」를 읽고>라는 글을 썼습니다.

 

 오늘 처음 답십리 본당 홈을 방문한 기념으로 그 글을 이 게시판에 올리고자 합니다. 새 글이 아니어서 죄송합니다만 답십리 본당의 형제 자매님들께서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권태하 님의 「내가 개종(?)을 한 이유」를 읽고




지난 25일 이 게시판에서 접한 권태하 형제님의 70373번 글 「내가 개종(?)을 한 이유」를 재미있게 읽었다. 덕분에 몇 가지 흥미로운 생각을 해볼 수 있었다.

오늘날 천주교 신자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권태하님은 분명히 개신교 신자로 출발하신 분이다. 원래 개신교 신자였던 분이 천주교로 개종을 하는 과정에는 세 가지 사건, 또는 에피소드일 수도 있는 일들이 있었다.

하나는, 다른 사람이 기도할 때마다 사이사이에 "아멘!" 소리를 잘하고 열렬히 "아버지!"를 외쳐댈 정도로 참으로 열심이었던 신자가 부정을 저지른 일이다. 그것은 개인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닌 공적인 부정 행위였다.

그 일에서 권태하님이 받았던 실망과 충격은 매우 컸던 것 같다. 이와 비슷한 일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또 이웃 신자의 탈선이나 부정으로 말미암아 충격과 실망에 의해 신앙생활을 접는 이들도 우리 주변에는 없지 않다. 개인적인 이해 관계라든가 사소한 감정 때문에 신앙생활을 포기하는 이들도 생기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물론 이웃 신자나 교회 인물의 탈선을 보면서도 초연하게 자신의 신앙을 지켜나가는 이들이 훨씬 많다. 사실 나와 하느님과의 관계인 신앙생활에 이웃 신자나 교회 인물의 탈선을 결부시킬 필요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권태하님처럼 가장 열심한 신자로 보였던 사람의 상상 밖의 탈선을 접하고 또 그에 따라 자신이 곤경과 피해를 겪은 경우라면 교회에 정나미가 떨어질 수도 있다. 그것은 인지상정에 속할 수 있는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그 인지상정을 극복하는 것이 옳겠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냉각기'라는 것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또 사람에 따라서는 그런 인지상정이나 냉각기가 하느님에 대한 진정한 신앙이나 외경심의 발로일 수도 있다.

권태하님에게는 그 솔직한 인지상정을 극복할 수 있는 냉각기가 필요했다. 그런데 그 냉각기의 진행 과정 중에 매우 특별하다면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

두 번째 사건인 '십자가'가 관련되는 일이다. 그는 그 무렵 현지인 부하 직원으로부터 목각 예수상을 선물 받는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표현한 목각 작품이었다. 그것을 본 개신교 신자들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권 과장님 그거 태워버리세요. 그건 우리 십자가가 아니라 천주교 십자가인데요."

천주교의 십자가와 개신교의 십자가가 다르다는 것을 권태하님은 그때까지 몰랐다고 했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개신교 형제들이 주장해온 일이다. "예수님은 이미 부활 승천했기 때문에 십자가에는 계시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십자가는 빈 십자가다"라는 그들의 주장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예수님은 이제 십자가에 계시지 않는다"는 그 말은, 전체와 종합보다는 부분들만을 중시하는 개신교 형제들의 속성이나 생리를 그대로 함축한다. 그것의 상징적 표본이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그 말이 지니고 있는 맹점들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한다.

개신교 형제들은 천주교의 성상들을 '우상'이라고 말한다. 그 우상이라는 관점에다가 천주교의 '성모 공경'에 대한 혐오감이 겹쳐서 광적인 일부 신자들은 성모상을 훼손하는 일도 종종 자행한다. 몇 년 전 공주 교동성당의 성모상에 인분을 투척한 사건은 지금도 필자의 기억에 명료하다.

개신교 형제들이 천주교의 성상을 우상으로 보고, 또 성모 공경을 부당하게 여겨 성모상에 인분을 투척하는 일까지 감행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예수님이 달려 계신 십자가를 어떻게 불태울 수 있을까? 십자가에 달려 있는 형상은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 아닌가? 예수님의 형상이 달려 있는 십자가를 눈으로 보면서도 "그건 천주교의 십자가이니 불태워버려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런 광적인 태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편견은 아집을 낳고, 아집 자체가 신앙이 되기도 한다. 또 편견과 아집이 지나치면 광기가 발생하기 쉽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천주교 신자 중에 빈 십자가를 보고 "저건 개신교 십자가이니 불태워버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빈 십자가를 개신교의 십자가로 여기는 사람도 많지 않을 것이다. 빈 십자가도 예수님을 표상하는 것이므로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그것 역시 신앙과 외경의 대상일 뿐이다.

권태하님은 예수님의 형상이 달려 있는 천주교의 십자가를 불태워버리라는 개신교 형제들의 그 무서운 태도에서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모종의 공포감도 느꼈을 것이다.

그는 오히려 반감을 갖는다. 개신교 형제들의 말을 따르지 않고 목각 예수상을 잘 간직한다. 그리고 그 날밤 고국에서 온 우편물을 받는다. 그 우편물 속에는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는 아내의 편지와 함께 미사포를 쓰고 있는 아내의 세례 받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 들어 있었다.

그 세 번째 사건은 참으로 공교롭다. 그로서는 전혀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원래 종교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아내였다. 무종교인 아내와 결혼을 함으로써 그는 10년 이상 다녔던 예배당에 발길을 끊었다고 했다. 애초 남편의 신앙생활을 접게 만들었던 아내는 남편이 외국에서 개신교 신앙 생활을 재개한 사실도 알고 있었을 터였다. 그런 아내가 스스로 종교를 가진 데다가 천주교를 택했다니, 생각하면 놀라운 일이었다.

더구나 그 소식을 접한 날 목각 예수상과 관련하는 일이 있었다니…!

1984년 귀국을 하면서 권태하님이 그 해 영세를 받고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은 당연하고도 필연적인 일이다.

그는 가장 열렬했던 이웃 신자의 충격적인 탈선을 접한 상황 속에서 많은 회의와 고뇌를 소화해내기 위한 '냉각기'가 필요했던 사람이다. 예수님의 형상이 달린 천주교의 십자가를 불태우라는 개신교 형제들의 태도에서 극도의 편견과 불합리함을 느낄 수 있었던 사람이다. 더 나아가 그 말에 따르지 않고 목각 예수상을 간직했던 사람이다.

천주교 신자가 된 권태하님은 적을 둔 본당의 사목회장도 지냈고, 레지오 활동 등을 하며 지속적으로 참으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다.

권태하님이 우리 교우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 이 '굿 뉴스' 게시판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가 천주교 신자이기에 이 게시판에 나타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무한히 감격했다. 오랫동안 무심했던 나로서는 한편으로는 당혹스럽기도 한 일이었다. 천주교 신자가 되신 동기를 천천히 알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그의 고백을 통해 일찍 알게 되었다.

권태하 도미니꼬 형제님이 문우이자 교우라는 사실이 나는 정말 기쁘고 다행스럽다. 이 게시판을 통한 권태하 도미니꼬 형제님과의 조우를 다시 한번 하느님께 감사하고, 형제님의 건강과 문운을 빈다.


*덧붙임

나는 어느 정도 비교 논법을 활용하는 형식으로 글을 썼지만, 권태하님은 천주교와 개신교를 견주기 위한 뜻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니다. 천주교 신자가 되기 이전에 자신이 실제로 겪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소개한 글일 뿐이다. 그런 권태하님의 글을 가지고 내가 천주교와 개신교를 비교하는 형식으로 글을 쓴 것을 권태하님께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040828)
충남 태안읍 샘골에서 지요하 막시모 적음



66 4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