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사순 제3주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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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0-03-25 ㅣ No.300

                     사순 제3주일(나해, 2000. 3. 26)

                                                  제1독서 : 출애 20, 1 ∼ 17

                                                  제2독서 : 1고린 1, 22 ∼ 25

                                                  복   음 : 요한 2, 13 ∼ 25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오는 봄기운이 만물을 생동케 합니다.  몽우리 드리고 있는 목련과 막 피어나려고 하는 산수화의 모습 속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게 됩니다.  좋은 사람과 따뜻한 차 한잔을 하고 싶은 날씨입니다.

여러분 중국 후한왕조가 끝나고 군웅이 할거하던 난세의 이야기 적은 삼국지 아시지요?  저는 그 중에 유비가 조조에게 쫓겨 도망을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유비의 덕을 쫓아 백성들이 모이고 그런 유비는 조조를 피해 도망을 가야하고 그 극박한 상황에서도 백성들은 힘있는 군주에게 남아 있기를 거부하고 힘이 없어 도망가는 유비를 따라갑니다.  그 백성들은 쫓아오는 조조군에 의해 살육이 됩니다.  백성을 이끌고 도망가는 유비 모습을 보고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의 한 몸을 피하기도 힘들고 빨리 도망가서 군사를 정비하고 조조를 대적해야 하는 데도 유비는 자신을 따라오는 백성들과 함께 합니다.  어리석게만 보이는 이 후퇴에 진정한 의미는 백성들이 자신들의 목숨을 바치면서도 자신들을 사랑하고 있는 군주를 따른다는 것입니다.  강하고 빠른 조조 군사들이 자신들을 죽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유비를 따르는 백성들도, 백성들과 함께 가면 도망가는 속도가 느려 어려움을 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버리고 가지 않는 유비도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렸다는 것이 지혜를 찾는 그리스인들에게 어리석게 보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라면 그 힘을 가지고 세상을 평정하고 그 위에 군림하면 되는데,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이 세상에서 눈앞에 보이는 힘만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어리석게 보일지 모릅니다.  세상은 힘있는 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힘있는 자가 힘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은 그 힘을 알아주는 이들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왕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백성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은 모두를 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하느님께 나아가는 구원입니다.  자기의 힘을 과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 살겠다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성전을 정화하십니다.  밧줄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를 모두 쫓아내시고 환금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십니다.  과월절에 많은 사람들이 성전을 찾아 제물로 바치고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똑똑하고 지혜롭다고 하는 이들은 그 장소가 어떤 곳인지 상관없이  사람이 모이는 곳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석가탄신일에 방생하고 살아있는 것은 먹지 않는 이들이 모여 있는 절 앞에서 닭 꼬치와 갈비와 술을 팔고 있는 모습이 아이러니한 것처럼 우리는 참으로 약은 체 하면서 돈벌이가 된다면 어디든지 찾아 나섭니다.  성전에서 장사를 한다는 것이 돈 벌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예수님의 성전에서의 행동은 어이가 없는 모습입니다.  재물에 마음을 두다보니 성전을 찾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속을 채우는 것이 목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이들의 태도를 야단치시는 것입니다.  지혜롭고 똑똑하다는 우리의 생각으로 예수님의 모습은 어리석게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비의 어리석음 속에도, 어리석게 보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도, 성전을 정화하는 예수님의 모습 속에도 마음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느님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들은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진정한 의미를 가지고 희생과 단식을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복음에 나오는 상인들처럼 하느님과 이웃은 저 멀리 버리고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희생과 단식 그리고 기도를 하는 것처럼 흉내만 내고 계십니까?  하느님의 은총은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고 하느님의 은총만을 바란다면 그것은 힘으로 백성들을 다 죽여놓고 다스릴 백성이 없다고 투덜거리는 군주와 같습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주절주절 말하려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속까지 꿰뚫어 보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주님이 주신 당신을 따라갈 수 있는 길을 충실히 따라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의 잘못된 생활을 버리고 하느님 말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고, 하느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며,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며, 도둑질하지 말고, 거짓증언은 하지 말며,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않은 삶을 이 사순 시기동안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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