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연중 제32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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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1-11-10 ㅣ No.725

연중 제32주일(다해. 2001. 11. 11)

                                                제1독서 : 2마카 7, 1∼2. 9∼14

                                                제2독서 : 2데살 2, 16 ∼ 3, 5

                                                복   음 : 루가 20, 27 ∼ 38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철학자 막스 쉘러가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내일은 죽음에 대해서 강의를 하겠다"라고 했을 때, 다음날 많은 학생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강의실을 가득 메웠고 흥분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기다리던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헐레벌떡 뛰어온 교직원이 "그분이 방금 운명하셨습니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는 그날 아침 식탁에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운명하셨던 것입니다.

  사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삶(生)과 죽음(死)의 문제일 것입니다.  삶은 지금 지내고 있는 일이고, 죽음은 언젠가 될지는 모르지만 장차 당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죽음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모두 당면한 문제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는 막연한 문제가 아니라 당장 내일이라도 찾아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세상의 문제는 해결하면 되고,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면 되지만, 죽음은 연습해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어떤 설명도 우리의 경험에 보탬이 될 수 없습니다.  죽음은 한마디로 모든 것이 끝나는 순간입니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수정할 기회를 조금도 허락하지 않습니다.  죽음은 결정적인 단절이요, 파괴입니다.  우리에게서 죽음은 모든 권력과 재물을 빼앗아 가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갈라놓고 맙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종종 삶과 죽음이 서로 정반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측면에서 보면 이 말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과 독서들은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충만하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관문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제1독서 마카베오 하권은 마카베오의 일곱 형제의 용감한 순교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카베오의 일곱 형제는 어머니와 함께 고문을 당하고 학살당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살리셔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리라는 희망과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올바른 사람은 하느님의 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며,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돌보셔서 온전한 육체로 부활시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이 하느님과 자신들을 갈라놓는 끝이 아니라 하느님께 가는 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대사제와 사제들을 배출해온 특권층이었습니다.  그들은 죽음 이후의 세상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세의 권력과 재물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적으로는 로마의 종주권을 무조건 존중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는 성직자 중심 국가를 수호하여 자기들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삶을 누리며 살아가려 합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다른 이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의 권력과 재물은 하느님이 주신 은총이기에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고 그들은 생각하였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것은 하느님의 벌을 받아서 그런 것이라고 믿고 싶어했습니다.  그런 그들이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일곱 형제와 같이 산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죽음이후의 삶이 없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죽음 이후의 삶은 현실과 아주 다른 새로운 세상입니다.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그리고 모세의 하느님입니다."라고 답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세의 하느님은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고, 그래서 그들은 죽었지만 '살아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죽음 이후의 삶은 현재 삶과 이어지지만 동시에 그 삶을 완전히 넘어서는 새로운 삶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그렇게 바쁘고 치열하고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잘 살아보려는 노력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세의 삶은 유한한 것이고 언젠가는 끝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억울해 하고 허무하다고 합니다.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날 희망이 있다면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지만 지금 아무리 떵떵거리고 산다고 해도 덧없고 허망할 뿐입니다.  그러나 영원히 산다면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입니다.  세상을 조금 더 사랑하는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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