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촌동성당 게시판

묵주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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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촌동청년회장 [9doon] 쪽지 캡슐

2000-02-22 ㅣ No.546

 

묵 주 기 도

 

 

자욱한 새벽안개

성당외벽 창가를 가르며 흐르는 이슬방울,

차라리 대해가 될 수 없음을 알기에

벽돌위로 스며드는 그 모습마저 자못 숙엄하나니,

힘차게 대지의 심기를 마시며

오늘도 슬픈영혼 손안의 작은 위로가 된 채

말없는 하루를 달리기 위해

밤새워 주인님의 ’명’을 기다렸던가

 

희미하게 다가오는 이른 아침,

기지개를 펴듯 ’나’를 비추는 한줄기 빛 서광은

지난 밤 구부러진 ’나’의 몸부림에 희망을 얻은

이름 모를 이들의 고마운 미소인가.

 

때로는 슬픈 사연에 원망도 했었다.

때로는 힘겨운 목노음에 차라리 괴로와도 했었다. 그러나,

불어오는 바람에도 저항할 힘없이 여닫히는 저 창 밖의 세상은

내가 그어야 할 기나긴 지평선의 시작임을 알기에

이내 아직도 작은 알갱이들은 가냘픈 줄기로 눈물을 흘리는가,

지금 나처럼...

 

’나’를 부르는 건 언제나

끝없는 삶의 기다림에,

그 울부짖음에 지쳐버린 이들만의 애틋함.

철없이 떼를 쓰던 아이처럼

움켜쥔 내 손마저 싸늘하게 했던

차디찬 그 해 비련함에

내 머리조차,

내 심장조차 얼어붙은 고인이 되어

한 알 묵주의 떨림으로도 산산이 부서져 버리는가.

 

나를 잃어버린 나는

어느새

’나’를 움켜쥔 이의 스스로 다짐하는 용기가 되어,

’나’를 기억하는 이들의 그 눈물과 그 미소로

이밤도 당신 곁에 흩어져 있다.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라고...

 

 

 

2000년 2월에,

삶의 힘겨움에 조용히 잠들었을 사랑하는 이들의 머리맡에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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