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일반 게시판

[청년성서모임]2.간장종지와뚝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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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nalgae] 쪽지 캡슐

2000-01-22 ㅣ No.133

묵상 둘 - 간장종지와 뚝배기

 

성대한 성찬에는 몇 가지 그릇이 필요할까요.

 

오래 전, 다른 성당에서 성가대 활동을 할 때 일입니다.

’나의 음성 드리니 주여 받아 주시어...’ 이 성가에 감동을 받아 성가대에 들어갔고 애착을 가지고 성가대 활동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같이 부대끼는 곳에는 항상 많은 갈등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 속에서 서로가 서로에게서 상처받기도 합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성당에 다니는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나’

실망하고 분노했던 나는 다시는 성당 단체 활동에 몸담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기적이고 욕심많고 남의 흉을 보는 그런 사람들을 성당에서 간혹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당은 천사들만 오는 곳이 아니니까요. 때로는 나 자신의 모습이 그럴 때도 있습니다만.

속세의 죄에 찌든 사람들의 속죄를 위한 것이 바로 이 하느님의 집이고, 그러기에 천사보다는 회개한 죄인이 찾아오길 더 바라는 곳이지만, 그래도 하느님의 집이기에 위와 같은 사람들을 발견하면 우리는 더 분노하고 미워하게 됩니다.

 

’하느님, 어떻게 저런 사람을 당신 양떼들의 무리에 부르셨습니까?’

우리는 이런 원망을 던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종류의 크고 넓은 그릇만으로 어떻게 성대한 성찬을 준비하겠습니까. 성찬에는 크고 넓은 그릇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조그만 간장종지도 중요하고 때로는 뚝배기도 필요합니다. 각 그릇들은 각자의 역할이 있는 법인데, 하느님이 뜻하시는 역사를 우리가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 분은 때로는 깨진 접시 조차 버리지 않으시고 쓰시는 분이십니다.

 

성당 안에서 마음이 안 맞는 사람을 만날 때, 이젠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느님, 저 사람도 당신이 쓰시는 간장종지 입니까. 당신이 쓰신다니 저도 외면 할 수가 없습니다. 저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제발 도와 주소서. 아멘’

주님의 성찬에는 정말 여러 가지 그릇들이 필요한가 봅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주위의 간장종지 형제와 뚝배기 자매 그리고 깨진 접시 형제를 떠올리실 겁니다. 그들도 분명 하느님이 쓰시는, 그 분이 사랑하시는 그릇들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도 간혹 얄미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창세기의 성조사 부분에 나오는 성조들은 인간적인 단점이 그대로 드러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형의 장자권을 속여서 가로챈 야곱이었지만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잘못을 시시콜콜 아버지께 일러바쳤지만 나중에 그는 하느님께서 준비하신 사람으로서 더 많은 축복을 받게 됩니다.

 

도대체 하느님의 역사하심에 이런 얄미운 사람들을 꼭 쓰셔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만 한가지 더욱 분명해지는 것은 그런 사람들 조차도 하느님은 깊이 사랑하신다는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말입니다.

정말로 그 분은 나를, 당신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십니다.

 

성서공부 중에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착한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모두 같이 사랑하신다면 굳이 착하게 살아야 할 필요가 뭐가있겠는가. 라고.

우리는 우리 부모님이 우리가 그 분들에게 정성을 다하는 효자 효녀가 아니라도 우리를 깊이 사랑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 분들은 우리가 그 분들에게 설혹 큰 잘못을 저지른다 해도 우리를 사랑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도 우리 부모님이 우리를 사랑하실 것이기 때문에 굳이 좋은 자녀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을 사랑하고 따르려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것도 그처럼 당연한 일입니다.

 

나는 나의 하느님께서 애지중지 하시는 그 분의 간장종지, 깨진접시 이웃들을 사랑하려 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러하시듯, 나도 그 분을 닮으려 합니다. 그것은 물론 쉬운 일은 아닐겁

니다.

 

 "사랑해 주는 사람만 사랑한다면 무슨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까?

 죄인도 사랑해 주는 사람은 사랑합니다." (루가 6 : 32)

 

사랑하기 힘든 죄인 조차 간절히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의 이름을

’사랑’이라 바꿔 부를 수 있나봅니다.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 고백이 바로 성서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마치 짝사랑에 빠진 듯이 안타깝게 여러분이 그 사랑의 글들을 읽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지도 모릅니다.

 

인자하신 주님, 이빠진 접시 같이 부족한 저를 당신의 도구로 쓰려하심에 감사합니다. 오만에 빠지지 않고 겸손한 마음으로 내 형제 자매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그들을 감싸 줄 수있도록 당신을 더욱 닮게 허락해 주세요. 또한 제가 당신의 사랑을 언제나 잊지 않고 감사하게 해주세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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