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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이 날 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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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영 [bjbj] 쪽지 캡슐

2001-07-19 ㅣ No.7551

 언젠가 나는 아주 놀라운 광경을 우연히 목격하게 되었다. 축구공을 찾기 위해 작은 숲 속으로 들어간 나는 번데기 한 마리가 나무 위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번데기가 움직인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아니 사실은 번데기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번데기 안에 있는 어떤 녀석이 움직이는 것이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그 번데기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잠시 지나고 나서 그 번데기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 속에서 무슨 비닐 같은 것이 꿈틀거리는 것이 보였다. 자세히 보니 비닐이 아니고 날개였다. 그 안에 들어 있던 것은 나비가 되려는 애벌레였던 것이다.(내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그 녀석은 무척 힘들어 보였다. 번데기의 피부가 보기보다는 굉장히 질긴 모양이었다. 그 녀석은 몇 번이나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젠 포기한걸까? 라고 생각하고 있으면 그 녀석은 다시 발버둥을 치고는 했다.

  그 때 나는 갑자기 그 녀석을 도와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무엇인가 날카로운 것을 찾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으로 번데기의 피부를 갈라서 나비가 잘 나올 수 있게 도와주려는 것이었다. 나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나무나 돌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칼처럼 날카로운 날을 가지고 있는 작은 돌맹이를 찾아냈다.  

  나는 스스로 내가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나비가 나중에 나에게 얼마나 고마운 마음을 지닐지를 생각하면서 내 자신이 대견스러웠다. 나는 미소지었다.

  하지만...

  (세상에서 이보다 더 어리석은 짓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나는 지금 하고 있다.)

  나의 그 도움은 그 나비에게는 전혀 고마운 행동이 아니었다.

  나는 예정대로 돌칼을 들고 그 번데기를 갈랐다. 내 예상대로 그 나비는 쉽게 그 번데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나비가 얼마나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을 것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나비는 이상하게도 날지 못했다. 뭔가 잘못된 것일까?

  나는 날지 못하는 그 나비를 손에 안고 선생님께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어떻게 된 일인지를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그리고...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나는 내가 나비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한 잘못은 돌칼로 그 번데기를 갈라서 나비가 나올 수 있게 도와준 바로 그 행동이었다. 그 나비가 힘겨워 했더라도 나는 그냥 끝까지 그 녀석을 지켜보았어야 했다. 그 나비는 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세상에서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번데기를 뚫고 나오려는 노력이 있어야만 나비는 날개에 힘이 생기고, 그래서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내가 그 연습을 방해한 것이다. 내 어리석음으로 나의 나비는 충분한 연습을 하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것은 내게는 아주 작은 실수였지만 그 나비에게는 너무나 큰 손실이었다.

  나는 오늘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나비를 생각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을 다하여라." 나는 내 자신이 날지 못하는 나비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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