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동성당 게시판

학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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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기숙 [mam] 쪽지 캡슐

2000-04-06 ㅣ No.3079

올해도 고3을 맡게 되었습니다. 3월 한달,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새로운 각오와 열정으로 잘 지냈습니다. 나는 3월이 지나면 그 학년의 반이 지난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3월은 힘이 드는 달입니다. 그런대로 잘 지낸 3월이 지나고 4월이 되어 5일 식목일을 놀고 오늘 4월 6일이 되었습니다. 저는 생활지도부에 있는데 오늘 이 교무실에 오는 아이들, 그리고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조금씩 긴장이 풀려가고 있으며 그것에 맞추어 선생님들 또한 조금씩 더 힘이 들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학교는 교육의 장입니다. 그러나 생활지도부의 일은 상담이 필요한 아이들을 부르고, 조사해야할 것이 있는 아이들을 부르고, 그 부모님들을 만나 면담하고, 학교에서 발견될 때까지 자기 자식의 문제점을  전혀 알지 못하고 계신 학부모들도 만나야하고, 각 학년의 교내 지도를 담당하고 계신 선생님들은 하루에 한 시간을 제대로 쉬기가 쉽지 않습니다.

 

  학급에 들어가면 먼지 없이 깨끗한 교실에 그윽한 ’난’ 향기가 퍼지는 교실이 있습니다. 환경으로는 더 할 수 없이 깨끗하고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 학급의 수업 시간이 되면 복도를 지나 문을 열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한 시간을 쉽게 지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 또 실제로 수업에 임하면서 기도를 하게 됩니다.

 왜 그럴지 선생이라는 사람이 배우는 아이들이 있는 교실로 가면서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 궁금하시겠지요. 우선 우리 학교는 학교가 무너진 텔레비전에 비쳐진 그런 학교는 아닙니다.

  이런 일입니다.

  오늘 수업을 들어가니 앞자리의 한 아이가 다른 교과의 책을 펼친 채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 그 짝 아이가 몇번이나 팔꿈치를 치는 대도 끄덕 않고 그대로 앉아 있다가 한참 후에야 책을 꺼냈습니다. 책을 꺼내서 적당히 펼치자 마자 다리를 쭉 펼치고 팔장을 낀 채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제 지시에 따라 그 학생은 복도로 나갔습니다. 저는 아주 매몰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리면 너뿐이 아니라 너희 반 전체에 확실하게 효과가 나타나겠지?’

  아이들의 표정에 순간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으며 나는 거기에 더욱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 담임 선생님은 매우 엄격하다고 소문이 난, 고3학생들의 담임이 되시면 대체로 학부모님들이 무척 다행으로 여기는 분입니다. 속에서 불이 올라오고 내 표정이 저절로 일그러집니다. 그렇지만 다행히도 그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의 태도는 논리적인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대응이며 그렇다면 그렇게 길들여 놓은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그 생각 때문에 별 탈없이 한 시간을 마쳤습니다.

 수업이 끝나고 교무실 쪽으로 함께 가며 아이가 잘못했다고 말하기를 기다립니다. 그 아이는 층계를 내려가도록 가만히 있다가 자기 담임 선생님의 자리가 있는 교무실 문앞에 와서야 잘못했다고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또 한번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참고 참으며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보냅니다.

 ’조약돌을 둥글게 만드는 것은 강한 힘이 아니라 끊임없이 쓰다듬는 물이란다.  

  네가 강한 힘에만 변화된다면 너는 결국 여러 조각으로 깨질 수밖에 없지

  않겠니?’

 

 아이들은 달라지기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신앙인이므로 주님 안에서 더욱 희망을 갖습니다. 그 희망은 끊임없이 샘 솟아야 하고 버리지 말아야겠으나 이렇게 조금의 충격으로도 휘청거립니다. 그래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이제야 수업시간에 화살 기도 하는 습관을 갖게 되어 수업 중의 많은 문제가 줄어 들었음을 실제로 느낍니다.

 

 이글을 읽는 학생들이 있다면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삶을 위하여, 또한 그들의 삶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실 창 밖으로 진달래가 곱게 피어 있습니다.

 오늘 그 시간 나와 아이들은 몹시 불행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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