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동성당 게시판

[성서] 로마 9,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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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austin] 쪽지 캡슐

2002-01-06 ㅣ No.8400

 

바울로와 이스라엘

 1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은 말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다음 사실을 내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2  다름이 아니라, 내게 크나큰 슬픔이 있고 내 마음에 끊임없는 아픔이 있다는 것입니다.

 

 3  사실 나는 혈통상으로 나의 동족인 나의 형제들을 위해서라면 그리스도로부터 갈라져 기꺼이 저주라도 받고 싶은 심정입니다.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입니다. 아들되는 자격과 영광과 계약들과 율법의 제정과 예배와 언약들이 다 그들의 것이고

 

 5  선조들도 그들의 것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신으로는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십니다. 아멘.

 

하느님의 자유로운 선택

 6  그러나 그렇다고 하느님의 말씀이 무효가 된 것은 아닙니다. 실상 이스라엘 태생이라고 해서 모두 이스라엘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7  또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해서 모두 그 자녀는 아닌 것입니다. 오리혀 "이사악의 대를 이어야 너의 후손이라 불리리라" 하였으니

 

 8  그것은 육신상의 자녀가 바로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 언약의 자녀이라야 후손으로 간주된다는 것입니다.

 

 9  "이 무렵에 내가 다시 오면 사라에게는 아들이 있으리라"고 하신 이 말씀은 하나의 언약이었습니다.

 

10  그러나 그뿐이 아닙니다. 리브가도 한 남자 곧 우리 선조 이사악으로 말미암아 잉태하였던 것입니다.

 

11  그런데 그 (자식)들이 아직 태어나기도 전에, 더구나 그들이 선이나 악을 행하기도 전에, 선택에 근거한 하느님의 예정(계획)이 지속되며,

 

12  그것이 행업이 아니라 부르시는 분에게 달려 있음을 (다짐하시기) 위하여 "큰놈이 작은 놈을 섬기리라"고 리브가에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13  사실 (성경에도) "내가 야곱은 사랑하였지만 에사오는 미워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4  그러니 무엇이라고 말해야겠습니까? 하느님이 불공정하시다고 해야겠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5  실상 그분은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내가 불쌍히 여기는 자를 불쌍히 여기겠고 가엾이 여기는 자를 가엾이 여기겠다"고 하셨던 것입니다.

 

16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이) 우너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요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닙니다. 그것은 오로지 불쌍히 여기시는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

 

17  그래서 성경은 파라오에 대해 말하기를 "내가 너를 일으켜 세운 것은 너로 말미암아 내 권능을 보여 주고 내 이름을 온 땅에 널리 알리려는 것이다" 하였던 것입니다.

 

18  그러므로 그분은 당신이 원하시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또 당신이 원하시는 자를 완고하게 하십니다.

 

하느님의 진노와 자비

19  이제 그대는 내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분은 왜 아직도 꾸짖으시는가? 사실 누가 그분의 뜻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20  이 사람아! 그대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느님께 말대꾸하려 드는가? 작품이 그 제작자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하는 법이 있습니까?

 

21  혹은 찰흙을 주무르는 옹기장이가 같은 흙덩이를 가지고도 어떤 것은 귀한 데 쓰는 그릇으로 만들고 어떤 것은 천한 데 쓰는 그릇으로 만들 권리가 없다는 것입니까?

 

22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진노를 보이시고 당신의 권능을 알리시려고, 멸망하도록 마련된 진노의 그릇들을 크나큰 인내로써 오래 참아 주셨습니다.

 

23  그리고 이것은 영광을 받도록 그분께서 미리 마련하신 자비의 그릇들에게 당신 영광의 풍부하심을 알려주시려는 것이었으니,

 

24  그분은 우리를 유대인들 가운데서뿐 아니라 이방민족들 가운데서도 불러 주셨습니다.

 

25  이것은 그분이 호세아서에서 말씀하시는 바와도 같습니다.

    "나는 내 백서이 아닌 자들을

    내 백성이라 부르겠고

    사랑받지 못하는 여인을

    사랑받는 여인이라 하리라.

 

26  그리고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 하고

    이른 그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들이라 불리리라."

 

27  그런데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대해서 이렇게 외칩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효가

    바다의 모래와 같을지라도

    살아남은 자만이 구원받으리라.

 

28  과연 주님께서는 땅 위에서 (당신의) 말씀을

    온전히 그리고 서둘러 실현하시리라."

 

29  또 그것은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입니다.

    "만군의 주님께서 우리에게

    후손을 하나도 남겨 두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마치 소돔처럼 되었을 것이고

    고모라와 같은 꼴이 되었으리라."

 

이스라엘의 그릇된 열정

30  그러면 이제 무엇이라고 말해야겠습니까? 의로움을 추구하지 않던 이방민족들이 의로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 의로움은 신앙에서 오는 것입니다.

 

31  그런데 이스라엘은 의로움의 율법을 추구하였는데도 이 율법의 목표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32  무엇 때문이었습니까? 믿음으로가 아니라 행업으로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부딪칠 돌에 부딪친 것입니다.

 

33  그것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바와 같습니다.

    "보라, 이제 내가 시온에

    부딪치는 돌,

    걸려넘어지는 바위를 놓으리니,

    그를 믿는 이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리라."

 

        

 

* 우리는 종종 우리들의 가치를 가지고 판단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섭리를 이해하기가 힘이 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귀하다고 여기는 그릇이 과연 하느님 보시기에도 귀한 것인지 또 우리가 천하다고 여기는 역할이 하느님 보시기에도 과연 천한 것인지 헤아리기 보다는 그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따라 당연히 하느님께서 맡기신 일들과 역할을 귀하고 천하다고 판단하며, 왜 내게는 이런 일을 맏기시고 저 사람은 저토록 귀하게 들어올리시는 지 원망을 드리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 귀하게 보이는 것들이 하느님 보시기에도 귀한 것일까요? 함부로 쓰는 막그릇이라도 그 꼭 필요한 용도에 부족하다면 그 자체로서 소중하고 귀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통념에 따라 하찮게 여기고 귀한 그릇이라 할 지라도 용도에 맞지않으면 아무 짝에 쓸모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역시 통념에 따라 귀하게 다루는 어리석음을 벗어던지지 않는 한 끝내 하느님의 섭리와 계획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행동과 업적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행동과 업적을 의롭게 한다는 바울로 사도의 말씀은, 우리가 행하는 일들이 인간적으로 영웅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 할 지라도 그것이 나의 생각과 고집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 자체로서는 의미 있는 것일 지 몰라도 참으로 가치있고 소중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작고 사소한 일이라 할 지라도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랑을 담을 때에 그 작고 사소한 행위들이 이미 우리의 삶을 거룩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저희의 의로운 행동으로 당신 앞에서 교만하기보다는 겸손되이 당신의 계획과 섭리를 믿고 내어맡기며 따르게 해주소서. 당신 앞에 교만한 의인이기 보다는 겸손한 죄인으로서 당신의 자비로 의로움을 입게 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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