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회성당 자유게시판

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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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윤 [Novita] 쪽지 캡슐

1999-05-02 ㅣ No.548

 

 

 

 

 

                 파업

 

 돌아가지 않는 공장이 이상해 보였다.

 공장 속의 고요,

 두 행성 사이의 한 가닥 실이 끊어진 듯

 기계와 사람 사이의

 거리,

 물건 만드느라 시간을 쓰던 사람이 손들의

 不在, 그리고

 일도 소리도 없이 휑한 방들,

 사람이 터빈의 空洞들을

 저버렸을 때, 그가

 불의 팔들을 잡아뜯었을 때,

 그리하여 용광로의 내부 기관이 죽었을 때,

 바퀴의 눈을 뽑아내어

 눈부신 빛이 그 보이지 않는 圓 속에서

 꺼졌을 때,

 크나큰 에너지의 눈,

 힘의 순수한 소용돌이의 눈,

 엄청난 눈을 뽑아버렸을 때,

 남은 건 의미 없는 강철 조각 더미,

 그리고 사람들 없는 상점들 안에 혼자 남은 공기와

 쓸쓸한 기름 냄새,

 그 파편 튀는 망치질 없으니,

 아무것도 없었다.

 엔진 덮개 외엔 아무것도

 죽어버린 동력의 더미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오염돼 더러운 바다 깊은 데 있는

 검은 고래처럼,

 갑자기 外界의 쓸쓸함 속에 잠겨버린 산맥처럼.

 

 

                 수수께끼

 

 바닷가재가 그 금빛 다리로 짜고 있는 게 뭐냐고

 당신은 나한테 물었다.

 나는 대답한다. 바다가 그걸 알 거라고.

 우렁쉥이가 그 투명한 방울(鍾) 속에서 무얼 기다리고 있느냐고

 당신은 말한다. 그건 뭘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말한다. 그건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당신처럼.

 당신은 나한테 묻는다. 매크로씨스티스 앨거(해초)는

 그 품 속에 누구를 안고 있는냐고.

 연구해, 그걸 연구해봐, 어떤 시간에, 내가 아는 어떤 바다에서.

 당신은 一角고래의 고약한 송곳니에 대해 묻고, 나는 그 바다의

 一角獸가 어떻게 작살을 맞아죽는지 말하는 걸로 대답을 대신한다.

 당신은 물총새의 깃에 대해 알고 싶어한다,

 남쪽 조수의 맑은 샘에서 몸을 떠는 그 새의.

 또는 카드에서 말미잘의 투명한 건축에 관한 의문을 발견하고

 나더러 해명하라고 할 모양이지?

 당신은 지느러미 가시의 電氣的 성질을 알고 싶어하지?

 걸어가면서 부서지는 裝甲 종유석은?

 아귀의 돌기, 물 속 깊은 데서 실처럼

 뻗어가는 음악은?

 

 바다가 그걸 안다는 걸 나는 당신한테 말하고 싶다,

 그 보석상자 속에 들어 있는 생명은

 모래처럼 끝이 없고, 셀 수 없으며, 순수하고,

 그리고 피빛 포도 사이에 시간은

 단단하고 반짝이는 꽃잎을 만들었고,

 빛으로 가득찬 해파리를 만들었으며

 또 그 마디들을 이어놓았고, 그 음악적인 줄기들을

 무한한 眞珠層으로 만들어진 풍요의 뿔에서 떨어져내리게 한다.

 

 나는 사람의 눈을 앞질러간, 그 어둠 속에서

 쓸모 없이 된 빈 그물일 뿐,

 삼각 기중기, 겁많은 오렌지 球體 위의

 經度를 앞질러간 빈 그물,

 

 나는 당신처럼 돌아다닌다,

 끝없는 별을 찾으며,

 그리고 내 그물 속에서, 밤중에, 나는 벌거숭이로 깨어난다,

 단 하나 잡힌 것, 바람 속에서 잡힌 물고기 하나.

 

 

   

 

      망각은 없다 (소나타)

 

 나더러 어디 있었냐고 묻는다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돼서........."라고 말할밖에 없다

 돌들로 어두어진 땅이라든가

 살아 흐르느라고 스스로를 망가뜨린 강에 대해 말할밖에;

 나는 다만 새들이 잃어버린 것들에 대해 알고,

 우리 뒤에 멀리 있는 바다에 대해, 또는 울고 있는

 내 누이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어찌하여 그렇게 많은 서로 다른 장소들이, 어찌하여 어떤 날이

 다른 날에 융합되는 것일까? 어찌하여 검은 밤이

 입 속에 모이는 것일까? 어째서 이 모든 사람들은 죽었나?

 

 나더러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가진 것들

 애기부터 할밖에 없다,

 참 쓰라림도 많은 부엌 세간,

 흔히 썩어버린 동물들,

 그리고 내 무거운 영혼 애기부터.

 만나고 엇갈린 게 기억이 아니다,

 망각 속에 잠든 노란 비둘기도;

 허나 그런 눈물 젖은 얼굴들,

 목에 댄 손가락들,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그런 것;

 어떤 날의 어두움은 이미 지나가고,

 우리들 자신의 음울한 피로 살찐 어떤 날의 어두움도 지나가고.

 

 보라 제비꽃들, 제비들,

 우리가 그다지도 사랑하고

 시간과 달가움이 이슬렁거리는

 마음 쓴 연하장에서 긴 고리를 볼 수 있었던 것들.

 

 허나 이빨보다 더 깊이 들어가지는 말고,

 침묵을 싸고 껍질을 잠식하지도 말자,

 왜냐하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니까;

 죽은 사람이 참 많고

 붉은 태양이 흔히 갈라놓은 바다 제망이 참 많고,

 배들이 치는 머리들이 참 많으며,

 키스하며 몸을 감는 손들이 참 많고,

 내가 잊고 싶은 게 참 많으니까.

 

 

     소나타와 파괴들

 

 그렇게도 많은 일을 겪은 뒤에, 그다지도 머나먼 거리를 지나온 뒤에,

 어떤 왕국인지도 모르고, 어떤 땅인지도 모르는 채,

 가련한 희망을 갖고 돌아다니고,

 속이는 동료들, 수상한 꿈과 더불어 돌아다니고 나서,

 나는 아직도 내 눈 속에 살아있는 단단함을 사랑한다.

 말을 탄 듯이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나는 들으며,

 잠든 불과 황폐한 소금을 나는 물어뜯고,

 밤이 되어 어둠이 짙고, 그리고 슬픔이 남몰래 움직일 때,

 나는 내가 먼 야영자들의 기슭을 망보는 사람이라고 상상한다.

 빈약한 방비로 돌아 다니는 여행자,

 자라나는 그림자와 떨리는 날개 사이에 끼인,

 그리고 돌로 만든 내 팔이 나를 보호하는 여행자.

 

 눈물의 과학중에는 혼란스런 재단이 있으며 ,

 그리고 내 향기 없는 저녁 명상 속에서,

 달이 사는 내 황폐한 침실 속에서,

 내 식구인 거미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파괴들 속에서,

 나는 내 잃어버린 자아를 사랑하고, 내 흠 있는 성격,

 내 능변의 상처, 그리고 내 영원한 상실을 사랑한다.

 습기찬 포도는 변색하고, 그 우중충한 물은

 아직도 명멸하며, 여전히 우리와 함께 있다,

 그리고 보잘 것 없는 유산과 무너질 듯한 집도.

 누가 재의 儀式을 거행했는가?

 

 누가 잃어버린 걸 사랑했으며, 누가 마지막 남은 걸 보호했는가?

 아버지의 뼈, 그 죽은 배의 목재,

 그리고 그 자신의 종말, 그의  날아감,

 그의 우울한 힘, 불운했던 그의 神을?

 그러니 나는 살아 있지 않은 것과 고통받고 있는 걸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내가 제시하는 비상한 증언 -

 잔인할 만큼 효능 있고, 재에다 쓴 증언은

 내가 좋아하는 망각의 방식이다,

 내가 땅에 붙인 이름, 내 꿈들의 가치,

 내 쓸쓸한 눈으로 분배한 끝없는 풍부함,

 이 세계가 이어가는 나날들.

 

 

 

 

 

 나는 기억한다 그 최후의 가을에..........

 

 

 나는 기억한다 그 최후의 가을에 네가 어땠는지.

 너는 회색 베레모였고 존재 전체가 평온했다.

 네 눈에서는 저녁 어스름의 熱氣가 싸우고 있었고,

 나뭇잎은 네 영혼의 물 속에 떨어지고 있었다.

 

 나팔꽃처럼 내 팔 안에 들 때

 네 슬프고 느린 목소리는 나뭇잎이 집어올렸다.

 내 갈증이 타고 있는 경악의 모닥불.

 내 영혼 위로 굽이치는 히아신스의 부드러운 청색.

 

 나는 느낀다 네 눈이 옮겨가고 가을은 사방 아득한 것을 :

 회색 베레모, 새의 목소리, 그리고 내 깊은

 욕망이 移住하는 집과도 같고

 내 진한 키스의 뜨거운 석탄처럼 떨어지고 있었던 가슴.

 

 배에서 바라보는 하늘. 언덕에서 바라보는 평원 :

 너를 생각하면 기억나느니 빛과 연기와 고요한 연못 !

 네 눈 너머로 저녁 어스름은 싸우고 있었고.

 가을 마른잎은 네 영혼 속에 맴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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