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릉동성당 게시판

사순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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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혜진 [fromrahel] 쪽지 캡슐

2002-02-23 ㅣ No.1237

해를 거듭할수록 무게를 더하는 사순시기가 조금은 겁이 나기도 한다.

신부님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기에 다가가려고 하면 할수록 십자가가 무거워지는 것 같아 한발짝 다가서기가 조심스러운 요즘이었다.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헷갈리고...휘청대면서도 뭔가 알것같은지 또 한걸음 내딛는다.

 

얼마전까지 정말’ 내가 살아있는건지’참으로 의심스러웠다. 분명 숨은 쉬고 있는데...많은 사람들과 여러가지 일들로 살아가고 있는데 문득 모든게 멈춰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아마도 나는 내가 어디에 서있는지 자꾸만 확인하고 싶은가보다. 사춘기를 지난지 오래지만 그 후로도 수없이 많은 시간동안 매일매일 내가 어디쯤 왔는지 집요하게?*^^* 확인하며 사는 사람이 바로 나다.

 

내가 횡설수설할 때엔 마음이 허한게다. 얼마전 나는 사랑하던 사람을 그만 잊기로 했다.오묘하게 사순시기와 맞아떨어져서 내겐 더욱 의미있는 사순절이다.그래서 십자가의 길을 하면서도 십자가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그 슬픔이 오죽할까 싶어서 말이다. 온 마음을 내어준다는 것이 이렇게도 사람을 뒤흔드는 일인줄 알았으면 그냥 숨어 살 걸...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뒤늦게 성장하는 내 모습을 처음으로 볼 수 있었고, 아플것 같던 내 마음에 상처대신 당신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따뜻하게 자리 하는 것을 체험한다. 나는 지금 아프고 아니 아파야하고...아플것 같은데 웃으면서 이렇게 글을 남길 수 있어서 기쁘다.

 

강론중에 들었던 ’당신 뜻대로 하소서’  이 한마디로 내 삶의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사람을 사랑하는 일, 갖고싶은 물건에 대한 욕심, 받고싶은 여러가지 감정들, 잃어버리지 않고 싶은 여러가지 기억들, 생각들로부터.

나에게 필요한 말과 사람들..여러가지 가르침들을 접할 때 마다 정말 하느님과 대화라도 한 것 같아 참 감사하다..미처 기도하지도 못하고 힘들어하기만 했었던 여러가지 일들에 그냥 한마디 "당신 뜻대로 하소서" 라고 외쳐봤을뿐인데 나를 건져주셨으니 말이다.

 

가까이하면 할수록 더 큰 십자가를 지게 될줄 알았는데 더 가까이 갈수록 십자가의 무게가 줄어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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