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동성당 게시판

나의 신입생 추억

인쇄

이세민 [johnlee74] 쪽지 캡슐

1999-03-04 ㅣ No.223

저는 1학년 때부터 초등부 교사를 했었죠.

그 당시 제 기억엔 언제나 사회에 대한 불만과 신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했습니다.

전자는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지만요.

그래서 경제학 서적은 한 권도 펴 본 적이 없고

주로 철학과 신학 관련 책을 읽으며 무신론자들의 논리를 반겼습니다.

당시 제가 가장 좋아하던 이가 니체였죠.

그가 직접 쓴 짜라투스트라 어쩌고 하는 책들을 직접 읽기는 너무 힘들었지만

해설서에 적힌 한줄 한줄에 무릎을 쳤습니다.

기도하는 모습이 위선으로 보이며

작업하느라 미사 참례 안하는 선배들이 한심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뿌리박힌 신에 대한 두려움에

차마 성당은 떠나지 못하는 이도저도 아닌 채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교사를 했느냐,

성당 단체 활동이란 하나의 써클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죠.

동료들도 너무 좋았구요.

술 마시고 노는 것도 너무 좋았구요.

제가 믿지도 않는 교리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이라도 믿도록 도와준다는 논리로 스스로를 옹호했습니다.

그렇게 4년을 교감까지 하면서 보냈습니다.

 

그러던 것이 수 년 전 어느 사건이 있었습니다.

좀 길고 제 스스로에겐 힘든 사건이었죠.

무언지 말씀드리기는 힘들지만

그 이후로 제 믿음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더 이상 신에게 도전할 수 없었던 거죠.

하나의 운명처럼 다가온 그 기회가 없었던 들

신께 다가설 수 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고난이 곧 은총이었던 셈이죠.

인간은 두려워서 신을 만들었다는 믿음은

신은 인간을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했다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지금 신입생 중에 대다수가

제 시절보다 훨씬 신앙적으로 성숙된 것 같아 부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 고민을 하고 길을 찾으려 했던 모든 노력들이

반대로 지금의 제 정신을 더 굳건히 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청년으로서 자신감과 도전 의식을 잃지 말고 자아를 확립하는데 노력하길 바랍니다.

술도 좋고 당구도 좋고 스타크도 좋지만

이 시절이 아니면 영영 배울 수 없는 그런 것이 있겠죠.

 

 

 



21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