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십리성당 게시판

이 한장의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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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하 [domini0727] 쪽지 캡슐

2006-05-27 ㅣ No.3785

 

 

정 안젤라 자매님께서 제가 어젯밤에 쓴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글에 KBS 가요무대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애창곡 1위로 조사된 바 있는 "불효자는 웁니다" 란 노래의 원판과 함께 올려주신 사진 중 하나 입니다.

 

제가 꼬리글로 이 사진의 주인공이 위험한 철길에서 지금 무얼하고 계시는지 그걸 아시는 분께는 선물을 드린다고 했더니 어떤 분이 쪽지로 정답인지는 잘 모르겟지만 어머니가 바다에서 바지락을 캐서 머리에 이고 오시다가 기찻길에 쏟으셔서 그걸 주워 담는 것 같다는 설명을 해주셨는데

그분은 아마 한창 젊은 분이 돼서 그런 오답을 하셨으리라 생각 됩니다.

굿뉴스 자유게시판에서 "교수"로 통하시는 배봉균 요아킴 님께서 정답을 맞추어 주셨습니다.

 

맞습니다. 저 어머님은 위험한 기찻길 위에 떨어져 있는 석탄가루를 장갑을 낀 손으로 그릇에 쓸어담고 계시는 중 입니다.

 

산림녹화를 위해 정부에서 산에 나무를 베지 못하게 하자 집집마다 땔감이 부족하여 전전긍긍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농촌에서는 볏짚을 불쏘시게로 해서 가시가 촘촘히 박힌 어린 아카시 나무나 싸리나무 또는 오리나무나 미루나무 가지를 전지한 것, 정미소에서 나오는 왕겨, 제재소에서 나오는 톱밥 등을 땔감으로 썼으며 또한 깍지를 지게에 얹고 산으로 올라가서 낙엽 쌓인 것을 차곡차곡 긁어모아 아궁이 땔감으로 쓰기도 하였습니다.

 

그 시절 도시에는 구공탄이라 하여 강원도 정선 태백(장성) 삼척, 도계 등지의 석탄광산에서 채굴한 무연탄을 가져다가 열아홉 개의 구멍을 내서 만든 연탄을 땠었지요.

석탄을 실은 화차가 레일의 이음새 부분이나 커브 길을 지날 때 화차 틈새로 풀썩풀썩 석탄가루가 쏟아져 내렸고 저 어머니처럼 몽당빗자루를 들고 철길에 나가 대야나 소쿠리에 석탄가루를 가득하게 쓸어담아다가 진흙에 개서 꾸덕꾸덕해지면 숯보다 오래 타고 화력이 훨씬 더 센 땔감이 되었던 것 입니다. 

 

그 시절 겨울은 왜 또 그리 추웠던지.....

온 식구가 오돌오돌 떨며 겨울을 지내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군불을 때야만 했고 어머니는 오늘도 가족들을 위해 완전무장을 하고 위험한 철길에 나가 앉아야만 했던 것입니다.

 

마치 내 어머니의 모습을 뵙는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산에 나무를 몰래 베는 도벌 단속이 아주 심했던 시절이었기에 더욱 상종가 자리였던 군청 산림계장의 아내로서 호의호식하던 내 어머니께서 갑자기 아버지를 저세상으로 떠나 보내신 후, 늙으신 시부모님 수발과 자식들을 위해 땔감을 마련코자 커다란 왕겨 가마니를 머리에 이고 오시던 고생하시던 모습이며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본 아버지의 옛 동료분들이 분명 그러셨을 테지만 비싸서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참나무 장작을 소달구지로 잔뜩 실어다 주시던 기억이며....

남정네가 없어 결국은 저 사진의 주인공처럼 영주역으로 들어오는 영암선 철길에 석탄가루를 주우러 다니셨던 내 어머니 모습이 오버랩 되어 다시한번 "불효자는 웁니다"를 마음 속으로 울며 불러 봅니다.

 

이제 며칠 지나면 성모성월이 끝나는 군요.

이 세상 모든 어머니께서 겪으셨을 그 어떤 고통보다 훨씬 더 지심한 고통을 겪으셨을 성모님의 고통을 생각하며 성모님께마저 불효자가 된 자신을 되돌아 봅니다.

매년 아치에스 행사 때마다

 

"나의 모후, 나의 어머니시여 나는 오로지 당신 것이오며 내가 가진 모든 것이 당신의 것이옵나이다" 라고 말은 뻔질나게 잘 해놓고서

과연 내가 한 일은.....?

내것은 항상 내것이었지 않았는가?

오히려 내 어머니 가슴을 아프게 한 것보다 더 지독히 성모님 가슴만 아프게 해 드렸지 않았던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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