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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옴]한 청년의 죽음과 언론의 호들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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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우 [garden94] 쪽지 캡슐

2001-02-01 ㅣ No.1468

 

한 청년의 죽음과 언론의 호들갑

 

 

 

                               이우영 기자   bakilhong@hanmail.net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의 의로운 죽음과 관련해 며칠째 한국과 일본 두 나라가 온통 들끓고 있다. 그의 의로운 죽음이야 칭송받아 마땅하고, 그 덕분에 일본 내 한국인들에 대한 편견이 크게 개선된 것 등은 기뻐해 마지 않을 일이지만, 이 같은 사실들을 전하는 언론의 태도를 보노라면 왠지 눈살이 찌푸려지곤 한다. 솔직히 너무 호들갑을 떨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그리 흔한 일은 아니지만, 세상에는 그 동안에도 자신의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남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그러나 이들과 이수현 씨의 경우를 비교해 보면, 같은 의로운 죽음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이나 세상의 관심도는 너무나 큰 차이를 보인다. 이는 곧 이수현 씨의 죽음이 있는 그대로의 죽음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 아닌,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지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리고 이렇게 이수현 씨의 죽음이 실제 이상으로 부풀려지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바탕에는 ‘한국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는, 다만 한 위험에 빠진 인간을 구하려다 아쉽게도 목숨을 잃고 만 그의 진심을 왜곡하는 측면이 있다.

 

다시 말해 위험에 처한 사람이 일본인이 아닌 다른 어느 나라 사람이었을지라도 그는 그 같은 상황에서라면 똑같이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었을 것이 분명한데, 언론은 일부러 이 같은 그의 진심은 외면한 채 한국인이 일본인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느낌이다.

 

이 왜곡은 언론으로 하여금 그의 선조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피해를 입었었다는 가계사 또는 역사까지를 들춰내도록 만들고 있다. 그가 일본에 독립운동을 하러 간 것도 아니고, 따라서 한일간 관계 증진에 일익을 담당하고 싶다는 희망을 갖고 있던 한 청년에겐 더더구나 가당치도 않은 과거사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이 같은 가계사 또는 역사 등 별 관계가 없는 것들까지 온통 들춰내 그의 진심을 왜곡함으로써 그 의로운 죽음에 전혀 엉뚱한 색깔을 입히고 있는 것이다.

 

이수현 씨의 죽음은 다만 한 의로운 청년이 위험에 빠진 다른 사람을 방관할 수가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었다가 불의의 참변을 당한, 아무나 감히 흉내낼 수 없는 행위이긴 하되 다만 한 의로운 죽음일 뿐이다. 거기에다가 한일간의 불행했던 과거를 대입하고, 한일간의 특수한 관계를 곱하고 어쩌고 하는 따위 사족을 붙이는 것은 그의 순수했던 마음을 오히려 왜곡하고 욕되게 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의 의로운 죽음은 그냥 의로운 죽음인 채로 묻어주어야 한다. 굳이 덧칠을 하고, 굳이 그렇게 한일간 관계가 어떻니 저떻니 하고 호들갑을 떨지 않더라도 그의 죽음은 충분히 값지고 아름답다. 그의 의로운 죽음을 그냥 의로운 죽음인 채로 묻어주는 것, 그것이 그의 죽음을 가장 의롭게 하는 것일 거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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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글을 쓴 기자는 세상을 참으로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죠?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지요?

 

이상 오마이 뉴스( www.ohmynews.co.kr ) 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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