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성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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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9.*]

2008-03-19 ㅣ No.791

 
 

성 목요일286)
 

♣참고:이 글 중에 밑줄이 그어진 성경 구절이 나오면, 학습자들이 그 구절을 찾아 읽을 것을 권장한다.
 

입문
 
     오늘날 우리가 성 목요일(Holy Thursday)로 기념하는 날은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절에는 파스카(과월절)를 준비하는 날이었다.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저녁식사를 위한 자리를 예약하기 위하여 베타니아(Bethany)에서 사람을 보내셨다.287) 해질녘부터 다음 해질녘까지를 하루로 계산하는 히브리인들의 시간 계산방식에 따라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기도 한 초저녁에, 사도들과 예수님은 파스카 저녁식사를 함께하기 위하여 모두 모였으며, 우리의 주님께서는 사도들의 발을 씻어주셨다. 우리의 주님께서는 파스카 저녁식사 중에 당신을 위한 영원한 기념행사로서, 즉 우리들로 하여금 당신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하게 하기 위한 행사로서 축성된 성사(Blessed Sacrament,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이루어진 성체성사)를 세우셨다.288) 저녁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 배반자로 지목된 유다가 자리를 떠났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배반을 예언하셨으며 또 설교(discourse)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에 사도들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용기를 북돋워주셨다. 식사가 채 끝나기 전에 파스카 저녁식사를 중단하고는, 예수님과 당신의 제자들은 올리브 동산으로 오르셨다. 올리브 동산의 겟세마니(Gethsemani)라고 불리는 곳에서, 당신께서는 세 명의 제자들(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려 가셨으며, 또 당신의 고뇌(agony)를 시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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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6)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면, 가해(Cycle A) 나해(Cycle B) 및 다해(Cycle C)의 부활시기(Easter)  동안의 주일미사 중의 독서(lectionary) 전부에 대하여 알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lectionary4easter.htm

그리고 매년 성주간 주님 수난 성금요일 복음 말씀은 성 요한에 따른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사인 요한 복음서 18,1-19,42임을 기억하라. 매년 성주간 주님 수난 성금요일 독서들 및 복음 말씀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goodfri.htm
 
287) 베타니아에 대한 간략한 안내는 본 해설서의 주님 수난 성지주일 입성 복음(루카 복음서 19,28-4) 입문에 있으니 참고하라.
 
288) 나해 연중 제17-21주일에 걸친 총 다섯 번의 복음 말씀들은 모두 요한 복음서 제6장에서 발췌하는데, 하늘 나라가 드러나는 순간이기에 미사성제의 정점인 성찬례에 대한 신학적 배려가 주일 전례력 안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에 대한 엮은이의 졸글(소제목: 나해 연중시기 주일 중에 요한 복음서 제6장 말씀들의 학습에 대한 고찰)이 본 해설서 시리즈의 나해-II 그리스도왕 대축일 3분 복음/교리 묵상란 다음에 있으니 참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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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 탈출기 12,1-8.11-14
 
     오늘 우리가 읽게 되는 제1독서는 첫 파스카 저녁식사의 제정에 관한 기록이다. 과거에 이집트에 붙잡혀 종살이를 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 시점에 이르게 되기까지 그 동안의 사건들이 진행되는 동안 모세의 지도 아래에 있었는데, 모세는 당시에 그의 대변자 역할을 한 그의 형 아론과 함께 있었다.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에게 여러 번 찾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신(Yahweh)에게 제물을 바칠 수 있도록 사흘 동안 이집트를 떠나 사막 지역으로 나가 있는 것을 허락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파라오는 반복하여 이에 대한 허락을 거부하였는데, 비록 각 경우에 있어 이스라엘 백성은 모면하게 되었으나, 한 번 거절할 때마다 재앙이 이집트에 닥쳤다. 첫 번째로, 모든 물이 피로 변하였다[당시에 나일 강은 잡신 하피(god Hapi)로 숭배되었는데, 이 강물이 피로 바뀐 것은 하느님께서 하피를 죽였음을 드러낸 것이다]. 두 번째로, 이집트가 개구리로 가득 찼으며[당시에 헤케트(Heket) 여 잡신이 개구리의 형태로 숭배되었다], 이들 개구리들이 온 천지에서 죽어 가면서 썩는 냄새로 심한 악취를 풍겼다. 세 번째 재앙은 (파리, 모기 등과 같이 두 개의 큰 날개를 가진 물어뜯는) 각다귀들에 의한 재앙이었으며, 이것은 네 번째 재앙인 등에(flies)들에 의한 재앙으로 이어졌다. 이 재앙은 다섯 번째 재앙인 가축들의 재앙으로 이어졌다[황소는 잡신 아피스(god Apis)로 숭배되었고, 암소는 잡신 하토르(god Hathor)로, 숫양(ram)은 잡신 크눔(god Khnum)으로 숭배되었다]. 여섯 번째 재앙인 몸에 종기가 솟아나는 재앙은 모든 농작물들을 망치게 한 우박이 내리는 일곱 번째 재앙으로 이어졌으며, 그나마 남은 농작물들은 메뚜기 떼가 몽땅 다 먹어치우는 여덟 번째 재앙이 뒤따랐다. 그런 다음에 어둠이 뒤덮는 아홉 번째 재앙이 땅을 덮쳤다[태양이 잡신 레(god Re)로 숭배되었다]. 그런 다음에는 다음과 같은 열 번째 재앙이 파라오에게 예고되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한밤중에 이집트 가운데로 나아가겠다. 왕좌에 앉은 파라오의 맏아들부터 맷돌 앞에 앉은 여종의 맏아들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짐승의 맏배들이 모조리 죽을 것이다. 그러면 이집트 온 땅에서 이제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큰 곡성이 터질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개조차 짖지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그러할 것이다. 이는 주님이 이집트인들과 이스라엘인들을 구분하였음을 너희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탈출기 11,4-7). 이것마저도 파라오를 납득시키는 데에 실패하였으므로, 모세와 아론은 그들의 백성에게 돌아가서 이 재앙을 피할 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오늘 우리들이 듣는 것은 하느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지시하신 것으로서, 모세와 아론은 이 정보를 그들의 백성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것이다. 우리는 9절과 10절만 제외하고 모든 관련 구절들을 다 읽게 될 것이다.
 
1 주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셨다. 2 “너희는 이달을 첫째 달로 삼아, 한 해를 시작하는 달로 하여라.
 
이것은 니산(Nisan) 달이다(이 달은 그레고리오력으로 3-4월에 해당한다).
 
3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에게 이렇게 일러라. ‘이달 초열흘날 너희는 가정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집집마다 작은 가축을 한 마리씩 마련하여라. 4 만일 집에 식구가 적어 짐승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사람 수에 따라 자기 집에서 가장 가까운 이웃과 함께 짐승을 마련하여라. 저마다 먹는 양에 따라 짐승을 골라라.
 
제물이 가족 단위로 나누어질 것임에 유의하라.
 
5 이 짐승은 일 년 된 흠 없는 수컷으로
 
이 짐승은 하느님께 바쳐지는 희생 제물이며, 이렇게 바쳐지는 동물은 늙거나 기형이거나 병들거나 혹은 허약하지 않은, 가능한 한 가장 최상의 것이어야 한다.
 
양이나 염소 가운데에서 마련하여라. 6 너희는 그것을 이달 열 나흗날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의 온 공동체가 모여 저녁 어스름에 잡아라.
 
어린양들은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제물로 바쳐져야 하는데, 그것들은 개인적 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들의 공동체 전체가 바치는 제물이다.
 
7 그리고 그 피는 받아서, 짐승을 먹을 집의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다른 계약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과의 이번 계약 또한 하나의 징표(a sign)를 가지고 있다. - 문설주와 (문 입구의 윗부분을 형성하는 수평의 지주대인) 상인방에 표시한 피. 탈출기 12,22는 피를 우슬초의 가지로 발라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우슬초 한 묶음을 가져다가 대야에 받아 놓은 피에 담가라. 그것으로 그 대야에 받아 놓은 피를 두 문설주와 상인방에 발라라. 너희는 아침까지 아무도 자기 집 문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8 그날 밤에 그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불에 구워,
 
어린양 고기를 싫어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가족의 일원이라는 표시로서 이 제물을 먹어야 한다. 계약을 맺는 예식의 한 부분이 바로 제물을 먹는 것인데, 이런 예식은 나중에 레위기 3; 7,11-21의 하느님과의 친교 봉헌(communion offering, piece offering)를 청하는 통공(communion) 봉헌에도 반영된다. 이 희생 제물을 먹는 것의 불이행은 이런 봉헌 예식을 무효화시켜 맏배가 죽게 될 것이다.
 
누룩 없는 빵과 쓴나물을 곁들여 먹어야 한다.
 
누룩 없는 빵은 이것이 매우 급하게 준비된 것임을 보이기 위함인데, 이것은 빵 반죽이 부풀어 오르는 것을 허락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중에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에 빵을 구울 시간이 없을 것인데, 그들이 빵 반죽을 옮기는 동안에 태양이 빵 반죽에 세게 내리쬘 것이다. 노예로 있는 동안에 그들이 참고 견디어 낸 고통을 나중에 상기시키는 역할을 쓴 나물(bitter herbs)들이 하게 될 것이다.
 
[9 그것을 날로 먹거나 물에 삶아 먹어서는 안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이 있는 채로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 10 아침까지 아무것도 남겨서는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태워 버려야 한다.]
 
[불에 탄 부분은 하느님께 바친 봉헌에 해당된다. 또한 탈출기 12,22는 그 다음날 아침까지 모든 사람들이 집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하였다고 말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매고
 
그들의 가운 같은 겉옷들은 끝 부분이 띠 안으로 접어 넣어지고 바싹 조여져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옷차림새가 풀어져 그들을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에는 그들의 이동을 방해한다.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주님을 위한 파스카 축제다. 12 이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면서, 사람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이집트 땅의 맏아들과 맏배를 모조리 치겠다. 그리고 이집트 신들을 모조리 벌하겠다. 나는 주님이다. 13 너희가 있는 집에 발린 피는 너희를 위한 표지가 될 것이다. 내가 이집트를 칠 때, 그 피를 보고 너희만은 거르고 지나가겠다. 그러면 어떤 재앙도 너희를 멸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14 이날이야말로 너희의 기념일이니, 이날 주님을 위하여 축제를 지내라. 이를 영원한 규칙으로 삼아 대대로 축제일로 지내야 한다.’
 
기념 축제(memorial feast)는 정기적으로(on a regular basis) 반복되는 희생제사의 대표적인 것이다(이 경우에 있어 해마다 반복되어야 한다고 제18절 및 19절에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다). 기념 축제는 과거에 한 번 거행된 것을 단순히 상기시켰던 것이 아니라, 현재의 기념제에 참석한 이들로 하여금 원래의 희생 예식에 참석하게 하였다.
 

제2독서 - 1코린토 11,23-26
 
    우리의 두 번째 미사 전례 성경(독서)은 우리들이 매번 미사에서 듣는 축성 말씀들(words of consecration)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이 쓰인 시기는 예수님의 수난, 죽임 당하심 및 부활 후 27여 년 정도 지난 시점이다. 성 바오로는 최후의 만찬 석상에 없었는데, 그는 그때까지만 하여도 바리사이파 사람 사울(Saul the Pharisee)로 알려져 있었다(사도행전 7,58). 사도 바오로의 개종은 기원후 35년경에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발생하였다.
 
23 사실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성 바오로가 여기서 기억을 되살리고 있는 것은 그가 개종할 때 우리의 주님으로부터 받은 사적 계시 및 가르침이다(사도행전 9장).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기억하는 것(remembrance)은 깊숙이 기대어 앉아서 정다운 추억들을 상기하는 것이 아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기억한다는 것은 그들을 첫 제사에 동참하게 하는 기념 희생제(memorial sacrifice)에 참석하는 것을 말한다. 이 사건은, 구약 성경의 시절 동안 선택된 백성들과 맺은 계약들을 구현할 계약인, ‘새 계약’을 예수님께서 언급하시는 유일한 순간이다.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음을 선포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을 경축하시고 신문을 받으시고(tried) 또 갈바리아(Calvary 즉,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형을 당하고 계실 때에 그들은 그 자신들을 예수님과 하나로 결합하게 된다. 만약에 그 빵과 그 잔이 예수님의 성체(Body)와 성혈(Blood)가 아니라 단순히 상징(symbols)들이라면, 그들은 [(최초의 희생제물을 다시 봉헌하는(re-presenting) 최초의 사건에 참석하는(present) 것이 아니라, 대신에 그 사건의 재연(re-enactment) [상연(representation)]에 참여하는 것이다.
 
     비록 오늘의 미사 전례 성경(독서)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성 바오로가 (또한 우리의 주님께서) 그의 가르침에 부여한 중요성을 확실히 규명하기 위하여 4개의 구절들을 계속하여 더 읽을 것이다.
     
27 그러므로
 
성경에서 ‘그러므로’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우리는 무엇이 거기에 어떠한 이유로 있는지를 알기 위하여 멈추어 서야 한다. 우리는 이제 앞부분의 가르침에 대한 요약, 즉 중요한 점들을 강조하는 요약을 접하게 된다.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에 해당하는 표현을 NAB 영어 성경에서는 'to answer for the body and blood'로 번역하였는데,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구절은 '살인죄를 저지른(guily of murder)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의 한 기술적 방식이다. 나는 그대의 사진을 찢어버릴 수도 있고, 그대의 깃발을 태워버릴 수도 있고, 혹은 그대를 나타내는 상징(symbol)에 어떤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겠는데, 이로 인하여 그대가 모욕을 느끼기는 할 것이지만, 그러나 그대가 살해된 것은 분명 아니다. 그러므로 겉으로는 ‘빵’과 ‘잔’으로 보이는 것이 단순한 상징들보다 훨씬 더 나은 것임이 분명한데, 이들은 실제로 예수님 당신이심에 틀림이 없다.
 
28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29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30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에 몸이 약한 사람과 병든 사람이 많고, 또 이미 죽은 이들도 적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은 예수님께서 성체(Eucharist)에 실제로 현존(Real Presence)하고 계심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을 검토하여야 한다. 만약에 예수 그리스도의 몸, 피, 영혼과 거룩함이 거기에 현존하고 계심을 진실로 믿지 않는다면[성 바오로는 신앙의 눈(eyes of faith)으로 보는 것을 의미하는 ‘분별(discern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사람은 성체성사에 참여하여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성체성사를 더럽히게 되는 것인데(desecrates), 그 이유는 당신께서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 및 당신께서 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을 행하시는 당신의 권능, 즉 그리스도의 신성(divinity)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성체 안에 당신께서 현존하심을 부정하는 것은 누구든지 그 자신을, 당신을 배반하였고 신문하였고 또 단죄하였던 자들과 같은 무리가 되는, 죄를 짓게 한다. 빵 한 조각을 받아 들고는 밤의 어두움 그리고 죄의 어두움을 향하여 떠나갔던 유다에게(요한 복음서 13,30, 사도행전 1,18)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잘 기억하도록 하라(마태오 복음서 27,5; 사도행전 1,18). 성체를 받아먹을 때마다,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신앙 가족(faith family)의 한 구성원으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복음 - 요한 13,1-15
 
    복음사가 성 요한은 예수님의 말씀과 실천들에서 표상의 체계(symbolism)를 발견하여 이들을 이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가능한 한 실질적으로 많이 연관시키기 위하여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다. 비록 루카 복음서 22,27에 이와 비슷한 행위들에 관한 몇 가지 힌트가 있기는 하나, 신약 네 복음서들 중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기록은 요한 복음서에만 유일하게 있다.
 
1 파스카 축제가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이 구절은 앞의 요한 복음서 2,4에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어머니께 “나의 시간이 아직 온 것이 아닙니다.”라고 언급하신 바로 그 때와 같은 ‘때(time)’이다. 이제는 당신의 영광으로 이어질, 즉 당신의 수난, 십자가형, 죽음, 그리고 부활로 이어질 바로 그 희생(sacrifice)을 시작하여야 할 시간이다.
 
그분께서는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전 인류를 위한 예수님의 사랑은 이 광경 전체를 강조하는 바로 그 주제이다. 다음의 구절들에서 드러나게 될 바는 당신의 사랑에 대한 최후 표명(final display)이며 그리고 이 사랑에 대한 최고의 예시(supreme exemplification)이다.
 
2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루카 복음서 22,3요한 복음서 6,70; 13,27을 보라. 이 복음서들은 예수님의 삶 전체를 통하여 악마의 현존과 활동을 우리들에게 보여준다. 사탄은 원수이고 (마태오 복음서 13,39), 흉악한 것이다(1요한 2,13). 이 구절에서 강조되고 있는 바는 유다의 악의(malice)와, 손을 내밀어 유다의 발을 씻기고 또 그가 배반하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그를 친구로 대하시는, 그리스도의 선하심(goodness)의 대조이다(루카 복음서 22,48).
 
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바로 이 순간에 성부(Father)께 대한 당신의 관계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알고 계심에 대하여 성 요한이 어떻게 강조하고 있는지를 주의 깊게 보도록 하라. 이러한 행위(act)가 당신의 강생하신(incarnational) 상태에 대한 모욕(humiliation)의 구체적 표상(symbol)이기를 예수님께서 원하고 계심을 이 구절은 보여주고 있다.
 
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노예나 시종의 임무를 수행하는 국면(point)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으로 당신 스스로를 낮추시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필리피 2,6-7).
  
6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성 베드로는 우리의 주님께서 당신 스스로를 전적으로 매우 겸손하게 낮추셨음을 특히 더 잘 이해하였으며, 그리스도께서 앞으로 겪을 고통에 대하여 그가 듣는 것을 원치 않았던 다른 경우들에 있어 그가 하였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베드로는 지금 항의를 하고 있다(마태오 복음서 16,22).
 
7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대접받기 위하여서가 아니라 대접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음을 이미 말씀하셨다(마르코 10,45). 사도들은 긍지(pride)와 허세(vanity)에 대하여 신경을 쓰고 있는 데에 반하여, 예수님께서는, 모범으로써(by example), 당신의 행위들로써(by His deeds), 겸손을 가르치신다.
 
8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은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이 순간에 성 베드로는 예수님 행동의 깊은 뜻을 파악하는 데에 실패한다. 그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하느님께서 계획하시는 것에 대한 의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필생의 사업(life work)으로 하셨던 일을 전형적으로 잘 예시하고 있는데, 이것을 베드로는, 비록 예수님께서 실천하셨으나, 거룩하신 하느님의 의지로 받아 들여야 한다. 만약에 성 베드로가 위와 같은 주장을 계속하게 되면, 그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제공하시는 ‘장소’에 동참하지 못하게 될 것이고(요한 복음서 14,3과 17,24를 보라), 더 나아가 그는 잘려서 버려질 것이다(cut off). 십중팔구 성 요한은 이 이야기를 읽는 그리스도 신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자신들의 삶과 결부시키고 또 세례의 역할에 대하여 상기하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성 베드로는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여전히 얕은 수준에서 말하고 있다. 만약에 앞으로도 계속될 사제지간의 연대(fellowship)의 조건으로서 그의 발을 씻는 것을 예수님께서 주장하신다면, 그대로 이루어지소서!(so be it!). 그러나 그가 주님과 함께함에 있어 장차 완전해질 수 있도록 그의 온 몸이 씻기었으면 하고 우리들은 바라고 있다.
 
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베드로가 요청한 바는 사실은 필요하지 않다. 발을 씻는 것은, 결국에, 단지 예(example)일 뿐으로, 사도들이 그들의 몸 구석구석까지 씻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다. 그리스도께 동참함으로써, 그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갖추게 되었다.
 
“내가 그대들에게 하였던 그 말 때문에 그대들은 이미 깨끗하다. 즉, 그대들은 그 말의 정도에 이르기까지 깨끗하다. 그대들은 이미 거룩한 빛을 받아들였으며, 유다인으로서 범하였던 죄가 다 척결되었다.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단언하였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악한 행실들을 치워버려라(이사야 1,16) … 따라서 자신들의 영혼으로부터 모든 악을 그들이 이미 다 뿌리 뽑았고 또 완전하고 진지한 자세로 당신을 따르고 있는 중이기에, 예수님께서는 예언자의 말과 일치를 이루는, ‘물로 세례 받은 자는 온 몸이 깨끗하다’고 공포하셨던 것이다”(성인 요한 크리소스토모, Homily on Saint John, 70,3).
 
성 요한은, 그가 선택한 그리스어 단어들에 의하여,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다시 한 번 더 세례를 떠올리게 한다. (목욕하다는 표현인 bathe는 그리스어로 louzo인데, 종교적인 이유로 물로 씻는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로서, 물로 씻는 세례를 뜻하기 위하여 이 단어의 여러 형태가 1코린토 6,11; 에페소 5,26; 티토 3,5; 히브리 10,22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물로 씻는다는 상징이 나타내듯이, 방금  사도들이, 하나의 그룹으로서, 깨끗함을 선언하셨다. 그러나 그들 중 한 사람은, 그가 또한 물로 씻기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깨끗하지 않다. 가장 깊은 속 내면의 성향(innermost dispositions)들이 순수하지 않은 사람은 심지어 일곱 성사(the secraments)들도 완전하게 정화할 수 없다.
 
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나는 사실 그러하다. 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앞 구절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의 의미가 이제 사도들에게 설명되고 있다. 사도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신자들은 예수님의 필생의 사업의 열매들에(즉, 자발적인 선행과 자선행위 등에) 동참하여야 하며, 모두가 이 사업의 정신으로 처신하여야 한다. 십자가에서 죽는 상황에 이르기까지 하시면서 당신의 아버지의 뜻을 구현하시는, 예수님의 전 생애는 인류를 향한 봉사의 한 예였다. 만약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있어, 우리의 주인(master)이시고 스승(teacher)이신, 당신을 본받으면, 그 누구도 우리들로부터 뺏어갈 수 없는 행복을 우리들이 발견할 것임을 우리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약속하신다.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271. 성체성사는 무엇입니까?
CCC 1322-1323, 1409
 
성체성사(Eucharist)는 주님이신 예수님의 몸과 피로 이루어진 희생 제사인데, 이것은 예수님께서 영광 안에서 돌아오실 때까지 전 시대들(ages)에 걸쳐 십자가 수난이라는 희생봉헌을 영속하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제정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이 기념을 당신의 교회에 믿고 맡기셨습니다. 그것은 일치의 표시이며, 사랑의 결속이며, 파스카 만찬인데, 그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먹히시고, 마음이 은총으로 채워지며, 그리고 미래의 영광에 대한 보증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CCCC 272. 언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까?
CCC 1323, 1337-1340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배반당하신 그 밤’(1코린토 11,23)인 성 목요일에 최후의 만찬을 당신의 사도들과 경축할 때에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주: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집(CCCC) 제275항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328-1332항들에  의하면, 성체성사(Sacrament of the Eucharist)의 여러 이름들은 다음과 같다: 

성찬례(the Eucharist),
거룩한 미사(Holy Mass),
주님의 만찬(the Lord’s Supper),
빵 나눔(the Breaking of the Bread),
성찬 모임(the Eucharistic Celebration),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기념(the Memorial of the passion, death and Resurrection of the Lord),   
거룩한 희생 제사(the Holy Sacrifice),
하느님의 거룩한 전례(the Holy and Divine Liturgy),
거룩한 신비들(the Sacred Mysteries),
제대의 지극히 거룩한 성사(the Most Holy Sacrament of the Altar), 그리고
친교(영성체)(Holy Communion).

출처1:
http://ch.catholic.or.kr/pundang/4/2005cc.htm
출처2: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31_c1328.htm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holythur_c1322.htm

 
(주)
CCCC =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집
CCC = 가톨릭 교회 교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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