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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 용어 정의(definition) 외 [성경용어_영광] [divine gl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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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 -1/2 [175.115.219.*]

2011-04-28 ㅣ No.1044

 
 
질문:
 
찬미예수님!
 
(질문 1) 탈출기 33,20: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 말씀의 해석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어요.
 
(질문 2) 여기서 "하느님의 영광"은 어떤 뜻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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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미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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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안내:
 
(질문 2)에 대한 답변은 아래의 제2항에 있습니다.
 
(질문 1)에 대한 답변은 아래의 제3항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의 부록인, 한 분이신 하느님의 성성(Sanctity, 聖性, 거룩하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읽고 묵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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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1.
 
1-1. 먼저, 한 두가지를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NAB의 주석들 중에서 "the ancient Near East" 라는 표현이 나오는 주석들이 모두 8개 뿐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 중 어느 것도 탈출기 33,20의 하느님 말씀 혹은 이와 동일한 말씀에 대한 주석은 아닙니다. 그리고
 
 
NAB의 주석들 중에서 "Near East" 라는 표현이 나오는 주석들이 모두 12개 뿐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 중 어느 것도 탈출기 33,20의 하느님 말씀 혹은 이와 동일한 말씀에 대한 주석은 아닙니다. 그리고  혹은 이와 동일한 말씀
 

NAB의 주석들 중에서 "the ancient world" 라는 표현이 나오는 주석들이 모두 11개 뿐임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 중 어느 것도 탈출기 33,20의 하느님 말씀 혹은 이와 동일한 말씀에 대한 주석은 아닙니다.
 
즉 무슨 말씀이고 하면, NAB 주석들에서, "the ancient Near East", "the ancient world", 그리고 "the ancient"를 분명하게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음을 또한 확인하였으며, 따라서 창세기 16,13에서 사용 중인 "the ancient notion""고대 중근동의 종교관"이라고 "어떤 분"이 번역하였다면, 그러한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은 NAB 주석들에 있어서의 사용 용어들에 대한 이러한 변별력을 무시하는, 번역 오류라고 아니 할 수 없습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11년 5월 4일]
 
1-2. 성요셉출판사의 주석성서(구약)에는 탈출기 33,20에서의 이 표현 및 아래의 제3-1항에서 나열한 이 표현과 거의 동일한 표현들에 대하여 "고대 근동에서 ..."  혹은 "고대 근동에서 ..."  라는 표현을 가진 주석이 없음을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1-3. "주석 성경"의 모세 오경 주석들 중에는 "고대 중근동의 종교관" 이라는 표현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음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탈출기 33,20에서의 이 표현 및 아래의 제3-1항에서 나열한 이 표현과 거의 동일한 표현들에 대하여 "고대 근동에서 ..." 라는 표현을 담은 주석도 모세 오경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들 중에는 없음을,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여, 또한 직접 확인하였습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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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질문 2에 대한 답변

[내용 추가 일자: 2020년 10월 9일]
2-0.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줄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가해 II, 연중 제28주일, 제2독서(필리피 4,12-14.19-20), 제19절의 해설에서 발췌한 바이다:

(발췌 시작)
영광(glory)은 유일한 신성의 힘 및 유일한 신성의 현존(the divine power and presence)을 말하며, [영광은] 인간(human-beings)들을 하느님 고유의 비슷함(God’s own likeness) 쪽으로 형체(shape) 혹은 형상(form)에 있어 바꾸는(transformation)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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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1) (i) 여기서 ‘영광’(glor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와 그 고유한 역할이 기술되고 있다. 그리고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변화'(變化, change), '변성(變成)함'/'성위(成為)함'(becoming) 등의 의미와 유관 개념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4.htm

(2) 영어로 ‘glorious’로 번역되는 형용사는, 성경 본문 혹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 등의 문맥 안에서는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고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하기 때문에, ‘영광을 발하는’으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영광’(glory)이라는 용어와 이 용어의 ‘영광을 발한다’(glorious) 등의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 및 올바른 우리말 번역들은, 본 해설서의 연중 제13주일 제2독서 중의 로마서 6,4의 각주에 안내된 글들에서 다루고 있으니 꼭 학습하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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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이상, 2020년 10월 9일자 내용 추가 끝]
 
2-1. 다음은, 아래의 제3항에서 발췌 중인 성경 본문들(탈츨기 24,16-17; 33,18.22; 신명기 5,24)에서 사용 중인 영광(glory)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St. Joseph 판 NAB(New American Bible)의 부록으로 주어진 Bible Dictionary에 주어진 용어 설명입니다:
 
Glory
영광 
A very important notion in biblical theology. In Hebrew (kabod), the word designates "to be heavy," "to be illustrous." It often denotes the radiant manifestation of God, in his grandeur (Ez 1, 28). This divine glory is possessed by Jesus (Jn 1, 14). According to St. Paul, every Christian shares in this divine glory already here below (Phil 3, 21).
 
성서 신학(biblical theology)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히브리어(kabod)로, 이 단어는 "무거움(to be heavy),"빛과 함께 밝게 빛남(to be illustrious)"를 나타냅니다. 이 단어는 흔히, 당신의 장엄함으로, 하느님의 빛을 내는 나타남(현현, 顯顯)을 의미합니다(denotes)(에제키엘 1,28).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신성적 영광(divine glory)을 소유하십니다(요한 복음서 1,14). 성 바오로(St. Paul)에 따르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여기 아래에서 이미 이러한 신성적 영광(divine glory)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필리피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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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다음은 아래의 제3-3-3항에 발췌한 탈출기 33,18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에 주어진 "하느님의 영광"에 대한 설명입니다:
 
하느님의 영광: 하느님의 내적 실체(sa réalité intime)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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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다음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809항에서 가르치고 있는 "영광(glory)"의 정의(definition)입니다:

CCC 2809 The holiness of God is the inaccessible center of his eternal mystery.
What is revealed of it in creation and history, Scripture calls "glory," the radiance of his majesty. In making man in his image and likeness, God "crowned him with glory and honor," but by sinning, man fell "short of the glory of God." From that time on, God was to manifest his holiness by revealing and giving his name, in order to restore man to the image of his Creator.

(졸번역)
CCC 2809 하느님의 거룩함[holiness, 성성(sanctity, 聖性)]은, 접근, 도달 할 수 없는, 당신의 영원한 신비의 중심에 있다. 창조와 역사에 있어 당신의 거룩함으로부터 드러내어지는 바를, 성경은 "영광(glory)", 즉 당신 엄위의 광채 라고 부른다. 당신의 모습 및 비슷함으로(창세 1,26) 사람을 만드심에 있어,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영광과 명예의 관을 씌우셨다." 그러나 죄를 지음으로써, 사람은 "이 하느님의 영광(the glory of God, gloria Dei)에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 바로 그 시기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창조주이신 당신의 모습으로(콜로 3,10) 사람을 회복하게 하고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시고 제시하심으로써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기로 하셨다.
 
참고: 다음은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우리말 번역입니다. 위의 졸번역과 비교/검토하시기 바랍니다:
 
 
2809 하느님의 거룩함은 그분의 영원한 신비의 다가갈 수 없는 중심이다. 이 신비 가운데 창조계와 역사 안에서 드러난 것을 성경은 ‘영광’, 엄위하신 하느님의 광채라고 하였다. 58) 하느님께서는“당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창세 1,26) 인간을 창조하심으로써, 그에게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다. 59) 그러나 인간은 죄를 지음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을 잃어버렸다.” 60) 그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인간이“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콜로 3,10) 새로워지도록,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시고 알려 주심으로써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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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시편 111(110),9; 루카 1,49 참조.
58. 시편 8; 이사 6,3 참조.
59. 시편 8,6 참조.
60. 로마 3,2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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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영광(glory)" 이라는 단어의 정의(definition)를 내리고 있는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2809항의 바로 직전 항인,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808항에 있는 번역 오류에 대한 지적의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지적은, 일반적으로 우리말 번역 표현에 있어서 대부분 놓치고 있는 듯한, 구라파 언어 표현의 이미 표준화된 논리 구조에 대한 글이므로, 되도록 많은 분들께서 또한 읽으실 것을 강력히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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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3-1 그 다음으로, 새 번역 성경의 구약 및 신약의 본문으로부터, 주신 질문인,
 
탈출기 33,20: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
 
But my face you cannot see, for no man sees me and still lives.
 
라는 표현과 유사한 표현이 등장하는 절들을 추출하여, 이들에 대한 "NAB(New American Bible)", "주석 성경" 등에 주어진 주석들과 함께, 비교/검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러한 비교/검토로부터 우리는 어떠한 상황/여건에서 그러한 표현이 주어지고 있음을 파악함으로써, 비록 직접적이지는 않으나 간접적으로, 이 표현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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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발췌한 성경 본문의 일부를 굵게 쓰고 또 색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유사 절들의 비교/검토 시작)
 
창세기 16,13
하가르는 “내가 그분을 뵈었는데 아직도 살아 있는가?” 하면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주님의 이름을 “당신은 ‘저를 돌보시는 하느님’이십니다.”라고 하였다.  
 
To the LORD who spoke to her she gave a name, saying, "You are the God of Vision"; she meant, "Have I really seen God and remained alive after my vision?"  
 
NAB 주석: 
The God of Vision: In Hebrew, el-roi; hence the name of the spring. Remained alive: for the ancient notion that a person died on seeing God, cf Genesis 32:31; Exodus 20:19; Deut 4:33; Judges 13:22.
 
(졸번역)
저를 보시는 하느님: 히브리어로, el-roi 이며, 그리고 따라서 우물(the spring)의 이름이다. 살아 있는: 어떤 자가 하느님을 뵙자마자 죽었다는 고대의 개념은, 창세기 32,31; 탈출기 20,19; 신명기 4,33; 판관기 13,22를 참조하라.
 
주석 성경 주석: 
"내가 그분을 뵈었는데" 에 대한 주석: 본문에는 본디 '보다' 동사의 목적어가 빠져 있다. 원래는 하느님의 이름이 들어 있었는데, 모세의 법에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 (탈출기 33,20)고 되어 있어, 후대에 와서 그 이름이 삭제되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게시자 주: 창세기 32,29에 의하면 야곱은 하느님을 밤중에 만났기에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가졌을 것이나 그러나 어두워서 "하느님의 얼굴"을 실제로 자신의 두 눈으로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가르가 만난 것은 하느님의 전령인 "주님의 천사"라고 창세기 16,7에서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하가르는, 하느님을 직접 뵈온 것이 아니라, 주님의 천사를 만나 그리하여 이 천사를 본 것을 두고서 "내가 그분을 뵈었는데 아직도 살아 있는가?" 라고 반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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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2,31
야곱은 “내가 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는데도 내 목숨을 건졌구나.” 하면서, 그곳의 이름을 프니엘이라 하였다. 
 
Jacob named the place Peniel, "Because I have seen God face to face," he said, "yet my life has been spared." 
 
NAB 주석: 
Peniel: a variant of the word Penuel (Genesis 32:32), the name of a town on the north bank of the Jabbok in Gilead (Judges 8:8-9, 17; 1 Kings 12:25). The name is explained as meaning "the face of God," peni-el. Yet my life has been spared: see note on Genesis 16:13.

(졸번역)
프니엘(Peniel): Penuel 단어의 변형이며(창세기 32,32), 길레아드(Gilead)에 있는 얍복(Jabbok)의 북쪽 언덕 위에 있는 성읍의 이름이다(판관 8,8-9.17; 1열왕 12,25). 이 이름은 "하느님의 얼굴," peni-el 을 뜻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내 목숨을 건졌구나: 창세기 16,13에 대한 주석을 보라.

주석 성경 주석: 
탈출 33,20-23에 따르면 인간이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죽음의 위험이 뒤따르는 일이지만, 여기서 야곱은 "얼굴을 맞대고" 하느님을 뵈었음에도, 하가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16,13-14),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게시자 주: 창세기 32,29에 의하면 야곱은 하느님을 밤중에 만났기에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는 가졌을 것이나 그러나 어두워서 "하느님의 얼굴"을 실제로 자신의 두 눈으로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하가르가 만난 것은 하느님의 전령인 "주님의 천사"라고 창세기 16,7에서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하가르는, 하느님을 직접 뵈온 것이 아니라, 주님의 천사를 만나 그리하여 이 천사를 본 것을 두고서 "내가 그분을 뵈었는데 아직도 살아 있는가?" 라고 반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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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기 19,2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려가서 백성에게, 주님을 보려고 밀려들다 많은 이들이 죽는 일이 없게 경고하여라. 
 
 
Then the LORD told Moses, "Go down and warn the people not to break through toward the LORD in order to see him; otherwise many of them will be struck down.
 
NAB: 주석 없음

주석 성경: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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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기 20,19
그들이 모세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당신이 말해 주십시오. 우리가 듣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랬다가는 우리가 죽습니다.” 

and said to Moses, "You speak to us, and we will listen; but let not God speak to us, or we shall die."
 
NAB: 주석 없음

주석 성경 주석: 
직역: "그분에 대한 경외가 너희의 얼굴 위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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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기 33,20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 
 
 
But my face you cannot see, for no man sees me and still lives.
 
NAB: 주석 없음

주석 성경: 주석 없음
 
게시자 주: 
탈출기 33,20 에서의 말씀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신 것이기에, 한 분이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추가 설명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그대로 믿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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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기 16,2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형 아론에게 일러, 휘장 안쪽의 성소, 곧 궤 위에 있는 속죄판 앞으로 아무 때나 들어왔다가 죽는 일이 없게 하여라. 내가 구름 속에서 속죄판 위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and said to him, "Tell your brother Aaron that he is not to come whenever he pleases into the sanctuary, inside the veil, in front of the propitiatory on the ark; otherwise, when I reveal myself in a cloud above the propitiatory, he will die.
 
NAB 주석: The sanctuary, inside the veil: the innermost part of the sanctuary, known also as "the holy of holies." Cf Exodus 26:33-34. Here the high priest was allowed to enter only once a year, on Yom Kippur, the Day of Atonement. In Hebrews 9:3-12 this ceremony is applied to Christ's single act of Redemption, whereby he won for us an everlasting atonement. Propitiatory: see note on Exodus 25:17.

(졸번역)
휘장 안쪽의 성소: 또한 "지성소(the holy of holies)"로서 알려져 있는, 성소의 가장 안쪽 부분을 말한다. 창세기 26,33-34를 참조하라. 여기로 대 사제는 욤 키푸르(Yom Kippur), 즉 속죄의 날에, 한 해에 단 한번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히브리서 9,3-12에서 이러한 경축은 그리스도에 의한 단 한번의 속량의 행위에 적용되는데, 그로써 당신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영원히 지속되는 속죄를 획득하셨다. 속죄판: 탈출기 25,17에 대한 주석을 보라. 
 
주석 성경: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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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4,33
불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소리를 듣고도 너희처럼 살아남은 백성이 있느냐?
 
Did a people ever hear the voice of God speaking from the midst of fire, as you did, and live?
 
NAB 주석: 없음

주석 성경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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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5,24
말하였다. ‘보십시오, 주 우리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영광과 위대함을 보여 주시고, 우리는 불 속에서 울려 나오는 그분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사람과 말씀하셨는데도 그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을 오늘 우리가 보았습니다. 

and said, 'The LORD, our God, has indeed let us see his glory and his majesty! We have heard his voice from the midst of the fire and have found out today that a man can still live after God has spoken with him.
 
NAB: 주석 없음

주석 성경: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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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관기 6,23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안심하여라.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죽지 않는다.” 하고 말씀하셨다.

The LORD answered him, "Be calm, do not fear. You shall not die."
 
NAB 주석: 없음

주석 성경 주석: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사람이 하느님을 보면 죽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13,22; 탈출 3,2-6; 레위 9,24; 1열왕 18,38; 1역대 21,26; 2역대 7,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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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서 6,5
나는 말하였다. “큰일났구나. 나는 이제 망했다. 나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이다. 입술이 더러운 백성 가운데 살면서 임금이신 만군의 주님을 내 눈으로 뵙다니!” 
Then I said, "Woe is me, I am doomed! For I am a man of unclean lips, living among a people of unclean lips; yet my eyes have seen the King, the LORD of hosts!"
 
NAB 주석: 
Doomed: it was popularly believed that to see God would lead to one's death; cf Genesis 32:31; Exodus 33:20; Judges 13:22.
 
(졸번역)
이제 망했다: 하느님을 뵙는 것이 죽음을 야기할 것임은 것은 널리 믿어졌는데, 창세기 32,21; 탈출기 33,20; 판관기 13,22를 참조하라.

주석 성경: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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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티모테오 6,16
홀로 불사불멸하시며 다가갈 수 없는 빛 속에 사시는 분 어떠한 인간도 뵌 일이 없고 뵐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그분께 영예와 영원한 권능이 있기를 빕니다. 아멘. 

who alone has immortality, who dwells in unapproachable light, and whom no human being has seen or can see. To him be honor and eternal power. Amen.
  
 
NAB: 주석 없음
 
주석 성경: 주석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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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묵시록 1,17
나는 그분을 뵙고, 죽은 사람처럼 그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께서 나에게 오른손을 얹고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When I caught sight of him, I fell down at his feet as though dead. 16 He touched me with his right hand and said, "Do not be afraid. I am the first and the last, 
 
NAB 주석: 
It was an Old Testament belief that for sinful human beings to see God was to die; cf Exodus 19:21; 33:20; Judges 6:22-23; Isaiah 6:5.
 
(졸번역)
죄가 있는 인간들이 하느님을 뵈오면 죽는다는 것은 구약 성경 믿음이었는데, 탈출기 19,21; 33,20; 판관기 6,22-23; 이사야서 6,5를 참조하라.

주석 성경 주석:
 
묵시 문학에서는, 어떤 초자연적 존재가 계시할 때에 그 환시를 보는 사람이 주로 두 가지 특징적인 반응을 보인다. 곧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끼는 것과 땅에 엎드려 경배의 몸짓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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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중간 결론 1

이상 비교/검토한 바로부터 우리는 다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탈출기 33,20: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모세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하신 말씀이었으며 그리하여
 
구약 성경의 시대에 산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있어 널리 믿어졌던 구약 성경 믿음이었습니다 (창세기 16,13; 32,33; 이사야 6,5 및 요한 묵시록 1,17에 대한 NAB 주석).
 
달리 말하여,
 
옛날 이스라엘에서는 사람이 하느님을 보면 죽게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판관기 6,23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따라서, 예를 들어, 바로 이러한 두려운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하느님을 직접 부르는 것도 금지되어 있었으며, 오로지 대 사제에 한하여, 일 년에 단 한 번, "속죄의 날"에, 예루살렘의 성전의 지성소(Holy of holies)에서, 하느님의 이름인 "YHWH(야훼)"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2)
 
그러나 위의 NAB 주석들 어디에도, 아래의 <<어떤 분의 답변에 대한 질문>>에서처럼, "어떤 분"이 주장한,
 
고대 중근동의 종교관에서는 신의 얼굴을 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여겼다  
 
는 해설이 없음을 또한 직접 함께 확인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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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질문 1: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탈출기 33,20에 기록된 이러한 하느님의 말씀을 왜 믿게 되었을까요?
 
 
질문 1에 대한 답변:
 
아래에 있는 다음(*****)은,
 
탈출기 제19장-34장 기록 중에서, 아브라함의 하느님(탈출기 3,6)께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모세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드러내심과 관련하여 어떤 말씀들을 하셨고, 또 어떤 현상들을 동반하셨는지를 발췌한 것입니다.
 
특히 주변의 다신교 잡신(gods)들과는 너무도 다르게,
 
아브라함의 하느님(God)께서 모세를 통하여 당신 자신을 드러내시어 이스라엘의 자손들과 계약(covenant)을 맺는 과정 전반을 직접 경험하였던 이스라엘의 자손들이었기에,
 
이들과 그리고 이들의 자손들은, 
 
탈출기 33,20에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을 수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어긴 벌로서, 즉 금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였던 벌로서,
 
(1) 삼천 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2) 그 이후 약 40년 동안 광야에서 죄 값을 치렀습니다. 즉, 두 명을 제외하고는, 한 분이신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하느님께 죄를 지은 자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모두 죽었습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그 이후의 유다인들이,
 
아브라함의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원한 신비의 중심인, 당신의 거룩함(Holiness), 즉 당신의 성성(Sanctity, 聖性)으로부터 드러내어지는 바, 즉, "하느님의 영광"과의 마주 봄에 대하여, 직접 하신 말씀,
 
탈출기 33,20에 있는 바로 그 말씀을 어떻게 믿지 않을 수가 있었겠는지요?
 
 
달리 말하여,
 
바로 이 아브라함의 하느님께서, 예를 들어, 40여넌 동안의 광야에서의 생활에서, 만나와 메추라기 기적, 쓴 물을 단 물로 바꾸는 기적, 마싸와 므라바의 물 기적 등을 경험하게 하면서,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셨기에,
 
 
(이 글의 결론) 
 
유일 신(신명기 6,4)이신 아브라함의 하느님을 떠나서는 광야에서 생존할 수 없다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절박함 속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자손들에게 말씀하셨던, 유일하신 하느님의 영광(glory)을 경험하게 되는 당시의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바로 이 하느님의 영광(glory)을 묘사할 때에 사용한 표현이, 또한 하느님꼐서 모세를 통하여 가르쳐 주신 탈출기 33,20에 있는 말씀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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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드린 이 요약에 있어 추가적으로 참고한 자료들은 다음에 있습니다:
 
3-3-1. 위의 제1항에서의 확인. 
 
3-3-2. 
탈출기 33,18: 모세가 아뢰었다.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범위 안에서 되도록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고자 하는 모세의 이 요청에 성경 본문은 세 가지 대답을 나란히 열거한다. 성경 저자는 이 문제를 단순화시켜 한 가지 대답반 제시할 권한이 없다고 느낀 것 같다. 인간은 하느님의 "영광" (곧, 그분의 내적 실체)이 아니라, 그분의 선과 은혜와 애정의 결과들만을 인식할 수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이 결과들은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시는 분에게서 온다(제19절). 두 번째로, 인간이 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하느님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분이시라는 사실이다(제20절). 끝으로, 인간은 하느님을 '등 뒤만' 곧 그분께서 지나가신 다음에야 볼 수 있다(제21-23절). 역사와 창조 속에서 그분 영광의 결과들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분의 '얼굴'을, 곧 그분을 앞쪽에서는 볼 수 없다. 그것은 참으로 자유로우신 그분의 행동을 인간이 예견하고 그분께 어떤 계획을 부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3-3.
또한 다음의 "주석 성경"의 주석들을 참고하면서, 신명기 제4장 전체를 읽고 묵상하도록 하십시오:
 
신명기 4,7에 대한 주석 성경 주석:
신명기는, 주님과 그분의 말씀이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 가까이(30,14 참조), 그리고 그 백성 가운데에 계시다는 사실을 누누이 강조한다(6,15; 7,21).
 
신명기 4,9에 대한 주석 성경 주석: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기들이 주님을(6,12; 8,11.14.`9; 26,13; 32,38), 그리고 호렙과(4,9.23) 광야에서 일어난 사건을(9,7) '잊지 말라'고 강조한다. 또 자기들의 주님(8,18), 그리고 이집트에서 한 종살이와(5,15; 7,18-19; 15,15; 16,3; 24,18) 광야에서 겪은 많은 체험을(8,2; 9.7; 24,9; 25,17, 그리고 32,7 참조) '기억하라'고 강조한다. 이 두 가지 유사한 주제로써 신명기의 가르침이 의도하는 바는, 시간적으로 큰 간격이 있는 후대의 세대에게 옛 사건들을 기억시키려는 것 만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이집트 탈출 때부터 결정적으로 행하신 일들이 언제나 현실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음을 백성에게 일깨워 주려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역사의 중요한 시기마다 일어난 이 사건들을 자기들의 생활 안에서 늘 간직하고 기억하며, 삶의 규범으로 삼아야 한다.
 
신명기 4,10에 대한 주석 성경 주석:
'경외하다' 라는 말은 주님의 위대함 앞에서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공경, 순종, 사랑, 경건, 하느님을 섬기는 행위 등을 뜻한다.
 
신명기 4,19에 대한 주석 성경 주석:
천체를 숭배하는 행위는 이스라일인들에게 언제나 엄격히 금지되었다(17,3; 2열왕 17,16; 23,4; 예레 8,2; 에제 8,16 참조). 그러나 다른 민족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에게는 이 법이 해당되지 않는다. 이렇게 신명기는 이민족 종교들의 실체를 인정한다(29,25; 32,8 각주 참조). 그러나 훨씬 후대에 가서는 모든 사람이 참되신 하느님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천체 숭배자들을 단죄하게 된다(지혜 13,1-9 참조).
 
신명기 4,31에 대한 주석 성경 주석:
신명기에서, 주님은 "조상들", 곧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이시다(1,21 참조).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이 조상들에게 약속하였고(1,8.35; 6,10; 8,1; 10,11; 26,3), 이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해방시키신 것이다(4,37; 7,8). 주님께서는 조상들에게 마음을 쏟으시고(10,15), 그들과 계약을 맺으셨다(7,12). 이 계약은 그들의 후손들에게도 유효하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와 새로 맺어진다(10,15).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신명기는 이집트 탈출 때의 세대가 지니는 특권을 강조한다(11,2 참조).
 
 
3-3-4.
 
여기를 클릭하면, <----- 필독을 권유합니다.
 
신명기 4,33이 포함되어 있는, 나해 삼위일체 대축일 제1독서(신명기 4,32-34.39-40)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해설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은 제가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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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자주 나타나는(4,39; 6,4; 32,39; 등을 참조하라), "주님께서 하느님["ha-Elohim", 즉 유일한 하느님]이시고, 그분 말고는 다른 하느님이 없음"(신명기 4,35) 이라는 신명기의 신앙 고백문(formula)은 또한 예언자들의 메시지의 핵심입니다(예레미야 2,11-33; 이사야 제41장; 32,39 등을 참조하라). 예언자들은 당신 자신을 조상들에게 그리고 모세에게 드러내셨던 한 분이시며 유일하신 하느님께로 이스라엘을 이끌기 위하여 그리고 이스라엘을 이 하느님에 대한 충실함 안에서 유지하도록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며, 그리고 일신론(monotheism)에 대한, 야훼의 힘의 보편성에 대한, 당신의 윤리적 요구(moral demands)들 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발전시키고 깊어지게 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 모두의 핵심은 신명기에서, 깊게 그리고 매우 특별하게,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당신의 신봉자(adherents)들이 전적으로 당신께 순명할 것을 요구하시는, "시기하는 하느님(a jealous God)"(*) 으로서의 하느님에 대한 개념(탈출기 20,5)을 점진적으로 확립하며(builds up), 그리고 이 개념은 다른 백성들에 의하여 흠숭하게 되는(adored) 잡신들(the divinities)을 경배하는 것과 양립할 수 없는(incompatible with) 한 개의 개념입니다(탈출기 20,3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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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그 어원들부터가 다른, 신학적 의미를 가진 번역 용어들인 "사랑(love)의 
결과인 시기(jealousy)"와 "원죄(original sin)의 결과인 질투(envy)"의 신학적 차이점에 
대한 글들은 다음에 있으니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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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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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5.
 그리고 비록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자손들, 즉 유다인들에게처럼,  비 유다인들에게 유일 신으로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셨던 것은 아니었지만, 즉 비 유다인들에게도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셨으나, 그러나 그 방식에 있어 확연히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 차이점에 대하여서는
 
 
읽고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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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자 주: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발췌한 성경 본문의 일부를 굵게 쓰고 또 색칠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음(*****)
 
(탈출기에서 발췌 시작)
 
[제19장]
 
[시나이 산에 도착하다]
 
[계약 체결을 약속하시다]
 
[계약 체결을 준비하다]
9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짙은 구름 속에서 너에게 다가가겠다. 그러면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이 듣고 너를 언제까지나 믿게 될 것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주님께 그대로 전해 드리자,
10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에게 가거라.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아
11 셋째 날을 준비하게 하여라. 바로 이 셋째 날에 온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이 시나이 산에 내릴 것이다.
12 그리고 백성에게 경계를 두루 정하여 주고 이렇게 일러라. ‘산에 오르지도 말고 산자락을 건드리지도 마라. 산을 건드리는 자는 누구든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13 그런 자는 아무도 손을 대지 말고, 돌이나 활에 맞아 죽게 해야 한다. 짐승이든 사람이든 아무도 살아남지 못한다. 숫양 뿔 나팔 소리가 길게 울리거든, 백성을 산으로 올라오게 하여라.”
14 모세는 산에서 백성에게 내려왔다. 그는 백성을 성결하게 하고, 그들은 자기들의 옷을 빨았다.
15 그는 백성에게, “셋째 날을 준비하고 여자를 가까이하지 마라.” 하고 말하였다.
 
[하느님께서 시나이 산에 나타나시다]
16 셋째 날 아침, 우렛소리와 함께 번개가 치고 짙은 구름이 산을 덮은 가운데 뿔 나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자, 진영에 있던 백성이 모두 떨었다.
17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모세가 백성을 진영에서 데리고 나오자 그들은 산기슭에 섰다.
18 그때 시나이 산은 온통 연기가 자욱하였다. 주님께서 불 속에서 그 위로 내려오셨기 때문이다. 마치 가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연기가 솟아오르며 산 전체가 심하게 뒤흔들렸다.
19 뿔 나팔 소리가 점점 크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모세가 말씀을 아뢰자, 하느님께서 우렛소리로 대답하셨다.
20 주님께서는 시나이 산 위로, 그 산봉우리로 내려오셨다. 그런 다음 주님께서 모세를 그 산봉우리로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갔다.
2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려가서 백성에게, 주님을 보려고 밀려들다 많은 이들이 죽는 일이 없게 경고하여라.
22 주님에게 가까이 오는 사제들도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님이 그들을 내려칠 것이다.
23 모세가 주님께 대답하였다. “‘산에 경계를 정하여 그곳을 성별하여라.’ 하고 주님께서 저희에게 경고하셨기 때문에, 백성은 시나이 산으로 올라올 수 없습니다.”
24 그러자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려가서 아론과 함께 올라오너라. 그러나 사제들이나 백성이 주님에게 올라오려고 밀려들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주님이 그들을 내려칠 것이다.”
25 모세는 백성에게 내려가 말하였다.
 
 
[제20장]
 
[십계명]
 
[백성이 모세의 중개를 요청하다]
18 온 백성은 우렛소리와 불길과 뿔 나팔 소리와 연기에 싸인 산을 보고 있었다. 백성은 그것을 보고 떨면서 멀찍이 서 있었다.
19 그들이 모세에게 말하였다. “우리에게는 당신이 말해 주십시오. 우리가 듣겠습니다.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그랬다가는 우리가 죽습니다.
20 그러자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들 마라.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시험하시려고, 그리고 너희가 그분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녀 죄짓지 않게 하시려고 오신 것이다.”
21 백성은 멀찍이 서 있었고, 모세는 하느님께서 계시는 먹구름 쪽으로 가까이 갔다.
 
(주: 중간 부분 생략)
 
[제24장]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다]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원로 일흔 명을 데리고 주님에게 올라와, 멀찍이 서서 경배하여라.
2 너 모세만 주님에게 가까이 오고 다른 이들은 가까이 와서는 안 된다. 백성은 아예 산으로 올라와서는 안 된다.”
3 모세가 백성에게 와서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일러 주었다. 그러자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모세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기념 기둥 열둘을 세웠다.
5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몇몇 젊은이들을 그리로 보내어, 번제물을 올리고 소를 잡아 주님께 친교 제물을 바치게 하였다.
6 모세는 그 피의 절반을 가져다 여러 대접에 담아 놓고, 나머지 절반은 제단에 뿌렸다.
7 그러고 나서 계약의 책을 들고 그것을 읽어 백성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8 모세는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9 모세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의 원로 일흔 명과 함께 올라갔다.
10 그들은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뵈었다. 그분의 발밑에는 청옥으로 된 바닥 같은 것이 있었는데, 맑기가 꼭 하늘 같았다.
11 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령들에게 손을 대지 않으셨으므로, 그들은 하느님을 뵙고서 먹고 마셨다.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사십 일을 지내다]
12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가 있는 이 산으로 올라와 거기 머물러라. 내가 백성을 가르치려고 율법과 계명을 기록한 돌 판을 너에게 주겠다.”
13 모세는 일어나 자기 시종 여호수아를 데리고 하느님의 산으로 올라가면서,
14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우리가 너희에게 돌아올 때까지 여기에서 우리를 기다려라. 아론과 후르가 너희와 함께 있으니, 문제가 있는 이는 그들에게 가거라.”
15 모세가 산에 오르자 구름이 산을 덮었다.
16 주님의 영광이 시나이 산에 자리 잡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덮었다. 이렛날 주님께서 구름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셨다.
17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모습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기에 산봉우리에서 타오르는 불과 같았다.
18 모세는 구름을 뚫고 산에 올라갔다. 모세는 밤낮으로 사십 일을 그 산에서 지냈다.
 
(주: 중간 생략)
 
[제32장]
 
[금송아지]

1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오래도록 내려오지 않는 것을 보고, 아론에게 몰려와 말하였다. “일어나, 앞장서서 우리를 이끄실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저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2 아론이 그들에게 “여러분의 아내와 아들딸들의 귀에 걸린 금 고리들을 빼서 나에게 가져오시오.” 하자,
3 온 백성이 저희 귀에 걸린 금 고리들을 빼서 아론에게 가져왔다.
4 아론이 그 금을 그들 손에서 받아 거푸집에 부어 수송아지 상을 만들자, 사람들이 외쳤다.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5 아론은 이것을 보고 그 신상 앞에 제단을 쌓은 뒤, “내일은 주님을 위한 축제를 벌입시다.” 하고 선포하였다.
6 이튿날 그들은 일찍 일어나, 번제물을 올리고 친교 제물을 바쳤다. 그러고 나서 백성들은 앉아서 먹고 마시다가 일어나 흥청거리며 놀았다.
 
[하느님의 진노와 모세의 간청]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모세가 증언판을 깨뜨리다]
15 모세는 두 증언판을 손에 들고 돌아서서 산을 내려왔다. 그 판들은 양면에, 곧 앞뒤로 글이 쓰여 있었다.
16 그 판은 하느님께서 손수 만드신 것이며, 그 글씨는 하느님께서 손수 그 판에 새기신 것이었다.
17 여호수아가 백성이 떠드는 소리를 듣고, “진영에서 전투 소리가 들립니다.” 하고 모세에게 말하였다.
18 그러자 모세가 말하였다. “승리의 노랫소리도 아니고 패전의 노랫소리도 아니다. 내가 듣기에는 그냥 노랫소리일 뿐이다.”
19 모세는 진영에 가까이 와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과 수송아지를 보자 화가 나서, 손에 들었던 돌 판들을 산 밑에 내던져 깨 버렸다.
20 그는 그들이 만든 수송아지를 가져다 불에 태우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아 물에 뿌리고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 하였다.
21 모세가 아론에게 말하였다. “이 백성이 형님에게 어떻게 하였기에, 그들에게 이렇게 큰 죄악을 끌어들였습니까?”
22 아론이 대답하였다. “나리, 화내지 마십시오. 이 백성이 악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아시지 않습니까?
23 그들이 나에게 ‘앞장서서 우리를 이끄실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리고 올라온 저 모세라는 사람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기에,
24 내가 그들에게 ‘금붙이를 가진 사람은 그것을 빼서 내시오.’ 하였더니, 그들이 그것을 나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그것을 불에 던졌더니 이 수송아지가 나온 것입니다.”
 
[레위인들의 열성]
25 모세는 백성이 제멋대로 하는 것을 보았다. 아론이 그들을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 두어, 적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던 것이다.
26 모세가 진영 대문에 서서, “누구든지 주님의 편이거든 나에게로 오너라.” 하고 외치자, 레위의 자손들이 모두 그에게 모여들었다.
27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각자 허리에 칼을 차고, 진영의 이 대문에서 저 대문으로 오가면서, 저마다 자기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죽여라.’”
28 레위의 자손들은 모세가 분부한 그대로 하였다. 그날 백성 가운데에서 삼천 명가량이나 쓰러졌다.
29 모세가 말하였다. “오늘 너희는 저마다 자기 아들이나 형제에 대한 대가로 주님을 위한 직무를 맡았다. 그분께서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기를 빈다.”
 
[모세가 다시 하느님께 빌다]
30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큰 죄를 지었다. 행여 너희의 죄를 갚을 수 있는지, 이제 내가 주님께 올라가 보겠다.”
31 모세가 주님께 돌아가서 아뢰었다. “아, 이 백성이 큰 죄를 지었습니다. 자신들을 위하여 금으로 신을 만들었습니다.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
33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나에게 죄지은 자만 내 책에서 지운다.
34 이제 너는 가서 내가 너에게 일러 준 곳으로 백성을 이끌어라. 보아라, 내 천사가 네 앞에 서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내 징벌의 날에 나는 그들의 죄를 징벌하겠다.”
35 그 뒤 주님께서는 백성이 수송아지를 만든 일 때문에, 곧 아론이 만든 수송아지 때문에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셨다.
 
[제33장]
 
[이스라엘 백성에게 출발을 명령하시다]
1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이 백성과 함께 이곳을 떠나,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네 후손들에게 이것을 주겠다.’ 하며 맹세한 땅으로 올라가거라.
2 나는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가나안족, 아모리족, 히타이트족, 프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을 몰아내겠다.
3 너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올라가거라.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겠다. 너희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므로, 도중에 내가 너희를 없애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4 백성은 이렇듯 참담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패물을 몸에 다는 사람이 없었다.
5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내가 한순간이라도 너희와 함께 올라가다가는, 너희를 없애 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 이제 너희는 패물을 몸에서 떼어 내어라. 그러면 내가 너희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겠다.’”
6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은 호렙 산에서부터 패물을 벗어 버렸다.
 
[만남의 천막]
7 모세는 천막을 챙겨 진영 밖으로 나가 진영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그것을 치곤 하였다. 모세는 그것을 만남의 천막이라 불렀다. 
(중간 생략) 
9 모세가 천막으로 들어가면, 구름 기둥이 내려와 천막 어귀에 머무르고, 주님께서 모세와 말씀을 나누셨다.
10 구름 기둥이 천막 어귀에 머무르는 것을 보면, 온 백성은 일어나 저마다 자기 천막 어귀에서 경배하였다.
11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였다. 모세가 진영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의 젊은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천막 안을 떠나지 않았다.
 
[모세의 기도와 하느님의 응답]
12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보십시오, 당신께서는 저에게 ‘이 백성을 데리고 올라가거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저와 함께 누구를 보내실지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께서는 ‘나는 너를 이름까지도 잘 알뿐더러, 너는 내 눈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13 그러니 이제 제가 당신 눈에 든다면, 저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신을 알고, 더욱 당신 눈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민족이 당신 백성이라는 것도 생각해 주십시오.”
14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몸소 함께 가면서 너에게 안식을 베풀겠다.”
15 모세가 주님께 아뢰었다. “당신께서 몸소 함께 가시지 않으려거든, 저희도 이곳을 떠나 올라가지 않게 해 주십시오.
16 이제 저와 당신 백성이 당신 눈에 들었는지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야만 저와 당신 백성이 땅 위에 있는 다른 모든 주민과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까?”
1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청한 이 일도 내가 해 주겠다. 네가 내 눈에 들고, 나는 너를 이름까지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얼굴을 볼 수는 없다]
18 모세가 아뢰었다. “당신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
19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는 나의 모든 선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네 앞에서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겠다.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이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을 베풀려는 이에게 동정을베푼다.”
20 그리고 다시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얼굴을 보지는 못한다. 나를 본 사람은 아무도 살 수 없다.”
21 주님께서 말씀을 계속하셨다. “여기 내 곁에 자리가 있으니, 너는 이 바위에 서 있어라.
22 내 영광이 지나가는 동안 내가 너를 이 바위 굴에 넣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너를 내 손바닥으로 덮어 주겠다.
23 그런 다음 내 손바닥을 거두면, 네가 내 등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얼굴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제34장]
 
[모세가 새 증언판을 받으러 시나이 산으로 올라가다]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처음 것과 같은 돌 판 두 개를 깎아라. 그러면 네가 깨뜨려 버린 그 처음 돌 판에 새겨져 있던 말을 내가 새 돌 판에 다시 써 주겠다.
2 내일 아침까지 준비하고 있다가, 아침이 되면 시나이 산으로 올라와, 이 산꼭대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서 있어라.
3 아무도 너와 함께 올라와서는 안 된다. 이 산 어디에도 사람이 보여서는 안 되고, 양과 소가 이 산을 마주하고 풀을 뜯게 해서도 안 된다.
4 모세는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대로 처음 것과 같은 돌 판 두 개를 깎고,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그 돌 판 두 개를 손에 들고 시나이 산으로 올라갔다.
 
[하느님께서 나타나시다]
5 그때 주님께서 구름에 싸여 내려오셔서 모세와 함께 그곳에 서시어, ‘야훼’라는 이름을 선포하셨다.
6 주님께서는 모세 앞을 지나가며 선포하셨다. “주님은, 주님은 자비하고 너그러운 하느님이다.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며
7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한다. 그러나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않고 조상들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 대 사 대까지 벌한다.”
8 모세는 얼른 땅에 무릎을 꿇어 경배하며
9 아뢰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계약을 맺다]
10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내가 계약을 맺는다. 나는 세상 어느 곳에서도, 어떤 민족에게서도 일어난 적이 없는 기적들을 너의 온 백성 앞에서 일으키겠다. 너를 둘러싼 온 백성이 주님의 일을 보게 될 것이다. 내가 너와 함께 할 이 일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다.
11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잘 지켜라. 이제 내가 너희 앞에서 아모리족, 가나안족, 히타이트족, 프리즈족, 히위족, 여부스족을 몰아내겠다.
12 너희가 들어가는 땅의 주민들과 계약을 맺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것이 너희에게 올가미가 될 것이다.
13 그러니 너희는 그들의 제단들을 헐고 그들의 기념 기둥들을 부수고 그들의 아세라 목상들을 잘라 버려야 한다.
14 너희는 다른 신에게 경배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이름은 ‘질투하는 이’, 그는 질투하는 하느님이다.
15 너희는 그 땅의 주민들과 계약을 맺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저희 신들을 따르며 불륜을 저지르고 저희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면서 너희를 부르면, 너희는 그들의 제물을 먹게 될 것이다.
16 또한 너희가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에게 아내로 얻어 주어, 저희 신들을 따르며 불륜을 저지르는 그 여자들이 너희 아들들도 그 신들을 따르며 불륜을 저지르게 만들 것이다.
17 너희는 신상들을 부어 만들어서는 안 된다.
18 너희는 무교절을 지켜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아빕 달 정해진 때에 이레 동안 누룩 없는 빵을 먹어야 한다. 너희가 아빕 달에 이집트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19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큰 가축이건 작은 가축이건 너희 집짐승 가운데 태를 맨 먼저 열고 나온 수컷은 모두 나의 것이다.
20 그러나 나귀의 첫 새끼는 양으로 대속해야 한다. 대속하지 않으려면 그 목을 꺾어야 한다. 너희 자식들 가운데에서 맏아들은 모두 대속해야 한다. 아무도 빈손으로 내 앞에 나와서는 안 된다.
21 너희는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렛날에는 쉬어야 한다. 밭갈이하는 철에도 거둠질하는 철에도 쉬어야 한다.
22 너희는 밀의 맏물을 거두어들일 때 주간절을, 해가 바뀔 때 추수절을 지켜야 한다.
23 남자들은 모두 일 년에 세 번 주 하느님, 곧 이스라엘 하느님 앞에 나와야 한다.
24 나는 민족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너희 영토를 넓혀 주며, 너희가 한 해에 세 번 주 너희 하느님 앞에 나오려고 올라올 때 아무도 너희 땅을 탐내지 않게 하겠다.
25 너희는 나를 위한 희생 제물의 피를 누룩 든 빵과 함께 바쳐서는 안 된다. 파스카 제물을 이튿날 아침까지 남겨 두어서는 안 된다.
26 너희 땅에서 난 맏물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주 너희 하느님 집으로 가져와야 한다. 너희는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에 삶아서는 안 된다.”
27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 말을 기록하여라. 나는 이 말을 조건으로 너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었다.
28 모세는 그곳에서 주님과 함께 밤낮으로 사십 일을 지내면서, 빵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았다. 그는 계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판에 기록하였다.
 
[모세가 빛나는 얼굴로 시나이 산에서 내려오다]
29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내려왔다. 산에서 내려올 때 모세의 손에는 증언판 두 개가 들려 있었다. 모세는 주님과 함께 말씀을 나누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게 되었으나, 그것을 알지 못하였다.
30 아론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모세를 보니, 그 얼굴의 살갗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에게 가까이 가기를 두려워하였다.
31 모세가 그들을 불렀다. 아론과 공동체의 모든 수장들이 그에게 나아오자, 모세가 그들에게 이야기하였다.
32 그런 다음에야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그에게 가까이 왔다. 모세는 주님께서 시나이 산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그들에게 명령하였다.
33 모세는 그들과 이야기를 다 하고 자기 얼굴을 너울로 가렸다.
34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그분 앞으로 들어갈 때는 너울을 벗고, 나올 때까지 쓰지 않았다. 나와서는, 주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였다.
35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얼굴의 살갗이 빛나는 것을 보게 되므로, 모세는 주님과 함께 이야기하러 들어갈 때까지는, 자기 얼굴을 다시 너울로 가리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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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순태 마태오 교수
작업에 소요된 시간: (부록을 포함하여) 약6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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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분의 답변에 대한 질문 >>
 
 
1. 다음은, "어떤 분"의 답변이 불충분하기에, 그리고 더 나아가 부적절한 면도 있기에, 답변을 주신 "어떤 분"께 드렸던 요청과 이 요청에 대한 "어떤 분"의 답변입니다. 그리고 바쁘신 분들께서는 읽지 않으셔도 무방합니다.
 
 
위의 질문들에 대한 "어떤 분"의 애초 답변:
 
[(2011/04/26) : 고대 중근동의 종교관에서는 신의 얼굴을 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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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떤 분" 답변자에게 드리는 요청 사항:
 
[고대 중근동의 종교관에서는 신의 얼굴을 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 다른 분들도 형제님처럼 많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이 주장의 구체적인 출처를 제시해 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아니면, 형제님의 고유의 주장인지요?
 
[(2011/04/27) : 성경공부를 하면 다 나오는 내용입니다. 초등생에게 대학교재 출처를 알려줘 봐야 무슨 쓸모가 있겠습니까? 더 자라기를 기다릴 뿐이지요. 성경입문서 무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제발 부탁드리건대, 공부 좀 하십시오. 그럼 이런 쓸데없는 질문 절대 안 나옵니다. 무식하면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거지요.] [일단 복음서에 대한 내 주장의 출처는 하나 올려드렸습니다. 이것에 대한 출처도 정말 원하십니까? 그럼 정중히 부탁하십시오. 알려드리겠습니다.]   <----- 교우님들께 유익하도록, 가톨릭 교회의 출판 검열을 득한 자료을 올리도록 하십시오.
 
[ Il y a un tel abîme entre la sainteté de Dieu et l'indignité de l'homme, voir Lv 17+, que l'homme devrait mouri de voir Dieu, Ex 19 21; Lv 16 2... 예루살렘 바이블 불어판의 해당 구절 주석의 일부입니다.]  <----- 그것참... 여기에 "고대 중근동"이란 표현이 어디에 있는지요???
 
[(2011/04/26) : 고대 중근동의 종교관에서는 신의 얼굴을 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 아직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신 모양인데, 어느 자료에서 "고대 중근동의 종교관" 이라는 표현을 하면서 그런 해설을 하는지, 그 출처를 밝혀 달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구약 성경의 본문 중에는 "산 자가 하느님 뵈오면 그 즉시 죽는다"는 내용의 표현이 여러 번 있는 것을 누가 모릅니까?
 
[(2011/04/28) : 그것참... 여기에 "고대 중근동"이란 표현이 어디에 있는지요??? (소순태) ->그러니 공부하라는 겁니다. 입에 대 주는 먹이만 받아먹으려니 이따위 소리나 하고 앉았지... NAB도 좀 찾고 관련 구절도 좀 찾으라니까요...]  <----- 그것 참... 가만히 보니, NAB 어느 절의 주석에 "고대 중근동의 종교관"이란 표현이 있는지 없는지도 자신이 모른다는 소리를 그렇게 둘러 대는군요...
 
[초등생도 그만큼 얘기하면 알아들어요. 주석도 찾아보고... 그러란 말입니다. 창세기와 탈출기 배경이 도대체 언제 어딘 줄 알고 자꾸 흰소릴 하십니까요...]  <----- 자신이 한 말에 대한 출처를 이제 스스로 만들어 내고자 하는 겁니까? 부디 NAB 주석 중에 "고대 중근동의 종교관"이라는 언급과 함께 이러한 주석이 있으면 찾아 주십시오 -----> [ㅁㄱㅈ (frigo) (2011/04/26) : 고대 중근동의 종교관에서는 신의 얼굴을 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그럼 창세기 탈출기 얘기하면서 대한민국이나 아메리카 합중국 얘길 꺼냅니까? 도대체 뭣 하는 분이세요? 글마다에 적은 그 직업이 맞긴 합니까?]   <----- 어이구... 질문의 요지도 여태 못 알아들은 것이 이런 소리하면 어디로 사라집니까?
 
[Remained alive: for the ancient notion that a person died on seeing God => 이건 유럽 얘길까요, 대한민국 얘길까요? 21세기 얘길까요, 구석기시대 얘길까요? 중학 2년생이면 잘 알 겁니다.] [ [고대 중근동의 종교관에서는 신의 얼굴을 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여겼다고 합니다.][Remained alive: for the ancient notion that a person died on seeing God]라는 두 문장에서 단 한가지라도 오류가 착오가 있다고 얘기하는 사제, 교수, 중동학자, 신학자, 대학생, 중고생 어느 하나라도 데리고 오세요. 그럼 소순태씨가 제정신이라고 인정해 드리지요. 교수임도 인정해 드리지요. 신자임도 인정해 드리지요. 그러지 못하면 이 세가지 중 어느 하나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대신 그 사제, 교수, 중동학자, 신학자, 대학생, 중고생은 제정신이어야 합니다. 님이랑은 달라야지요, 당근. ]  <----- 지금,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퇴화하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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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4/26) : 고대 중근동의 종교관에서는 신의 얼굴을 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는다고 여겼다고 합니다.]  <----- 다른 분들도 형제님처럼 많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이 주장의 구체적인 출처를 제시해 주시면 더 좋겠습니다. 아니면, 형제님의 고유의 주장인지요?
 
[the ancient notion that a person died on seeing God : 소순태씨, 번역해 보세요. 댁이 좋아하는 NAB에서 한 글자도 안 빼고 복사해 온 것이니 내가 작문했네 따위의 말은 꺼내지도 말고 말입니다.]  <----- 아 그랬군요... 이 영어 문장에 있는 "the ancient notion" 이라는 표현을 "고대의 중근동의 종교관"으로 번역한 것은 형제님의 몫이었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직역 번역을 하지 않으셨는지요? 그리고,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을 하더라도 뭘 좀 제대로 알고 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하긴, 3년 전에도 "the first cousin" = "사촌" 임도 모르는 분이셨지..  ----->  [(2008/03/05) : 이 부분은 소순태님이 영문 번역을 잘못하신 것 아닌가요?Mary and Joseph were therefore first cousins, <마리아와 요셉은 '처음엔' 사촌이었다>라고 했지 같은 어머니 소생이란 말은 없습니다.]
 
[(2011/04/28) : 아 그랬군요.. 이 영어 문장에 있는 "the ancient notion" 이라는 표현을 "고대의 중근동의 종교관"으로 번역한 것은 형제님의 몫이었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직역 번역을 하지 않으셨는지요? 그리고,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을 하더라도 뭘 좀 제대로 알고 하여야 하지 않을까요?(소순태)=> 아직도 헛발질... 나는 이 문장을 읽기 이전부터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오. 댁이야 금시초문이었겠지만 말이오. 하도 그 근거를 찾아달라길래 해당 부분을 찾아가 그 문장을 가져온 것을 내가 '의역번역'을 했다고? 직역번역? 웃기지 좀 마시오.]
 
[ (2011/04/28) : 나는 이 문장을 읽기 이전부터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오.]   <----- 아 그러셨군요... 그렇다면, 본인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그 '내용'의 출처/근거를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이것은 본인이 알고 있었다 것의 근거가 아니라고 하니 재차 여쭙니다 -----> [하도 그 근거를 찾아달라길래 해당 부분을 찾아가 그 문장을 가져온 것을 ...]
 
[이런, 또 헛발질... 그 '내용'이란 컨텐츠를 말하는 것이지 '해당 문장'을 말하는 게 아니지요. 역시 댁은 글읽기에 문제가 많아요. 근거를 달라니 '하느님을 만나고 죽지 않은 사건'을 찾아 그 주석을 확인했다는 뜻이외다. 제발 정신줄 좀 놓지 마세요. 어쩌면 그렇게 하나하나 빼먹지 않고 오독을 한답니까... 매번 이러지 않은 적이 없어요. 참, 그 영문이 어느 구절의 주석인지는 찾아봤습니까?]  <----- 구차한 변명의 달인!
 
[참, 그 영문이 어느 구절의 주석인지는 찾아봤습니까? 성경공부의 기본이 관련 구절 찾아보기인데...]  <----- 자신이 할 일을 왜 남에게 요구합니까? 자칭 도사님!
 
[참, 그 영문이 어느 구절의 주석인지는 찾아봤습니까? 성경공부의 기본이 관련 구절 찾아보기인데...]  <----- 자신이 할 일을 왜 남에게 요구합니까? 자칭 도사님! 아마도 본인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그 '내용'의 출처/근거를 밝히는 데에 시간이 많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상대방으로부터 무언가을 얻어내어 자신의 것으로 도색하려고 이런 소리를 하는 것으로 다들 생각할 것입니다. 당연히 본인이야 딱 잡아 떼겠지만...
 
[부탁하면 당장이라도 알려줄 수 있어요. 비열하고도 못된 거짓말만 하는 소순태씨... ] <----- 부탁??? 벌써 몇 번을 말씀드렸는데도 이런 소립니까???
 
[NAB에 있다니깐두루... 창세기 16장 13절에 대한 주석 내용을 보세요. 이제 좀 의문이 풀리셨나요, 소순태씨? 또 그 문장에 '중근동'이 없다고 다른 출처를 내놓으라고 하실 건가요?]  <----- 이것이 제시할 수 있는 출처 전부입니까?
 
[the ancient notion that a person died on seeing God : 소순태씨, 번역해 보세요. 댁이 좋아하는 NAB에서 한 글자도 안 빼고 복사해 온 것이니 내가 작문했네 따위의 말은 꺼내지도 말고 말입니다.]    <----- 아 그랬군요... 이 영어 문장에 있는 "the ancient notion" 이라는 표현을 "고대의 중근동의 종교관"으로 번역한 것은 형제님의 몫이었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왜 직역 번역을 하지 않으셨는지요? 그리고, 의역 번역(free translation)을 하더라도 뭘 좀 제대로 알고 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2011/04/29) : 이것이 제시할 수 있는 출처 전부입니까?(소순태) =>나랑 같이 도서관에 가보실래요?]  <----- 도서관을 다녀오는 것을 누가 말리나요? 여태까지 본인이 주장한 바에 대한 출처/근거를 제시하지 않았으니, 도서관을 다녀오든 말든, 자신이 주장한 근거/출처를 제시해 주시면 됩니다. 애초에 요청한 것이 이것 뿐이었습니다.
 
이제 나흘 째가 되었습니다만, 지금까지도 자신의 그러한 주장에 대한 출처/근거 제시를 하지 못하고, 계속 엉뚱한 소리 혹은 둘러대는 변명만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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