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성당 자유 게시판

내가 믿고 있는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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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익 [stdaniel7] 쪽지 캡슐

2000-03-13 ㅣ No.942

삶을 살아가며 우리가 이 지상에 남길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나의 삶의 흔적을 굳이 남길 이유는 무엇인가? 죽음은 산자가 풀어야 할 영원한 과제가 아니었던가? 인생은 누구에게나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수많은 바르게 구성된점들이 모여 일직선을 이루어낸다. 삶은 바로 이러한 온전한 일직선을 그어내는 작업이다. 점 하나하나가 어떠한 모습으로 줄지어져 있는가에 따라 그 것은 직선이 될 수도있고, 이상한 삼각형도 될수가 있다. 인생은 자기가 연출해내는 영화인것이다. 현실세계에서의 영화는 잘못 찍은 부분은 가위질하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들어가는 인생이라는 큰 단위에서의 영화는 결코 가위질 할수 없는 것이다. 삶을 회고하면 우리는 나무나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살아왔지 않는가!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자신이 감독하는 영화의 완결을 위하여 계속 선택을 하며 인생을 채워 갈것이고, 노력할것이다. 과거는 흘렀고 다시 지우개로 지워 고칠수없다. 과거에 실수한 그 아픈기억은 올해, 아니 오늘 이순간부터는 만들지 말자는 것이다. 악에 대한 한바탕의 전쟁선포를 오늘 이순간 발표하고 우리는 싸움을 다짐할수있다. 아름다운 영화의 주인공 '0 00' 이 되기 위하여 노력하자는 것이다. 고백성사면 다 끝난다는 건 모순이 있다. 죄를 저지르고, 또 고백하고 하는 식의 흐르는 대로의 책임 없는 인생을 만드는 것보다 죄와의 싸움에서 이길수 있는 강인한 자아를 만드는것이 우리에겐 더 급선무가 되지 않을까? 우리가 이지상에 남길 수 있는것은 글, 사진, 캠코더로 감아놓은 우리의 추억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존속의 가치를 더하려면 살다간 그 본체가 가식적으로 남긴 흔적들보다 더 확실 해야됨은 두말할 나위가없다. 높은 위치에 있는자가 아무리 좋은 감투로 사람을 돕는척하고 그의 글과 행동을 사진과 캠코더로 완벽한 대작을 만들었다할 지언정 그의 살다간 본체가 추잡하다면 그리고 이와 다르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보이기 위한 흔적이 아니라 언행이 일치된 삶을위해 그 흔적을 남기며 그렇게 살도록 피나게 노력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바른 정도가 아닐까 싶다. 여기에 예를 들어 안중근 의사를 보라. 그가 남긴 글과 사진은 거의 없어도 우리는 그를 이순간에도 기리고 사랑한다. 바로 본체가 그의 남아있는 피상적인 흔적의 그 무엇보다 중요함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생각된다. 나는 흔적을 남기고 싶다. 본체가 있는 흔적을 말이다. ////////////////////////////////////////////////////////////////////////////////////////// 세상을 폭포라고 비유한다면 폭포 저위에서 거센물살을 타고 다수의 물고기들이 아래로 이동한다. 그러나 다수가 믿고 있는 이 모든 것이 전체다 옳은것이 아닐수도 있다. 그렇다면 때로는 그 험난한 물살을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나 연어가 되어야 하리라! 그 센 물살을 거슬러오르다 수십번씩 휩싸여 떠내려갈 지언정 옳다면 버티는 힘도 우리에게 필요하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 호락 하지 않다는것을 나는 안다. 적으나마 경험도 했다. 그러나 아직 난 젊고 그리고 버틸힘이 아직 나에겐 있기에 버틸수있다. 그렇기에 삶이 그리 순탄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불의와 싸우는 정의의 참 모습을 나는 체험한다. 사회의 모순은 젊은이들이 변화 시켜야 할 몫이 아닌가? //////////////////////////////////////////////////////////////////////////////////////// 사랑이든 일이든 나는 모두가 꼭 한 원리에 의해 다 설명할 수 있을 꺼라 믿는다 . 예를 들어 뜨겁게 가열한 양철판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리면 격렬하게 튀어오르다 금새 사라진다. 무쇠 가마솥을 뜨겁게 가열하고 그 위에 물 한방울을 떨어뜨려보자. 양철판의 물보다는 서서히 가열되다 천천히 사라지리라. 우리의 사랑과 일에대한 애착은 보다 은은하고 오래가는 후자가 맞지않을까? 힘든것을 알고있지만, 금방 사라져버리는 사랑보다는 오래 유지되는 사랑을 원하지 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 고통에관한 나의생각 시련을 두려워 하지 마십시요. 시련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다 받으십시요. 시련을 피하려고 아둥바둥데다가 할 수 없이 더 큰 시련을 맞이 하는 것은 더 비참합니다. 역경 뒤엔 은총이 뒤따릅니다. 은총의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고통의 육중한 짐이 있어야 합니다. 선물의 분량은 노고의 분량에 따라 증가합니다. 오류와 거만에 빠지지 마십시오. 천국으로 가는 사다리는 단 하나. 십자가를 통한 고통을 통하지 않고서는 천국에 오를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고통 당하지 않고서는 은총을 얻을 수 없습니다. 고통과 괴로움을 달게 받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으십시오. 하느님의 은총은 크고 아름다우며 고귀하고 보배로우며, 숱한 재화와 보물, 기쁨과 감미로움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루를 살면서 하느님이 나에게 보여주시는 하루에는 밝은 부분과 생각하기 싫은 어두운 부분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밝은 부분은 쉽고 달콤하게 우리의 기억 중에 잠시 머물다가 사라지지만 어두운 부분은 오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우리에게 힘들게 다가오는 매일의 어두운 기억은 비록 미미하나마 주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당신의 십자가 고통의 체험의 일부를 우리에게 허락하심 으로 바르게 깨닫고 하루하루를 진실 되게 살아야 함을 이야기하십니다. 고통을 함께할 수 있도록 주님이 특별히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동참할 수 있는 입장권이라 믿고 싶습니다. 우리가 삶이란 여정에서 각자가 지고 가야할 십자가에 대하여 우리는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겠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십니다. 삶이 아무리 힘들게 느껴지더라도 주님이 지시고 가시던 십자가상의 고통에 감히 동참할 수 있음에 오히려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지고 가지도 못 할만큼의 십자가는 주님은 결코 안 주실 거라 믿고 있기에 더욱 감사한 마음입니다. ///////////////////////////////////////////////////////////////////////// 결혼생활에 관하여! 두개의 거친바위가 서로 맞부딪혀 돌아가며 서로의 모를 깎아내고 다시 부딪히다보면 서로가 어느새 톱니바퀴로 변하여 조화롭게 돌아가게 되지요. 살아가며 자식을 갖게되면 또다른 꼬마 톱니바퀴가 부모 톱니 밑에서 맞물려 돌게 되지요. 여기에 벨트를 감아 힘을 만들어 낸다면 어느새 위대한 힘을 가진 공장과 같은 가정이 되지요. 성가정을 이루는 것이지요. 순간순간의 인내와 유혹을 참아내고 기도하는 시간을 보다많이 할애하는 성가정 바로 그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성가정이 아닐까요. 우리는 가장가까이 행복을 두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중요히 여길줄 모르지요. 내 가장 가까운 이웃은 옆집 철이도 아니고, 민아도 아닙니다. 바로 내가족 입니다. 멀리보지 밀고 가까이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결혼이란 하느님 앞에서의 큰 약속을 하는 것 입니다. 가볍게 볼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십년 아껴온 정신과 육체를 내가사랑하는 단 한사람, 그상대에게 준비된 선물처럼 포장된 상태로 아낌없이 바치는 것입니다. 순결! 어떤이들은 필요없다고 하지만, 사랑하는 배우자를 위해서 하느님이 주신 이 영육을 자신의 자아와의 싸움에서 이겨내며 지킬 의무감도 우리에겐 필요하지않을 까요? 과거에 이미 둔탁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오늘, 바로 오늘 부터는 더이상 죄를 짓지 말자는 것입니다. 오늘 부터의 새출발! 기대되시지 않으십니까? 더이상은 우리의 거룩한 성전을 더럽히진 않았으면 합니다. 너무나 나약한 우리 인간이기에 3일에 한번씩 우리자신을 다듬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두서 없이 늘어 놓았군요 인터넷 성당 모든 단골의 건강한 결혼 생활을 바라며!!!! 최선을 다해 성 가정을 이루기 위한 가족간의 노력과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성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미사 참여를 위해 가져야 할 우리의 마음 자세 미사 참여를 위해 가져야 할 우리의 마음 자세는 우선 영성체를 받아 모시기 1시간 이전에 음식 섭취를 끝내고, 깨끗한 위장으로 주님을 맞이합시다. 영성체는 미사의 고갱이이자 전체일수 있습니다. 죄가 있다면 고백성사를 하고서 영성체를 꼭 영해야 합니다. 영성체 없이 미사에 참석하고 돌아간다면 미사의 그 알맹이는 빠뜨리신거라 생각됩니다. 가능하다면 미사전 40분 정도 일찍와서 마음에 준비(자유, 화살기도. 고백성사 등등)를 하시고 미사에 임하신다면 미사의 의미는 더욱 뜨겁게 우리에게 와 닿을것입니다. 미사시간엔 보이지는 않지만 수많은 천사들이 바쁘고 부지런하게 제대위를 오르내리면서 온전한 미사를 준비한답니다. 성초에 불이 켜짐과 동시에 옛날 제사장들이 번제물을 불에 태워 하늘에 연기를 올리며 예식을 주관 했듯이 현재의 사제도 이와같은 의미로 미사를 집전함을 신자들은 인식하고 좀더 숭고하게 미사에 임해야 할 것입니다. 밀납으로 만든 성초는 꿀벌들이 여러곳을 다니면서 모은 재료로 만든 벌집으로 만들어지기에 지상에 있는 많은 것을 포함하고 대표하는 번제물의 상징으로 불과함께 연기로 피어오릅니다. 이땅의 모든 생산물을 하늘로 올린다는 의미가 있지요. 영성체할때 주님은 진실로 당신의 몸으로서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예수님의 몸을 먹는다는것을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천천이 녹여가며 영성체후 묵상에 임하십시요.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 될것입니다. 복사 서는 분들은, 성당에 미사시간 1시간전에 도착하여 '주님! 이시간만이라도 제몸을 천사처럼 바꾸어 주시고 저를 바라보는 이들이 미사를 보는 동안 저에게 잠시 눈길이 머물때 만이라도 정말 깨끗하고 기쁜 마음을 얻어 즐거운 미사에 임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며 미사시간을 준비하십시요. 복사들이 자꾸 움직이면 신자들이 분심이드는걸 느낀적이 있죠. 불필요한 동작을 줄이고 자세를 바르게함이 오히려 신자들을 도우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제가 어릴때 다니던 대구 소화성당은 제의방에 도로쪽으로 난 창문 하나가 나 있었는데, 미사시간 무렵엔 어김없이 붉은 노을이 창문을 물들였었지요. 무척이나 아름 다웠죠. 저 노을 빛깔 처럼 제몸을 물들이고 싶었고, 그러한 바램으로 상상으로나마 그렇게 깨끗한 색으로 물들여진 복사옷을 입고 제단으로 신부님과 입장할때면 오늘 미사는 정말 잘 될꺼야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많은 사람들과 미사를 이뤄 나갈수 있었죠. 될 수 있다면 흰천사 날개까지 달아달라고 기도 하며 제단으로 나갈때 기도한적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마음을 유지하고 싶어요. 봉헌시간엔 '주님! 저 봉헌 바구니가 꼭 필요한이들에게 옳은일에 쓰일수 있도록 기운을 불어넣어주십시오'라고 기도하십시요. 무거워진 봉헌 바구니의 느낌이 정말 좋았답니다. 그당시에는 봉헌바구니를 복사들이 들고 있도록 하였었지요. 어린 마음에 가난한 사람들 더 도와 줄수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흐뭇 했었지요. 영성체 시간에는 신부님옆에서서 영성체를 영하러 나오는 신자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화살기도를 하십시요. '노인- 장수와 건강을, 어린이- 맑은 생각과 건강을, 어머니- 집안을 편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지혜를, 아버지- 건강과 올바른 판단을, '등의 그날 그날의 상황과 연령과 시대적인 흐름에 따른 기도를 바꿔가며 기도를 끊임없이 하십시요. 이후에 신자들이 봉헌이나 영성체를 다하고 제자리로 돌아갔을때 신자의 얼굴 하나하나는 너무나 자연 스럽게 친숙하게 되어있고, 얼굴도 금방 익힐수 있으며, 이렇게 되면 정말 다정하고 친숙한 가운데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이들 전체를 위해 기도 할 수 있습니다. 영성체 후 묵상때 눈 감고 기도하는이들을 바라보면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절로 들게됩니다. 이모든 것이 복사를 설때 필요한 마음이라고 과거에 복사를 설때마다 짧은 생각이나 제가 느끼는 바였습니다. 반주, 전례, 성가대 여러분들도 나름대로 위와 같은 맥락대로 자기가 맡은 분야에 맞게 준비하고 미사에 임할때 비로서 이는 곧 삼위일체가 되어 미사를 더욱 완벽하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혼신을 다하여 바치는 미사!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할 희생의 미사가 아닌가 생각 합니다. 참희생은 희생을 희생이라 말하지 않음을 의미함을 저는 오늘 이글을 작성하며 다시한번 되새겨 봅니다. 그리고 그 희생을 통하여 완전하고 합당한 미사성제를 다시한번 구해봅니다. 마음을 가다듬어 미사에 가보도록 합시다. 우리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이글은 대구계산성당 목요성서모임인 여정에서 다루었던 생활나누기에서 제가 나누었던 내용을 보완하여 글로서 새롭게잉태 시킨것입니다. 이글을 지금 병상에서 사력을 다하시는 어머니 이선영레지나와 여정 식구와 수요기도모임인 젊은이들의 기도모임 식구들에게 바칩니다. 여러분! 진정으로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바른 신앙인으로 살수있도록 뼈를 깎아내는 아픔으로 나가십시요! 부족한 글이나마 끝까지 읽어주심에 정말 감사드리며, 저의 글을 사랑해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모든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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