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동성당 게시판

[멋진 배낭여행-11]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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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대 [changjhon] 쪽지 캡슐

1999-11-03 ㅣ No.1061

 ◎세계인과 대화하는 배낭여행-11회 {일본-3}

 

-The more I talk, the more I realize the importance of Korea.-

(외국인과 대화를 할수록 더욱 한국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원폭 맞은 나가사키-

 

나는 후쿠오카에서 09시 10분 발 나가사키행 기차를 탔다. 그리고 약 2시간 후인 11시 21분에 그곳에 도착했다. 열차 안 분위기는 역시 깔끔하고 조용했다. 한쪽 편에 보니 한 가족이 보였는데 그들 가운데 10세 전후의 어린이 두 명이 있었다. 그 아이들은 둘이서 뭔가 장난을 하고 놀았는데 우리의 시각으로 볼 때 그들은 결코 어린이답지 않았다. 그저 조용조용 웃고 말하고 움직이는 그런 모양새를 보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저렇게 어릴 때부터 철저히 순수 인간적인 감정을 억제 내지 절제하는 분위기에서 길러진다는 것이다.

 

잠시 후 기차가 도심을 벗어나자 마치 우리 나라의 농촌 마을을 지나가는 듯한 착각을 할만큼 우리와 비슷한 시골 전원의 풍경이 줄곧 이어졌다. 그러나 조금 신경 써서 살펴보니 이곳은 부자 나라의 현대화된 농경 마을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대부분의 농가들은 지붕에 태양열 시설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전통 가옥인 조그마한 2층 기와집들도 상당수 눈에 띈다. 한편 자연의 무대에선 누렇게 물든 벼들이 물결을 이룬다. 마치 풍요로움의 상징인 거대한 황금색 병풍을 펼쳐 놓은 것 같았다.

 

나가사키역을 나와 보니 마치 조그만 지방 도시에 온 기분이었다. 주위의 경관(景觀)이 그러했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도 그러했다. 이 도시도 구릉 지대에 형성된 조그만 도시임을 곧 알 수 있었다. 나는 좀 갑갑한 느낌을 받으면서 아니 이런 곳에 원폭을 투하했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했다.

 

나는 큰길을 건너기 위해 육교 위에 올랐다. 아니 그런데 웬 젊은이가 나에게 소리 없이 다가와 마치 나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내 코앞에 서서 지긋이 눈을 감지 않는가. 그리고 자기 혼자 뭐라고 중얼중얼 한 뒤 조그만 부적 같은 것을 내밀며 그것을 믿느냐는 것이다. 내가 관심 없다고 하자 그는 다시 한 번 주문을 외더니 자기를 따라 하란다. 내가 불쾌감을 표시하자 그는 마침내 고개를 가볍게 숙여 인사를 한 뒤 조용히 물러선다. 나는 이런 현상을 접하면서 처음엔 상당히 당황했다. 그러나 곧 이해하게 된 것은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뭐 이상한 종교단체와 같았기 때문이었다.

 

"Well, I think it’s one of the common phenomena(흔히 볼 수 있는 현상) for us to see such unexpected(예기치 않은) people on the streets who are very active(적극적인), some times too much though, to infect us with their own radical or strange idea(과격하거나 이상한 사상을 불어넣으려고).

We are often faced with(직면한다) those problems wherever we go in this global village(지구촌). Especially, I think such members of strange religious circles(이상한 종교 단체) who are often seen as well-educated persons or radicalized- characters(고학력자나 과격한 성품의 사람들) are *in some sense(어떤 의미에선)  *at the sacrifice of(희생물이되다) their bad leaders no matter where they are in rich country or another(부자 나라든 아니든 나쁜 지도자들에 의해).

 

Maybe I guess, as long as we belong to this modern society(현대 사회에 사는 이상) where we think it’s too much demoralized or sick and tired of ultra-modern life(너무 타락했거나 초현대화 생활에 식상한), there is no hope that we can escape seeing those unpleasant happenings(불쾌한 일들).  

  

나는 YH를 찾아가다 파출소가 보이기에 들어갔다. 과연 이내들은 외국인들에게 얼마나 친절한가 확인도 할 겸 한번 부딪쳐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파출소에 들어서니 딱 한 명의 경찰만이 책상에 엎드려 뭔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쓰미마셍" 하며 들어섰는데 이 경찰관 고개도 안 들어보고 손만 저어 댔다. 잠시 후 나는 또 한 마디 했다. "excuse me"  아니 이번엔 아예 고개까지 흔드네. 흠, 사람을 쳐다보기나 하고 저따위 행동을 하면 좀 따져 볼 심상도 없지 않았으나 뭔가 중요한 업무를 보고 있는 듯하여 그냥 나오고 말았다.

 

이러한 시도 역시 나에겐 배낭 여행을 통해 얻는 소중한 체험 중 하나이기에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즐긴다고 하고 싶다. 직접 부딪쳐 봐야 뭔가 새로운 느낌이 있고 또 전혀 몰랐던 것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비교적 쉽게 찾은 YH에 투숙했다. 하루에 1,900엔(시트 200엔, 저녁 식사비 700엔)인데, 상당히 넓고 큰 규모의 YH이었다. 역시 대부분의 배낭족들은 서양 젊은이들이었다. 이 YH의 도미토리는 남녀관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저녁 메뉴는 우동이었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샤워도 했다. 그리고 라운지에 갔더니 서양 친구들 몇몇이 앉아 TV 시청을 하면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는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어울렸다.

 

그 중 한 명은 스웨덴 친군데 내가 한국인임을 밝히자 그는 나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한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도, 대부분의 배낭족들이 그렇지만, 그의 가장 큰 관심사도 물가였다. 나는 이런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여 한국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충분한 정보를 주면서 안심하고 여행할 것을 은근히 유도하는데 최선을 다한다. 여행객에게는 실용적 정보와 함께 기쁨을 주고 우리 나라 살림엔 보탬을 주는 신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는 보통 일 년에 한 번 쯤 세계여행을 한단다. 이번 여행은 일본 열도와 한반도라고 했다. 그는 홋카이도에서 쭉 내려 온 것이다. 그리고 배편으로 부산엘 간다는 것이다. 멋있는 여행 코스인 것 같았다.

 

역시 나에겐 빼놓을 수 없는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여행 경비 규모와 조달 방법이다. 총 비용은 3,500$ 이고 물론 자기가 직접 번다고 했다. 사실 이런 질문을 받는 서양 젊은이들은 오히려 의아해 한다. 그들은 나이 18세 이상이 되면 스스로 성인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행동한다. 즉 그들은 부모로부터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완전한 독립을 한 뒤 비로소 자신의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러한 사회 환경에서 성장하고 또 그러한 주체적 삶을 살도록 교육을 받기 때문이다. 필요한 돈은 자신이 벌고 가고 싶은 곳도 자신이 선택한다. 선택권과 그에 따른 책임감을 동시에 지니는 것이다.

 

나는 세계의 젊은이들 모습에서 그 나라의 미래를 점쳐 본다. 홀로 서기에 강한 젊은이를 둔 나라들은 예나 지금이나 아니 미래에도 세계를 이끄는 주도 국이라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독립된 성인이 되기를 거부하며 모라토리움을 선언하는 철부지들을 둔 나라의 미래는 지금까지와 같이 강대국에 의해 경제적, 군사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종속되어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젊은이의 모습은 곧 미래인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나는 역사의 현장인 나가사키 원폭 투하 현장을 찾아갔다. 당시의 전쟁놀이에 이성을 잃고 혈안이 되어 무고한 인명을 담보로 세계 질서를 마구 뒤흔들고 있던 전쟁광 일본인들. 그들의 머리 위에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이어 8월 9일 두 번째의 원폭을 떨어뜨리고 나서야 두 손을 들게 된다.(사실, 소련의 즉각적인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가 없었다면 제 3의 원폭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이곳 나가사키는 실로 비극적이면서도 동시에 환희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수많은 생명을 일시에 희생한 곳인가 하면 동시에 더 많은 고귀한 생명과 인권을 구제하게 된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구 27만 가운데 2만 4천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생사불명자만도 2천 명이고 부상자가 4만을 넘었다.(참고: 히로시마 원폭 피해는 약 30만 인구 가운데 7만 8천 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부상자포함 행불자가 5만을 넘었다.) 물론 그 회생자들 가운데 수 만명의(약 10%: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 참조) 우리의 불쌍한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포함된다. 더 슬픈 사실은 이러한 참상을 직접 피해자의 후손들이면서도  정부나 국민들이나 적극적으로 알리려고도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이 역시 선진국 내지 강대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예다.  

 

우리의 착하고 선한 조상님들은 무능한 조국의 후손임이 죄가 되어 강제로 일본에 끌려와 뼈가 바스러지도록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고 또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 갔던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피해자는 우리임에도 불구하고(사실 나는 이 말을 증오한다. 피해자이기 이전에 스스로 지키지 못한 안일하고 무능함이 더 부끄럽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 그들이 말하는 평화공원에서는 그들의 조상인 전쟁범 원흉들의 혼령을 달랜다는 위령제 준비에 한창이다. 이 얼마나 천인공노(天人共怒)할 가증스런 위선의 현장인가. 과연 그들의 양심엔 가해자로서의 뉘우침의 공간이 있을 수 있을까. 아니다. 차라리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나을 것 같다. 그들의 원형은 분명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약 800만 명 강제동원) 불쌍한 우리 조상들에게 인권유린은 물론 존엄한 생명까지 짓밟는 등 그 잔흑상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다. 학살(虐殺), 척살(刺殺), 분살(焚殺), 아살(餓殺)...차마 입에 담지 못할 반인륜적 행위를 일본인들은 자행했다. 그러한 짓은 중국에서도 대등소이했다. 그 유명한 남경대학살(30여만 명 희생)과 화북 3성에서의 10만 명 이상의 무고한 주민 대학살이 그렇다.

 

그들이 저지른 비분강개(悲憤慷慨)할 짓들은 역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업보가 그들의 후손들에게 넘어갈 것이다. 자연의 이치라고 믿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착잡한 심정으로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 현장(평화공원)에 서 있다. 공원 전체의 분위기는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움직인다. 여기저기서 관광객들의 모습도 드문드문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일본인들이다. 특히 유치원생들을 단체로 인솔해 와 어린이들에게 뭔가를 설명하는데 열을 올리는 교사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귀를 기울여 보니 평화 공원의 내력을 설명하면서 미국이 원폭을 투하했다는 말을 여러 번 강조한다. 어린이들에게 일종의 국민 교육이자 정신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참으로 무서운 사람들로 보였다.

 

The peace park is presided over by the Nagasaki Peace Statue(平和像으로 대변되는 평화공원은), which, good intentions aside(善한 의미완 별개로), is a monstrosity of immense proportions(끔찍한 잔학상을 갖게한다). At the time of the explosion(원폭당시), the park was the site of the Urakami Prison(우라카미 형무소) and every occupant of the prison, prisoners and warders(죄수와 간수들 모두), was killed instantly(즉시). An annual antinuclear protest(연중 반핵 시위행사) is held at the park on 9 August.

 

그리고 한 쪽엔 ’평화공원 기념식 준비 위원회’ 란 글이 새겨진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다. 그리고 모래 8/9일에 있을 원폭 피해를 알리는 그들만의 기념식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인부들이 많았다. 나는 일본인들의 수심양면(獸心羊面)을 목도하면서 그들은 참 훌륭하고 자랑스런 후손들을 두었구나 하는 부러움마저 들었다. 일본인들, 바로 그들에 의해 억울하게 죽어 간 불쌍한 우리 조상님들의 혼령들은 자존심마저 잃고 사는 못난 후손들을 둔 부덕의 소치로 엄숙한 위령제 한 번 진배(進拜)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참으로 슬픈 마음의 눈물을 흘린다.

 

Cf: When the B-29 bomber(폭격기) set off from Tinian(티얀섬 기지에서 출격했다) on 9 August 1945 to drop the second atomic bomb on Japan, the target was Kokura on the north-eastern coast of Kyushu(규슈 해안의 동북부의 코꾸가가 공격목표였다). Fortunately for Kokura it was a cloudy day and, despite flying over the city three times, the bomber’s crew could not sight the target, so a course was set for the secondary target, Nagasaki(코꾸라 상공에 구름이 뒤덮혀 목표물을 볼 수 없었던 조종사는 나가사키로 돌렸던 것이다). The B-29 arrived over Nagasaki at 10:58 am but again visibility was obscured by cloud(나가사키에서도 구름때문에 잘 볼수가 없었다). When a momentary gap appeared in could cover(구름사이로 잠깐 비친), the Mitsubishi Arms Works, not the intended Mitsubishi shipyard, was sighted and became the target(미쓰비씨 조선소가 아닌 무기 공장이 표적물이 된 것이다). Afterwards(그 뒤), the aircraft turned south and flew to Okinawa, arriving there with its fuel supply almost exhausted(오끼나와로 날아와 연료공급을 받았다). The explosion took place at 11:02 am, at an altitude of 500m(고도 500m에서 원폭을 투하했는데), completely devastating the Urakami suburb of northern Nagasaki and killing 75,000 of Nagasaki’s 240,000 population including so many Koreans(우라카미 교외의 지역을 황폐화 시켰고 많은 한국인들이 포함된 나가사키 전 인구의 24만명 가운데 7만5천명이 사망했다). Another 75,000 were injured and it is estimated that that number again have subsequently died as a result of the blast(그 원폭에 의한 부상자도 7만5천이었는데 결국은 다 죽고 말았다). Anybody out in the open within two km of the epicenter suffered severe burns from the heat of the explosion; even four km away exposed bare skin was burnt(원폭투하 지점의 반경 2km내의 사람들은 치명적인 화상을 입었고 4km밖에 있던 사람들조차도 노출된 피부엔 화상을 입었다) . Everything within a one km radius of the explosion was destroyed and the resultant fires burnt out almost everything within a four km radius. A third of the city was wiped out.  (피폭점 1km반경 내의 모든 사물은 파괴됐고 그로 인해 발생한 화재로 4km반경 내의 모든 것을 불태워 버렸다. 결국 도시의 4/3을 소진해 버린 것이다).                          

 

▶감사합니다.        <일본편 4회 계속>        -장 정 대-

 

▶Email to: jackchang7@yahoo.com       ◎All rights reserved.

 

◆수치심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들은 남으로부터 피살되기보다도 구원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수치심을 모르고 도망치는 사람들에게는 명예도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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