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골 자유 게시판

짝사랑이야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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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성 [greenbee] 쪽지 캡슐

2000-06-08 ㅣ No.843

체육대회가 시작되었다. 기분 좋은 구경거리가 되는 양, 해님이 아침 일찍부터 나와 아이들

의 경기를 지켜 보려 하고 있다.

철민이네 반은 야구를 제외하곤 첫날부터 경기를 가졌다. 야구는 부전승으로 4강에 먼저 올

라가 있어 오늘 경기가 없었다. 철민이는 현주가 응원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며 피구가 열리

는 곳에 있었다.

오학년 피구가 운동장 한 편의 배구장에서 오전 첫교시부터 시작되었다.

"플레이 플레이 이~일반."

현주를 비롯한 응원단 아이들이 파란 하복 체육복을 입고 경기가 시작하기 전부터 흥을 돋

구고 있었다.

"플레이가 무슨 뜻이냐?"

"야이, 바보야. 놀자,라는 뜻이잖아. 씨름은 언제 하냐?"

"나중에 점심 먹고."

"빨리 따라해 임마. 플레이 플레이..."

철민이와 동엽이는 같은 반 아이들과 섞여 현주가 응원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

피구 경기가 시작 되었다. 파란 체육복이 참 잘 어울리는 지윤의 모습은 현주 못지 않게 예

쁜 꼬마 아가씨의 모습이건만, 철민이의 시선은 여전히 응원하는 현주에게로만 가 있다.

용케도 지윤은 밖에서 공 잡아 주는 사람이 아니라, 안에서 공을 피하는 선수가 되어 요리

조리 공을 피하며 뛰어 다녔다. 삼십분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일반에서는 네 명이 남게 되었

다. 상대편 반에서는 아직 열명이 안에서 뛰고 있다.

"야, 피구는 기대하지 말아야 겠다."

한 명이 더 공에 맞아 밖으로 물러 나자, 동엽이가 철민에게 말을 걸었다.

"지윤이 저거 생각 보다 잘 피하네. 빨리 응원해."

"역시 넌 지윤이를 좋아하는 게 맞는거 같어."

"헛소리 하지 말고 응원이나 해 임마."

철민과 동엽이 둘이는 거의 승부가 난 듯이 보이자 응원을 포기한 응원단 대신으로 크게 소

리를 질렀다.

"잘 한다. 박지윤!"

철민과 동엽이의 커다란 함성에 힘입어 지윤이는 머리에 공을 맞고 밖으로 퇴장 당했다. 그

리고 경기는 곧 끝이 났다.

경기가 끝나자 마자, 다음 경기가 있을 때까지 일반 아이들은 해산했다. 철민은 약간은 풀이

죽어 친구들과 멀어지는 현주를 보며 나중에 자기는 잘 할 것이다,라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

었다. 그걸 알기나 할까, 지윤이가 상큼한 웃음을 지으며 철민에게로 왔다. 동엽이는 철민이

옆에 있다가 지윤이에게 웃어 주며 인사를 했다.

"너, 생각보다 잘하더라."

"졌잖아."

둘의 대화를 듣고 그제서야 철민은 지윤이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야이 바보야. 응원하자 마자 바로 죽냐."

"헤, 놀랬잖아. 갑자기 크게 소리 치는 바람에..."

"머리는 안 아프냐."

"응."

"나중에 씨름 할 때, 동엽이 좀 응원 해 줘라."

"해주긴 하겠는데, 얘는 질 것 같애."

동엽이는 아무말 못하고 어깨가 축 쳐진다.

"나 선생님한테 찍힌거 맞지?"

 

점심시간에 학생들은 운동장 한켠에서 어머님들이 가지고 온 빵과 우유 등으로 오찬을 즐겼

었다. 육학년들은 곧 있을 야구 시합 준비를 하며 운동장 중앙에서 공 던지기에 부산했다.

철민과 동엽은 이런 날은 늘 그렇듯이 다른 어머님들이 준 빵과 우유를 가지고 운동장 옆,

나무 그늘 아래서 둘만의 점심을 즐기고 있었다. 지윤이도 자기 엄마가 왔다며 어딘가 가

버려 보이지 않았다.

"야, 너네 엄마도 한 번 오시라고 그래. 너네 집에 과일 많잖아."

"그럴까."

"준용이는 어딜 갔냐. 짤짤이라도 했으면 싶었는데."

"너, 짤짤이 안한다고 했잖아."

"아 맞다. 나 안해."

"지윤이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하는 거지?"

"너 자꾸 지윤이 얘기하면 너하고 안 논다."

"자식이 주제를 알아야지. 그나저나 나 씨름 진짜 자신 없는데."

"잘하면 돼."

동엽과 철민이가 빵을 씹고 있는데 운동장에서 야구 연습하던 아이 하나가 놓친 공이 철민

이 쪽으로 굴러 왔다. 철민과 동엽이는 빵과 공을 물끄러미 쳐다 보며 눈을 껌벅거렸다. 이

게 왜 날아 왔댜,라는 식으로 말이다.

"야, 거기 공 좀 던져."

운동장 한 가운데서 덩치가 자기들보다 훨씬 작은 놈이 고래 고래 소리 치는 것을 보고 철

민이가 소곤 거렸다.

"저 새끼가 우리한테 지금 반말 하는거냐?"

"육학년인가 보지 뭐."

"한 살 차이 가지고 되게 잰다 그지."

"그래."

"기분 나빴다 씨. 내 빵 먹지 말고 그냥 들고 있어."

"알았어."

철민이가 동엽에게 빵을 맡기고 굴러 왔던 공을 잡아 일어 섰다.

"야, 거기 뭐해. 공 좀 던지라니까."

"힘껏 던질까?"

고래 고래 소리 치는 운동장 가운데 녀석을 보고 철민이가 답을 했다.

"그래 임마 힘껏 던져."

"알았어 임마. 그만 소리쳐."

이 소리는 물론 근방 일미터 안에 있어야 들릴 만한 작은 소리였다. 그리고 멋있는 표정으

로 힘껏 던졌다. 공은 운동장을 가로 질러 철민이가 있던 반대 방향의 운동장 옆 나무 밑으

로 날아 가 버렸다.

"야, 공 좀 던져!"

"저 새끼는 아무한테나 싸가지 없이 말하는군."

자기 반대 방향의 나무 밑에 있는 아이들에게 소리치는 그 육학년 녀석을 보며 한 소리 내

뱉고는 철민은 다시 나무 아래 앉았다.

"야이, 왜 갑자기 내 빵이 이렇게 작아 진거야."

"나 점심 먹고 씨름하잖아."

철민이가 동엽이가 들고 있던 자신을 빵을 보며 투덜거리자, 동엽인 그나마 남아 있던 빵도

입에 넣으며 나 잡아 봐라는 식으로 도망을 쳤다.

"야이, 싸가지는 배꼽 만큼도 없는 새끼야."

둘은 힘껏 달렸다. 운동장에는 아이들의 발랄한 모습들로 좋은 풍경이다.

동엽이가 철민에게 잡힐 듯 하자, 근처를 지나던 여학생들 틈으로 가 홱 숨었다. 동엽이가

완전히 가려지는 걸로 봐서 여학생이 상당히 큰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동엽이는 자신이 몸

을 맡긴 여학생의 팔까지 잡고 철민이가 어느쪽으로 자길 잡으러 올까, 계산하면서 다시 튈

준비를 하고 있다. 철민이는 그냥 서 버렸다. 동엽이가 몸을 숨긴 여학생은 현주였기 때문이

다. 철민이는 지금 아주 놀라워 하고 있다. 아주 잘난 여자라 다가가기가 너무나 어렵게 느

껴지는 현주를 동엽인 아무렇지도 않게 팔까지 잡고 그 애의 뒤에 숨어 있다는 사실에 말이

다.

"얘, 너네들 지금 뭐하는 거야."

현주가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 투덜거렸다.

"어, 그냥 노는 거지 뭐."

동엽이가 현주의 말에 답했다.

"그럼 너네들끼리 놀아야지 왜 내 팔을 잡고 그래."

"잠깐만 있어 봐."

동엽인 현주의 뒤에 섰다가 철민의 눈치를 살피고서는 다시 달음을 쳤다. 현주는 그냥 웃을

뿐이었고, 철민은 멍한 모습으로 그냥 서 있을 뿐이다. 현주가 다시 걸음을 걸어 자신과 멀

어 지자 철민은 그제서야 주위를 살피더니 동엽이가 있는 곳으로 달려 가기 시작했다. 그리

고 곧 동엽이를 잡았다.

"너, 현주랑 친하냐?"

"아니."

"친하지도 않은데 그런 짓을 꺼림낌 없이 할 수 있냐."

"뭐. 같은 반 앤데 어때서."

"같은 반 애면 그렇게 해도 되냐?"

"못할 건 뭐냐."

"너 대단한 놈이네."

"이상한 놈이네."

"그건 그렇고 빵 내놔."

"다 먹었어, 배째."

 

점심 시간이 끝나고 오학년 일반과 사반의 아이들이 씨름장으로 모여 들었다. 현주를 비롯

한 응원을 맡은 아이들이 또 떠들기 시작했다. 동엽인 선수들과 섞여 샅바를 매고 씨름을

맡은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반 아이들과 떨어져 앉아 있다.

씨름장을 둘러서 여학생들이 앞에 앉고 남학생들은 뒤에 앉아 관람 겸 응원을 하고 있다.

철민이 앞에는 지윤이가 있다. 여자 키 순으로, 남자 키순으로 둘이는 비슷한 순위다.

"야, 우리도 너 응원 했으니까. 너도 동엽이 응원 좀 해라."

"알았어."

"그나저나 빵 남은 거 없냐?"

"왜? 교실에 가면 있을 걸."

"저 새끼가 내 빵을 뺏어 먹었거든."

"그래. 나중에 가져다 줄게."

씨름 선수는 한 반에 모두 일곱명이었다. 세 번째로 동엽이가 등장을 했다. 지금까지는 일반

과 사반이 한 판씩 나눠 가졌다.

"동엽이 화이팅!"

철민이는 그냥 키키 웃으며 동엽이가 등장하는 모습을 쳐다 보았는데, 응원 단장인 현주가

그렇게 외쳤다.

’우쒸.’

"동엽아, 잘 해."

지윤이도 의기양양하게 모래판으로 걸어 들어 가는 동엽이에게 힘을 북돋아 주었다.

동엽이가 지윤이의 목소릴 듣더니 브이자를 그렸다. 상대방의 몸집이 자신 보다 훨씬 작았

었기에 자신감도 있어 보였다.

 

"준비, 시작!"

삼초나 지났나? 동엽이는 뒷다리 후리기에 얼굴이 모래 바닥에 쳐박히며 참패를 했다. 그래

도 반 아이들은 응원을 했다. 다음 판이 있었기에... 철민이도 동엽이가 좀 안되어 보였는지

큰 소리로 응원을 했지만 상대방 녀석은 선수였다. 둘째판은 배지기를 당한채 씨름장 밖으

로 던져져 버렸다. 불쌍한 동엽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자신을 노려 보는 담임과 반 아이를

외면한 채 세면장 쪽으로 도망을 쳤다.

 

철민이가 동엽이를 따라 가 보았다. 녀석이 진짜 눈물을 흘리며 울고 있었다.

"나는 잘할려고 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잘 하는게 없냐. 선생님이 날 미워할 만도 해."

"너 잘하는 거 있어."

철민이는 위로차 좋은 말을 해 주었다.

"내가 뭐 잘하는게 있냐."

"너 현주한테 말도 잘 걸대. 너 대단한 놈이야."

"거기서 현주가 왜 나와 임마."

"나는 그렇게 못하거든."

"이 새끼, 진짜 이상한 놈이네."

 

첫날 오학년 일반은 야구를 제외한 전 종목에서 예선 탈락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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