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담이있는 연중 제16주일 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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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2000-07-22 ㅣ No.353

연중 제16주일(나해. 2000. 7. 23)

                                                    제1독서 : 예레 23, 1 ∼ 6

                                                    제2독서 : 에페 2, 13 ∼ 28

                                                    복   음 : 마르 6, 30 ∼ 3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간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장마가 끝

났다고 하더니만 휴가를 떠나려하는데 다시 비가 내리는군요.  여름 하면 조

금은 쉬었다 가야하는 시간 같습니다.  일년중의 반을 보내고 다시 힘을 얻

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바쁜 중에 어디 조용한 곳을

찾아서 쉬면서 자신을 돌아보고 새롭게 힘을 얻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요즘

은 모두가 같은 시간에 비슷한 곳으로 떠나다 보니 결국 조용히 편하게 보

내기보다는 사람구경만 잔득하고, 짜증스럽고 기분만 상해서 돌아오기가 일

수입니다.  사람에게 휴식이라는 것은 분명 지금까지의 일들을 정리하면서

다음 일에 있어서 더 나은 기분과 힘을 주는 것이 확실합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사도들이 파견되었다 돌아오

자 제자들에게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서 함께 좀 쉬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파견되었던 사도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일들 자신들이 한 일을 자랑하

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하셨

던 시간에 감사하고, 사도들 자신이 하느님께서 함께 하신 시간을 돌아보고

감사함으로써 진정한 사도가 되길 원하십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더 자랑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에 가자고

하십니다.  사실 바쁜 요즘의 신앙인들은 기도를 하거나 자신들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보다는 한 가지의 일이라도 더 잘하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도 소홀해 지고 결국은 하느님과 멀어지고 맙니다.  기도 없는 생활을

하다 보면 결국은 자신의 일에 조언을 하는 사람을 만나면 마음이 무거워

지고 도와주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어서 조언하는 사람과 자신 사이에 담을

쌓게 됩니다.  다른 이들에 대해 이해나 배려는 생각지도 못하게 됩니다.  

담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결국은 자신과 다른 이들을 구분 짓게

하는 분열 분단의 모습이 되고 맙니다.

 

  우리 나라의 집은 대개 담으로 둘러 싸여있습니다.  처음 담을 쌓을 때는

바람을 막고 온갖 방해물로부터 집을 보호하자는 뜻이 담겨있습니다.  그러

나 담은 동시에 남과 갈라놓는 것입니다.  청소를 할 때에도 담 안만을 깨끗

이 하고 담 밖은 그대로 두는 것을 보는가하면, 때때로는 담 안의 쓰레기를

담 밖으로 쓸어 내거나 담 안의 쓰레기를 담 밖으로 그냥 던져버리는 경우

도 있습니다.  담배꽁초를 길바닥 아무 데나 버리고 가래침도 그렇게 내뱉지

만 자기 집 담 안이라면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담이 안과 밖을

갈라놓는 역할을 할 때, 담 밖은 관심 밖이 되기 일쑤입니다.  남에게 무관

심하게 되고 배타적이 됩니다.  남으로부터 보호를 받으려고만 하고 남을 보

호하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웃과 점점 멀

어지게 합니다.  어릴 적에 읽었던 동화에 거인이 사는 집에 아름다운 정원

이 있는데 아이들이 들어와 노는 것을 싫어한 거인이 아름다운 정원에 아이

들이 못 들어오게 하고 정원의 아름다움을 혼자 감상하려고 담을 높게 쌓았

지만 아름다운 정원은 겨울만 계속되고 봄이 오지 않아 죽어 가는데 담 사

이로 생긴 틈으로 아이들이 들어오면서 다시 봄이 찾아오고 아름다운 정원

도 살아나 거인은 담을 헐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호받기 위해 담

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을 보호하기 위해 담을 헐어야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담을 허무는 데는 오늘 제2독서의 말씀처럼 그리스도와 같이

피를 흘리는 자기 희생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분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유다인과 이방인이 서로 원수가 되어 갈리게 했던 담을 헐어 버리시고 그들

을 화해시켜 하나로 만드시고, 유다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새 민족으로 만들

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또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둘을 한 몸으로 만드셔

서 하느님과 화해시키고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습니다."  희생이

야말로 담을 없애는 최대의 처방입니다.  희생 앞에서 무너지지 않는 담은

없습니다.

 

  활동을 많이 할수록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할수록 자신을 돌아보고 하느

님과의 뜻이 자신 안에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합니다.  담을 헐어버리고 서

로 마음을 열어 다가선다면 우리는 진정으로 평화를 얻게 될 것입니다.  평

화를 맛볼 때 우리를 이끄시려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할 수 있

습니다.  기도하면서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담을 헐어버린다면 올 여름의

휴가도 진정으로 우리에게 휴식과 하느님의 평화를 맛보게 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하시면서 보여주신 평화의 삶

에 자신 있게 동참하는 한 주일이 되도록 노력해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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